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요한복음 요약

열려라 에바다 2024. 9. 7. 10:50

요한복음 요약

1. 말씀이신 예수님(요 1:1~3)

 

1) 태초(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빛이라).

 

 정리 :

 

    1절의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로고스’로

    ‘우주의 모든 것에 스며있는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원리’를 뜻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말씀, 즉 로고스로 표현한 것은

    예수님이 이 땅과 하늘의 모든 원리와 원칙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역할을

    맡으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전하시는 ‘말씀의 역할’을 하셨으므로

    ‘말씀’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성부, 성령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요 1:9~12)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정리 :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빛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생물이 빛을 받아야 살 수 있듯이

    주님의 백성들도 주님의 빛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생명의 빛이 각 사람에게 비추었습니다.

    그 생명의 빛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자에게 기 빛을 비추십니다.

    이 땅에서는 물론 우리가 죽은 후에까지 영원히 우리를 비추시는 영생의 빛이십니다.

 

    이 생명의 빛은 주님의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임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가까이하며 사는 것이 곧 그의 빛을 받는 것입니다.

 

 정리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 영접하는 자 : 예수님을 내 마음에 나의 왕으로 모시고 받아들였습니다.

 

      내 가치관이 있는 곳, 나의 판단이 일어나게 하는 곳,

      그래서 그 가치관과 판단에 따라 나를 즉각 움직이게 하는 곳으로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 그 이름을 믿는 자 : 예수님을 영접한 자가 계속 해야 할 일

 

      그렇게 예수님을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마음 중심의 자리에 모시고 받아들인 자가

      그다음에 계속 해야 할 일이 그를 믿는 일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는 그 이름에 이르도록, 그 이름 안으로 들어가도록

      계속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주님의 이름 안으로 들어가도록, 주님의 이름에 이르도록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에서 ‘권세’에 해당하는 ‘엑수시아’는

      ‘신분의 격상과 함께 주어지는 권세’를 뜻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름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모든 능력과 권세가

      그 신분과 함께 주어집니다.

 

      물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그 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함께 그 능력과 권세가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거듭난 자’, ‘새로운 피조물’로 표현합니다.

 

  ➠ 간절히 갈망하며 구하는 자에게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 예수님

 

      이렇게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러나 이 믿음조차 우리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주께 구하고 갈망하는 자에게 그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전체로 보면

      ‘영접과 믿음’은 결국 ‘간절한 열망’한 단어로 정리됩니다.

      주님을 간절히 열망하는 자, 주께서 인도하시는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는 자,

      소위 ‘메시아 대망’을 품고 있는 자가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이 됩니다.

 

 

3.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6)

 

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사람의 육체는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영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니)

 

 정리 :

 

    거듭남이란

    ➀‘처음부터, 완전히, 전부’,

    ➁‘하늘로부터’,

    ➂‘두 번째로, 다시’의 세 가지의 뜻을 가졌습니다.

 

    거듭남이란 완전히 다시 창조되는 것을 뜻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와 같이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구약의 율법처럼 단순히 무엇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만으로는

    도저히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아예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창조하셔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거듭난 사람의 상태를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의 ‘영’은 ‘영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의 상태를 ‘영’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난 자(거듭난 자)만이

    영생을 소유한 영의 사람입니다.

 

    ※ 요한복음 2:1~11의 가나의 혼인잔치는

    주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거듭난 상태가

    이 땅이 기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기쁘고 놀라운 것임을 나타내는

    일종의 비유적 사건입니다.

 

 

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17)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정리 :

 

    사람들도 사랑하는 자에게 자신의 사랑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주듯,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담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가 다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크고 놀라운 선물입니다.

 

 

5.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요 3:36)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정리 :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소유했다는 것이

    구원파나 영지주의처럼 일단 한 번 영생을 소유하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그가 영생을 항상 소유하고 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생명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가령 어떤 자가 죽었다가 어찌해서 다시 살았다고 합시다.

    그가 다시 살았으니 그냥 내버려두어도 계속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양식을 먹이고 잘 살펴주어야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어 영생을 소유한 자(영의 사람, 거듭난 자)가 된 자는,

    주님의 빛 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영의 생명이 유지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혹은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해야만 합니다.

    만일 어느 순간 주님을 믿는 경건의 삶을 중단하면

    마치 꽃이 가지에서 잘린 것처럼 그 영의 생명도 잃게 되고,

    이전에 주님을 믿지 않던 영이 죽은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6. 영과 진리로(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23) 아버지께 참으로(진정으로, 진실하게)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지금이 바로 그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니라.

 

 정리 :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이미 천국 백성처럼 영생을 소유한

    영의 사람(거듭난 사람,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되려면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거듭난 자, 영의 사람이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자, 영생을 소유한 자가 드리는 예배가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과 계획이 일어나게 하는 내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집중한 상태로 드리는 예배,

    나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인 성령을 모신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진리이신 예수께 드리는 예배를 가리킵니다.

    예배를 돕는다는 이유로 그 어떤 우상이나

    그 어떤 이미지 물도 만들거나 그 앞에 두지 않고,

    오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예배를 드리는 것,

    이것이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요한복음 4:19~30의 큐티의 묵상포인트 4번을 참조하십시오).

 

 

7. 여인의 거듭남을 인정하신 예수님(요 4:25~32)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니라.)”

27)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라든지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하고 묻는 이가 없더라.

28) 그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나의 모든 과거를)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정리 :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께서 아버지께서는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시자,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지금 너와 말하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시자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동이를 버려두고 곧바로 그가 살던 수가성에 들어가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때 심부름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 음식을 드시기를 청하자

    예수님은 이미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을 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가 거듭난 것을 보시니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씀입니다.

 

    여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순간

    새로 창조함을 받은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천국의 영원한 생명이 이미 그 여인에게 들어갔고,

    그 여인은 그 기쁨을 주체할 길이 없어

    자기를 비난했던 사람들에게로 달려가서 주의 오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8.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요 6:26~29)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영생하게 하고,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8) 그러자 그들이 예수께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정리 :

 

    요한복음 6:1~15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거듭난 자(영의 사람. 영생을 소유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나타내는 비유적 사건입니다.

 

    이 땅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과 풍성한 생명이

    주님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의 풍성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땅의 양식만을 구하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크게 실망하시고

    우리를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곧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9. 나는 생명이 떡이라(요 6:47~51)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 여기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누구든지)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정리 :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생명이 그들에게 풍성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떡이라 하심은 성찬식에서의 떡을 의미하기도 하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0.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8)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정리 :

 

  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주님과의 참된 교제를 뜻합니다.

 

      살과 피는 한 인간의 전체 인격을 뜻하는 유대인의 숙어(관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➁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성찬식을 뜻합니다.

 

      또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주께서 명하신 성찬식을 진지한 믿음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 예배의 모든 순서 중에서

      주께서 직접 행하라고 명하신 유일한 것이 바로 성찬식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성찬식을 행할 때에 진지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떡과 포도주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됩니다.

 

  ➂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주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자들은

      주님과 관계도 없고,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이미 생명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반드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단지 고상한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삶인 것입니다.

 

 

11. 살리는 것은 영이니(요 6:63)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정리 :

 

  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시니,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자들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우리의 영을 살립니다.

      주님의 복음의 말씀이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의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➁ 육은 무익하니라

 

      육은 무익하다는 것은 먹고 마시는 육체의 일은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저 육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는

      장차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전혀 준비하지 않고 사는 자이니,

      육신의 삶이 끝나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사실상 이 땅에서부터 이미 멸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2.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38)

 

37) 명절(초막절) 끝날 곧 큰 날(초막절의 가장 큰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정리 :

 

    예수님은 무리를 향하여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초막절의 물 긷는 의식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초막절에 실로암 연못에서 물 긷는 일을 하지 말고,

    예수님 앞으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의 모든 갈급함을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➀ 목마른 자는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그러므로 목마른 자는 예수께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갈등과

      방황과 허무와 절망과 답답함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은 주께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그에게 임하셔서

      그의 심령 속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생명수가 강처럼 흘러 나게 하십니다.

      그때그때의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유를 하시는 것입니다.

 

  ➁ 생수의 강이 흘러 나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로 와서 마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직접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우리 사이에 생명줄이 연결되어

      성령의 위로와 평강이 우리 안에 채워지게 됩니다.

 

 

13.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 21)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21)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정리 :

 

    주님을 믿으며 사는 자는 어둠에 있지 않고 생명의 빛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이미 영생을 소유했으므로

    죽을 때에 영생을 소유한 채로 죽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의 빛 가운데 있지 않은 자(믿음 없이 살아가는 자)는

    자기의 죄 가운데서 살다가 그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께서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14. 나는 양의 문이라(요 10:7~11)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이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정리 :

 

  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십니다.

      이 문을 이해하기 위해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에덴동산 동편에는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영검을 두어 생명나무를 지키게 했습니다(창 3:24).

      이것은 죄를 범한 사람은 결단코 낙원(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화영검으로 막혀 있는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생겼습니다.

      누구든 그 문으로 들어가면 낙원(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그 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주께서 주시는 그의 이름을 가지고

      그 문에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➁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신 예수님

 

      팔레스틴의 양의 우리의 담은 높이가 3m나 됩니다.

      그러므로 아주 힘 있는 자가 아니면 그 담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면 어린아이도 장애인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이십니다.

      벽이 아니라 문이므로 누구나 그 문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갑니다.

      병든 자도, 죄를 지은 흉악한 자도,

      누구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천국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15.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믿음(요 10:40~42)

 

40) 다시 요단강 건너편, 곧 전에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셔서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예수께 나아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모두 사실이었다)”라고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정리 :

 

    세례요한이 죽은 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이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로써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나와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자의 길을 완전히 이룬 자가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주의 오심을 준비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주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1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정리 :

 

    이 말씀은 나사로가 이미 죽은 지 4일이 지나 그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때에,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르다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예수님은 급격하게 십자가의 수난의 길로 걸으십니다.

 

 

17. 그 속에 영이 없으면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요 12:37~40)

 

37) 예수께서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사 53:1) 하였더라.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주께서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6:10) 하였음이더라.

 

 정리 :

 

    예수께서 날마다 유대인들 앞에서 엄청난 기적을 보이셨음에도

    그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한 것은 그들에게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세상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 기적을 보고도 그 의미를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고 갈등과 번민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 마음의 찔림과 갈등과 번민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천국으로 부르시는 초청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지나고부터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셔서

    나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서도 믿지 않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18. 가룟 유다의 배반(요 12:4~6, 13:2, 26~27)

 

12장

4) 그때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님을 잡아 줄(팔아넘길)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고

   이렇게 낭비하였느냐?” 하니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13장

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넣었더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 사람이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27) 그가 빵 한 조각을 받자(그가 빵 조각을 한 입 먹은 후에)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정리 :

 

    마귀는 우리를 강제로 포박하여 이끌어가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악한 본성을 이용합니다.

 

    가룟 유다에게는 돈을 좋아하는 탐욕이 있었습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있는 탐욕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넣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가 넣어 준 탐욕의 생각을 계속 품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귀가 가룟 유다의 그 생각을 타고 그의 육체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그는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결국 영원히 멸망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➀ 생명의 사람은 생명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항상 그 말씀을 기억하며 사는 자들은

      그 신령한 생각을 타고 성령께서 들어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로잡힌 영을 소유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➁ 멸망의 사람은 세상의 욕심을 묵상합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처럼 멸망할 자들은 세상의 욕심만 묵상합니다.

      세상 것만 묵상하다가 그렇게 죄 가운데서 죽는 것입니다.

 

 

19. 이미 목욕한 자는 온 몸이 깨끗하니(요 13:10)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다 깨끗한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

 

 정리 :

 

    더 오래된 사본에는 ‘발 밖에’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발 밖에’를 넣은 경우와 ‘발 밖에’가 빠진 경우

    두 가지를 다 살펴보아야 합니다(자세한 것은 본문 큐티 참조).

 

 1) ‘발밖에’를 넣었을 때의 의미 :

 

    ➀ 목욕을 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는 뜻

 

       ‘발밖에’를 넣으면 우리말 성경 말씀 그대로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더 씻을 필요가 없다”가 됩니다.

 

    ➁ 목욕 : 세례받을 때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

 

       여기에서 목욕이란 처음 세례를 받을 때

       이전에 지었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신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➂ 발 씻음 : 새 생명을 얻은 후 계속해서 생명의 빛을 받으며 사는 것

 

       그러나 우리가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마치 우리 육신의 생명을 위하여 우리가 날마다 음식을 먹고 햇볕을 받아야 하듯

       주께서 주신 영의 생명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

       날마다 묻은 영의 때를 벗기고 예수께로부터 빛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발 씻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2) ‘발밖에’를 넣지 않았을 때의 의미 :

 

    그러나 더 오래된 사본에는 ‘발 밖에’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더 씻을 필요가 없다”가 됩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께서 씻어주셔야만 우리가 깨끗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께로부터 씻음을 받은 사람은

    더 씻을 필요가 없이 완전하게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든지 주께로부터 씻음을 받은 자들은

    완전하게 깨끗해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 두 가지 뜻을 종합하면 :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정결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위의 두 가지 뜻을 모두 다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께로만 씻음 받을 수 있고,

    또 죄의 용서를 받았더라도 날마다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날마다 주께 발을 씻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또한 중요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발을 씻는 것이 바로 말씀 묵상과 기도입니다.

 

 

20. 새 계명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정리 :

 

    주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입니다.

 

    사랑하되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희생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피차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 내가 손해를 보고,

    저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하기 위해

    내가 고난받는 것을 감당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기업 무를 자, 고엘의 사랑).

    이렇게 주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자들은

    거듭난 자(이미 영생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21.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1~3, 6)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정리 :

 

  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십자가와 부활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님은

      예수를 믿어 그의 백성이 될 사람들에게

      장차 그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가 그 처소를 마련하는 일이며,

      십자가는 또한 주께서 마련하신 그 처소로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허물과 죄로 가득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자격이 전혀 없는 자들도

      그 죄를 용서받고 거룩한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할 힘과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에까지 인도하시는 진리의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 영광스러운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22.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요 14:15~17, 26)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묵상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혜사(保惠師)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자,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자,

    우리를 인도하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결코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주께서는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①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진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권능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제 막 성령을 모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성령을 구하십시오.

 

  ② 성령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합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보이지 않고 우리의 감각으로 경험되지도 않는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신비로운 연합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단지 주님의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23.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1~6)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다 잘라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묵상 :

 

  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예수께서 맡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포도나무의 제일 끝에 붙어 있는 가지들입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양분을 받아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열매도 맺습니다.

      가지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결단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나무가 양분을 주어야만 생명을 이어갑니다.

 

  ➁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

 

      성경에서 포도는 기쁨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포도나무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주께서 친히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 구주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이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포도나무이신 예수께로부터 생명을 받는 가지들인 것입니다.

 

  ➂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니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학교에도 가고 직장에도 가니 무엇인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일들은 장차 심판을 받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힘과 능력이 되는 일들은

      오직 포도나무이신 주께 붙어 있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신령한 것을 우리 안에 채우는 일도,

      하나님께 찬양하며 경배하는 일도 모두 주께 붙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만일 주께 붙어 있지 않으면

      마치 나무에서 잘라진 가지와 같이 점점 말라지게 될 것입니다.

      영의 생명이 점점 죽어간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생명도 양식을 먹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게 되는 것처럼,

      영의 생명도 주께로부터 영의 생명을 계속 공급받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러면 마른 가지들을 모아 불에 사르는 것처럼,

      영이 죽은 자들을 모아 영원한 불 못인 지옥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➃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되리라(요 14:15)

 

      누구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예수께서 주신 계명(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려는 간절함이 생겨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말씀을 간직하게 하시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에 힘쓰는 자들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4. 영생을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요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정리 :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소유한 자입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예수님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이 그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는 삶을 살아야만

    그 영원한 생명이 유지됩니다.

    아들과의 단절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5.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요 17:20~21)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주님의 제자들)만 위한 것이 아니요,

     또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정리 :

 

    우리가 하나 되는 장소는 어느 부흥한 큰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일치 운동을 한다면서 어느 힘 있는 큰 교회에 모여

    예배만 함께 드린다고 교회 일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주께로부터 그 믿음의 신실함을 인정받은 자들이

    각자가 몸 되신 주께 연결된 지체가 된 상태에서 하나가 되어야

    참된 교회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 안에서의 하나 됨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믿는 참된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6. 나도 이 사람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니이다(요 17:26)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아버지의 그 사랑이 이 사람들 안에 있고

     나도 이 사람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정리 :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자들, 주께 예배하며 경배하며 사는 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입니다.

    주께서 그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7. 다 이루었다(요 19:30)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숨을 거두시니라).

 

 묵상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고통이 가장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절규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운명하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모든 사역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사람을 억압하고 누르고 있었던 모든 악한 영의 권세가 다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죄의 값을 완전히 다 치르셨습니다.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려는 모든 사역을 완벽하게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리기만 하면

    그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든 간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신비적인 연합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8.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요 20:17)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묵상 :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은 이제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나의 가장 친근한 친정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에도 기꺼이 내 편이 되어주시는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내 아버지, 내 하나님이 된 상태를 가리켜

    요한복음은 ‘거듭남’이라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과 이런 친교를 맺으며 사는 자들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영생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영생은 물건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날마다 음식을 먹는 등 생명을 위한 일들을 해야 하는 것처럼,

    영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일들을 날마다 해야 합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이고, 기도는 영의 호흡이며, 봉사와 섬김은 영의 운동입니다.

    그리고 육신이 빛을 받는 것처럼 영도 빛을 받아야 하는데,

    주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받는 것입니다.

 

 

29. 베드로의 부인(否認: 요 18:25~27)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그때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렸던 사람의 일가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다시 아니라고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정리 :

 

    그래도 첫 번째의 부인은 그저 단순히 “나는 아니오”하는 말이었으나,

    25절과 27절에서는 아주 단호하고 완강한 거절의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아니다’로 번역된 헬라어‘에르네사토’는

    ‘의절하다, 인연을 끊다’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기 위해

   “나는 저 사람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의절했다”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25절의 사람들의 질문 역시 앞의 여종처럼

   “당신도 혹시 저 사람의 제자는 아니지요?”하는 가벼운 질문이었는데

    베드로는 이에 완강한 거절의 의미를 담은 부인을 했고,

 

    세 번째는 좀 더 정확히 조금 전에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귀를 자른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친척이 베드로를 보았다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공격할 때

    아주 강력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말을 합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30. 베드로의 회복(요 21:15~17)

 

15) 그들이 아침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정리 :

 

    예수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예수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비탄에 잠겨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비탄에 잠긴 상태가 바로 회개입니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회개는 의미가 없습니다.

    본문의 베드로와 같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께 고백하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런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도록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에 베드로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하자

    주께서 “내 양을 먹이라”하며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단지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받아 주신다는 선언적인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31. 요한복음의 기록의 목적(요 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묵상 :

 

    요한은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통해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과 교제를 하여

    항상 반복하여 영생을 소유하며 사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뿐 아니라 성경 전체가 하나님과 우리를 교제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 말씀을 항상 읽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영생을 얻는(소유하는) 자가 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