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회개(悔改 repent)와 자백(自白 confess)은 어떻게 다른가?

열려라 에바다 2024. 9. 28. 10:14

회개(悔改 repent)와 자백(自白 confess)은 어떻게 다른가?

회개(悔改)(repent)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요, 자백(自白)(confess)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즉 죄를 짓거나 어떤 어둠이 있을 시 하나님과의 교통의 막힘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백을 하는 것입니다.

 

<회개>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ye, and believe the gospel.

 

(행 17:30)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행 17:30) And the times of this ignorance God winked at; but now commandeth all men every where to repent:

 

<자백>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일 1:9)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to forgive us our sins, and to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시 32:5) 내가 주께 내 죄를 시인하고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며 또 이르기를, 내 범죄들을 주께 자백하리라, 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

(시 32:5) I acknowledge my sin unto thee, and mine iniquity have I not hid. I said, I will confess my transgressions unto the LORD; and thou forgavest the iniquity of my sin. Selah.

 

복음을 전하다 보면 회개와 자백을 구분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회개와 자백 이 두 단어를 혼동되게 사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구원받았습니까?”, 혹은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하늘나라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매일 매일 죄를 "회개"한다고 답합니다. 그러면 회개하지 않는 죄들은 어떻게 하며, 기억나지 않는 죄들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회개(repent)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일생에 단 한번 합니다. 그러나 자백(confess)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즉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삶을 살다가 본의 아니게 혹은 알고도 죄를 짓거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이 원활하지 않거나 끊어졌을 경우 이를 회복하고 정상화하기 위해 지은 죄들(Sins)을 자백하는 것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라는데 자백을 안 한다고 부자 관계가 즉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제와 교통이 단절 될 뿐입니다. 이 땅에서 자백하지 않는 죄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백을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익을 줄 것입니다.

 

(롬 14:10)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롬 14: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롬 14:12)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하나님께 죄를 낱낱이 고하는 것은 복음적인 의미의 회개가 아니라 자백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님께서 갓난아기 때의 죄부터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들을 다 기억나게 해 주셔서 자백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그 사람 자신이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수십 년 동안 겉으로 드러난 죄뿐 아니라 순간순간 마음으로 지은 죄들, 미움과 시기, 교만, 자기 사랑, 온갖 거짓말, 험담, 탐욕 등 수만 가지 죄악을 다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성경이 제시하는 죄의 기준은 인간의 기준보다 훨씬 높습니다.

 

(약 4:17)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곧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

 

(롬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를 받나니 이는 그가 믿음을 따라 먹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하는 것은 죄니라.

 

이 구절에 따르면 우리의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수만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다 자백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죄를 일일이 고함으로써 용서받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구원에 필요한 회개는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 20:21)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회개란 단순히 악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또 회개는 단순히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인정과 슬픔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회개는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사울(삼상15:23,24, 28:16), 가룟 유다(행 1:20,25), 파라오(출 9:27) 모두 내가 범죄했다고 인정하고 자백했지만 참된 회개는 하지 않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에 있어서의 회개는 자신이 행한 일이 아니라 바로 죄인 된 자기 존재에 대한 탄식을 요구하며 죽어 마땅히 지옥에 가야만 하는 죄인임을 마음으로부터 분명히 인정하고 그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베드로, 욥, 이사야에게서 확실히 잘 보여줍니다.

이사야가 하나님께 다가갔을 때 그 자신이 행한 잘못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 6:5)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므로 망하게 되었나니 내 눈이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도다, 하였더라.

 

그는 자기가 불결한 행위를 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불결한 자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화가 있고 망하게 되었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욥도 하나님의 신성을 마주 대했을 때 내가 실수하고 잘못 말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어떤 자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이르되, 오 주여, 내게서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 하니

 

회개는 믿음 이전에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1:14) 이제 요한이 감옥에 갇힌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여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회개는 죄 용서 이전에 옵니다. 회개하면 죄 용서는 믿음으로 쉽게 이루어집니다.

 

(눅 24:47) 또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리니

 

성경 적인 회개는 죄인 된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탄식과 함께 죄에서 구원자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반드시 수반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길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든지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합니다.

 

(행 17:30)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이렇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마음 안에는 성령께서 오셔서 거하시고(갈 3:2)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그러나 죄들의 용서 완전히 받았고 영원한 생명은 얻었어도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누구도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기에 날마다 원치 않아도 죄를 짓게 됩니다. 이 때문에 죄들의 자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단 구원을 받았으면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지옥에는 가지 않습니다. 구원받는 순간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혼을 죄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영적 할례를 행하셨기 때문입니다(골 2:11). 또한 구원은 우리 자신의 행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에 근거하기 때문에 결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롬 8:30~39)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엡2;8)

그러나 죄들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교제의 단절을 가져옴으로써 기도의 응답과 교통을 막습니다. 분명히 기록된 말씀은 죄(Sin)가 아니라 죄들(Sins)입니다.

 

(사 59:2)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은 요한일서 1:9에 따라 자신이 지은 죄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백함으로써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을 포함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죄라고 깨닫게 해 주신 것은 정당화하려 들지 말고 그대로 시인하고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백만 하고 동일한 죄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히브리서 12:6-10, 고린도 전서 11;30 에 따라 징계를 받으며, 육신의 생명을 일찍 취해가시기도 합니다.)

 

다윗왕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신실한 종이었지만 그도 하나님 앞에 자백을 통하여 지은 죄들을 용서받았습니다.

 

(시 32:5) 내가 주께 내 죄를 시인하고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며 또 이르기를, 내 범죄들을 주께 자백하리라, 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

 

요약하면 회개는 구원을 위하여 죄로부터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자백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고 막힌 관계 회복과 교통을 위해 죄들을 자백하는 것이다.

자백을 안 한다고 구원을 잃어버리거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분리되고 단절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교제와 교통이 막힐 뿐입니다. 그래서 막힌 교제와 교통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위해서 자백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살인죄를 범한 후 그는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께 죄를 숨기고 계속해서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 대언 자를 통하여 자신이 지은 그 죄를 지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때 서야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하고 용서받고 그 마음이 어둠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우리는 시편 51편, 시편 32편 그리고 사무엘 하 11~1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백에 대한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니는 중학교는 저희 집에서 약6km 정도(십리 반)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하나 사주셨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남학생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저는 중학교 1힉년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 형이 자전거를 잠깐 빌려달라고 해서 자전거를 빌려 주었는데 집에 갈 시간이 되어도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닌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집에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집에를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면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이 들통나고 그럼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실지는 모르지만 저는 마음에서 불안하고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 고생해서 사준 자전거인데 면목도 없고 미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마을 어느 한 구석에서 숨어서 울기도 하였습니다. 오만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무서웠지만 밤도 무서웠습니다. 저는 불안 속에서 수많은 고민을 하다가 집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 아버지가 때리면 맞자!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가! 내가 매를 맞는다 해도 당연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 고개를 푹 숙이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올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으니 난리가 난 것입니다. 옆집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고 하니까 무척이나 걱정을 했는가 봅니다. 그러던 차에 가 들어가니까 한숨을 푹 쉬며 한시름 놓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지은 죄를 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저는 이제 야단을 치면 야단을 맞고 매를 때리면 맞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저에게 야단도 치지 않으시고 매도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많이 걱정했다고 하시면서 그런 일이 있으면 빨리 와서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버럭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 생각과 아버지의 생각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저에게는 답이 없었지만 아버지께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다음날 친구 형 집에 가서 그 아버지께 말씀드려 새로운 자전거를 가지고 왔습니다. 친구 형도 내게서 빌려 간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져오지 못한 것입니다. 두 분 아버지께서 깔끔하게 해결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자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의 어린 시절 잃어버린 자전거를 통하여 저는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나가자지 않고 소상히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어둠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해답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또 아버지의 능력도 모른 체 저의 생각에 갖혀 있었습니다. 계속 아버지 앞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있었다면 저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교통이 막히고 아버지의 걱정거리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저의 생각을 바꾸어 용기를 내어 나아가 말씀드리니 저의 마음이 홀가분하였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해결책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이전의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님이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고 마음에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백의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우리 사람을 잘 아시므로 요한일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유익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자백을 하라는 말씀을 주신 목적은 요한일서 2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2)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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