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호칭 연구: 예수님의 '아버지' 어휘 사용에 관하여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하나님 호칭: 아버지
오늘날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이기에 당연해 보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구약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혁명적인 일입니다. 실제로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는 엘로힘, 야훼입니다.
이 하나님을 부를 때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최고로 친밀한 표현이고, 그 외에는 나의 주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거나 만군의 주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 예비하시는 하나님, 승리하시는 하나님 같은 수식어구를 붙여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이방 나라는 왕이 되면 신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지만, 그마저도 신을 아버지로 부르지는 못했습니다. 성경 곳곳에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자녀로 부름에도(출 4:22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시2:7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일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이스라엘(때로는 유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15번이 전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으려다가 정작 그 본래 발음이 무엇인지 잃어버려서 후대에와서 아마 이렇게 불렀을거라고 추정하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예수님을 필두로 하나님의 호칭이 아버지로 본격적으로 변화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가 그동안 흐릿하게 보이던 하나님 나라를 보다 선명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이 담긴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버지) 총 179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놓고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현격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 내 아버지로 부르실 뿐 아니라 우리 아버지로 부르시고(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더 나아가 너희 아버지, 너의 아버지로 알려주심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받아들이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을 아버지로 소개했지만, 예수님 이후로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아버지 호칭의 용례를 살펴보면, 초기에 쓰여진 복음서로 알려진 마가복음에는 아버지 호칭이 드물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가장 후대에 쓰인 복음서인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호칭한 것이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자신을 인식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보다 보편화되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런 상황을 짐작케 하는 근거는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부르는 하나님 호칭이 아니라 성경 기자가 독자에게 소개하는 하나님 호칭으로 아버지가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요한 복음 이외에도 사도행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참고. 서신서 인사말에 관한 샬롬 복음 연구를 보면, 요한 3서를 제외하고 모든 서신서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 이는 예수님이 소개하고 알려주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인식이 보편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1.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하나님 호칭: 아버지
하나씩 살펴보면, 마태복음에는 "내 아버지"라는 호칭이 16번, "너희 아버지"라는 호칭이 14번, "너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5번,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은 1번, 그리고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호칭한 것이 8번 등장합니다. (총 40 개절에 44번 사용) 마태복음의 기자와 독자에게는 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라는 호칭이 주를 이뤘지만, 사복음서 중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되, "너의 아버지"라는 개인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너의 아버지"는 산상수훈에만 나타나고, "우리 아버지"는 주기도문(산상수훈의 일부)에 등장합니다.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은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호칭(주는 우리 아버지시라)으로 마태복음이 구약적 배경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쓰여진 복음서일 것이라는 추정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이 일회적 사용임을 감안하면 빈약한 자료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신구약"에 통일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제시한 표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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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하나님 호칭: 아버지
마가복음에는 "너희 아버지"라는 호칭이 1번, "아버지"라는 호칭이 3번 등장합니다. (총4개절에 4번) 이 중에서 아빠 아버지라는 호칭이 독특합니다. 사복음서 중에 가장 적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첫 복음서라는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구약적 사고를 하고 있기에 하나님이라고만 호칭했을 수 있습니다.
3.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하나님 호칭: 아버지
누가복음에는 "내 아버지"라는 호칭이 4번, "너희 아버지"라는 호칭이 4번, "아버지"라는 호칭이 9번 등장합니다. (총 14개 절에 17번 사용) 여기서 하나님은 개인으로서의 신자의 아버지(너의 아버지)로 불리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라는 호칭은 9번,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의 경우에도 "아버지"라고 언급하는 경우만 3번 나옵니다. 이는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된 경우로, 누가복음을 접했던 독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4.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하나님 호칭: 아버지
요한복음에는 "내 아버지"가 25번, "아버지"가 86번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너희 아버지"는 2번, "너의 아버지"가 1번 나옵니다. (95개절에 114번) 이 중에서 "너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질문하면서 등장하는 것이고, 이외에도 예수님이 아닌 성경 기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호칭하는 경우들이 등장합니다(요 1:14,18, 3:35, 8:27). 이는 요한복음을 읽는 초대 교회는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신앙이 보편화되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 얼마나 급진적인 표현이었는지, 그 호칭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고 알려줍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5:18)
예수님 당시에 아버지라는 호칭은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조상을 일컫는 말이었고(요 8:39),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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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이 주요한 모티브였던 홍길동전을 보면, 세상의 제도가 부모와 자식이 상전과 종으로, 서자로 구분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도 전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파괴된 관계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타락 이후에 세상은 오늘날까지도 나에게 아버지가 있는 줄은 아는데, 그 아버지를 감히 아버지로 부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합니다. 신자에게 있어서도 아버지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한 굴곡된 문화 아래서 아버지의 유산(기업)을 바라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을 느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을 향한 계획을 밝히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 이후에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고 아담에게로 데려오셔서 성경에 나타난 첫 공동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창세기 기자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로, 부모를 떠나 가정을 이루는 일반적인 결혼 원칙을 소개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 모두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 아버지가 되심을 알게 해 줍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시편으로 찬양했지만 정작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서 완전한 아담으로 사시면서, 본래 주어졌던 자녀 됨의 특권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성자로서 예수님 개인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켜 너희 아버지라고 알려주셨고,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아버지는 우리가 사랑하는 아버지이지만, 완전한 분이 아니십니다. 나이를 들어갈수록 슈퍼맨 같던 아버지는 작아지고 어느새 자녀의 돌봄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특권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나날이 후패해져 가는 육신을 가진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참 아버지로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는 샬롬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아빠~ 샬롬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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