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로 본 개혁 (왕하 23:21-23)
요시야로 본 개혁 (왕하 23:21-23)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이 시간에 “요시야로 본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개혁이란 새롭게 뜯어고쳐 변화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기독교를 개혁교회라고도 부릅니다. 어그러지고 부패한 천주교에서 개혁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개혁의 완성이 아니라 개혁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도 더 새롭게 개혁해 가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개혁적인 인물이 많으나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는 남쪽 이스라엘인 유다왕국의 제16대 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위대한 왕입니다. 왕하22:2에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했고, 왕하23:25에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과 함께 숭배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예언합니다. 왕상13:2에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바로 그 예언대로 후세에 태어난 인물이 요시야입니다.
이 여로보암 죄는 대대로 개혁되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었을 때 북쪽의 여로보암이 자기 백성들이 남쪽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가면 마음이 변해 자기를 반역할까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절기를 늦추는 등 최대한 편리하게 섬기도록 한 죄입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의로운 왕이 나타나고 예후와 같은 종교개혁이 몇 차례 단행되었어도 이 여로보암의 죄는 수백 년간 개혁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그것을 비로소 개혁했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고 회개해도 변화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그 비밀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진정한 영적 개혁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요?
1. 기도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왕하22:3을 보면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사람들을 동원해서 성전을 수리하게 합니다. 개혁운동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일어납니다. 일군들이 얼마나 성실했든지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일군이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도 성전을 수리해야 하겠습니다.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사56:7에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2:16에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눅19:46) 책망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유대인의 습관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루 3번 다니엘의 기도와 같은 습관은 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기도하는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전 세계는 모두 복음화되었을 것입니다. 교리가 건전해도 기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죽은 복음이요 가짜 복음입니다.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으면 죽은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건 내 교회가 아니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일어났던 그 예배와 기도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행1:4, 13-14). 엘리야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효대로 열두 돌로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기도하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온 것처럼 우리의 무너졌던 영적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으나 이것을 쌓기 전에 진정한 개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2. 진정한 개혁은 성경에서 일어납니다.
왕하22:8-11에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이것이 요시야의 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입니다.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당시의 성경은 양피지나 서판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소유하기란 어려웠고 아하스 같은 왕은 성경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에 제사며 절기며 교훈이며 당시 율법책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율법을 서기관 사반이 읽을 때 요시야는 그동안 얼마나 엉터리로 믿어왔고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상23:21-23에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시야가 온 땅의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고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백성들을 돌이켰는데 이런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개혁은 성경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 읽지 않으면 변화될 수 없습니다. 중세교회의 타락도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그 교회 문에 95개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하며 성경의 무지에서 그들을 깨웠습니다.
성경을 보지 않으면 회개한들 십계명이나 윤리 도덕 수준 안에서밖에 회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가 회복되었어도, 영적 세계에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에서의 해방을 모른다면 어떻게 개혁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롬10:1-3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을 위하여, 그리고 내 방법 내 편리 내 개성 내 안일함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그렇게 믿어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무너진 기도 제단 다시 쌓고 덮어버린 성경 다시 읽으며 말씀과 기도로 온전히 새롭게 회복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이 시간에 “요시야로 본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개혁이란 새롭게 뜯어고쳐 변화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기독교를 개혁교회라고도 부릅니다. 어그러지고 부패한 천주교에서 개혁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개혁의 완성이 아니라 개혁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도 더 새롭게 개혁해 가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개혁적인 인물이 많으나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는 남쪽 이스라엘인 유다왕국의 제16대 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위대한 왕입니다. 왕하22:2에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했고, 왕하23:25에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과 함께 숭배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예언합니다. 왕상13:2에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바로 그 예언대로 후세에 태어난 인물이 요시야입니다.
이 여로보암 죄는 대대로 개혁되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었을 때 북쪽의 여로보암이 자기 백성들이 남쪽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가면 마음이 변해 자기를 반역할까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절기를 늦추는 등 최대한 편리하게 섬기도록 한 죄입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의로운 왕이 나타나고 예후와 같은 종교개혁이 몇 차례 단행되었어도 이 여로보암의 죄는 수백 년간 개혁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그것을 비로소 개혁했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고 회개해도 변화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그 비밀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진정한 영적 개혁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요?
1. 기도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왕하22:3을 보면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사람들을 동원해서 성전을 수리하게 합니다. 개혁운동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일어납니다. 일군들이 얼마나 성실했든지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일군이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도 성전을 수리해야 하겠습니다.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사56:7에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2:16에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눅19:46) 책망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유대인의 습관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루 3번 다니엘의 기도와 같은 습관은 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기도하는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전 세계는 모두 복음화되었을 것입니다. 교리가 건전해도 기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죽은 복음이요 가짜 복음입니다.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으면 죽은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건 내 교회가 아니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일어났던 그 예배와 기도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행1:4, 13-14). 엘리야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효대로 열두 돌로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기도하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온 것처럼 우리의 무너졌던 영적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으나 이것을 쌓기 전에 진정한 개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2. 진정한 개혁은 성경에서 일어납니다.
왕하22:8-11에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이것이 요시야의 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입니다.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당시의 성경은 양피지나 서판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소유하기란 어려웠고 아하스 같은 왕은 성경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에 제사며 절기며 교훈이며 당시 율법책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율법을 서기관 사반이 읽을 때 요시야는 그동안 얼마나 엉터리로 믿어왔고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상23:21-23에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시야가 온 땅의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고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백성들을 돌이켰는데 이런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개혁은 성경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 읽지 않으면 변화될 수 없습니다. 중세교회의 타락도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그 교회 문에 95개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하며 성경의 무지에서 그들을 깨웠습니다.
성경을 보지 않으면 회개한들 십계명이나 윤리 도덕 수준 안에서밖에 회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가 회복되었어도, 영적 세계에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에서의 해방을 모른다면 어떻게 개혁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롬10:1-3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을 위하여, 그리고 내 방법 내 편리 내 개성 내 안일함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그렇게 믿어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무너진 기도 제단 다시 쌓고 덮어버린 성경 다시 읽으며 말씀과 기도로 온전히 새롭게 회복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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