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람이 부유할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시편 49편 16~20절)
악당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목적에 3가지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인데 록펠러 가문의 충복인 헨리 키신저가 그 3가지를 말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석유고 두 번째는 식량이고 세 번째는 바로 금융인 것인데, 존 D. 록펠러 1세는 석유를 그리고 그의 손자들은 식량을 장악하였으며, 그 마지막 5번째 손자 데이비드 록펠러는 금융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악당 록펠러 가문보다 더욱 오래된 악당 가문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곧 금융을 지배하여서 전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오늘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람이 부유할 때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49편 16~20절에 “사람이 부유하게 할 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그 죽음 때 모두를 취하지 못하며 그 영광이 그 뒤에 내려가지 못함이니. 비록 그의 생명 안에(while he lives) 그가 그 영혼을 송축하고 너는 너에게 좋게(well) 할 때 그들이 너에게 감사한다(praise) 해도. 그는 조상들의 세대까지 들어가고 영속까지 그들이 빛을 보지 못하노라. 귀중함 속에 있으며 이해할(understand) 수 없는 인류(man)는 썩어 없어지는 그 짐승들과 같이 유사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독일 유대인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암셀 모세 바우어는 골동품상이자 대금업자였습니다. 마이어가 태어나자 모세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이어를 위해 그의 아버지는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돈과 대출에 관한 상업적 지식도 체계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마이어는 겨우 열세 살의 나이로 친척들의 격려를 받고 하노버로 가서 오펜하이머 가문의 은행 수습생으로 일하였습니다.
마이어는 은행의 온갖 전문 기능을 빠르게 습득하였습니다. 마이어는 금융업의 기상천외한 부분까지 모두 소화하였습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은행에서 일하며 배경이 탄탄한 고객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는 정부와 국왕에 대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부 세금수입을 담보로 잡을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매력이었습니다. 영국에서 들어온 금융 이념은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젊은 마이어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 아버지의 대부업을 계승하였고 마이어는 자신의 성씨를 ‘붉은색 방패’를 뜻하는 로스차일드로 바꾸었고 그는 집안 대대로 골동품상을 해왔으므로 이 분야라면 훤하였습니다.
마이어가 독일 윌리엄 왕자에게 희귀한 금화를 싼 가격으로 공급하자, 윌리엄 왕자는 자기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다 싶은 마이어가 왕실의 정식 대리인이 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며, 마침내 그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마이어는 자신의 명패에 왕실의 엠블럼을 새겼습니다. 그 곁에 ‘로스차일드, 윌리엄 왕자 전하의 지정 대리인’이라고 썼으며, 그때로부터 그의 신용은 더 좋아졌고 사업은 갈수록 번창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윌리엄 왕자는 부를 축적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유럽에서는 다른 나라에 군대를 빌려주는 ‘용병’이 성행하였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유럽의 왕실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영국 왕실과 곧잘 사업을 벌였습니다. 영국 정부는 외국에서부터 돈을 벌려고 늘 용병을 파견하였습니다. 영국 병력만으로는 부족하여서 독일 윌리엄 왕자와 의기투합하였으며 훗날 미 독립전쟁 때도 독일 병사 수가 영국 병사보다 더 많았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유럽 왕실의 역사상 가장 많은 2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유럽에서 가장 냉혹한 대부업자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윌리엄 왕자의 측근이 된 마이어는 두터운 신임을 얻었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폭도에게 재산을 약탈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으나 왕자의 우려와는 다르게 마이어는 프랑스혁명을 반겼습니다.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그의 금화 유통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마이어는 영국의 물건을 독일에 팔아서 거액의 차익을 챙겼습니다.
마이어는 유대 사회 안에 활발하게 활동한 지도층 인물이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정복과 권력욕에 집착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요?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갑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이어는 ‘제국 왕실 대리인’ 칭호를 부여받기도 하였습니다.
마이어와 윌리엄 왕자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윌리엄 왕자의 사촌 형인 덴마크 국왕이 그에게 돈을 빌리고자 하였고 윌리엄 왕자는 자신의 재산이 노출될까 봐서 빌려주기를 꺼렸습니다. 마이어가 윌리엄 왕자에게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덴마크 왕실에서 신청한 여섯 건의 대출이 마이어를 통하여 성사되고,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삽시간에 유명해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윌리엄 왕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분명하지 않은 형세에서 섣불리 태도를 정하지 못하였고, 나폴레옹은 윌리엄 왕자의 가족들을 유럽 통치자 명단에서 뺐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프랑스군을 피해 급히 덴마크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300만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마이어에게 보관시켰습니다. 이것이 마이어에게 권력과 재산을 가져다준 첫 번째 뭉칫돈입니다.
마이어의 다섯 명의 아들은 중요한 다섯 개의 지역에 파견되었습니다. 장자 암셀은 프랑크푸르트에 남고, 둘째 살로몬은 빈에 파견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이어는 셋째 아들 나탄은 영국으로 보내 대국을 주도시켰습니다.
나탄의 큰형 암셀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 은행 본점을 창립한 자고, 로스차일드의 둘째 아들 살로몬은 빈에 지점을 세웠습니다. 나탄(네이선)은 다섯 형제 중에 식견과 담력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운 은행은 세계 최초 국제은행이 되었습니다.
2. 악인은 그의 부의 많음 안에 신뢰합니다.
시편 52편 7절에 “그 남자는 그의 안전한 곳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그는 자기의 부(富)의 많음에 신뢰하며 그는 자기의 욕구에 이기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부의 많은 것에 자랑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시 49:6). 악인은 자기의 부의 많은 것 안에 신뢰합니다(시 52:7).
시티오브런던은 약 2.6㎢ 면적의 지역입니다. 18세기 이래, 영국 및 세계 금융 중심으로 군림하고 있는 곳입니다. 좁은 이 지역에는 세계의 주요한 금융기관들이 운집하여 있습니다. 현재 영국 GDP의 6분의 1을 창출합니다. 시티오브런던을 주도하는 사람은 영국을 주도하는 셈입니다.
무역이 단절된 상태여서 영국 상품이 유럽에서 비싸게 팔렸습니다. 나탄은 화물을 영국에서 프랑스로 팔아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나탄은 영국군이 스페인에서 곤경에 처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영국 재무부 관리 존 해리스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영국군은 진격 준비를 끝낸 상태였으나 군비 부족이 문제인 상태였고, 웰링턴 장군이 내민 은행권을 스페인과 포르투갈 은행은 받지 않았기에, 장군의 군대에는 금이 절실하게 필요하였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탄은 돈을 벌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위기가 그에게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는 사방으로 금을 알아보았습니다.
때마침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실어온 금을 팔려고 하였습니다. 영국 정부도 구매하려 했으나 금 가격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상황을 파악한 나탄은 동인도회사에서 80만 파운드의 금을 샀습니다. 금 가격이 순식간에 치솟았습니다. 금 가격은 내릴 기미도 안 보이는데 군대의 상황은 화급을 다투는지라 영국 정부는 그에게 비싼 돈을 주고 금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거래로 나탄의 금고는 더욱 두둑해졌습니다.
그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행동에 나섰습니다. 자신이 판 황금을 영국군으로 직접 호송하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프랑스가 영국을 봉쇄하고 있었기에 호송 길에 위험이 따랐습니다. 영국 정부는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황금을 옮기기를 원하였습니다. 나탄은 19살 난 동생 제임스를 시켜 황금을 프랑스로 옮기겠다는 사실을 프랑스 정부에 통지하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알면 난리가 날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경찰을 보내어 호송대 보호를 자청할 정도였습니다. 프랑스 관리들은 뇌물을 받고 모르는 척 눈감아주었습니다.
나탄 일행이 옮긴 금은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정부 지원을 받게 되고 보무도 당당하게 프랑스의 은행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그 금을 웰링턴 장군이 쓸 수 있게 보내 금화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그 금을 스페인의 영국군 수중에 전달하였습니다. 그 수법이 얼마나 치밀했던지 할리우드 영화 뺨칠 정도였습니다.
런던 금융 사무에 대한 로스차일드의 입김은 놀랄 만큼 셌습니다. 그들은 시티오브런던의 외환 거래 가격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들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하여서 그가 화가 나면 잉글랜드은행도 떨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로스차일드의 모습을 잘 보여준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탄이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를 잉글랜드은행에 제시하고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는데, 잉글랜드은행은 자기 은행 수표만 바꿀 수 있다면서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나탄이 아홉 명의 은행 직원을 대동하고 잉글랜드은행으로 갔고, 이 은행이 발행한 수표를 제시하고 현금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루 만에 잉글랜드은행의 금 보유액이 반으로 줄게 되었으며,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튿날 더 많은 수표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자 잉글랜드은행은 즉시 긴급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그 책임자는 로스차일드 은행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첫 번째는 석유고 두 번째는 식량이고 세 번째는 바로 금융인 것인데, 존 D. 록펠러 1세는 석유를 그리고 그의 손자들은 식량을 장악하였으며, 그 마지막 5번째 손자 데이비드 록펠러는 금융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악당 록펠러 가문보다 더욱 오래된 악당 가문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곧 금융을 지배하여서 전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오늘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람이 부유할 때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49편 16~20절에 “사람이 부유하게 할 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그 죽음 때 모두를 취하지 못하며 그 영광이 그 뒤에 내려가지 못함이니. 비록 그의 생명 안에(while he lives) 그가 그 영혼을 송축하고 너는 너에게 좋게(well) 할 때 그들이 너에게 감사한다(praise) 해도. 그는 조상들의 세대까지 들어가고 영속까지 그들이 빛을 보지 못하노라. 귀중함 속에 있으며 이해할(understand) 수 없는 인류(man)는 썩어 없어지는 그 짐승들과 같이 유사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독일 유대인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암셀 모세 바우어는 골동품상이자 대금업자였습니다. 마이어가 태어나자 모세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이어를 위해 그의 아버지는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돈과 대출에 관한 상업적 지식도 체계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마이어는 겨우 열세 살의 나이로 친척들의 격려를 받고 하노버로 가서 오펜하이머 가문의 은행 수습생으로 일하였습니다.
마이어는 은행의 온갖 전문 기능을 빠르게 습득하였습니다. 마이어는 금융업의 기상천외한 부분까지 모두 소화하였습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은행에서 일하며 배경이 탄탄한 고객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는 정부와 국왕에 대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부 세금수입을 담보로 잡을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매력이었습니다. 영국에서 들어온 금융 이념은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젊은 마이어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 아버지의 대부업을 계승하였고 마이어는 자신의 성씨를 ‘붉은색 방패’를 뜻하는 로스차일드로 바꾸었고 그는 집안 대대로 골동품상을 해왔으므로 이 분야라면 훤하였습니다.
마이어가 독일 윌리엄 왕자에게 희귀한 금화를 싼 가격으로 공급하자, 윌리엄 왕자는 자기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다 싶은 마이어가 왕실의 정식 대리인이 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며, 마침내 그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마이어는 자신의 명패에 왕실의 엠블럼을 새겼습니다. 그 곁에 ‘로스차일드, 윌리엄 왕자 전하의 지정 대리인’이라고 썼으며, 그때로부터 그의 신용은 더 좋아졌고 사업은 갈수록 번창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윌리엄 왕자는 부를 축적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유럽에서는 다른 나라에 군대를 빌려주는 ‘용병’이 성행하였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유럽의 왕실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영국 왕실과 곧잘 사업을 벌였습니다. 영국 정부는 외국에서부터 돈을 벌려고 늘 용병을 파견하였습니다. 영국 병력만으로는 부족하여서 독일 윌리엄 왕자와 의기투합하였으며 훗날 미 독립전쟁 때도 독일 병사 수가 영국 병사보다 더 많았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유럽 왕실의 역사상 가장 많은 2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유럽에서 가장 냉혹한 대부업자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윌리엄 왕자의 측근이 된 마이어는 두터운 신임을 얻었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폭도에게 재산을 약탈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으나 왕자의 우려와는 다르게 마이어는 프랑스혁명을 반겼습니다.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그의 금화 유통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마이어는 영국의 물건을 독일에 팔아서 거액의 차익을 챙겼습니다.
마이어는 유대 사회 안에 활발하게 활동한 지도층 인물이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정복과 권력욕에 집착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요?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갑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이어는 ‘제국 왕실 대리인’ 칭호를 부여받기도 하였습니다.
마이어와 윌리엄 왕자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윌리엄 왕자의 사촌 형인 덴마크 국왕이 그에게 돈을 빌리고자 하였고 윌리엄 왕자는 자신의 재산이 노출될까 봐서 빌려주기를 꺼렸습니다. 마이어가 윌리엄 왕자에게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덴마크 왕실에서 신청한 여섯 건의 대출이 마이어를 통하여 성사되고,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삽시간에 유명해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윌리엄 왕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분명하지 않은 형세에서 섣불리 태도를 정하지 못하였고, 나폴레옹은 윌리엄 왕자의 가족들을 유럽 통치자 명단에서 뺐습니다. 윌리엄 왕자는 프랑스군을 피해 급히 덴마크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300만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마이어에게 보관시켰습니다. 이것이 마이어에게 권력과 재산을 가져다준 첫 번째 뭉칫돈입니다.
마이어의 다섯 명의 아들은 중요한 다섯 개의 지역에 파견되었습니다. 장자 암셀은 프랑크푸르트에 남고, 둘째 살로몬은 빈에 파견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이어는 셋째 아들 나탄은 영국으로 보내 대국을 주도시켰습니다.
나탄의 큰형 암셀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 은행 본점을 창립한 자고, 로스차일드의 둘째 아들 살로몬은 빈에 지점을 세웠습니다. 나탄(네이선)은 다섯 형제 중에 식견과 담력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운 은행은 세계 최초 국제은행이 되었습니다.
2. 악인은 그의 부의 많음 안에 신뢰합니다.
시편 52편 7절에 “그 남자는 그의 안전한 곳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그는 자기의 부(富)의 많음에 신뢰하며 그는 자기의 욕구에 이기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부의 많은 것에 자랑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시 49:6). 악인은 자기의 부의 많은 것 안에 신뢰합니다(시 52:7).
시티오브런던은 약 2.6㎢ 면적의 지역입니다. 18세기 이래, 영국 및 세계 금융 중심으로 군림하고 있는 곳입니다. 좁은 이 지역에는 세계의 주요한 금융기관들이 운집하여 있습니다. 현재 영국 GDP의 6분의 1을 창출합니다. 시티오브런던을 주도하는 사람은 영국을 주도하는 셈입니다.
무역이 단절된 상태여서 영국 상품이 유럽에서 비싸게 팔렸습니다. 나탄은 화물을 영국에서 프랑스로 팔아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나탄은 영국군이 스페인에서 곤경에 처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영국 재무부 관리 존 해리스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영국군은 진격 준비를 끝낸 상태였으나 군비 부족이 문제인 상태였고, 웰링턴 장군이 내민 은행권을 스페인과 포르투갈 은행은 받지 않았기에, 장군의 군대에는 금이 절실하게 필요하였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탄은 돈을 벌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위기가 그에게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는 사방으로 금을 알아보았습니다.
때마침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실어온 금을 팔려고 하였습니다. 영국 정부도 구매하려 했으나 금 가격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상황을 파악한 나탄은 동인도회사에서 80만 파운드의 금을 샀습니다. 금 가격이 순식간에 치솟았습니다. 금 가격은 내릴 기미도 안 보이는데 군대의 상황은 화급을 다투는지라 영국 정부는 그에게 비싼 돈을 주고 금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거래로 나탄의 금고는 더욱 두둑해졌습니다.
그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행동에 나섰습니다. 자신이 판 황금을 영국군으로 직접 호송하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프랑스가 영국을 봉쇄하고 있었기에 호송 길에 위험이 따랐습니다. 영국 정부는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황금을 옮기기를 원하였습니다. 나탄은 19살 난 동생 제임스를 시켜 황금을 프랑스로 옮기겠다는 사실을 프랑스 정부에 통지하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알면 난리가 날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경찰을 보내어 호송대 보호를 자청할 정도였습니다. 프랑스 관리들은 뇌물을 받고 모르는 척 눈감아주었습니다.
나탄 일행이 옮긴 금은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정부 지원을 받게 되고 보무도 당당하게 프랑스의 은행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그 금을 웰링턴 장군이 쓸 수 있게 보내 금화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그 금을 스페인의 영국군 수중에 전달하였습니다. 그 수법이 얼마나 치밀했던지 할리우드 영화 뺨칠 정도였습니다.
런던 금융 사무에 대한 로스차일드의 입김은 놀랄 만큼 셌습니다. 그들은 시티오브런던의 외환 거래 가격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들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하여서 그가 화가 나면 잉글랜드은행도 떨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로스차일드의 모습을 잘 보여준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탄이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를 잉글랜드은행에 제시하고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는데, 잉글랜드은행은 자기 은행 수표만 바꿀 수 있다면서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나탄이 아홉 명의 은행 직원을 대동하고 잉글랜드은행으로 갔고, 이 은행이 발행한 수표를 제시하고 현금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루 만에 잉글랜드은행의 금 보유액이 반으로 줄게 되었으며,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튿날 더 많은 수표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자 잉글랜드은행은 즉시 긴급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그 책임자는 로스차일드 은행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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