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거주 역사

열려라 에바다 2024. 11. 6. 16:03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거주 역사
 
봉서방추천 0조회 2424.11.06 02:06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거주 역사
1. 서론

유대인의 조상은 유목민이었다. 유목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농경민과 다르게 목축에 알맞은 땅을 찾아 방랑하는 사람들로서 원초적으로 지역적 뿌리가 없다. 유대인은 4번에 걸쳐 가나안(현재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는데, 네 번 모두 빈 땅이 아니라 다른 토착민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땅에 들어갔다.

첫 번째는 기원전 2천년 아브라함에 의한 가나안 이주, 두 번째는 BC13세기 모세의 출애굽, 세 번째는 기원전 142년 하스모니아 왕국, 네 번째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이다.

첫 번째 이주 때는 부족국가 시절이었고,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고 정주한 것은 두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 총 세 번이다. 네 번 모두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정착하는 데는 성공하기는 했으나,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국가의 명맥을 유지하고 산 것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5년을 포함하더라도 5백 여 년에 불과하다.

2. 가나안 지방의 원주민: 갑돌인(크레타 섬 사람)
팔레스타인 땅은 키프로스,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옛 페니키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튀르키예 등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인 레반트 땅의 일부이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했는데, 최초로 가나안 지역으로 유입된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지중해로 퍼진 무리 중에서 남쪽 아시아 쪽으로 계속 이동한 고대 그리스 계열 갑돌인이다. 갑돌인은 중동, 이란, 인도 쪽으로 동진하다가 중동 쪽 방향으로 가서 정착한 사람들로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크레타 문명의 기원이 되는 크레타 섬 사람이다. 크레타인의 한 무리가 가나안 땅까지 와서 정착한 이유는 크레타 문명의 멸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가나안 지역 거주자들의 언어는 셈어였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지역 거주자들을 뭉뚱그려서 셈족으로 간주한다. 즉,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은 셈족으로서 조상이 같다. 레반트 지역에 조상이 같은 셈족 유대인, 셈족 팔레스타인인, 셈족 갑돌인의 후손들이 함께 살았던 것이다. 구약성경에도 유대인의 조상인 이삭과 아랍인의 조상인 이스마엘이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고 씌어 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당시에 그 지역에 거주했던 부족은 서부 셈족이었다. 그 외에도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스족, 히위족, 여부스족 등이 레반트 지역 일대에 거주했는데 이들은 왕국을 건설하고 이미 철기 무기와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 아브라함이 이끈 서부 셈족은 겨우 청동기 문명에 들어선 유목민 부족으로서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지 못했다.

3. 4차에 걸친 유대인의 가나안 이주

3-1 아브라함의 이주
구약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단군 할아버지 격인 유대인의 시조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경에 이라크 남부 갈대아 우르에서 유목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일본 호코다, 인도네시아 자바, 러시아 세미아칙 화산이 폭발했고,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200 여 년간 지구의 기온이 하강하고 물난리가 났다. 홍수로 인하여 유프라테스 강이 범람함에 따라 수메르가 물에 잠기어 멸망했다.

이때 수메르의 우르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은 유대민족을 이끌고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정착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유대인 들은 이때부터 먼저 뿌리내려 살고 있었던 원주민과 생존을 걸고 싸우기 시작하였는데, 그 싸움은 5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브라함의 증손자이자 야곱의 아들인 요셉이 활동했을 무렵에 기근이 들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농토가 부족해지자 야곱은 유대인을 이끌고 비옥한 나일강 변의 나라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주 원인은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하여 발생한 홍수와 기근이었다.
성경에 나와 있듯이 야곱이 이끈 유대인의 초기 정착에는 미리 이주한 야곱의 아들 요셉의 도움이 컸었다. 당시 이집트는 힉소스 왕가의 통치 말기였는데, 힉소스 왕가가 유대민족과 같은 셈족이었기 때문에 쉽게 유대인을 받아 주어 정착이 가능했다. 유대인은 외부 침략자인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통치한 250년 동안은 힉소스 왕가의 호의로 비교적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1580년 이집트인이 힉소스인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가를 세우자 유대인들은 박해당하기 시작했다.

3-2 모세의 출애굽 후의 이주
두 번째는 모세의 이주이다. 히브리의 어원은 이집트어의 하층민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하층민(노예)의 신분으로 압박과 설움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주변 지역(광야)을 떠돌며 목축을 하다가 40년쯤 지난 무렵 가나안 지역에 정착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은 직선거리로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0년이나 걸린 것은 아마도 원주민의 저항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민족이 조상이 살던 가나안 지역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랍인의 토착 세력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미 그 땅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었다. 원주민의 방어 능력이 부족했던지, 아니면 기후 조건이 좋아서 인구수에 비하여 비옥한 빈 땅이 넓어서 더불어 공존할 수 있었던지 그 구체적인 정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 정착에 성공했다. 부족국가 시절인 이 무렵 성경에는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주로 이겼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유대인들은 용케 버티어 냈다.

기원전 1250년에 세를 불린 유대인은 드디어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다. 모세의 계승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고, 기원전 1020년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건국 후 백 년이 지났을 무렵인 3대 왕 솔로몬 사후에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 왕국으로 나라는 둘로 쪼개졌다. 남북으로 쪼개져서 존속했던 기간은 2백 년쯤 되며 예루살렘과 유대 성전은 남쪽 유다 왕국에 속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주이자 왕국으로서는 첫 번째 건국이다. 유대인은 통합 유대왕국으로 백 년과 유대와 이스라엘 왕국이 두 나라로 갈라져 존재했던 2백 년을 합쳐서 3백 년쯤 왕국을 존속시켰다.

3-3 하스모니아 왕조
이제까지는 이웃에 위치한 작은 나라들끼리 싸웠으나, 중동지역 전체를 통일한 대제국이 등장함에 따라 유대인은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0년 신 아시리아 제국에 멸망했고, 남쪽의 유다 왕국은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다가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때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했다(바빌론 유수).

그후 이스라엘과 유대왕국의 땅은 페르시아가 차지했다. 바빌론으로 끌려갔었던 유대인은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한 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3차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다. 스룹바벨의 귀한 후 94년이 지난 후인 느헤미아의 귀환(BC444)에 의해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은 완성되지만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지는 못했다. 바빌론의 포로기간이 70년이지만 유대인의 가나안 땅 부재기간은 142년(BC 586~BC444)쯤 된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마케도니아의 연합군을 이끌고 페르샤를 멸망시킴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그리스의 속국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제국이 3개로 쪼개졌는데, 가나안 땅은 셀레우코스 왕조가 지배하던 시리아 왕국의 땅이 되었다가 그리스의 통치 아래로 들어갔다.

기원전 164년 그리스 통치에 대항한 마카비 반란이 성공하여 유대인은 독립을 쟁취하고 하스모니아 왕국을 세웠지만, 79년간(BC142~ BC63) 존속하다가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70년과 135년 2차에 걸쳐서 유대인들을 가나안 땅에서 내쫓고(디아스포라), 가나안이란 지명을 팔레스타인으로 바꿔버렸다. 이때부터 유대인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된다.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레반트 지역 전체를 정복하면서, 유대민족이 세운 하스모니아 왕조는 로마 속주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때 유대민족의 혈통적 정통성을 유지한 독립국가는 완전히 없어졌다.

3-4 디아스포라 시기
로마의 박해로 유대인이 죽거나, 노예로 팔려 가거나, 방랑길에 오른 이후에 팔레스타인 지역은 비잔틴(313~636), 아랍(636~1099), 십자군(1099~1291), 맘루크(1291~1516), 오스만 터키(1517~1917), 영국(1917~1922) 등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3-5 이스라엘 국가 건설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을 분할해 아랍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각각 세우는 결의안을 채택함에 따라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나라로 분할 독립된다.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유대인은 네 번째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총 4번의 이주 중에서 첫번째 이주 때는 고대 유목민 부족 시대였기에 왕국을 건설하지는 못했고, 모세부터 현재의 이스라엘까지 세 번에 걸쳐서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했다.

4.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대민족이 세운 나라들과 유대민족은 아니지만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세운 현재의 이스라엘을 합쳐서 총 5백 년 동안 세계사에 한 국가로 존재했다. 7천 년에 달하는 인류가 가나안 지역에 산 기간 중 오백 년은 인류 역사의 7%에 불과하다. 이렇듯 짧은 기간 동안 살았는데 93%의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아왔던 토착민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상의 땅이니 돌려달라는 주장을 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대민족의 조상이 한동안 살았던 땅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외모가 백인의 모습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이 우리 조상의 땅이므로 후손인 자기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유대민족이 2천 년 동안 타지에 떠나있는 동안 그들의 조상들이 거주했던 지역의 타민족과의 통혼으로 셈족인 유대민족으로서의 혈통적 정체성이 상실된 것이 엄연한 현재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유대민족 땅은 유대민족이 아니라 단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살았던 땅에 불과한 것이다.

이슬람교와 유대교가 뿌리가 같은 종교이고 팔레스타인 땅은 공동의 성지이므로 두 종교가 화합하기만 하면 더불어 같이 사이좋게 잘 살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