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순교자 안디바

열려라 에바다 2024. 11. 23. 13:54

순교자 안디바

계 2:12-17

오늘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중 세 번째 버가모 교회에 순교자로 나오는 안디바와 같은 교회 내에서 사단의 계략에 빠져 교회에 큰 어려움을 준 니골라 당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한 교회 내에서 이런 비극적인 양극화 현상이 일어난 모습을 바라보면서 분열과 다툼을 없애고 하나님 안에서 바른 교회와 성도들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도전 받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Ⅰ.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가 세워진 버가모(pergamum)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해발 3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로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BC 323.6)이 33살에 죽은 후 거대한 나라 로마는 마케도냐, 시리아(셀루쿠스 왕조), 이집트(프톨레미 왕조)로 나누어집니다. 이때 시리아의 셀루쿠스 왕조가 수도를 버가모로 정한 후 소아시아지역에서 400년간 수도역할을 해 온 도시가 바로 버가모입니다.

무엇보다 버가모는 문화의 중심지로 20만권의 양피 두루마리를 간직한 세계 2위의 도서관(알렉산드리아 다음)이 있었으며, 또한 이곳은 양피지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화가 발달한 버가모 이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버가모는 ‘사단의 권좌’(왕좌)가 있는 도시였습니다.(13절) 그 이유는 버가모에 높이가 12미터나 되는 제우스신전을 비롯하여 버가뭄의 신이라 불리는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의 신전도 있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신은 치유의 신이어서 고통이나 병의 치유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를 구주(savier)라고 불렀습니다. 그 상징은 뱀인데 지금도 그 유산은 이집트의 파라오 왕관에 뱀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비너스 신당을 비롯하여, 뱀의 신을 섬기는 쓰스 신당, 술의 신을 섬기는 박카스 신당, 병을 고쳐 준다는 에피쿨라피아스 신당, 자손의 복을 준다는 베스타 신당, 등등 수없이 많은 우상의 신당들이 버가모에 있었습니다.

버가모는 또 아시아의 행정 중심지로서 로마의 가이사 황제는 로마 영토의 통일을 위해 가이사 신전을 만들어 놓고 온 국민들에게 1년에 한번 가이사 신전에 가서 분향하고 “가이사는 주님입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이행한 사람들에게 증명서를 교부했으며, 신전 경배를 거부한 사람들은 공민권을 박탈당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상숭배와 같은 대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가이사 신전경배를 거부하다보니 불법종교로 낙인이 찍혔으며, 거부한 사람들은 언제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었기에 주님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13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단이 득실대는 악조건의 환경 속에 버가모 교회가 세워졌으며, 이런 환경 속에서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13절)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구제적으로 13절에“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아십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형편과, 내 고통과 눈물을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고 계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는데 환경이 나쁩니까? 또는 가정 구원이 되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런 어려운 환경과 어려운 형편 중에서 믿음을 지키기에 애쓰며 수고하고 계십니까? 이것을 우리 주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신앙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Ⅱ. 신앙의 순교자 안디바

 

버가모 교회는 위대한 순교자 안디바를 가진 참으로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안디바라는 이름은 ‘모든 악을 대항한다. 모든 어려움을 대항한다.’는 뜻으로서 안디바는 사단의 권좌가 있는 버가모에서 믿음과 신앙을 지키다가 너무나도 고귀하고 아름다운 순교를 당한 인물입니다. 13절에서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는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안디바는 틀림없이 황제 숭배를 강요받았을 것입니다. 신앙을 부인하라는 압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죽음을 불사하면서 신앙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순교자의 명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안디바라는 성도의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도전과 감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순교자 안디바의 정신은 버가모 교회를 든든한 말씀의 반석위에, 신앙의 반석위에 올려놓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3가지 칭찬이 기록된 것입니다.

첫째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하였습니다(계 2:13).

숱한 우상의 신전들이 둘러싸여있는 (사단의 보좌) 버가모에서 버가모 교회는 타 지역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보다 몇 배 더 힘든 신앙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황제로부터 군인들로부터 많은 고난과 시련과 유혹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것처럼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안디바의 신앙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하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13절)는 칭찬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는데 환경이 나쁩니까? 또는 가정이 구원 받지 못해서 신앙생활 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런 어려운 환경과 어려운 형편 중에서 믿음을 지키기에 애쓰고 수고하는 것을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13절)라는 말씀을 통해 큰 위로를 받기 바랍니다.

둘째는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은 것을 칭찬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순례자의 길을 걸을 때 끝까지 굳게 잡아야 할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고 오직 예수의 이름 하나입니다(골 4:17). 사탄의 보좌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예수의 이름입니다. 세상 풍파와 환난 유혹을 이길 힘도 예수의 이름입니다(살후 1:12).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8)는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굳건히 붙잡고 우리의 믿음을 지키며 나갈 때에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칭찬 받고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계시록 2장 17절에서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귀한 상급을 받기 까지 날마다 예수의 이름을 외치며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가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재는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순교를 당한 것을 칭찬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안디바는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13절에 칭찬하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이름은 하늘의 별처럼 영원토록 빛납니다(단 12:3).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13절)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자주 장사 루디아가 있었고,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보 라는 회당장이 있었고,

안디옥 교회에는 바나바가 있어서 교회를 부흥시켰으며, 겐그리아 교회에는 뵈뵈라는 집사가 있었고, 서머나 교회에는 폴리캅이 있었습니다. 늘찬양교회는 “000이 있어 행복했다”고 평가를 받기를 바랍니다.

21세기는 새로운 영적 전쟁의 시대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기독교 초기보다 더 위협적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순교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한 번에 죽는 순교보다, 살아있는 순교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주님으로부터

"내 충성된 증인 000야!","내 충성된 증인 000교회 교인들아~"라는 칭찬을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늘찬양교회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버가모 교회에 충성된 증인 많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본문 14-15절에 보면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이와 같이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하였습니다.

1. 발람의 교훈

발람의 교훈이란 우상 제물을 먹고 행음하게 하는 거짓 가르침을 말합니다. 민수기 24장, 25장의 사건을 보면, 점쟁이 발람의 미혹에 빠진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염병으로 징계를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여행 중 모압 지역을 통과할 때 남자들이 모압 여인과 음행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이 섬기는 신 바알브올에게 절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이스라엘 남자 2만4천명이 염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민25:1-9, 31:16).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으로 유혹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점쟁이 발람입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 안에 이런 거짓 교훈으로 교인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을 때 일본 기독교는 일본의 "신사참배 "는 종교의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의식이라 하여 타락케 했습니다. 일본 기독교야말로 발람의 교훈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버가모 교회 신자처럼 세상과 짝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신앙이 아닌가?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 앞에 나아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곪았으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의 말씀으로 수술 받아 성별되는 은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니골라 당의 교훈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는데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니골라 당은 무율법주의자들이라고 알려집니다. 지금은 은혜시대에 살고 있으니 율법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은 썩어질 것이니 부정하고 영혼만 정결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였으니 영지주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신앙입니다. 육신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다보니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부정한 인간의 육신으로 왔다는 말을 부인하고 오직 영적인 면만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4장 1절-3절에서 사도 요한이 지적한 것처럼, “영들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는가? 시험해보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이것을 부인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였으며 이미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니골라 당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는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부인하는 거짓 교훈입니다. 

 

                               Ⅳ. 버가모 교회를 통한 영적교훈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통해, 그리고 안디바를 통해, 북한의 연이은 도발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총독, 권력자, 북한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우리는 그들의 손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의 손가락에 달려있음을 기억하라”(마 10:28-31)고 말씀하십니다.

버가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버가모 교회 성도가 되는 것이 오늘날 무슬림국가에서 예수를 믿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고 힘들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이집트의 쓰레기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무슬림 국가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기 위해 그들은 힘들고 냄새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기쁘고 감사하게 여기며 어렵게 삶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며 부끄러운 마음에 눈시울이 젖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울러 본문 13절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라는 말씀 때문에 가슴이 메여옵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나의 유익을 위해 쉽고 편안한 곳인가? 아니면 복음을 위해 오늘도 십자가를 지고 눈물의 씨앗을 뿌리는 곳인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예수만이 나의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 순교의 믿음이 오늘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주기철 목사와 같은 순교의 피가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도들은 힘들고 어려운 개척교회는 안 갈려고 합니다. 개척교회는 모든 게 노출되고, 봉사하는 것, 헌금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에 대형교회를 선호합니다. 과연 이런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최고와 최대가 되어야 한다는 최고지상주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성공지상주의, 인간의 인격마저 물질로 가늠하는 황금만능주의로 대변되는 맘몬이즘(mammonism)의 경제논리가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우리의 고난과 시련은 계속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에 물들어 있는 버가모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16절에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게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참으로 회개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교파우월주의, 대교회주의, 합리주의, 기복신앙을 강조하다보니 참으로 답답하셨던지... 북한의 천안함 침몰 사태에 이어서... 연평도 도발까지 침략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한국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까? 또 지금의 번영과 안정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국민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하여 기도하며 바른 믿음,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한 영혼도 멸망치 않고 구원 얻기를 원하셔서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고 계시는 주님께서 “이제 한국교회가 깨어서 회개하며 기도할 때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3장 5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이같이 망하리라"는 말씀을 버가모 교회를 통하여, 북한의 야만적인 침략행위를 통해서 회개하며 주님 앞에 바로서는 한국교회와 늘찬양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Ⅴ. 만나와 흰돌

 

본문 1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 만나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만나는 곧 영적 양식입니다. 지금까지 네가 맛보지 못했던 신령한 말씀의 축복을 네게 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식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막 40년 여정 길에 매일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생명을 보존해준 양식입니다.

마찬가지로 버가모 교인처럼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 먹을 것이 없어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예수의 이름을 굳게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나가는 자는 반드시 예비한 양식으로 채워주시고 승리의 영광으로 함께해 주실 것을 약속한다는 말씀입니다.

2. 흰 돌

“또 흰 돌을 줄 터인데...”했는데 고대의 경기에서는 사람들이 경기를 하면, 이기는 사람에게 심판관이 흰 돌을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또 재판관이 재판에서 죄수를 심문하고 나서 그가 무죄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흰 돌을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흰 돌’은 곧 ‘자유’요‘승리’요 ‘기쁨’이요‘영광’을 의미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지키며, 이기는 자에게는 믿음의 승리자의 대열에 그를 세울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더욱이 흰 돌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천국 시민권으로서 그것을 지닌 자마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흰 돌에는 천국에서 새롭게 사용할 우리의 이름을 주님이 적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버가모 교회와 안디바가 보여준 신앙을 열정과 순수함을 본받아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감춰진 만나의 축복과 영원한 천국의 시민권인 흰 돌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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