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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

열려라 에바다 2024. 11. 23. 14:41

세례 요한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의 탄생과 가족 사항은 (누가복음 1:5-2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유대의 사제직(제사장)에 있었던 스가랴(고대 그리스어: 자카리아스)와 아론의 피를 받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아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요한이 태어나게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늙도록 아내로부터 아이를 얻지 못하고 살던 제사장 스가랴에게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전하여 주기를, 곧 엘리사벳이 남자아이를 잉태하게 될 것이며,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요한이라 지어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나이가 많았던 관계로 천사가 전한 탄생소식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몇 개월 동안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에 뒤이어서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요한과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태어났으며, 두 사람의 운명이 서로 얽혀져 있다는 것을 미리 암시하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빨리 태어났으며 태어난 후의 그의 성장 과정은 그가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며 설교하기 시작하기 전까지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세례 요한의 부모가 죽은 후 에세네파 사람들을 따라서 광야로 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견해로는 헤롯 대왕이 예수님이 태어난 부근에 사는 모든 유대인 갓난 아이 학살을 명령하였을 때, 그의 부모가 이를 피하기 위해서 그를 광야로 데려갔는데 그가 그곳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하여간 에세네파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일본사람들이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을 때, 독립을 위하여 싸워왔던 사람들을“선구자”라고 불렀습니다.  선구자란 높은 꿈과 이상을 품고 실제적으로 행동하던 사회적 지도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양 성경에도 이렇게 “선구자”라고 부를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John Baptist)입니다.
그는 자신이 설명하였던 것처럼 구약 성경의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던, “주를 위해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침략을 당하고 나라가 망해버린 후, 다시 성전이 회복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주변의 강대국에 의해서 침략을 받아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였으며, 약 400년의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져 있었던 암흑과 같은 시대였습니다.

당시 로마에 의해 침략 당하고, 기득권을 잡고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에 아첨하고 있을 무렵에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 가족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면서 “회개하라.”라고 외치면서 세례의식을 베풀던 세례 요한을 “선구자”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 지방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기면서 한 편으로는 3 가지의 커다란 오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해의 첫 번째는, 그가 대단한 설교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이고 그가 메사이야(그리스도)가 아닐까하는 오해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구름과 같이 따라다녔으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바알의 제사장들과 싸워서 이김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엘리야가 아닐까?  이스라엘의 모든 민족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사이야(그리스도)가 아닐까? 하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오해는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세례 요한이라는 오해입니다. 광야에서 수도자적인 생활을 하였던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면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에 메시야로 오실 분에 대하여 선포하였는데, 이러한 선포는 대중들의 주의를 끌었으며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이며 메시야가 아닐까하면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한에게로 나아왔습니다.

 

세 번째의 오해는 세례 요한이 사회 정의를 외치는 사회개혁가라는 오해입니다.
당시의 헤롯왕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다가 목이 잘려 은쟁반 위에 올리게 된 처참한 죽음 때문입니다.

 

이러한 3 가지의 오해들은 사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해가 되는 이유는, 세례 요한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다른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러 온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인류의 죄의 값을 담당하여 희생제물인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이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요 1:20). 나는 주를 위해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입니다.(요 1:23)”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였던 “주님의 길을 예비하러온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은 확실히 혁명적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10~16)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옷이 두 벌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양식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하여라.”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들도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세금을 거두도록 지시받은 액수 이상으로 거두지 마라.” 

군인들도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강제로 돈을 빼앗지 마라. 거짓으로 고발하지 마라. 그리고 임금으로 받는 돈을 만족하게 여겨라.”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혹시 요한이 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였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으신 분이 오실 것이다.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부족하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자기의 동생이 살아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제수와 결혼을 하였던 헤롯 안티파스에게 그의 잘못함으로 인하여 꾸짖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헤롯 안티파스의 명령에 의해서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AD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죽게 된 직접적인 요인은 세례자 요한이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크게 받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세례 요한의 엄청난 인기가 반란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숙청했기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숙청된 세례 요한의 두개골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보관되고 전해져 내려오다가 오스만 터키 제국으로 반입되었는데,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프 궁전 박물관에는 세례 요한의 두개골이라고 알려진 유골이 보관전시 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요단강 건너 베다니라고 불리는 요르단 땅에 있는 세례 요한 세례터 기념 교회당

 

세례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세례요한 뒤에 오시는 메시야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늘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마3:11, 막1:7, 요1:15, 요1:27, 행13:25, 행19:4).
그리고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이 메시아(그리스도)이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시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며, 그로 인하여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심을 확신하였던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의 아내의 미움을 사게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예수님의 사역하시는 이야기들을 전해들은 세례 요한은 그가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시며,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증언하였던 그가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당신이 정말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아입니까?”라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게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2~3)

 

그가 예수님에 대하여 들렸던 이야기들은 그가 개인적으로, 또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였던 메시아에 대한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모든 가난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모세와 다윗과 같은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꿈꿔왔던 메시아는 로마 식민지로부터 압박받는 유대 민족을 해방시키는 카리스마적인 군사적인 영웅이며,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의 칼을 휘둘러서 악한 권세를 제압하고 새 이스라엘과 새 왕궁을 세우는 왕이었습니다.  물론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도 해야 했지만,  그것은 세례 요한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에 절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전해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은 세례 요한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 중에서 섬기고 사랑하는 부분만 성취하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심판, 공의, 정의를 실현하는 메시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였던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었습니다.

(마 11:4~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말하여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보고,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고, 문둥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진다고 하여라. 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군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대하던 세례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전혀 새로운 메시아에 대한 개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의 창과 칼을 무너뜨리는 일은 오히려 간단한 일일 것입니다. 창과 칼을 깨는 일은 정복자 칭키스칸이나 알렉산더 대왕이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너진 마음을 다시 살리고, 병든 자가 다시 일어나며,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자가 보게 되고 듣게 되는 것,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메시아에 대한 모습인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은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다스리고 있는 정권을 물리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병든 영혼을 고치는 것입니다. 로마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 즉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은 해결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의심의 마음을 품었던 세례 요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서 요한보다도 위대한 사람이 없다”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과 같이 겸손하셨던 예수님은 사람이 낳은 사람 중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으로  세례 요한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제자들이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절대 아니며,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서에 세례 요한을 예수님이 장차 세상에 오실 것을 소개하기 위해 보냄 받은 예언자로 묘사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 할 때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세례 요한의 예언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그가 선포하였던 설교의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그리스도)이며,  그의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속죄양(Redeemer)입니다. (요한복음 1:29)
2)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메시아)는 이제 곧 준엄한 심판을 인류에게 베풀 것입니다. (누가복음 3:9)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속죄양으로서 오시는 그리스도(메시아)라고 하는 사상은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생각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요한의 증언과 예언은 기독교 신앙이 정립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또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곧 마지막 날의 심판이 온다고 처음으로 예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예언의 내용은, 초림에 오시는 그리스도는 속죄양의 겸손한 모습으로 오고 두 번째 올 때 오시는 그리스도(메시아)는 심판주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신약성서에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이 사람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복음 11:11)라고 기록되면서 그(세례 요한)는 구약 최후의 예언자이자 신약 최초의 예언자이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마치게 되는 선지자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세례를 준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는 마태복음서의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마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기록하면서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6~37) “그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제자 두 사람은 요한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요 1:40)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따랐던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안드레”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나머지 한 사람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된 안드레는 예수님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를 하게 됩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세례 요한을 따르며 그가 선포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 중에 단 두 사람만이 참다운 메시아,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지고 가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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