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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열려라 에바다 2024. 12. 13. 09:13

두려움

 

시 31:13

 

두려움의 낱말뜻

1. 히브리어

파하드 - 깜짝 놀라다(갑작스런 놀람에 의허), 따라서 (일반적으로) 두려워하다, 무

서워하다, 경외하다, 떨게하다.- (갑작스런)놀람 (본래 의미는 두려운

대상,함축적으로 감정), 공포(스러운),두려움, 큰(두려움, 공포), 전율.

2. 헬라어

율라베이아 - 본래적 의미로 `주의', (종교적으로) 경외 경건), (함축적으로) 염려하

다, (종교적으로)경외하다.

프호보스 - 기본어 `프헤보마이'(두려움 속에 놓여 있다)에서 유래, 놀람 혹은 공포,

두려움.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도망치거나 싸우게 하는 악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하나님

의 임재 앞에서 인간이 가지게 되는 경외와 존경일 수도 있고, 더 낫게는 왕 앞에서나

무서운 권위 앞에서 인간이 가지는 감정일 수도 있다. 구약성경에는 두 가지 의미가

대조되어 있는데, 시편 31편 13절의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와 잠언 9장 10절의 "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라는 것이 그 경우이다.

 

두려움에 대한 성구

1.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일

신1:17 - 사람의 얼굴 시3:6 - 칠려고 하는 천만인

시23:4 - 음침한 골짜기를 행할 때

사10:24 - 이방인의 침략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51:7 - 사람의 훼방을 계2:10 - 주를 위한 고난을

살후2:2 -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미혹할 때

 

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

창15:1 - 여호와께서 방패와 상급이시니

창26:24 -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신7:18-21 - 여화의 기적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니

시34:4 - 여호와께서 건지시므로

사35:4 - 여호와께서 보수하시며 보복하시기 때문

사41:13,14 - 여호와가 오른 손을 붙드시고 도우시니

 

3. 두려울 때 태도

출14:10-여호와께 기도하라(삼상7:7,대하20:3,시64:1)

출14:13 - 여호와의 하시는 일을 기다림

시46:1-3 -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아라

마14:27 - 주를 맞이하라 사12:2 - 여호와를 의뢰하므로

도서참고

[예수의 상담].던컨 뷰케넌.박형중 역. 요단 출판사.1987.pp.59-76.

 

1.두려움

당신은 혹시 브래이크가 고장난 채 달리는 차 속에 있어 본 경험이 있는가? 두려움과

불안은 아마도 극에 달할 것이다.속도란 제어장치에 의해서 조절 될 때만 유용한 가치

가 있다. 우주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전능한 손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완전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생명력을 분출한다. 제어장치가 없는 속도는 사람과 그 문화와

사회를 파괴 시키고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

오는 우리는 브래이크가 고장난 차 속에 함께 탄 사람들과 같다. 성장과 발전의 속도

에 편승하고 불의와 불법과 음란과 부정의 가속도에 휘말려 가고 있다.그리고 절대

가치를 상실한 물질적 향락주의와 인본주의의 비탈길에 서 있다.

고장난 브레이크는 모든 것을 파괴 시킨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차에

부딛히는 것은 무엇인든지 다 파괴해 버린다.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당신 스스로 두려움속에 거하셨고 그

것을 극복하셨다.

바로 겟세마네동산의 고뇌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심히 격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계셨음이 분명하다.여기서처럼

예수님의 인간적인 측면을 확연히 엿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2.두려움 없는 삶.

두려움은 인류의 적이요 무서운 질병이다.어려운 환경보다 두려워 하는 마음이 더문제

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한 신문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군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군인은 35만명인데 비해 전쟁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수백

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간의 정서를 파괴하고 올바른 삶의 평안과 힘을 앗아가는 사탄의 도구인 두려움을

우리 마음에서 내쫓을때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 연합할 때 비로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다.

 

3.두려움의 댓가

제갈공명의 호적수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던 사마의의 후손은 진나라를 세워서 삼국

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천하를 통일한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진나라도 잠시후 골육의 난전(亂戰)인 8왕의 난을 겪으면서 약화되고 통제력을 잃

자 결국 망하고 말았다.

중국땅은 다시 난세로 돌입했는데 이 시대를 역사는 5호 16국 시대라고 한다.

이때 이미 망한 진나라의 후손들이 강남땅으로 쫓겨가서 세운 나라가 동진이라는 나라

이다 이 동진이 양자강 이남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던 서기 350년경의 일이다.

동진의 무장 환온은 이웃에 위치한 한나라를 쳐서 멸하고 그의 위명을 천하에 떨치고

있었다. 이때 환온의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를 견제할 수 있는인물로 각광을 받

은 사람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옛 제갈공명쯤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은호는 허명만 있을 뿐 실제로는 지극히 못나고 어리석으며 옹졸한 사람

이었다. 그는 사사건건 남을 방해하고 모함하며 가소로운 일들만 찾아가며 하는 사람

이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전쟁인들 잘하랴. 전쟁터에 임한 그는 한마디로 속수무책이

었고 우유부단한 자신의 결점만 만 천하에 드러내면서 결국 스스로 파멸을 초래 하고

말았다.

이런 형편이니 환온은 자연히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동진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하

게 되었다.

한편, 평민으로 전락하여 앙앙불락하며 지내던 은호에게 어느 날 환온으로 부터 한장

의 편지가 날아왔다.편지의 내용인즉

[그대 은호는 재능이 없는자가 아니요 일시 문제 처리방안을 잘못 선택한 것임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 알고 있소 따라서 나는 그대를 상서령(부총리급)에 추천할까

하는데 그대의 뜻은 어떠한지 알려주오]

라는 것이 아닌가?

그는 즉시 떨리는 마음으로 환온의 제의를 수락하고 그의 온정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당신의 손 발 노릇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적어서 봉함을 했다. 이제 그 편지를 부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편지인가? 혹 이것이 잘못되면 자신은 다시는 두번 다시 재기

불능의 사람이 될 것이다. 어쩌다 편지 알맹이를 빼고 봉함한 것이 아닌가? 자기를 모

함하는 사람이 있어서 편지 내용은 바꿔치지는 않았는지,편지의 내용이 환온의 비위를

거스리는 것이 아닌지,의심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렇게 하여 그 편지는 붙혔다 다시 뜯고 다시 뜯어 확인하고 다시 봉함하고 하기를

무려 수십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환온에게 부쳤는데.

잘 낳아보려고 벼르고 벼르던 자식 낳고 보니 언청이더란 말이 있듯이 은호는 결국 편

지 내용은 빼고 겉봉만 보내고 말았다.

환온은 속이 빈 편지를 받고 은호가 자기의 제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없었

던 일로 처리하고 말았는데 은호는 이 일로 인하여 평생을 두고 한탄만 하다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성경은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고 교훈하고 있다. 의심은 곧 불행과 직결된다.

 

4.결코 혼자가 아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소년들의 용기를 훈련하는 독특한 방법을 썼습니다. 이들은 소년

들에게 숲 속에서 야생동물들과 함께 밤을 지내게 만들면서 소년들의 담력을 키웠습니

다. 시험을 받는 날 밤, 소년은 얼마나 무서움을 느꼈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지

키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들 몰래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밤새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5.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시 27편)

4세기 동방의 명설교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이 사회악을 꾸짖고 황후 유독시아의 사치

를 나무라다가 위협을 당하여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다. 그는 태연히 말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까? 죽음인가? 아니다.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께 감취어져 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인가? 아니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나의 소유를 잃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은 없고 떠날

때도 가지고 갈 것은 없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감취어져 있다. 저들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엘리야처럼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져넣으면 나는 예레미야처럼 될

것이고 굴에 던져넣으면 다니엘처럼 될 것이고, 돌로 친다면 나는 스데반처럼 될 것이

고 목을 벤다면 침례 요한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매질한다면 나는 사도 바울처

럼 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내게 어찌 하리이

까(시편 56편 4,11절)

 

6.두려움

두려움은 곰팡이와도 같아서 어두운데서 가장 빨리 번식한다.

그 두려움을 빛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두려운 마음을 이끌고 주님앞으로 나아가면 모든 두려움은 그 빛

에 의해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7. 두려움이 사람을 죽인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서반아 왕 가운데 페르디난도 5세라고 하는 황이 있었

는데 이 왕이 어떤 점장이에게 "왕께서는 '마드리갈'이라고하는 곳에 아예 가지 마세

요. 그 '마드리갈'에서 왕은 장차 죽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왕의 별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무서워서 자기의 좋은 궁전을

지어 놓고도 21년 동안 거기를 못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반아 지방을 여행하다

가 어떤 조그만 촌락에서 하룻밤 자면서 그만 병이 났습니다. 왕은 이 지방이 어떤 지

방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 곳은 '마드갈레'입니다"하고 대답했

습니다. '마드리갈'과 비슷했습니다. 사실은 '마드리갈'은 아니고 비슷한 이름일 뿐입

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왕은 "아이고 나는 죽겠구나!"하더니 며칠 안 되어서 죽었

다고 합니다.

병이 죽인 것이 아닙니다. 공포심이 죽였다는 말입니다. 공포심이 사람의 마음을 엄습

하게 되면 신경이 쇠약해지고, 혈압은 높아지고, 위액 분비가 잘 안되어서 소화도 안

되고, 심장이 뛰고, 당뇨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실상은 세균에 의한 병

보다도 공포심이 원인이 되어서 병나는 이가 더 많고, 죽는 사람도 더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포심이 우리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8. 타이타닉호 사건

1912년 [타이타닉호]라는 유명한 여객선이 대서양을 항해하고 있었다. 당시로서 사상

제일 크게 건조된 호화선이었다. 이와 같이 유명한 배가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하게

되니 유럽과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이 배에 많이 탔다. 불행히도 이 배가 대서양에

서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기 시작했다. 구명정 몇 개를 풀어 어린 아이와 부녀자들을

먼저 구하였으나 여객의 대다수는 구할 길이 없었다.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승객들은 정신을 잃고 불안과 공포 가운데서 갑판에 나와 아우성을 쳤다. 그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그 배에 타고 있던 악대가 정복을 입고 각각 악기를 들고 갑판

가운데 나섰다. 그 아우성 속에 꼼짝하지 않고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한곡, 두 곡 위

대한곡을 계속 연주하였다. 마지막에 찬송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모든 승객은 악

대의 연주에 맞춰 찬송가를 입에 모아 부르며 물 속에 잠겨갔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 마지막 절을 부르면서 물 속에 잠겨가던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도 잊은 채 하늘을

향해서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9. 죄의 두려움

옛날 런던에서 양품점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빼앗은 후 그 일가를 몰살하고 도망친 남

자가 있었습니다.경찰은 진범이 아닌 자를 체포하여 재판에 걸어 결국 사형시켰습니

다.

진범은 미국으로 도망가 20년간 거기서 여유있는 생활을 지냈습니다.

󰡒이젠 안심이겠지󰡓하고 그는 신분을 감추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가 런던의 일류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을 때. 호각 소리가 나며 동시에 쿵쿵하는 사

람들의 발소리가 났습니다.

󰡒여보시오. 저 놈은 도적이니까 붙잡으세요.󰡓

경찰관의 외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전신은 벌벌 떨리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

작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수하고 말았습니다.

여유롭게 아무 것도 않고 태평하게 보냈던 20년의 생활. 그것은 참으로 불안에 찬 어

쩔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대인의 특징

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학자들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의 불안 중 가장 두려워하

는 것은 의식하든 못하든 죄의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안정제로 속이려고 합니다. 50불 치료비를 지불하고󰡒죄같은 것 무엇이

대단해요. 모두 짓고 있는 것인데 두려워 말아요󰡓라고 정신병원에서 하는 말을 듣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현실적으로 진실하게 용서받고 정결케 되기 전에는

우리의 가는 방향은 지옥이라는 것을.

 

10. 두려워하지 말라 (사41:8-16)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가시밭과 같기에 사실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표현해

도 무리가 아니다. 언제 어느 때에 큰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는 가운데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믿음의 백성들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는 말

씀을 여러번 하고 계신다. 이는

1. 성도들의 하나님이시므로(10절).

하나님과 그의 택한 백성들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관계요,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버

릴 수 없는 언약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영원 불변하시니 그를 믿고 의지함은 성도들에

게 있어서 최대의 행복이다. 하나님은 그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

은 버리지 않을 것이며(9절), 굳세게 할 것이며(10절),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며(10절),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0,13).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들의 하나님 되심의 결과는 완전한 승리인데 그 승리에 대하여 본문11절에 확인해 주

고 계시다.

하나님의 싸움에는 실패란 있을 수 없는 오직 승리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의인에게는 승리를, 악인에게는 패배를 준다.미국의 16대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장례식에서 외친 가필드의 `링컨은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연설은 대

단한 힘을 주어 낙심한 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2. 성도는 약하기 때문에(14절).

여기서 야곱을 지렁이라고 표현하신 말씀은 대적들의 막강한 도전에 대하여 약하여 떨

고 있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성도들은 이 세상 세력, 곧 사탄의 세력에

너무 약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들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성도를 `질그릇'으로 표현했다(고후4:7). 그러나 성도들이 두려워 말아야 할 것

은 먼저 하나님께서 성도의 하나님 되시며,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구속하여 강

력한 도구로 쓰시기 때문임을 15절에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인가. 결코 성도는 질그릇처럼 약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보화인 예수는

강하시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음을 사도 바울은 증거하였다(고후4:7-9).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즐거움과 자랑이 결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16절). 하나님에의

절대 의지는 절대 평안임을 잊지 말자. 나는 생활중에 환난이 몰아칠 때 얼마나 하나

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사는가?

 

11. 질그릇 속의 보배 (고후4:7-15)

성경 속에는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곳이 많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눅15:11-32), 목자와 양의 관계(요10:1-6),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마

25:1-13), 포도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요15:1-8) 등등. 오늘 본문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

도와 성도의 관계를 "질그릇 속의 보화"로 말씀한다.

1. 질그릇의 3대 특성

여기서 말씀하는 질그릇은 <오이토라키노스>라는 말로 이는 구워서 만든 토기를 가리

킨다. 선지자 이사야도 인간 존재를 질그릇으로 비유한다(사64:8). 그 특성을 살펴보면,

(1) 질그릇의 피조성 -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창1:27).

(2)질그릇의 목적성 -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 때 아무 목적도 없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도 그렇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함으로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간의 목적을

파괴했다.

(3) 질그릇의 연약성 - 질그릇은 연약하다. 그 어떤 충격을 받으면 쉽게 금이 가고

곧 깨어져서 조각이 난다. 질그릇으로서의 인간은 이 특성들을 피할 수 없다.

2. 보화의 정체

보화는 <데사우로스>로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보

배로운 산 돌'(벧전2:4)로 표현했다. 질그릇의 가치는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으로

나타난다. "예수 보화"를 간직한 질그릇인 성도의 가치는 매우 보배롭고 존귀하다.

보화이신 예수. 그는 능력이다. 능력은 <뒤나미스>로 다이나마이트란 말이다. 이는 무

엇이든지 파괴해 버리는 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죄의 세력을 파괴하는 십자가의 능

력이요,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만드시는 부활의 능력, 곧 성령의 능력인 것이다. 예수의 능력을 간직한 질그릇은 싸이

지 아니하며, 낙심치 아니하며,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망하지 아니한다(8-9). 질그릇

그 자체는 연약하나 그 질그릇이 승리함은 능력이신 `예수보화'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보화를 간직한 질그릇의 삶

본문 15절은 보화를 간직한 성도의 삶을 말씀한다. 이는 더욱 넘치는 감사의 삶으로

질그릇 속에 보화를 가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으로 이는 질그릇의 목적이기도 하다. 예수를 모신 질그릇된

성도는 참으로 복된 자이다. 연약한 질그릇이나 "예수 보화"를 담고 있다는 신앙의 긍

지를 갖자.

 

12. 두려움의 개념

우선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예배의 기초가 되며 지혜의 근본이 된다. 또한 이 두려

움은 사랑이 풍성하시고 심판주가 되시며 영원히 신뢰할만 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임재하심을 깨닫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기도 하다. 모든 시편 가운데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시편 중 하나인 시편 8편은 사랑이 넘치시나 두려운 위엄을 지니신 놀라우신 하

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한 경악감과 경외심도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두려움은 생명을 주는 두려움이다.왜냐하면 그로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관심을 돌이

키게 되며, 따라서 죄에서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응답이 관련되어 있고 죄와 사단의

세력이 부인되는 한 하나님을 다시 모든 사물의 중심에 모시게 된다.

- 던컨 뷰케넌예수의 상담-

 

13.두려움과 인간의 예지 능력

두려움은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하는데 감정적 동물된 기본이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예지능력(豫知能力)에서 오는 것이다. 적어도 사람은그 앞에 될 일이 무엇인

지를 조금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앞의 일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바로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

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걱정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주어진 예지 능력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앞에 놓인 일을 미리 생각하여 기뻐할 줄 아는 것도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일년 뒤에 있을 일,내일 있을 일, 이를테면 약혼한 사람은 결혼한 다음에 있을 일을,

젊은이들은 장래에 학 싶은 일을 꿈꾸면서 기뻐하게 되는 것, 이것은 인간에게만 주어

진 능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능력이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 걱정, 근심

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좋지 않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상향으로 기울어 지는 것이다.

사람의 예지 능력은 행복을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행복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에게서는 이것이 두려운 마음으로 바꾸어지게 되니

문제인 것이다.

우선 자기 평가가 두려움을 안겨준다. 내가 나의 나약함을 알고 있다. 앞에 놓인 것은

큰 사건인데 나는 조그마한 인간인 것이다. 감당할 수 없고 대응할 수 없다. 이렇듯 자

기 능력의 한계를 알고 무능함을 자각할 때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곽선희 목사예수의 잠언 -

 

14. 두려움과 양심(良心)

양심이란 문자 그대로 좋은 양(良) 마음 심(心)이다. 이 양심이 기쁜 방향으로 작동해

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양심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거짓말 하고나서 두근두근하는 마음 정도로 대

답할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우리의 양심을 끌고 가고 있는 것이

다.

선을 행하고 기뻐하는 마음,

의를 행하면서 기뻐하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기뻐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양심의 근본이다.

그러한 바탕을 근거로 해 놓고서도 사람들은 못된 짓만 했으니 두려워하는 마음이 곧

양심이라고 말하게끔 형편이 돌아가고 만 것이다.

- 곽선희 목사예수의 잠언 -

 

15. 불행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은 불행 자체는 두려워 하면서 불행의 원인을 두려워 할 줄 모른다.

불행은 죄로 말미암아 온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죄를지으면 당연히 불행이 따라 오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죄를 짓는 데까지는 쉽게

하고 결과에 대해서만 두려워 한다.

모름직 사람은 죄 자체를 두려워 하여 삼갈 것이다. 바로 거기서 부터 출발해야 할 것

이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바른 신앙인의 자세라면 당연한 일이

다.

알고 보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간단하다.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 하는지, 그것을

보면 된다. 죄를 지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냐, 죄를 지어놓고 두려워 하는 사람이냐,

이것을 그 사람의 사람됨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죄 자체를 두려워할 줄 모르고 죄로 빚어진 결과를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바보일 수 밖에.....,

불행을 두려워 하지 말고 불행의 원인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성도이다.

 

16. 두려움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1. 긍정적인 면

두려움이란 반드시 불필요하다거나 바람직스럽지 못한다거나 나븐 것은 아니다. 꼭 필

요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두려움이다. 경건을 두고 옛날에는 영어로 Good-fearing

이라 하여 신앙심이 갚은 나머지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죄를 두려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는 데서 경건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마땅히 지녀할 마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우러러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항상 죄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고 조심한다.

그런 사람은 성도간에더 항상 두려움을 갖고 행한다.

내가 말을 잘못하여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또 내 행위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어쩌나.

그러한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경건에 이르게 한다. 그렇게 경간한 사람은 나때문에

남이 아파하면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나의 언행이 성도들에게,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를 항상 생각하며 두려워 한다. 이것이 경건인 것이다.

또한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잘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있는 사람은 성

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우리의 재능가 물질과 지헤와 건강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고 무위(無爲)로 지내는 것은 아닌질띵 두려워 하는 사람, 그는 분명 칭찬받는 종이

될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고 두려워

하지 애는 삶은 안하무인이 되고 교만하고 하나님앞에서 방자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

이다.

2. 부정적인 면에서 두려움

이것은 죄의식이라고 하는 두려움이다.

죄를 짓고 그에대한 가책과 형벌의식으로 두려워한다.

나쁜 짓을 해 놓고 폭로될까봐 두려워 한다.

심은대로 거둔다고 하는데 내가 심은 것이 좋지 않아서 그 결실이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배반해 놓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두려움을 뜻하는 용어로서 세 가지의 헬라말이 쓰인다.

비겁해서 두려워 한다는 뜻의데일리아 가 있고,나쁜 의미로도 쓰이고 좋은 의미로도

쓰이는프호보스 가 있으며 그리고 중요한 낱말로외경 에 가까운 두려움을 나타내

는율라베이아 가 있는데 이 말에는 공경,존경의 뜻이 들어 있다.

 

17. 누구를 두려워 하는가의 차이

뱅겔이라는 신학자가 한 소리를 들어 보라

하나님만 두려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

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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