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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만으로 본 죄 1 (에 3:1-6)

열려라 에바다 2025. 5. 3. 10:26
하만으로 본 죄 1 (에 3:1-6)
 
新 婦추천 1조회 5725.04.28 07:46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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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으로 본 죄 1 (에 3:1-6)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이 시간에는 "하만으로 본 죄"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파사에 흩어져서 살던 하나님의 백성 유다인들은 이젠 포로는 아니었으나 이국적 삶의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동안 에스더가 왕후가 되고, 모르드개가 암살자들을 발견해서 왕의 생명을 살리는 경사가 있었는데, ‘호사다마’라 하듯 하만을 통하여 민족적인 큰 시험이 닥칩니다. 하만은 한 마디로 죄의 상징입니다. 오늘은 죄에 대해서 배우겠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 제24문에 “죄는 이성적 피조물에게 법칙으로 주신 하나님의 율법에 순복함에 부족한 것이나 이를 범하는 것이다.(요일 3:4, 갈 3:10, 12)” 했습니다. 문답서 가지고는 이 정도밖에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더 자세히 하만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죄란 세속적인 열심을 내는 다른 불입니다.


1절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 먼저 “아각 사람”이라 했습니다. “아각”은 애굽의 바로처럼 아말렉의 왕의 칭호입니다. 하만이 아각 사람이란 그가 아멜렉의 왕족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아각”은 “타오르다”의 아람어에서 유래한 것으로“난폭한, 불꽃”을 뜻합니다. 즉 불꽃은 불꽃인데 좋지 않은 불꽃입니다. 여기서 불꽃은 열심입니다.


이처럼 죄가 들어가면 열심이 생깁니다. 도둑질에 열심하고 싸움에 열심하고 험담에 열심하고 악한 일에 열심합니다. 성령의 불도 뜨겁지만 죄도 아주 뜨겁습니다. 지난번 이태원 할로윈 마귀 축제에서 압사 사건이 있었지요. 압사 사건으로 159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한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중에도 한 동안 노래와 광란의 춤이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마음이 팔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축제가 부흥성회보다 더 뜨겁습니다. 우리가 세상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 축제만큼 우리 예배가 그렇게 뜨겁다면 아마 세계를 변화시킬 만큼 큰 능력을 받을 것입니다. 요12:43에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들 안에 다른 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26:61에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했습니다. 예배할 때, 혹은 우리 마음에 성령의 불이 아닌 세속의 불을 드리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세속적인 노래와 문화가 심령을 죽입니다. 세상과 육신적인 마음은 불과 나비와 같습니다. 불만 보면 나비가 날아와 춤을 추다가 그 불에 타져 죽습니다. 그 열정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2. 죄란 믿음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만이 아말렉 사람이었는데, “아말렉”이란 '호전적인 사람들', '계곡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호전적이란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계곡은 골짜기로서 산 사이에 펼쳐진 평원을 가리킵니다. 사사기를 보면 여기가 병거를 몬다든지 전쟁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아주 전쟁하기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성경의 배경을 찾아보면, 창36:12에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그의 첩 딤나에게서 낳은 아들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창14:7을 보면 이미 아브라함 시대 네게브 근방에서 유목생활을 했다고 했기 때문에 여러 족속이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죄란 혼합되어 있고 믿음과 선한 일에 도전합니다. 그래서 육신적이고 세상적이고 사탄적인 것이 죄입니다. 이처럼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멜렉 족속의 특징은 비열합니다. 이스라엘이 피곤할 때마다 이스라엘의 뒤로 와서 약한 자들을 칩니다. 정면 대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25:17-18에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했듯이, 영적으로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조금만 믿음 생활에 게을러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죄의 아멜렉입니다.


3. 죄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입니다.


또 하만에 대한 설명으로 하만은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입니다. “함므다다”는 '달에 의해 주어진'의 뜻을 갖는 바벨론식 이름입니다. 그리고 “하만”은 엘람의 주신인 '후만'과 관련되는 듯한 이름으로 ‘화려한, 찬란한’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달”은 세속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죄란 화려하고 찬란하게 보입니다. 겉과 속이 다릅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보였습니다. 속지 않아야 합니다. 요일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 했는데, 에덴동산의 선악과 나무와 같습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하와가 선악과를 보는 순간 미혹되고 말았습니다.


죄의 원인자인 사탄도 겉과 속이 다릅니다. 고후11:14-15에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게 보통이란 말씀입니다. 겉만 보고 미끼를 물었다가는 죽는 것입니다.


사이비 이단이 더 친절하게 다가옵니다. 제비족 꽃뱀이 더 예절 바르고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잠5:3-5에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듯 거기에 속다가는 영육 간에 다 털립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와 열매로서 영 분별해서 현명하시기 바랍니다.


4. 죄란 멸절시켜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원수가 죄입니다. 출17:16에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신25:19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왜 멸절하라고 하셨을까요? 악해서도 그렇지만 자꾸만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다 죽였다’ 했는데 자꾸만 살아나요.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아주 변화된 줄 알았는데 또 다시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아멜렉 왕 아각과 가축을 남깁니다. 이것이 사울이 왕관을 벗은 최대의 실수인데, 이처럼 죄가 우리 능력을 빼앗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이걸 안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하고 직접 아각을 끌어내 죽이고 남은 것을 다 멸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디엔가 살아서 하만과 그 민족으로 나타났습니다. 파사에는 아멜렉 족속이 수십 만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이 죄는 이렇게 죽이고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천국에 갈 때까지는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줄 알았던 죄가 하만처럼 나타나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5. 죄란 조그만 틈만 생기면 나타납니다.


광야 르비딤에서 있던 일입니다. 출17:8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여기 “그때에”라고 했습니다. 그때란 바로 앞의 7절을 보면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바로 그때입니다.


르비딤에서 아멜렉과의 전쟁은 믿음이 없어서 물이 없다고 다투고 원망할 때 시작된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낱말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성경의 영감설을 믿지 않으면 성경이 풀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어 오합지졸이 될 때 꼭 그럴 때 아멜렉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백성들이 반석의 생수를 마시고 정신을 차린 후 아멜렉과 싸우는데, 물은 말씀과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세요. 그러면 죄의 아말렉이 나타나지 못하고 나타나도 지지 않고 싸워서 이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출17:11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모세의 팔이 피곤해 내려옵니다. 여기도 “피곤하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기도가 식고 믿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돌을 놓고 앉게 하고 양편에서 붙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지 않을 수 없도록 예배시간을 제도화하고, 기도 못하지 않도록 기도시간을 제도화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가 예배는 제도화했는데 기도는 하루 3번의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었던 새벽기도부터 살려냅시다. 우리 사역자들부터 초대교회의 3번 기도의 전통을 이어갑시다. 우리가 살면 모두가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늘 넘어지고 시험 든다면 환경만 탓하지 말고 영적 생활에 문제가 있는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방법 내 의로는 안 됩니다. 피곤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더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원수 죄의 아말렉을 우리의 영원한 원수로 삼고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