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행5:27-32)

열려라 에바다 2025. 4. 26. 20:12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행5:27-32)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19325.04.25 16:35댓글 10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

사도행전5:27-32

 

최근에 매스컴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용하여 화제가 되었고 이 말 때문에 검찰총장이 되고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꼭 이 말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윤 전 대통령의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말은 위에 있는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충성을 하거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누구든 법과 원칙에 따라서 공명정대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무엇에 충성을 해야 할까요?

최근에 이 말을 사용하여 화제가 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특수전 사령부 1특전대대장인 김형기 중령입니다.

김 중령은 윤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23년의 군 생활 동안 과거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입니다. 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조직에 충성해왔고요. 그 조직은 제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대라는 조직에 충성하였기에 잘못된 상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살다보면 사람에게 충성할 것인가? 조직이나 국가에 충성할 것인가? 법과 원칙에 충성할 것인가? 여러 가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사람에게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충성할 것인가? 갈등하고 고민이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윗이 간음과 살인의 죄를 범하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잘못을 알면서도 최고의 권력자인 다윗에게 한 마디 말을 못합니다.

오히려 다윗의 잘못에 협력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요압장군은 자신의 부하이자 충실한 장군이었던 우리아를 죽이라는 다윗왕의 말에 적극적으로 협조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신앙과 양심과 말씀에 비춰 잘못된 명령이었지만 요압은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충성하여 다윗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우리아를 고의로 죽입니다.

이때 나단 선지자에게 다윗왕의 잘못을 지적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이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쉬쉬하며 다윗의 눈치를 보고 있는 마당에 잘못을 지적할 때 다윗 왕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화를 낼 수도 있고 그 화가 자칫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수도 있었습니다.

이미 우리아를 죽인 마당에 선지자 한 명을 더 죽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를 시켜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나단 선지자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윗을 살렸고 자신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고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좋은 신앙의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공회 앞에서 심문 받는 내용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잡아다가 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밤중에 주의 사자가 사도들을 옥에서 끄집어내면서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성전에서 전하라고 합니다.

옥에서 나온 사도들은 하나님의 지시로 알고 성전에 가서 백성들을 가르칩니다.

간밤에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 대제사장들과 그 무리들이 사도들을 데려오라고 했을 때 옥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 옥에 있어야 할 예수의 제자들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 제자들이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들을 다시 붙잡아 와서 공회 앞에 세우고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그런데 왜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느냐?’고 위협합니다.

그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했던 유명한 말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4:19)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전하지 말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전하라고 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희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인들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사도들이 이 말을 할 때도 앞에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막강한 권력자들이 그 앞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언제든 맘만 먹으면 사도들을 잡아 가둘 수 있었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일후에 스데반 집사가 죽임을 당했고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서 사도 외에는 다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충고를 듣고 석방을 받았지만 그들은 채찍질을 당하였습니다.

이 채찍질은 40에 하나 감한 매였습니다. 40대를 때리면 죽을 수 있으니까 39대만 때리라는 말인데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맞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말을 거슬린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는 일이었기에 그들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순종해야 살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사람에게 충성해야 일이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앙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앞세우면 올바른 신앙이 아니고 이름만의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올바른 신앙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잘못된 신앙의 언저리에 놓여있는가? 를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담대해지고 용감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들어와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말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 안에는 이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생명의 자리, 진리의 자리,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으며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사람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가말리엘이라는 율법교사가 대제사장들과 집권자들에게 권면하는 말이 나오는데요,

드다와 갈릴리의 유다, 이 둘은 한때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죽어 망하게 되었을 때 따르던 사람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대단한 존재 같아서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가지 못하였고 죽임을 당하고 망하였습니다.

오늘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이 사실을 얼마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까?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도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고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고 그들에게 잘 보인다한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는 것은 정말 허무한 일입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습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대제사장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죄 사함을 주시는 구주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사도들이 죽음을 무릎 쓰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사흘 전에 십자가에 달려 고통가운데 죽었습니다. 죽은 시신을 무덤에 장사하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그런 예수가 사흘 후에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자기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몇 차례 경험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경험은 사도들이 예수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할 수 있는가? 이렇게 부활하신 이 분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은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게 됩니다.

죄가 없으신 그 분의 죽으심은 우리를 대신한 대속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분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대속자시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우리가 왜 주님께 충성하고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까?

그 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아멘)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오른손으로 높이 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고 말씀합니다.(31)

여기에서 임금이라는 말은 통치자, 영도자라는 말입니다.(새 번역)

예수님이 통치자라고 하면 무엇을 다스리고 누구를 통치한다는 말입니까?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을 다스린다.’ 고 말씀합니다.(2:10)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홀로 주관하시는 통치자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 권력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권력에게 순종하고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충성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사람이 주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에 달려있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집권자들은 예수를 죽임으로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나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역사를 심판하십니다.

이런 주님께 어찌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고의 삶이고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복 받는 길이고 올바른 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죄에서 구원받기위한 신앙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만 믿음의 축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섬김으로 이 땅에서의 축복의 삶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 만왕의 왕에게 충성하시고 만주의 주 앞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집권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을 하였지만 그러나 아무리 위협하고 채찍질을 하고 예수 부활을 증거 하지 말라고 해도 사도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뵈었고 함께 음식도 먹었고 승천하시는 주님도 보았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경험한 사도들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엄금을 해도 그들의 말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핍박과 환난이 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은 구세주였고 만왕의 왕이었고 순종과 충성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은 그들의 삶의 목표와 가치와 보화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빼놓고 인생을 말할 수 없었고 삶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고 충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보이는 사람이 두렵고 힘이 있는 것 같고 사람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람에게 충성해야한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그러나 모든 역사의 주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줄 믿습니다.

그 믿음가운데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욕심과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주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충성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에 대한 순종과 충성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