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믿음 수2:8-21, 벧후1:1-11
베드로는 신약 본문에서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도, 권세도, 명예도 아닌 믿음을 보배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요1:12-13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이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이니라.” 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천한 인생일지라도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보다 귀한 복이 어디 있을까요? 이 복은 천사도 부러워하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요일3:1-2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믿음은 죄인을 의롭게 해줍니다.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갈3:6-9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천국의 백성으로 이끌어줍니다. 롬5:2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쁘게 여긴 것은 장차 받을 천국의 상급과 영광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롬8:16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롬5:2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보배로운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보배로운 믿음은,
1.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신앙고백이 따르는 믿음입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라합이 보여준 믿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방인이요, 신분은 사람들이 비천하게 여기는 기생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탁월한 믿음으로 자신과 가족 친지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롬10:17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한 말씀처럼 들음에서 생긴 믿음입니다. 그녀는 자기 집에 오는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서 그간 행하신 기적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본문 9-10절에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 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눈으로 보지 못한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합니다. 11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즉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지배하시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녀는 입술로만 고백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정탐꾼에게 행한 일을 통해 그녀의 믿음의 고백이 진실인 것을 보여줬습니다.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주고, 그들을 추격하는 군사들을 슬기롭게 따돌렸습니다. 4-6에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했습니다. 그녀는 믿는 대로 행했습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자신과 가족, 친지들을 구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선행이나 공로나 자랑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리 자랑스러운 사람 같아 보여도 믿음이 없으면 외면 하셔도, 아무리 흉악한 자처럼 보여도 하나님께 보여 줄 믿음을 가지면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십니다. 영업 택시를 타고 가다가 여자 운전사를 살해하고 법의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 박성호씨는 경기도 파주군에서 영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농사일을 돕다가 군에 입대하여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별 볼일 없이 지내던 중 어느 날 밤에 여자 운전사가 모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칼로 위협하여 돈을 빼앗고, 야산으로 끌고 가 강간까지 하였고, 자신의 범죄가 탄로 날까 두려워 죽이고 매장한 후 달아났다가 얼마 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전도를 받고 성경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참회와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 형목, 김준영 목사에게 손수 만든 짚신 네 켤레를 선물로 남기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기독교 전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저는 비참한 살인마, 사회에 해독을 끼친 흉악범이라는 사형수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으로는 응당 벌을 받아 처형을 받습니다만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품으로 갈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라합 같은 확고한 신앙고백이 따르는 보배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2.십자가 구속의 복음을 붙잡는 신앙입니다.
라합은 목숨 걸고 두 정탐꾼을 구원한 뒤에 훗날에 자신과 가족을 구원해 줄 것을 잊지 않고 구원의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에 사람의 약속만 믿고 생명을 부지한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구원을 보증하는 확실한 증표가 있으면 위기에 처해서도 안심할 수 있기에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때 두 사람이 라합에게 그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하는 말이 본문 14절에서 ‘너희가 우리의 일을 발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하노라. 주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가 너를 친절하고 진실하게 대우하리라.’ 하고 서로 서약을 하고, 라합은 그 두 사람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우고, 산으로 가서 피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은 서로 서약한 맹세에 대하여 허물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들이 이 땅에 들어올 때 자신들을 달아 내리운 이 창에 붉은 줄을 매어달고 그의 부모 형제 가족들을 이 집안으로 다 불러 모으라고 했습니다. 붉은 줄이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지만 언약 관계를 맺은 당사자들만이 아는 이 붉은 줄은 피를 상징하는 주홍색으로 주님의 대속의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라합이 자기 목숨을 걸고 두 사람의 생명을 살려 주었기에, 라합이 죽게 되었을 때 두 사람도 자기의 생명을 대신해서 라합을 살리는 것이 지당한 생명의 보상 원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값으로 죽게 된 우리를 대신해서 아무런 죄도 없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서 주홍같이 붉은 피를 흘려주시어 우리의 생명을 대속하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주홍색 줄은 참으로 진실한 구원의 표인 동시에 예수님의 보혈의 상징이요, 구속의 복음이 됩니다.
라합은 두 정탐꾼을 산으로 피신시킨 다음, 그 즉시로 지체하지 않고 그들을 달아 내린 바로 그 창가에 붉은 줄을 매어 달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의 행위를 뜻합니다. 라합은 두 사람과 언약한 맹세가 진실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가 살아남는 오직 유일의 길은 이 방법밖에 없음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두 사람과의 진실한 언약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서로 믿지 못하고 있다면 그 언약은 허위가 될 뿐 아니라. 아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케 된다.’(약 2:22)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기 전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이 재앙을 피하고 죽음이 넘어가는 언약의 보증이 되었습니다. 붉은 줄은 그와도 같습니다. 여리고의 모든 백성들이 아모리의 두 왕 시온, 옥의 백성들처럼 곧 맞게 될 죽음의 공포 가운데 있을 때에도 라합은 붉은 줄을 바라보며 구원의 약속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십자가 언약을 믿는 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바라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라합처럼 구원의 표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구속의 복음을 붙잡는 성도가 됩시다.
3.믿음에 더욱 힘써 신의 성품을 가지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신약 본문 5절에 ‘더욱 힘써’라는 말이 나오고 10절에도 ‘더욱 힘써’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도에게 믿음은 기본입니다. 믿음 없이는 의롭게 되는 것도, 구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믿음이 귀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더 값지게 하고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것들을 더욱 힘써 더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5-7에서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에 이러한 덕목들을 겸비하게 될수록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 마음을 품어 주님을 닮은 자입니다. 기본이 되는 믿음에다 이러한 덕목들을 ‘너희가 더욱 힘써 공급하라.’고 하니,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음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믿음’도 ‘피스티스’란 말로 신뢰, 맡김을 뜻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로(히11:1), 그 시작과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히12:2). 다시 말해서 나에게서 믿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엡2:8).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본문1절).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고, 성도는 은혜로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내가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골2:19). 곧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요15장에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주님과 성도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나무 원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붙어 있으면 그 진액을 공급 받아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하셨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도 같은 원리입니다(갈5:22-23).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열매는 내가 이와 같은 열매 맺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거하시며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일러주시는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주신 모든 것을 더욱 힘써 사모하고 항상 더욱 풍성하게 되도록 힘쓰는 성도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은 라합처럼 하나님만을 최고로 여기고 고백하며, 하나님만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그 하나님 앞에서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성민,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복을 주시고, 존귀하게 높여 주십니다. 라합은 이방 여인이고, 천한 기생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가정을 구원하시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힘써 할 일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가까이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처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 할 일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성령 충만을 사모하면서 범사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더욱 힘써 주님을 닮은 보배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보배로운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신앙고백이 따르는 믿음입니다.
☆.십자가 구속의 복음을 붙잡는 신앙입니다.
☆.믿음에 더욱 힘써 신의 성품을 가지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아멘.
<2025. 04. 25.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하만으로 본 죄 1 (에 3:1-6) (0) | 2025.05.03 |
---|---|
스크랩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행5:27-32) (0) | 2025.04.26 |
스크랩 탕자의 회개와 구원 / 눅 15 : 11-24 (0) | 2025.04.26 |
스크랩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품고 사는 신앙. (0) | 2025.04.26 |
(시66:8-10)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0) | 2025.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