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열려라 에바다 2025. 5. 3. 10:40

김경형목사 

요8:39-48 

 

8 39-48: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39: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직 말씀을 붙잡고 계속 앞으로 나갔다. 이게 아브라함의 생활이요, 이게 성도의 생활이요, 이게 넘어지지 않는 생활이요, 이게 정복하는 생활이다. 믿는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수록 영능화 실력화가 되어서 이방의 정신과 사상과 소원 목적에 정복이 안 된다. 이게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 진리이치의 말씀을 붙잡고 살면 이 말씀이 자기에게 능력이 되고, 이 능력이 자기 속에서 점점 커진다. 이게 영인의 성장이요, 이 능력이 성장이 되면 정복을 하게 되고, 옳은 것으로 더 굳어진다. 이러면 세상에서 죽고 사는 게 겁이 안 난다. 왜 그런가 하니 진리 자체는 사망을 두려워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죽어도 사는 것밖에 없는 100% 부활성이다.

 

죽어도 안 죽고, 죽은 것이 없는 정신 사상이 되게 하는 게 진리다.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게 기독교고, 이게 예수 믿는 거고, 성령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이 역사를 하신다. 이런 일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되는 것이니 네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네 믿음이 자라는지 안 자라는지를 시험을 해봐라.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한 정신을 가지는 거다. 이러려면 영적 신령한 눈을 가져야 한다. 일반사람들은 영적인 면을 보는 눈도 없고, 말을 할 자격도 안 되고, 말을 할 권세도 없다. 자신의 눈부터 멀었는데 남의 눈이 뜨였는지 감겼는지를 어떻게 아느냐?

 

40-41: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님께서 너희 아비라고 하는 것은 누구를 지칭하는 거냐? 마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도 마귀의 정신을 가지고 있구나. 주님께서 이 정신을 보고 말씀을 하시는 거다.

 

42-43: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유대인들은 모세로 통해 주신 성경을 가지고 있고, 늘 성경을 보는데 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믿는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어디에 가서 무슨 말을 듣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처음 믿을 때부터 마음의 바탕에 진리생명의 씨앗이 심겨지면 말씀이 구별 분별이 되는데 이런 교훈이 아닌 이질적인 곳에서 말씀을 들으면 성경을 눈에 보이는 것에 맞춰서 해석을 하게 되기 때문에 바른 믿음에 서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귀신이 들린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세상으로 흐르는 교인들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죽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하느냐? 예수를 죽인 나쁜 자들이라는 말만 하지 그들이 영의 지식이 비뚤어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게 되었다는 근본적인 면은 모른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거의가 세상성으로 흐르고 있는데, 세상성으로 흐르는 기독자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가 분명한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주님을 따를까, 죽일까?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인들과 같은 세상적인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처럼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 ‘예수=구원이니 진리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예수를 죽이는 거고 자기의 구원을 죽이는 거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주님을 닮아가는 영인성장 면을 봐야 한다. 이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는 눈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자기는 사람을 어느 눈으로 보느냐? 사람을 볼 때는 영의 눈으로 봐야지 육의 눈으로 보는 것은 소경이다. 지금까지 사람을 육의 눈으로 보다가 자기의 일생을 망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돈 한 푼을 뜯기면 그렇게 원통해 하면서 신앙에 속은 것은 무덤덤하다면 이 사람은 희망이 없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핵심은 한 마디로 주님의 온전을 닮게 하려는 것인데 이 마지막 시대에 하도 이상한 교회들이 많아서 자기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좋다고 하는 교훈을 주워다가 짜깁기를 해서 자기 식대로 가르치는 목사가 많이 있다. 세상의 이것저것이 섞인 말씀은 짝퉁이다. 세상에 짝퉁 가방이 있듯이 교회도 짝퉁 교회가 있고, 목사도 짝퉁 목사가 있고, 교인도 짝퉁 교인이 있다. 자기의 정신과 마음과 소원과 목적에서 이게 다 드러난다.

 

믿는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에 의사단일이 되면 이 사람은 흐트러짐이 없고 빈틈이 없는 하나님 앞에 적중의 신앙이다. 화살이 과녁의 한 가운데 적중하듯이 하나님의 의사에 적중이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신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라고 하는 게 남자마귀와 여자마귀가 만나서 사람을 만들어 냈다는 거냐? 그게 아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언제 처음이냐? 에덴동산에서 된 일을 말하는 거다. 즉 마귀가 세상이 생긴 처음부터 살인을 했다는 거다.

 

에덴동산을 계시적으로 영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동산이라고도 하고,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에덴동산 안에 생명과가 있고 선악과가 있다. 교회 인도자들은 하나님께서 거니시는 에덴동산 안인데도 생명과와 선악과가 있는 것을 보면서 두려워 떨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교회 안이라고 해도,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아무리 교인이라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선악과를 먹은 정신이 들어갈 수 있고 마귀 짓을 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별히 목사가 교인들에게 마귀의 정신을 불어넣는 짓을 할 수도 있다.

 

신실한 하나님의 종은 교인들에게 생명과를 먹이고, 지혜가 나오게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자라게 하지만 거짓 종은 선악과를 먹인다. 선악과를 먹인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인간기준을 먹이는 거다. 이건 마귀의 기준이다. 인간기준을 따라 살면 타락이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서 쫓겨 나가는 정신이고, 이 정신을 따르면 마귀 짓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교회는 원리적으로 생명과를 먹고 예수님처럼 자라야 하는데 생명과가 아닌 인간기준인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세상 것에 욕심을 내는 정신이 들어가면 이건 믿는 사람에게 독약이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고 세상에서 부자 되고 만사형통 되자고 하고, ‘하나님께 달라고 하면 부어주신다 라고 하는 것은 마귀 짓이고, 악령의 짓이고, 귀신의 짓이다. 이러면 영적인 살인을 하게 된다. 연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고, 세상 것을 주어서 하나님 앞에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살인이다. 이건 영적 살인이다.

 

사람은 죽으면 비참해진다. 죽으면 썩고 냄새가 난다. 죽으면 병이 퍼지는 일을 한다. 신앙 믿음이 죽은 사람은 썩은 냄새를 풍긴다. 죄를 감염시킨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썩은 냄새를 풍기는 거다. 고쳐야 한다. 안 고치면 재앙이다. 영적 살인까지 하게 되면 이 사람은 아무리 은혜가 되는 말씀을 듣더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못한다. 자기 속에 살인성이 돌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이 입어지겠느냐? 절대로 안 된다.

 

이게 안 믿어지면 다른 사람에 대해 악한 마음을 품고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들어봐라. 절대로 은혜가 안 된다. 이것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귀의 지배 하에 있는 것이라서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다고 해도 자기 주관성으로 듣기 때문에, 즉 세상에 속한 말로 듣기 때문에 생명과를 선악과로 바꿔쳐서 듣는다.

 

일반적으로 부부 간에 한 번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상대의 모든 말과 행동이 이상하게 보인다. 조심해야 될 일이다. 부부간에는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처음 만나서부터 선악과를 따먹으면 이걸 회개하지 않는 한 부부가 서로 양보하고 덮어주고 이해하며 산다고 해도 항상 깨어질 요소를 가지고 사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가는 거, 영생하는 거,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을 말씀하는데 성경을 들고 세상 불탈 것을 자랑하고 가지라고 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이는 것이니 거짓말이다. 세상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마귀가 예수님에게 세 가지 시험을 할 때 세상의 존귀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을 하면 다 주겠다고 했다. 마귀가 세상을 만든 것도 아니고, 마귀 자기의 주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하에 돌아가는 것인데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날은 나의 날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내일 아침에 잠에서 깨워주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 이런 존재가 내일, 모레, 한 달 후의 일의 계획을 세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구나. 참 어리석다. 우리에게 이런 게 참 많다.

 

세상을 욕심내는 것은 선악과를 먹는 건데, 선악과란 하나님의 진리말씀에 불순종하는 거다. 이 불순종 속에는 인간 자기의 주관성이 들어있다. 이 주관성을 가지고 사는 게 선악과를 먹는 거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주관을 따라 살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인데, 이게 마귀의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마귀의 말에 순종하는 교회가 많다. 우리는 어느 교회를 가던 그 교회의 인도자가 주님이 보냈는지 마귀가 보냈는지 그것부터 심사하라. 안 그러면 너는 다 도둑맞는다.

 

세상을 자랑하고 가지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인데, 이 거짓말은 사람의 정신을 세상으로 감염시킨다. 말세교회의 교인들의 신앙이 세상에 감염이 되어서 열심을 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대 심판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거다.

 

45-46: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진리란 헬라어로는 로고스인데, 주님은 말씀의 실상적인 존재로서 호 로고스라고 한다. 여기의 진리를 말하여도란 교훈을 의미한다. 이 교훈은 하나님의 질인 불에 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요동되지도 않고, 진동되지도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게 진리의 교훈이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말을 하는 게 말로 하는 말이 있고, 행동으로 하는 말이 있다. 주님께서는 말로 당신의 의사를 나타내기도 하고, 행동으로 당신의 의사를 나타내기도 하고, 사건이나 존재로 당신의 의사를 나타내기도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다 없어지는 존재들이고 지나가는 존재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속에 영원한 뜻을 담아서 말씀을 하신다. 이것이 성도를 향한 당신의 의사와 뜻이다. 만물과 당신의 언행심사를 통해 하시는 말씀은 시간 속에 들지를 않는다.

 

시간 속에 든 것은 전부가 변질되고, 변동이 되고, 변화가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간을 타지 않는 거룩하고 신령하고 영원한 거다. 이 말씀을 자기 인격화 성품화 시키면 이 말씀이 자기의 인격이 되어서 언행심사로 나오게 되고, 주님과 같은 가치판단을 가지게 된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하나님의 것으로 나왔듯이 예수 믿는 자기도 성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정신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을 받는 자들을 신이라고 한 거다. 그러나 마귀로부터 거짓된 것을 들으면 거짓된 말을 하기 때문에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게 된다.

 

주님은 실상적인 존재이니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시간에 들지 않고 시간을 타지 않는 주님을 닮은 성품을 가지게 되면 몸의 껍데기는 가견적 현상적인 존재지만 영적인 면에서 실상적인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이 가견적 현상적인 것을 좇아 살게 되면 이건 세상바람이 든 거다.

 

모든 물질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니 자타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게 하는 면에 쓰는 게 은혜로운 거고 바로 쓰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헛으로 나가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한다. 이게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는 마음이다. 그러나 마귀의 바람이 들면 오락실에 가려고 도둑질을 하고, 여행을 가려고 도둑질을 하는 등의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을 좋다. 나쁘다 할 것 없이 밟아버려야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가르침을 받는 교훈을 따질 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따지는 것은 이미 늦었다. 자기의 정신이 그렇게 되어있으면 언젠가 그런 활동을 하게 된다.

 

주님의 모든 언행심사는 시간 속에 들지 않고, 변질도 없고, 변동도 없고, 그 성품과 인격과 속성이 하나님의 능력에 속하고, 생명에 속하고, 신적 본질에 속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가치판단과 평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의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 우리가 주님으로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게 되면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리면 주님의 판단과 똑같은 판단이 된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들고 말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으면 속성적 성품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데 왜 예수님을 믿지 않을까?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지식을 가지고 하늘에 속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들은 세상에 속한 지식을 기준으로 가지고 세상에 속한 정신으로 세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거다. 이들이 세상의 정신을 가지고 아무리 성경구절을 써도 그 정신은 안 믿는 사람과 똑같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많다.

 

임시에 속한 선악과를 먹은 지식과, 영원에 속한 생명적 지식은 서로 맞지를 않는다.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은 절대로 안 맞는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소원 목적이나 가치판단은 진리로 깨달음을 받고 나오는 주님의 가치판단과는 맞지를 않는다. 임시적인 것과 영원히 가는 것은 맞지를 않는다.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맞지를 않는다.

 

믿는 우리에게는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이 있는데, 자기는 예수 믿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믿어 나왔느냐? 육의 생각으로 믿었으면 이 사람은 세상과 친하다. 예수를 믿더라도 일반사람들의 가치판단을 가지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안 믿는 사람과 가깝고 친하다. 영의 주장과 육의 주장은 영원히 맞지를 않는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이들의 지식은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지식이다. 이 기준과 지식으로 자기들의 미래를 설정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자기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게 때문에 그 중심이 늘 고통일 수밖에 없다.

 

물질적 세상적인 신앙은 시간을 타기 때문에 어떤 종교적인 행동이나 활동을 한다고 해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적인 신앙이 아니다. 구원은 사람과 직결이 되는 거지 사건이나 일에 직결이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종교적인 일을 크게 했네. 작게 했네를 말하지 않고 네가 예수를 믿고 성경을 보면서 누구를 닮았느냐?’ 하고 묻는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말씀대로 다 했습니다 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난 너희들을 모르겠다 라고 하셨는데, 책망을 받은 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무엇을 잘못한 거냐? 예수 믿으면서 예수를 닮지 못하면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된다. 이것은 신앙의 큰 허점이다. 학생이 선생님의 지식을 못 가지면 가짜 학생이요, 이게 세상살이에 큰 영향을 미치듯이 예수를 잘못 알고 잘못 믿으면 일생을 공치고 간다.

 

47-48: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남의 말을 들을 때 멀리 도망을 가서 안 듣는 것도 있지만 앞에 앉아있으면서도 안 듣는 것도 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의미한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고, 누구로 통해 간접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고, 모형적 상징적인 것으로 하신 말씀이 있고, 또한 세상의 창조물을 들어서 하는 말씀도 있다.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우리의 온전을 위해 직접 간접으로, 또는 세상만물을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이 이것을 안 믿는다는 거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하나 만들어 놓으시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했는데,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는 것은 세상만물을 우리의 온전을 위한 재료감으로 만드셨으니 당신이 만드신 세상만물을 이용 사용 활용해서 하나님의 온전을 입어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미리 바라보시며 말씀하신 거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온전에 둔 말씀이다. 성경에 마귀가 한 말이나 행동이 기록이 되어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귀가 성도를 꾀이려면 이런 말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한다 하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마귀를 등용시킨 거고, 이것을 성경 기록자들로 하여금 기록케 하신 거다. 마귀의 말이나 행동에는 이게 들어있기 때문에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거다. 마귀는 자기가 좋아서 자기 뜻대로 말과 행동을 한 거지만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은 사람은 마귀의 말을 좇지 않고 마귀의 말이나 행동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성경을 통해 마귀의 속성을 아는 사람은 거짓 종들이나 적그리스도나 이단자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마귀는 한 마디로 예수이름으로 세상을 자랑하고 세상 것을 이루라고 한다.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들어서 성도의 마음을 빼앗는다. 예수이름으로 떡도 만들어 먹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세상을 보고 절을 해서 종교적 세상적인 명예 영광을 가지라고 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이름으로 세상 것을 구하라 라고 한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건 마귀의 소리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미혹의 영을 가졌다는 말이다. 기독자들이 진리로 죄에서 탈출을 해서 자유케 되는 것과, 진리로 온전케 되고 영능의 실력화 되는 말씀의 이치를 모르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거나 오식하게 된다.

 

안 믿는 사람은 선악과를 먹고 영은 죽어있고 죄의 노예로 되어있기 때문에 행동적인 죄를 짓지 않더라도 예수를 믿고 진리로 죄에서 탈출해야 하고, 선악과를 먹은 지식에서 탈출해야 한다. 즉 생명과를 먹어야 한다. 세상 속화된 교회는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위주와 목적으로 믿기 때문에 여전히 선악과를 따먹은 정신으로 산다. 교회는 이 껍데기를 까고 선악과를 먹은 지식에서 탈출을 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선과 악이 구별 분별이 되기 때문에 죄에서 탈출이 된다.

 

세상에서 배우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터득해서 자기 살아생전에 고생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는 면의 공부다. 이 지식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이 지식을 어느 면에 쓰느냐가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대부분 선악과를 따먹은 타락된 지식에서 나온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교인들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욕심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은 소원 목적적인 면에서 하나님 앞에 죄다.

 

믿는 사람은 생명과를 먹어야 참사람이 된다. 세상의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자타가 참사람이 되는 면에 이용 활용이다. 그런데 세상지식이 자기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으면 이 사람은 죄의 종이다. 예수 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생업을 가질 수 있는 거지만 부자 되기를 목적하여 일을 한다면 이 사람은 죄의 종이다. 이치가 그렇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이걸 깨달을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