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8:48-53 : 김경형목사
8장 48절-53절: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48절-49절: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귀신들린 자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할 수 있느냐? 없다. 돌려서 말을 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귀신이 들린 자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이걸 생각을 하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땅히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하는데, 이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거다. 이게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에 맞게 사는 거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부터 모든 인간이 세상 소원 목적의 길로 가고 있다. 이 길은 저주받고 타락된 길이요, 사망 길이요, 심판의 길이다. 이 길로 가는 자들은 귀신이 들린 거다. 성경은 인간창조의 목적에서 이탈되어 사는 것을 귀신이 들렸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과의 의사단일 길이 아닌 인간창조의 목적에서 이탈이 되어서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있으면 이것은 미래가 없고 사람이 만들어짐이 없는 삶이기 때문에 짐승처럼 산다고 말을 한다.
믿는 사람은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안 믿는 이방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사는 것은 신앙인이 아닌 하나의 종교인으로 사는 것이니 이건 신앙인으로서의 정로가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거다. 이렇게 사는 것은 선악과 따먹고 저주받고 타락된 정신과 사상으로 사는 것이라서 도덕성도 바르지 않고, 물질성에 요동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자기에게 오는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이기지 못해서 고통 가운데 살게 된다.
이런 사람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바른길을 찾지 못하고, 옳은 길을 알려줘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를 않고, 자기가 말씀에 바로 서려고 하는 것은 없이 항상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자기의 마음에 다 맞춰줄 수 있겠느냐? 먼저 자기부터 바로 서면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성이 되어지고, 이러면 언행심사도 옳게 나오게 되는 건데 자기부터 비뚤어져 있으면서 상대에게 바로 하라고 하면 그게 되느냐?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예수님은 민족적으로나 같은 하늘의 백성이라는 점에서 유대인들과는 동족인데 이 유대인들이 동족도 못 알아본다. 39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이라고 했는데,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하고 나올 때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상기시키는 건데, 타락된 인간들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생각하도록 성경에 이따금 아브라함을 제시하는 거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야 할 원 길에서 벗어나 있는 채 종교적인 열심을 부리면 믿음이 좋고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아브라함과 같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신앙정신으로 살면 원칙적으로 축복이 되는 거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축복이 되던 안 되던 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창조의 목적대로만 간다’ 하고 살아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살아갈 때 가난해도 부자가 되어도 창조의 목적대로 가게 되는 거지 자기 마음의 무게중심을 세상에 두고 산다면 어떻게 주님을 알아볼 수 있겠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바르게 공경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귀신이 들리면 사람을 못 알아본다. 귀신이 들려서 하나님의 사람을 못 알아보면 다른 사람도 못 알아보게 된다. 영적 신앙 면으로 볼 때 신앙지식이 육적인 개념으로 되어있으면 이 사람은 귀신이 들린 상태인데, 이렇게 되면 진리에 대적성을 가지게 되고, 구원으로 살려고 하지를 않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대적성으로 대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힘을 얻고, 성장을 하고, 사람노릇이 되는 건데 하나님의 말씀은 안 먹고 세상의 정신을 먹게 되면 생명이 없이 살다가 낙엽처럼 떨어지고 만다.
50절: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시느냐,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을 하시느냐?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을 하신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 인도자나 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느냐?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구원을 위해, 주님을 위해 살다 보면 이것을 판단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판단은 정확하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당신의 영광을 구할 것 같으면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고 고난과 수난을 당하실 필요도 없다. 죽기까지 순종을 했다는 것은 주님은 당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구한다면 이 땅의 영광보다 더 좋고 더 고상한 하늘의 보좌에서 영광중에 계시지 썩고 변질이 될 이 땅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은 세상의 영광을 취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 속한 영광이나 종교적인 영광을 취한다면 이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거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온전에 관한 영광만을 위하여 살 때 아버지께서 판단을 하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거다. 성도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영광이란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거다.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하게 입는 거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사람을 통해 당신의 기쁘신 일을 나타내신다.
아버지께서 판단을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에게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거다. 즉 존귀케 만들어 주신다는 거다. 그런데 마귀에게 속한 자는 마귀가 하는 짓이 그렇듯이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교만과 자만과 오만을 떤다. 인간자랑이요, 세상 물질자랑이요, 건물자랑이요, 재산 재물 자랑이 나온다. 마귀가 예수님께 한 시험도 바로 이런 것으로 시험을 한 거다. 그래서 교회 인도자가 이런 것을 전하고 가지라고 한다면 마귀의 종이다. 사람이 존귀케 되어야 영광이 되는 거지 썩고 불타고 날아가는 것을 많이 가진다고 해서 영광이 되는 게 아니다.
51절-53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무엇이 영광이냐? 이 죽을 것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 게 영광이다. 그러면 무엇이 안 죽는 거냐?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안 죽는 게 뭐냐? 첫째는 중생한 우리의 영은 안 죽는다. 우리의 육신은 죽지만 영육 결합체의 중심이 되는 영은 안 죽는다. 우리의 중생 된 영은 하나님의 본질로 중생을 한 것이라서 하나님이 죽지 않는 한 안 죽는다. 만일 중생한 우리의 영이 죽는다면 하나님도 죽는다는 말이 된다. 우리의 중생 된 영은 질적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질과 같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신앙은 교리적으로도 기초가 분명한 거다. 기초가 없이 믿는 것은 위험하다.
두 번째는 진리생명의 말씀, 즉 로고스를 먹은 성도의 영능의 실력은 하나님의 성품을 입은 것이라서 안 죽고 영원히 산다. 주님의 언행심사는 죽을 것도 없고, 죽는 것으로 되어있지 않고 전부가 사는 것으로, 살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이 성품을 입으면 우리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 당신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이 땅에 남겨놓고 가셨느냐? 당신의 언행심사 전부가 산 거고 천국성이기 때문에 이 땅에 남겨놓고 가신 게 없다. 우리도 세상의 것을 이용 활용해서 자기의 전부를 천국에 등기이전 시키는 삶을 살라고 당신의 부활과 승천을 보여주신 거다. 주님께서 당신의 언행심사로 이 비결을 가르쳐 주셨으니 이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게 믿음의 사람이요 성령님께서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우리가 안 죽고 영원히 사는 이치와 도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영원히 안 죽고 존귀 영광스럽게 되는 모든 가치판단 이해타산 평가성이 들어있다. 주님의 언행심사는 순간적이지만 모든 게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움직였기 때문에 이 안에도 영원히 안 죽는 존귀 영광성이 들어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에는 이게 있는 거다. 이런 정신이 없이 예수를 믿으면 못 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철이 들고 점점 나아져야지 점점 추해지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면서 우리로 말씀으로 자체화 인격화 되어서 당신처럼 만들어지는 사역을 하셨음이 당신의 부활로써 증거가 되었다. 당신의 33년 삶의 열매로 이 결과를 보여주셨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따라 살면 우리 역시도 영광의 부활을 입게 된다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예수님께서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을 하시자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라고 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이들이 성경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육신적 개념의 신앙이요 안 믿는 사람들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앙이라고 하는 지식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우리도 성경을 안 믿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신앙이 세상화 되어버린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으니 우리는 이 말씀을 영적인 면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말씀을 지키면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하신 주님이 어디서 온 분이고, 어떤 분이냐? 지극히 거룩한 곳, 신령한 천국에서 오신 분이 아니더냐? 또 이 분은 하나님이시니 만물을 만드셨고, 인간을 찾아오시기도 했고, 가시기도 했고, 당신의 이적 기사와 표적과 언행심사로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알게 해 주셨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다.
유대인들도 마지막 부활을 믿는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도 마지막 부활을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신 것은 마지막 부활을 말씀하심이 아니라 믿는 자의 현실에서 부활성으로 살아나는 신앙을 말씀함인데 이들은 마지막 부활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삼킨바 되는 게 참 기독자의 믿음의 세계다. 이게 예수를 따르는 거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지금 따르면 마지막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는 게 아니라 자기의 현실에서 연속적으로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살아가면 장차 부활 때 전부는 사는 것으로 나온다. 현실을 다 놓치고 있으면 미래의 영광은 없는 거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계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이 율법을 배우는 유대인들이 이 율법을 제대로만 알았다면 예수님을 알 수 있고 영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성으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고, 그 결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또한 자신의 조상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애굽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다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말씀화로 자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주는 교훈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자신들 속에 들어있는 애굽성 세상성을 말씀으로 씻고 말씀으로 만들어진 영능의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을 받은 우리는 장차 영원히 안 죽는 곳에서 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장차 가서 살 그곳에서 오셨고, 우리를 그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누리게 하기 위해서 갖은 수모와 치욕과 죽음을 당하면서도 이에 대한 증거를 다 하고 가셨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지금의 예수 믿는 우리가 영생하신 하나님은 믿으면서 왜 안 죽는 비결을 모를까? 성경에 이 비결을 명확히 기록을 해 놓았는데도 왜 모를까? 사람을 당신의 모양과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영원히 안 죽는 존재로서 당신이 누리던 그 나라를 누리게 하려는 목적이 전제가 된 말이다.
지금 믿는 사람의 부류를 보면 자기의 현실에서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삼킨바 되는 효력이 있는 곳에서 예수를 믿는 자가 있고, 이 효력이 없는 곳에서 예수를 믿는 자가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세상적 육적 외식적인 종교인들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의 신앙을 받으면 부활의 효력이 없다. 진리말씀을 따르는 교인이 있고, 제도를 따르는 교인이 있다. 세상 것을 따르는 거짓된 교회가 있고, 참을 찾아서 진리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교회가 있다. 생명 길 좁은 길을 가는 교회가 있고, 넓은 길 사망 길을 가는 교회가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동족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안 믿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이들은 죽는 길밖에 없다. 믿으면서 죽는 일을 하고 심판의 길을 가는 것은 믿는 게 아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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