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사랑이라는 이름의 새 계명(요13:31-35)

열려라 에바다 2025. 5. 17. 11:20
사랑이라는 이름의 새 계명(요13:31-35)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7825.05.16 21:06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13:31-35


초대교회시기에 소아시아 지역의 비두니아 총독으로 있던 플리니가 로마 황제 트라이얀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소아시아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플리니가 그 사실을 조사해서 보고한 내용입니다.
그 편지의 일부입니다.
황제시여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제 부하 몇 사람을 완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을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게 하여 세례도 받게 하였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일거 수 일 투족을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하였습니다.
저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밤이건 낮이건 모일 때마다 그들의 신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노래한다고 합니다.
또 많은 양은 아니지만 자주 빵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점입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로마의 관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황제폐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 비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무대를 바꾸어서 오늘 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2008년에 나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요,
이 책은 미국의 기독교 전문 리서치 기관인 바나 연구소에서 3년 동안 10차례에 걸쳐 비 기독교인들이 본 기독교인들의 이미지를 조사해서 만든 책입니다.
이 조사에서 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에 대해 비호감을 가지는 이유 6가지가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 비호감은 기독교인들이 위선적이라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인용하고, 가르치고 하지만, 실제 삶은 자기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과 교제를 하면, 자기들이 마치 어떤 목표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정상적인 친교대상으로 맺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해서 교세 성장의 목적으로 자기에게 친절히 접근하는 것이 비호감이라는 말입니다.
동성애자를 혐오한다는 점입니다.
비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하나의 성향으로 생각하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동성애 문제만 나오면 열을 올리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너무 안일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이 정말 빨리 변하는데, 기독교인들은 항상 옛날이야기만 하고 사고방식이 보수, 근본주의적이라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권력 지향적이다.
권력을 잡은 인사들과 친하고, 성공에 관심이 많고, 언제나 성공한 사람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비판적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는 없고 또한 미국인의 자료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엿볼 수 있는 한 가지 자료인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여러 부분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이 사랑에서 멀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제자는 자신과 같이 서로 사랑하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같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주님을 닮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은 그리스도인인데 삶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까?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까?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는 여러 가지 잘한 점이 참으로 많은 교회였습니다.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았다고 할 정도로 그들은 주님을 위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그들의 거짓된 것들을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신다고 할 정도로 그들은 잘 한 일이 많은 장점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한 가지를 가지고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그 한 가지를 회복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교회를 없애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를 없애버릴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했던 그 한 가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너의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 그래서 사랑으로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교회는 한 마디로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믿는 교회라고 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교회, 주님이 싫어하시는 교회, 이러한 교회가 올바른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로 사랑은 교회와 성도들의 선택적인 삶이 아니라 필수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내가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무엇을 가지고 증거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고 교회에서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증거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증거 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기도하는 것으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증거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잘살고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예수 잘 믿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면 그것은 부족한 모습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서로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증거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사랑의 삶을 통하여 자신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서신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합니다.(요일4:8)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신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나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이 사건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는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기 아들로 삼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였을까요?
자기가 이렇게 멋지고 마음이 넓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요?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단 하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만 설명이 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설명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아니시면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아니시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아니시면 인간은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나 모든 신앙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며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도 이와 같은 사랑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신 주님을 통하여 구원받은 우리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제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3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전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유대사회에서 발을 씻기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고 그 일은 종들이나 노예들 그리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찬을 먹기 위해 모인 제자들은 누구의 발도 씻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발도 씻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선생님의 발도 씻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사랑은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랑도 포함되지만
주님의 말씀은 제자들 간에, 성도들 간에, 사람들 간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적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고 반대로 지극히 적은 자에게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의 삶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속한 가정에서 내가 속한 교회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족들의 발을 씻기는 사랑, 목마른 자에게 물을 대접하는 사랑, 힘들어하는 자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사랑이면 됩니다.


2. 이러한 서로 사랑은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서로라는 말은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이라는 말입니다만 쌍방적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사랑할 때 상대방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내가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하지 않게 됩니다.
서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잘못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발을 씻겨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먼저 나서기를 주저하였습니다.
누가 크냐하는 논쟁을 한 것을 보면 모두가 좋은 자리를 생각하였는데 먼저 나서서 발을 씻기면 자기가 뒤에 처지는 것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주저하고 있을 때 주님이 먼저 나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먼저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5:8)
주님의 사랑은 먼저 목숨을 버리시고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먼저 사랑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해줄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힘입고 깨달은 자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3. 이러한 서로 사랑의 삶을 실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글에 보면 초대교인들은 종종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
당신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습니까?”라는 말로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사랑에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초대 교회 때 알렉산드리아에 무서운 전염병인 흑사병이 돌았습니다.
집집마다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장례를 치루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전염될까 두려워서 아무도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처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도 병이 전염될 수 있고 만약 전염되면 죽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가정을 방문하여 병중에 있는 환자를 위로하고 돌봐주고, 죽은 시신들의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세심하게 잘 돌보아 주었는지 거리에 나도는 시체를 하나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 알렉산드리아의 많은 불신자들은 이것이 바로 나사렛 예수의 종교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런 엄청난 사랑은 하지 못한다고 해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본받고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의 표지로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고 지배하고 성공하고 더 잘 살고 더 출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기독교 성공주의가 기독교인의 핵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에베소교회처럼 사랑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요 주님을 닮아가지 못하는 모습이요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을 실천하시며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가정과 일터와 직장에서 학교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이런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줄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이 땅에 복음의 열매가 많이 맺혀지게 될 줄 믿습니다.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