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필요한 사람이 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내 마음의 보석
과거 중국의 송나라 재상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보석을 들고 재상을 찾아갔습니다.
어렵게 구한 값비싼 보석을 뇌물로 바치려는 것입니다.
“이 보석은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보석입니다. 재상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으니 받아주십시오.”
그러자 재상은 대답했습니다.
“나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보석이 있습니다.
이런 값비싼 보석을 보고도 탐낼 줄 모르는 내 마음입니다.
만약 내가 그대의 보석을 받게 되면 그대도 값비싼 보석을 잃게 되고, 나도 내 마음의 보석을 잃게 되니, 어서 도로 가져가십시오. 나는 내가 가진 보석으로도 충분합니다.” 라고 말하며 보석을 가지고 온 사람을 돌려보냈습니다.
내 마음의 보석을 잃는 것이 가장 진귀한 보석을 잃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보석, 양심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볼 수 있는 혜안, 영안, 심안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내 영혼의 보석 중에 보석이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4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5;27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만나는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
레위라는 사람이고,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똑같은 사람인데, 마태복음9:9에서는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2:14에서는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공관복음서에서 공통으로 기록하는 내용을 보면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레위라는 이름도 같이 가지고 있는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레위, 마태는 세관원에서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 제국에게 징수한 세금을 바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세리라는 직책은 식민지 백성에게서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제국에 올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세금을 폭리로 징수하여 자신들을 압제하는 로마제국에 세금을 올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리라는 직책은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레위는 누군가에는 필요한 사람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없어졌으면 좋을 사람, 전혀 쓸모없는 사람, 필요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기분 나쁘고 손실을 끼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사람이다.
그렇다면 세리의 직업을 가진 레위가 예수님께는 필요한 사람일까? 아닐까?
레위가 예수님께 필요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왜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일까?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께, 주님의 몸된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을까? 아니면 저 사람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저 사람 때문에 뭔가 되는 것이 없어. 저 사람 때문에 기분 나빠 죽겠어.라고 배제되는 사람일까?
신앙인들이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차라리 없으면 더 좋겠다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뿐만 아니라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와 사회와 직장과 가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D4.
①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신 예수님.
27절에서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 있는 세관 방향으로 걸어가신다.
왜 예수님께서 세관 방향으로 걸어가시는 것일까?
예수님에게는 우연이란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예수님의 발걸음에는 반드시 필연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예수님께서 세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에는 예수님께서 무언가 하시려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기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세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시려고 하신다면 필연적으로 분명한 목적, 의도, 계획, 뜻을 가지고 가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무언가 하나를 하더라도 분명하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의 마음과 생각에 어떤 감동을 주신다면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시는 분명한 계획과 의지를 가지고 감동시켜 주시는 것이다.
지금 성령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시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이 있어서 거부할 수 없도록 강권적으로 감동시켜 주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어떤 감동을 주시고 계신다면 신앙인들은 더 이상 망설이거나 주저주저하거나 하지 말고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놀라운 은혜와 능력과 축복을 받게 된다.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의 신령한 창고가 활짝 열리게 된다.
예수님은 레위가 세관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뭐라 야유하든 말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을 다하여 일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 자신에게 맡겨진 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3:10-12에서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인들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은 삼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최선으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일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찾아가시지 않는다.
레위가 하는 일은 존경받고 추앙받고 흠모하는 일이 아니다.
레위가 하는 일은 뭇사람들에게 비아냥을 들어야 하고, 업신여김을 받아야 하는 일이다.
어쩌면 신앙인들에게는 불의한 일인 것처럼 보이는 일이다.
어쩌면 신앙인들이 일을 하기에는 좋은 직장이 아니다.
비난당하고 욕을 들어야 하고 저주스런 말을 수없이 들어야 하는 일터이다.
그래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여 일해야 하는 것이다.
열왕기상 18장에 등장하는 오바댜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는 아합 정부의 실세였던 사람이다.
오바댜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바댜는 아합 정부에서 주는 월급으로 살면서 100명의 선지자들을 숨겨주고 양식을 제공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악하디악한 아합 정부의 요직을 맡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비난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오바댜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구원하는 일을 이루어가신다.
요셉도 애굽의 바로 정부의 총리라는 요직에서 충성스럽게 일했던 사람이다.
그런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삽과 아벧느고도 마찬가지이다.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정부의 요직에서 충성스럽게 일했던 사람들이다.
모르드개도 페르시야 왕국에서 요직에서 충성스럽게 일하고, 심지어 에스더는 왕후까지 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국땅에서 하만의 계략으로 멸족될 유다민족을 구원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기를 일으킬 수 있는 아주 심한 말로 표현한다면 일본의 앞잡이로 비난받는 사람들,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충성스럽게 일했던 사람들을 자유대한민국의 건국과 기초를 놓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독립하기 위해서 애썼던 독립운동가들만으로는 자유대한민국을 세워갈 수 없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뭇사람들에게 무리한 세금 징수로 비난받는 세리직으로 살아가는 레위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주시듯,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통로를 놓아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맡은 사람들은 어떤 일을 자신에게 맡겨주시든.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라 확신하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② 레위를 부르시는 예수님.
세관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신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보신다.
그는 세리직을 수행하는 레위(Levi)라고 소개하고 있다.
레위를 만나신 예수님은 가타부타 다른 말씀은 전혀 안 하시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레위를 보시자마자 곧바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이미 예수님께서 레위를 알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레위도 이미 예수님을 여러 차례 보았을지도 모른다.
레위가 일하는 곳이 갈릴리에 있는 세관원이기 때문에 갈릴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문으로 듣고 있었을 것이다.
레위는 소문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 직접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을 찾아가서 예수님의 말씀도 들었을 것이다.
레위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여러 이적들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세관원이라는 직책이기 때문에 쉽게 예수님 앞으로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세관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로마 정부에 세금을 올리는 악랄한 직책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근본적으로 세리를 증오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들을 이중 스파이나 되는 것처럼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그러기 때문에 세리직을 수행하는 레위는 쉽게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레위에게 있어서 세리라는 직책은 자신이 세리직을 수행해야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이다.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예수님 앞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꽁꽁 숨어서 멀리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면서 과연 저 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야로구나 라고 인정하고 믿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불현 듯 찾아오시고는 다짜고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부르시는 것이다.
레위가 먼저 예수님을 따라나서겠다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부르시는 것이다.
레위는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었을까?
레위는 자기도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다면,
자신도 예수님 가까이에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면,
자신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하는 꿈같은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리인 자기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올리 만무하다.
더더구나 자기를 불러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다.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이 자신에게 이루어졌을 때, 레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레위는 믿겨 지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놀랐을까?
레위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아버리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이게 진짜인지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자기 얼굴을 때려보기도 하고, 자기 몸을 꼬집어 보기도 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레위의 입장이라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너무나 놀라운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 꿈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을 깨달은 레위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라나선다.
28절에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레위는 더 이상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선다.
레위는 자신이 세리직을 그만두면 가족들의 생활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막무가내로 세관원을 박차고 나온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은 없는데, 레위는 무작정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것이다.
레위가 모든 것들을 버리고 세관원을 박차서 예수님을 따라간다면 가족들의 생계는 어떻게 되나?
불의한 직장이라도, 좋지 않은 직장이라도, 가장이 되어서 일할 곳이 있어야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지 않겠나?
좋지 않은 직장이라도 있었으니까 그 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는데, 그런 직장마저 그만두어 버린다면 앞으로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본인이야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소명의식으로 예수님을 따라간다지만, 가족들은 아니지 않은가?
불의하고 안 좋은 소리를 듣는 직장이라도 다녀야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데...,
가족들은 앞으로 살아갈 앞길이 망막하기만 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하나님에게서 크나큰 은혜를 입으면 앞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나선다.
마치 정신 줄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예수님을 향하여 돌진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동참했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일을 하겠노라고 손을 든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가셔서 감동을 주시면서 부르셔서 주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위대한 구령 사역에 한 측을 담당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주님의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서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하늘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부르시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을 부르셔서 온갖 일들을 이겨내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연단 받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③ 레위의 섬김을 받으시는 예수님.
늘 예수님 근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면서 ”과연 저분이야말로 정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로구나.“라고 여겼는데, 불현 듯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시는 말씀을 듣고는 레위는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다.
레위는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면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신다.
레위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면서 자기 동료들도 부른다.
레위는 자기 동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작정했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 자기 식구들에게 예수님과 예수님의 동료들을 위하여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라고 부탁한다.
레위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다. 그러니 최고로 좋은 음식으로 준비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 당시에 최고의 음식이라 해봐야 양고기와 고운 가루 밀로 만든 빵과 포도주가 전부이다.
여기에 올리브유와 석류와 무화과를 준비할 수 있으면 최고의 음식이 된다.
이 정도만 차려도 최고의 음식이 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최고의 음식으로 준비하고 섬길 수 있으면 좋겠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없는 것도 만들어서 드리고 싶을 정도가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베다니에 있는 악성피부병에 걸렸던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있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아주 값 비싼 나드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린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걸렸던 여자인데, 예수님을 만나서 일곱 귀신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워서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나드 향유 옥합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롯도 자기 집으로 찾아온 나그네들을 극진히 섬긴다.
아브라함과 롯은 자신의 집에 찾아온 나그네가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천사들임을 깨닫고는 얼마나 놀랍고 감격하는지,
신앙인이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면 기쁨으로 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최선을 다하여, 최고로 섬길 수 있었으면 한다.
저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보다는 늘 섬김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도 간혹 섬겨야 할 기회가 되었을 때는 비록 다른 분들처럼 아주 비싸고 좋은 것으로 섬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온 맘으로, 정말 기뻐하는 마음으로 섬기려고 한다.
레위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자기 집에서 모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기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하여 가장 최고의 양식으로 섬기는 것이다.
④ 죄인에게 필요하신 예수님.
사람은 정말 귀인을 만나면 자신의 모든 것들을 드려도 아깝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자기 집에 방문했다면 식은 빵, 맛없는 포도주도 대접하기가 싫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일에는 꼭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레위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들과 자기 동료들만 자기 집으로 초대했을 것이다.
레위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초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초대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있는 레위의 집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끼여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리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들을 증오하고 멸시하고 저주하고 온갖 말로 조롱하는 이들이다.
어쩌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세리와는 서로 만나서도 안 되고 서로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들이다.
서로 상극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레위 집에 앉아서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하면서 훈계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늘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에게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무리들인 것 같다.
그러다가 레위가 예수님과 동료들을 초대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덩달아 레위의 집으로 들어가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고 훈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들은 30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라고 하면서 훈계하는 것이다.
지기들도 세리인 레위의 집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비방하는 것이다.
자신들이야말로 와서는 안 되는 자리에 들어와서 앉아 있으면서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동료들을 향하여 비난하는 것이다.
어쩌면 세리들과 서로 으르렁거리는 원수처럼 여기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레위의 집으로 와 앉아서 ”밤 놓아라. 대추 올려라.“하면서 훈시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바로 31-32의 말씀을 하시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들을 레위의 집까지 따라오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라고 비방하지 않았다면, 굳이 예수님께서 레위를 변호하기 위해서 31-32의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라고 하면서 도발해 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레위를 변호하면서 31-32절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는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은 세리들을 향하여 죄인들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레위를 가리키면서 레위가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온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만약에 레위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었다면 자기가 올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온갖 질병에 걸린 병자들이 없다면 질병들을 고치는 의사들도 있을 필요가 없다.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들의 곁을 떠나서 파업을 하고 병원을 떠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의사는 반드시 환자들 곁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만약에 질환자들이 한 명도 없다면 어떻게 의사들이 돈을 벌면서 먹고살 수 있겠는가?
환자들이 있기에 의사들이 각광 받으면서 목에 힘을 주고 고액연봉자로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죄인이 하나도 없고 의인들만 있다면 예수님께서 구태여 하나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각종 질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환자들, 병자들이 있기에 의사들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에는 온갖 죄인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그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죄인의 죄를 속량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지상세계로 내려오신 것이다.
레위는 만인들이 죄인이라고 낙인찍어서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레위를 불러서 구원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일을 맡기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레위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예수님도 레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수님은 레위에게 찾아오시고 레위를 부르신다.
레위는 예수님을 극진히 섬기는 것이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레위의 인격을 죄인으로 취급하면서 비난할 때, 예수님께서는 레위를 의인으로 승격시켜 주고 계신다.
L4 & B4
예수님은 레위에게 필요하신 분이 되어 주시면서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라고 비난하지 못하도록 방패막이가 되어 주신다.
레위도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레위는 세리직을 수행하면서 뭇사람들로부터 매국노, 이중스파이, 잡놈, 몹쓸 놈, 죄인으로 낙인찍어서 얼굴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없도록 비난받았으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한 사람, 이제는 오직 예수님만을 좇아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레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레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직접 레위가 일하고 있는 직장까지 찾아가시고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레위의 집까지 방문하여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주시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으로, 믿음의 가정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레위가 꼭 필요하신 예수님은 레위를 부르셔서 12제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삼아주시고,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12사도로 세워주시고, 가장 중요한 성경인 마태복음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세워주신다.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서 순교자에게 주시는 면류관을 씌어주신다.
레위를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으로 삼아주신 것처럼, 신앙인들도 삼위 하나님께 꼭 필요한 사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신앙인들은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일까?
신앙인들도 예수님께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신앙인들은 정말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인가?
돈 벌 수 있는 수단으로 교회에 다니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고객이 되어 줄 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교회에 다니면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도와준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어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신앙인들은 교회에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도, 교회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어도, 교회에 다니면서 질병을 치료받지 못하더라도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이 필요해서,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해 주신다기보다는 예수님을 믿어서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로 잘 되던 일도 잘 안되고, 주변에 그렇게 많던 사람들도 다 떠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온갖 메스컴에서는 교회에 대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뉴스만을 전하면서 “예수 믿는 것들은 다 저렇다,”고 하면서 덩달아 같이 피해를 당하기도 하고,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필요할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예수님이 필요하고,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도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도움이 되기는커녕 계속 손해 보는 일들만 일어나도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며 예수님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의 길,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 영원한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 한 분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온갖 핍박, 박해, 고난, 손해를 당한다 해도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면서 “나에겐 오직 예수님만 필요해요.”라고 신앙고백하며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필요로 하신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오신 이유는 우리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고귀한 보혈을 흘려주시면서 구원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찾아오시고 부르시고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직분을 맡기면서 일꾼으로 세워주시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한 위대한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주시면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제국에 10가지 대재앙을 내리면서 구원하여 출애굽시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주시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신앙인들이 꼭 필요하다.
그러기에 신앙인들도 삼위 하나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하신 말씀은 가룟 유다 외에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아니어야 한다.
세리직으로 살았던 레위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필요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하신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레위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사람이라고 낙인찍힌 사람이다.
그러나 레위는 예수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들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위가 예수님께 필요한 사람이듯이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이 되면 된다.
삼위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이 필요하여 주님의 거룩한 나라와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연단하고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것으로 된다.
예수님께서 레위, 마태를 비롯하여 12제자들, 70명의 제자들, 120여 명의 신앙인들, 바나바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디도와 믿음의 여인들에게 ”난 너희들이 너무너무 꼭 필요하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귀한 일꾼으로 세워주신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난 너희들이 내 교회에 꼭 필요하단다.“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충심으로 섬기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충성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의 신령한 보따리를 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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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⑥ 민수기&신명기이야기
⑦ 민수기 이야기
⑧ 신명기 이야기
⑨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⑩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권, 2권
모두 15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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