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자리를 지키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하도록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빼앗기는 것과 나누는 것
어느 공원 벤치에 어르신 한 명이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읽다 남은 책을 마저 읽기 위해 벤치를 찾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어르신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옆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방금 전에 가게에서 산 과자를 하나씩 꺼내 먹으며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분 지난 후에 과자가 줄어가는 속도가 왠지 모르게 빠르다 싶어 곁눈질로 살펴봅니다.
그랬더니 옆자리에 앉으신 어르신이 자신의 과자를 슬쩍슬쩍 빼먹고 있는 것입니다.
은근히 화가 났지만, 설마 계속 먹겠나 싶어 무시하고 다시 과자를 꺼내 먹었습니다.
그 어르신의 손이 슬쩍 다가와 또 자신의 과자를 꺼내 먹는 것입니다.
눈은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과자와 밉살스러운 어르신에게 쏠렸습니다.
과자가 들어있는 봉지는 빠르게 비어져 갔고, 이제 마지막 한 개만 남아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한 아가씨는 어르신을 향하여 고개를 돌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얼굴까지 쏘아 봅니다.
그런데, 어르신의 반응이 더 기가 찹니다.
노려보는 아가씨에게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부드럽게 씨익 웃으면서 조용히 자리를 뜨는 것입니다.
기가 막혀 별꼴을 다 보겠다며 투덜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에, 아가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습니다.
아가씨가 사 온 과자는 새것인 채로 무릎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것입니다.
과자를 훔쳐 먹은 사람은 어르신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르신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도 오히려 부드럽게 웃으며 조용히 자리를 비켜준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먹으면서도 온통 화가 나서 따뜻한 햇살, 흥미로운 책의 내용까지 모두 잃게 되어버린 아가씨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자 하나로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아가씨의 그런 경솔한 실수가 아주 중요한 일에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런 실수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으로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빼앗기는 삶과 나누는 삶이란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마음의 여유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들은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크게 화낼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2025년의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무언가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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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함장(席間函丈)”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제자가 스승과 함께 할 때에는 한 길 떨어져 앉는다.”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스승을 존경한다는 의미이다.
흔히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같은 의미이다.
어떤 스승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제자의 장래가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별하여 부르고 계시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선별하여 부르시기 위하여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제자로 선별하여 부르시고 계시는가?
과연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선별되어 부르심을 입을 수 있을까?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고 있을까?
D4.
① 기도하시러 산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12절에서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가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갈릴리 바다는 주변에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느 산으로 올라가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도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셔서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가신 것이다.
아마도 이 산은 제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산으로 예전에도 예수님께서 종종 올라가신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꼭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신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두 번에 걸쳐서 올라가서 금식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독대하며 기도하였듯이,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특별 기도하시는 것이다.
모세와 예수님께서 산에서 특별기도하신 것처럼 신앙인들도 때로는 산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런 기도는 항상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특별하게 감동을 주시면서 기도하라는 사인을 주신다면 특별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육신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을 위하여 충분하게 잠도 자야 하고, 충분하게 식사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때로는 특별하게 금식기도하라고, 철야기도하라고, 작정기도하라고 감동을 주신다면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전에는 한국교회는 무척이나 산기도를 많이 했었다.
유명한 서울의 삼각산을 비롯하여 전국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했었다.
한국교회가 단기간 안에 예수님을 믿는 나라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산에서 기도하는 신앙인들이 밤을 새워가면서 부르짖는 기도가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도 대학 다닐 때에 금요일 밤마다 교회에서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곤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을 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큰 일을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산으로 올라가서 하늘 아버지를 깊이 만나면서 영적인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도 어떤 문제를 놓고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산에서 기도하든, 집에서 기도하든, 교회에서 기도하든, 기도원에서 기도하든 특별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영혼의 숨을 쉬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숨을 쉬지 않고 멈추어버리면 죽듯이 영혼도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은 죽게 마련이다.
영혼이 살아나려고 하면 어디서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는 기도만이 신앙인의 영혼이 풍성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②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는 예수님.
12절 하반절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밤이 새도록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그야말로 산에서 철야 기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도 올리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기도하셨다.
이날은 안식일 다음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첫날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빛을 창조하신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고, 제자들을 통하여 세상의 빛을 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선택하려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철야 기도하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메시야 사역이 자기 자신으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메시야 사역은 3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사역을 마감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고 부활하여 본래 자리인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자신의 사역을 이어서 감당해야 할 제자들을 따로 뽑아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천국의 사역을 맡겨야 함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선별하고 부르시기 위한 목적으로 산으로 올라가서 밤을 새워가면서 하늘 아버지와 깊은 영적인 교제의 시간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누구를 선별하여 뽑아서 제자로 세워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하늘 아버지와 성령님과 상의하는 시간을 가지시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처럼 산으로 올라가지는 않더라도 특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밤이 새도록 기도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질병의 문제, 사업의 문제, 진로의 문제, 혼인의 문제, 어떤 것이든 결정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면 특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성령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지면서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기도는 막힌 담을 허물 수 있는 길이다.
동서남북이 꽉꽉 가로막혀도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을 향해서는 활짝 열려 있다.
절체절명의 시간,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진퇴양난의 환경과 같은 처지일지라도 하늘을 향해서는 어떤 환경에서도 부르짖을 수 있다.
가로막힌 담 때문에 절망하고 낙담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열린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을 수 있는 은혜를 찾아서 기도한다면 언젠가는 가로막힌 담도 서서히 무너지면서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③ 제자를 부르시고 사도라고 불러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신 후에 날이 밝아오자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한다.
13-16절에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는 사도(Apostles)라고 부르셨다고 하신다.
사도라는 말은 ”전령(傳令)“이라는 말이다.
전령은 군대에서 훈령이나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명령,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온 천하에 전달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을 사도라고, 전령이라고 부르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사도들을 부르실 때 어떤 형태로 부르시는 것일까?
ⓐ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신다.
마가복음 3:13에 보면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깨서 제자들을 선별하시고 부르시는 기준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가 먼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원하셔야 한다는 말씀이다.
신앙인이 되는 것은 본인이 먼저 원해서 교회를 다닐 수 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의 일꾼, 주님의 제자, 주의 종, 교회의 직분자는 철저하게 주님께서 먼저 원하시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주님의 일꾼,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서원하거나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일을 맡겨서 주님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철저하게 주님께서 먼저 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흔히 자기 자신이나 누구누구의 서원으로 주의 종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계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누구의 서원이나 헌신으로 그에게 ”그래, 너 그 일을 해 봐.“라고 맡기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먼저 원하는 사람을 선별하여 부르시는 것이다.
ⓑ 12라는 숫자에 맞추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12라는 숫자는 너무나 중요한 숫자이다.
야곱은 4여인을 통하여 12명의 아들을 낳는다.
야곱은 4여인을 통하여 12명의 아들만 낳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아들들을 낳을 수 있었다.
특히 빌하와 실바 같은 여인은 레아와 라엘에 비하여 아주 젊은 여인들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더 많은 아들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빌하와 실바에게 더 많은 아들들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명씩의 아들들만 낳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면서 야곱은 4여인을 통하여 12명의 아들만 낳을 수 있도록 조정해 나가신다.
야곱이 낳은 12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 12지파가 세워진다.
12지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본적인 민족과 나라의 형태를 갖출 수 있는 지파로 형성된다.
12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가장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하는 숫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2라는 숫자에 맞추어서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해 나가신다.
12보석, 12문, 12기둥 등등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12명의 제자만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그 중에서“라고 그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향하여 ”이리로 나아오라“라는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당히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무리들 중에서 12명의 제자만 부르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더 많은 제자들을 선정하시고 부르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2명의 제자로 한정하신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12라는 숫자에 맞추기 위하여 12명으로 제한하여 제자로 부르시면서 사도라고 불러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정하신 규례와 법도를 하나도 어김없이 지키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이다.
ⓒ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해 주신다.
12명의 제자들의 이름을 보면 각자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요한, 야고보, 안드래, 빌립, 바돌로매, 더 나아가 가룟 유다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해 주시면서 제자로, 사도로 부르시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앞으로 어떤 형태를 보여줄지 모르시고 12명의 제자에 포함시켰을까?
가룟 유다에 대하여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 대하여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는 말씀까지 하신다.
가룟 유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사람이라고까지 말씀하신다.
물론 성경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그 당시에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 몇 십 년이 흐른 뒤에 복음서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 엘샤다이의 하나님이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룟 유다의 행태를 모르셨을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룟 유다의 행태를 모르실리 없다.
예수님은 이미 가룟 유다가 사탄에 의해서 자신을 배반하고 이방인들에게 팔아넘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제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에 가룟 유다가 쓰임받게 되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보혈의 피를 흘리는 그 피를 인간이 믿음으로 영접해야만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악을 용서받고 용납받고 사함을 입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길로 가야만 하는 것이 메시야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이미 기록된 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그 길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일을 수행하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가룟 유다가 가야 할 장래를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심판받고 지옥에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부르시면서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부르셨고, 주님의 제자로, 사도로 훈련시켜 나가셨듯이, 우리 신앙인들도 본래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독특한 성격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잘 연단되고 훈련되어 온유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시는 분이다.
12명의 제자는 12가지 색깔을 가지는 것과 같다.
12가지 색을 조화롭게 그려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른 12가지 색깔을 지닌 제자들을 세웠기 때문에 각양 다른 12가지 사역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이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잘 연단 받아서 온유한 사람으로 거듭나서 주님의 거룩한 일꾼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온유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 12명의 제자를 선별하여 부르시는 것처럼 교회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성도들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용납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양함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이라는 진리로 하나됨의 모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④ 하나님의 나라 선포를 위하여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굳이 제자들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일까?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일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시길래 제자들을 부르신 것일까?
마태복음 10:1에서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 3:14-15절에서는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목적은
ⓐ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과 늘 동고동락하시기를 원하신다.
고고고고고대시대에 스승과 제자는 도제제도에 의해 늘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살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이다.
먹어도 같이 먹고, 잠을 자도 같이 자는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같이 동행하면서 다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승과 제자 사이에 생각과 마음과 의식과 사상을 서로 공유하고 나누며 통하는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다.
눈빛만 보아도, 손짓만 보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지를 아는 것이다.
ⓑ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마귀, 사탄과 귀신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무리들이다.
삼위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고, 자신들의 왕국으로 세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무리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더럽고 추하고 악한 귀신들을 쫓아내는 사역을 많이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시던 것을 이제 제자들에게 맡기려고 하시는 것이다.
마귀, 사탄,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은 삼위 하나님에게만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삼위 하나님께서만 가지고 있는 강하고 견고한 권세와 능력을 제자들에게 맡겨주시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온 천지 만물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귀한 영혼들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을 쫓아냄으로 마귀, 사탄에게 빼앗긴 영혼들을 다시 찾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을 고치기 위해서
약하거나 여러 종류의 질병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모습이다.
부정한 상태에서는 온전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얼굴을 하나님 앞에 뵈어드리는 것을 최고의 소망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여러 가지 질병이나 불구자가 되어 약한 존재가 되면 아무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해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수 많은 병자들과 불구자들을 고쳐주시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역을 제자들에게 맡겨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제자들은 수많은 병자들과 여러 종류의 불구자들, 약한 자들을 고쳐주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 전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맡기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들과 늘함께 동행하면서 여러 가지 권능, 권세, 능력을 부어주시고, 악한 귀신들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회복시키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전도자, 선교자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제자로 선별하여 부르시는 것이다.
L4 & B4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선정하시고 제자로 부르시고 메시야의 사역을 제자들에게 위임시켜 주고 계신다.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사람을 선정하시고 제자로 부르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일까?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일까?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사람일까?
예수님의 제자로 선정되고 제자로 부르심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일까?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신앙인,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신앙인, 예수님께 인정받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으로 구성된 교회공동체는 매우 다양한 무리들이 모여서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교회라는 신앙공동체, 유기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가 세워지려면 자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집, 아집을 약간씩 내려놓고 한 보 뒤로 물러서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존재도 인정해 주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넓은 심장과 마음을 가지고 품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주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① 십자가 복음을 확실하게 인지하며 살아야 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죽게 된다.
이에 사도들은 가룟 유다 대신에 다른 사람을 뽑기로 한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서 맛디아가 12제자에 포함된다.
사도들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 조건을 사도행전1:22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맛디아가 뽑히게 된 것이다.
맛디아는 예수님께서 본래 12제자를 뽑는 그 장소에도 있었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어쩌튼 맛디아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12제자들과도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이다.
맛디아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직접 목격했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가룟 유다를 대신하는 12제자가 되는 것이다.
신앙인은 뭐니뭐니해도 예수님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확실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 받게 되는 것이다.
②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확실하고 좋은 인격으로 살아야 한다.
사도행전에는 12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도 사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 바나바를 사도로 부르기도 한다.
사도행전 11:24에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안디옥교회의 초대목사로 파송하면서 인격이 탁월하게 좋은 사람으로서 성령 충만하고 믿음에도 확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적격인 사람으로 인정하여 안디옥교회 초대목사로 파송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와서 극히 어려운 중에도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 생활하는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라고 하면서 교회를 섬긴다.
그러면서 유대교에서 개종한 바울이 고향인 다소로 돌아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울을 찾아가서 안디옥교회로 초빙하여 동역자로 세우게 된다.
1년 동안 안디옥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바울에게 안수하여 선교사로 보내라고 하셔서 두 사람이 아시아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 전도자, 선교사, 교회 개척자들을 세워지게 된다.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고 성령충만하고 인격도 잘 다듬어진 사람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흘리신 피의 값으로 세워진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12제자로 세우실 때에 예수님 앞으로 나온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선정하지도 않았고, 제자로 부르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신앙인들을 제자로 인정해 주시지도 않을 것이고, 더더욱 제자로 부르시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은 믿음이 확실하고 성령 충만하고 인격을 잘 다듬어서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으로,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거룩한 나라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교회의 일원으로 삼위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신앙인들은 모두 다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배우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이다.
예수님의 12제자로 선정되고 부르심을 입은 이들도 모두가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면 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개같은 성질), 지성(지랄같은 성질머리)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께서 인정받는 이들이었고,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이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골고다 언덕의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 이들이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까지 했던 사람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이렇께까지 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도 이들을 인정해 주시고 뽑아주시고 부르셔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혀 주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 예루살렘교회에서 충성하는 사도로 부르시는 것이다.
도마라는 제자는 먼 인도에까지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셨다.
일설에 의하면 도마라는 제자는 우리나라까지 전도자로 오셨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경북 영주 강동리에 가면 마애보살입상이 있는데, 이 입상이 일반적인 불교의 입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라고 한다.
이 입상에 새겨진 글이 있는데, 아무리 이 글자를 해석하려고 노력해도 도무지 해설할 길이 없었다.
이 글을 해석할 방법을 찾던 중에 이스라엘에 가지고 갔더니 히브리어로 도마라는 글이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상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쩌튼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의해서 예루살렘 교회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로, 아시아로, 유럽으로, 인도와 우리나라에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순교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도 유배지 밧모섬에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는데, 우리 주님께서 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신 후에 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보냈던 로마 황제가 죽으면서 밧모섬에서 풀려나고 에베소교회로 돌아와서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린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는다.
요한 외에 다른 제자들은 모두가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신다.
우리들도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어 예수님께 뽑혀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고, 주님의 일꾼과 직분자가 되었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언제나 1/10000이라도 주님의 마음에 쏙 들고 합당한 삶을 살면서 우리 주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때에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이라고 응답하면서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으로 부르시는 과정에서 만에 하나라도 순교자의 길로 인도해 가신다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나같은 못난 녀석에게도 순교자의 은혜를 주시니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까?“라고 고백하면서 기꺼이 순교자의 피를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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