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도자기공

한 전도사가 도자기 공장 지대에 사는 한 사람을 방문하였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다. 전도사는 그 집에 도착하여 유리 상자 속에 든 두 개의 좋은 꽃병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야! 참 멋있군요. 아주 귀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얼마면 파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전도사에게 말했다. "이 세상 돈을 다 준다 해도 저 두 개의 꽃병은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지요. 말하자면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 놓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쓸데가 없어서 버린 것이었지요.
나는 그걸 집에 가져와 반죽을 하고 모형을 만들어 구워 보았습니다. 결국 나는 쓸모없던 흙으로 두 개의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길 바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쓰레기장의 흙무덤 같은 나를 아름다운 꽃병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제목 : 찬송의 의미
설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입니다.
성가대란 이렇게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이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납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사들이 모두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 왕의 귀신이 쫓겨 나갔다고 합니다. 다윗은 노래하는 임금으로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는 너무 기뻐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잔인한 죽음도 노래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절정은 노래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기적은 찬송이 있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여 노래가 있게 하시길 바랍니다.
제목 :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어떤 청년이 성경을 보는데, 전체적으로 보는 법이 없고 또 한 절씩만 봅니다. 성경을 보기는 봐야겠기에 꼭 한 구절씩만 보는데 아무 데나 점치듯이 딱 펼쳐 봅니다. '예수께서 가시니라'--그래, 나도 가야지, '예수께서 주무시니라'--나도 주무셔야지,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성경을 딱 펼쳐놓고 보았더니 마태복음 27장 5절이 나왔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영 찝찝한 기분이 들은 청년은 아무래도 한 절을 더 봐야겠다 싶어 또다시 성경을 펴보았더니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나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더 곤란해진 청년은 다시 한 번 성경을 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 13장 27절이 나왔습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제목 : 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
책에서 읽은 이야기 입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는 자기의 온 정성과 마음과 기술을 다해서 환자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골치 아프고 손을 떼고 싶거나 돕고 싶지 않은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치료하는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는, 잔소리 많은 환자라고 합니다. 진찰 결과라든가, 처방이라든가, 약이라든가, 의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습니다. 다 의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압니다. 이런 환자는 '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영 대하기 싫다고 합니다.
두 번째 환자는 미안한 말씀입니다마는 학교 교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어린아이를 가르쳐 만사를 따져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러면 이렇게 된다, 또는 공식에 의해서 모든 것을 따지는 그런 체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이렇게 저렇게 치료를 하면, 이것 먹으면 낫느냐, 이렇게 하면 꼭 낫느냐, 왜 그러느냐,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합니다. 치료라는 것이 A+B는 아닙니다.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살고 죽고가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따지니까 의사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대답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 참 골치 아픈 환자구나 할 밖에요.
세 번째 환자는 조급한 마음을 가진 환자입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 같은 약은 투여하고 나서 적어도 사흘이 지나서야 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약을 한 봉지 먹고는 왜 안 낫느냐, 아침에 치료받고는 저녁에 왜 안 낫느냐,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프냐고 한답니다. 그래서 보따리 싸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 만나면 아주 골치 아프고 '빨리 다른 데로 가라'하고 싶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도 본래 위장이 좋지 않아서 가끔 발작을 했습니다. 그래, 십 년 동안이나 한 의사로부터 계속 치료를 받았습니다. 위가 나빠질 때마다 그 의사에게 가서 회복하고, 또 회복하고..... 그러다가 그 방면에 더 훌륭한 의사가 있다고 듣고는 새로운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거기서 치료를 다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가 후회했습니다. '전에 치료받던 그 의사에게서, 그 병원에서 치료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왜 이런 것입니까? 우리의 교육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영 순종할 줄을 모르고, 영 믿음이 없고, 만사를 조급하게 생각하고---- 이런 인간은 구제불능입니다. 의사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아주 골치 아파합니다.
제목 :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어느 마을에 나뭇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믿음이 어지나 좋던지 혼자 살면서도 늘 신앙생활에 힘쓰며 입에서는 찬송이 떠나는 날이 없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올 때에는 언제나 교회 앞에 나뭇짐을 세워 놓고 성전에 들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를 드린 뒤에 기쁜 얼굴로 나오곤 했다. 날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이 하루는 그 할아버지한테 물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소원이 그렇게 많아서 늘 기도를 하십니까?"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아닙니다. 저는 특별히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지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이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얼굴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저를 내려다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마주보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가슴에 그려보는 예화(2)
제목 :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종말에 대하여 재미있는 비유를 이야기했는데 들어보라. 관객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는 어느 극장 뒤쪽에서 불이 났다. 관객들은 재미있는 연극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극장 주인은 불난 사실을 갑자기 알릴 경우에 벌어질 큰 혼잡을 예상하고 조용한 설득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배우들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배우 한 사람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당신이 나가서 관객이 당황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고 모두 차분하게 이 극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인기 배우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무대 위에 서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이러저러해서 불이 났는데 모두 차례를 지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 그랬더니 관객들은 이것이 연극인 줄 알고 모두들 박수를 친다. 아주 재미있어 한다.
당황한 연극배우가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곧 불길이 번져올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관객들은 더 열심히 박수만 친다. 아무도 믿어 주지를 않는다. 자, 어찌 되었겠는가 ?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극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서로가 먼저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제목 :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요한 웨슬리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웬 여자가 다가오더니 웨슬리에게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만일 내일 밤 12시에 목사님이 죽게 되어 있다면 남은 시간에 목사님은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웨슬리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대답합니다. "여기에 적혀있는 원래의 계획대로 할 것입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 참으로 뜻깊은 대답입니다.
제목 : 밤새 새끼를 꼬라는 것
옛날에 어느 돈 많은 할아버지가 노비를 많이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해 섣달 그믐날 그 노비들을 다 해방시켜주겠다고 노비들 앞에서 공언했습니다. 노비들은 굉장히 기뻐하며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노비로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꿈에 그리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창 기쁨에 들떠 있는 노비들에게 주인은 짚단 하나씩을 나누어주면서 그것으로 밤새 새끼를 꼬라는 것이었습니다.
게으른 노비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려먹고도 이제 고작 하루 남았는데 그게 아까워서 끝까지 부려먹겠다고? 원 세상에, 이리도 고약한 할아버지가 또 있을까?' 그들은 되는대로 짚을 한 움큼씩 잡고 굵직굵직하게 새끼를 꼬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내던져놓고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또 한쪽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 기왕 하는 것 끝까지 잘해주고 나가자.' 그들은 밤새도록 곱고 가늘게 새끼를 꼬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광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노비들한테 말했습니다. "여기에 쌓여 있는 엽전을 어제 각자 꼬아놓은 새끼줄에 끼워라. 끼울 수 있는 만큼 끼워서 가지고 가거라." 자, 노비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립니다. 새끼를 아무렇게나 굵게 꼰 사람들은 끄트머리에 겨우 몇 개, 그것도 간신히 매달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루까지 충성한다고 곱고 가늘게 꼰 사람들은 거기에 엽전을 끼고, 끼고 해서 바리바리 실어가지고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목 : 비서가 목사한테 설교를 하고 있다
위어스비라는 목사님에게 여비서가 있었다. 사고를 당해서 그 여자의 남편은 장님이 된 채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그 여자 자신도 많은 시험을 겪고 고생을 하더란다. 딱하고 답답한 나머지 목사님이 비서를 위로한다. "나는 당신과 당신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비서가 묻는다.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목사님이 대답한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어 당신의 고난을 면케 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그랬더니 여비서는 "그렇게 기도하지 마세요, 목사님" 하고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저는 이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다 받으려고 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서 받아내야 되겠어요. 그러니 목사님, 제가 그 축복을 받아냄으로써 오늘 당하는 이 고난이 헛된 고난으로 끝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 비서가 목사한테 설교를 하고 있다. 옳은 이야기이다.
제목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유명한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가 있다. 마귀가 찾아와서, 너는 이렇게 죄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실패했다, 너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죄인이다 ! 하고 몰아붙인다. 이에 루터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 이래서 이긴 것이다.
제목 : 바로 그것이야
옛날 한 젊은 재상이 나이 많은 임금님께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죄의 유혹을 피하고 많은 시험을 이겨서 나라를 위한 깨끗한 충신으로 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임금님은 그 젊은이의 그 뜻이 기특하여 지혜를 베풀었다. 재상으로 하여금 컵에다가 물을 가득히 채워서, 이 컵을 들고 제한된 시간 안에 시내를 한 바퀴 돌되,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하명했다.
그리고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을 재상 뒤로 따르게 했다. 젊은 재상은 질문 한번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드디어 임금님이 명하신 대로 제시간에 물 컵을 들고 궁전으로 돌아왔다. 임금님은 크게 칭찬하시며 그의 수고를 고마워했다.
그리고 묻는다. "자네가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여자를 보았나?" "못 보았습니다." "그럼 술집을 보았나?" "못 보았습니다." "그러면 길거리에 사람들이 얼마나 나왔던가?" "임금님, 못 보았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습니다." 이때 임금님은 "바로 그것이야.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노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시시한 일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법이야"라고 말하며, 왜 그런 일을 시켰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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