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열려라 에바다 2025. 8. 23. 10:42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히브리서 9 장 27절, 살전 4장 13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 27)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함이라』(살전4:13)

 

독일의 암 병원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중년의 한 성도가 수술실에서 혀의 암 때문에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마취주사를 손에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면서 『마지막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혀를 사용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간호원, 조수, 견습의사들도 심각하게 그를 지켜보는 사이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모두 『만일 나라면, 만일 한마디만 남긴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런데 암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며 마지막 감사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감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앙고백입니다.즉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고 새로 태어난 기쁨과 감격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진정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살아있음을 노래하며 소망에 찬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나됨을 깨닫고 감사기도를 드려봅시다.오늘도 나는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7:1)

 

1980년 3월 불란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하던 최고의 한 지성인이 폐수종 때문에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이 병원에서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치며, 절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곁에 서 있는 자기 아내에게조차 묻지를 못했습니다. 아내조차도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기 남편에게 그의 병명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리치고 발악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를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이 사람은 자유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수필을 쓰고 또한 주옥같은 글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실존주의 철학자 싸르트르입니다.

이것이 그의 말로로서 1980년 4월 16일 입원한 지 한 달만에 그는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불란서의 신문들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싸르트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썩하였습니다.

그때 한 독자가 신문사에 투고를 해서 이런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싸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싸르트르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진정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고후5:1).

반면에 유명한 피터 마샬 목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마샬 목사님의 임종시간이 가까워 오자 부인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씀하시며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부인은 여기서 믿음의 용기를 얻어 『나의 남편은 목사였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계속 글을 써서 여러 권의 책을 내어 미국의 베스트 셀러 작가로 유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늘나라를 확실히 알게 되었고 거기서 받은 영감과 감격이 그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피터 마샬 같은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도 보통 때처럼 그저 『갑니다. 또 만납시다』하며 잠깐의 이별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장례식이라고 말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하여 영결식이라고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은 옷가지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유해를 안장하는 예식일 뿐 영결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잠시 이별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요, 주께서 하신 약속입니다(요 3:16, 히 2:15).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인간에게 남겨진 사건 중에 가장 크고도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일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밑바닥 인생이거나 흙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습니다. 누구도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캄캄한 벼랑 끝과 같은 죽음, 그 뒤로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문을 먼저 열었던 이들은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했을까요?

구세군 창시자의 아내였으며, 전도자였던 캐더린 부스(Catherine Booth)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물결이 높아지고 있어요. 나도 그렇구요.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고 있답니다.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계속 잘 살거에요.』

 

영국의 비국교도 설교가였던 조셉 얼라인은 영국교회로부터 추방되어 투옥되었던 고난받은 설교가였습니다. 목회자로서의 헌신이 두드러졌던 그는 신학과 과학의 연구에 있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34세에 큰 병을 앓아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회 설교를 계속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하챦은 몸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될 것이다. 부활의 날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이 될까. 나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지리라.』

경건한 주석을 작성한 영국의 비국교도 신학자인 메튜 헨리(Matthw Henry, 1662~1714)는 런던에 목사로 정착한 후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과 교제하며 보낸 삶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만족스러운 삶이다.』

 

청교도 존 오웬(Jhon Owen 1616~1683)은 경건함과 수준 높은 저술 활동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의 설교자로서의 명성은 의회에서 설교하도록 지목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오래 살다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이 사랑했던 분, 아니 영원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신 분께로 간다. 이것이 나의 위로의 유일한 기초이다.』

 

구두 수선공이었으나 가장 훌륭한 부흥사였던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아직도 남아있는 무디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를 세운 인물입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기뻐하며 외쳤습니다.

『나는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계신다.』

개혁자 루터는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하며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주의 손에 내 영을 바치오니 진리의 주가 나를 구원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죤 낙스는 죽음 직전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시옵소서 내 주여!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그대 손에 맡기나이다. 이제 가야 할 천국의 즐거움을 내가 아나이다.』

칼빈은 죽음 직전에 이렇게 주위 사람들을 권면했습니다.

『사람은 다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Soli Deo Gloria) 을 목표로 살아야 해』

 

카디날드 머시어는 위암으로 죽을 때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병든 몸이지만 내 영혼 깊이에 하나님께 드릴게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값이 무엇이라도 말입니다.』

독일 신학자 본 회퍼가 나치주의자들에게 1945년 4월 8일 교수대에서 죽음 직전에 『오늘은 나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이니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라고 하며 진리를 위해 죽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미국의 회중교회 설교자 에드워드 페이슨(Edward Payson 1783~1827)은 하나님께 쓰임 받던 중 쓰러졌습니다. 영광스러운 영생을 소망했던 그는 육신의 고통을 거의 잊었습니다.

『하늘의 도성이 완전히 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영광이 나를 비추고, 그 향기가 내게 풍겨오며, 그 소리가 내 귀를 때리고, 그 기운이 내 마음 속에 생기를 불어 넣는구나. 왜 하나님께서 이 죄악된 벌레 같은 인간에게도 빛을 비춰 주시는 걸까.』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Jhon Bunyun)은 진리를 전하다가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1628년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는데 그의 유언은 승리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당신들을 위해 우시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로 가오. 의심의 여지없이 그 분은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축복된 아들의 중보를 통해서 나를 영접해 주실 것이오. 우리 모두가 머지 않아 만나 새노래를 부르고 끝이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게 될 날을 소망하오. 아멘』

 

미국 인디언 선교를 위해 헌신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가 일기장에 마지막으로 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신속히 당신에게 나아가고 있나이다. 저는 바랍니다. 오 주여, 그것이 당신의 축복된 뜻이라면 그 날을 재촉하소서. 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감리교의 창시자로 영국의 대부흥을 이끈 존 웨슬리(Jhon Wesley)는 많은 곳을 여행하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찬송과 조언, 권면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6만 마일을 여행하며 12,000번의 설교를 했던 윌리엄 개즈비(William Gadsby 1773~1844)는 경건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존경심이 컸던 까닭에 그의 장례식에는 3,000명이나 참석하였습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곧 그 분과 함께 있게 될거야. 승리, 승리, 승리 (그리고 나서 손을 들며) 영원히.』

미얀마(버마)의 선교사로 오랜 역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혼을 구한 아도니람 저드슨 (Adoniram Judson 1788~1850)은 근대 선교에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버어본 섬을 여행하던 중에 죽음을 맞이했는데 주위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학교 문을 나서는 아이처럼 기쁘게 가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무도 강함을 느끼고 있소.』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Martin Ruther)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당신은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오 진리의 하나님이시여.』

 

오렌지의 메리 여왕(Queen Mary of orange 1695)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 속에 품어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노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Queen Elizabeth of England 1603)은 강인함과 신중함, 의심과 교만, 강인한 고집, 화려함과 장엄함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죽을 때 그녀의 옷장에는 이천여 벌의 값비싼 옷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내 소유는 단 한 순간만을 위한 것이군.』

프러시아의 여왕 루이스(Louise 1810)는 죽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여왕이다. 하지만 내 팔을 움직일 힘조차 없구나.』

경건하고 교양 있었던 이탈리아의 부인 올림피아 풀피아 모라타(Olympia Fulvia Morata)는 1526년 출생했습니다. 그는 의사와 결혼해 독일에서 살다가 그리스도인으로 몇차례 고난을 당한 후 29세에 죽었습니다. 짧지만 어려움을 겪었던 그녀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지난 7년동안 사탄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내 믿음을 포기하도록 유혹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가 쏠 화살을 다 잃은 것 같아요. 나는 세상을 떠나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평정과 평안 외에는 아무런 감각도 갖고 있지 않아요.』

독일 문학가인 괴테(Johann W. von Goethe 1749~1832)는 세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파우스트, 진리와 허구 등을 집필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한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빛이 더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라.』

 

미국의 유명한 무용가였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8~1927)은 1927년 스카프가 자동차 바퀴에 휘감기는 사고로 사망했다. 화려한 무대 인생을 아까워하지 않고 그녀는 반갑고도 경쾌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고 한다.

『안녕, 친구들! 전 영광을 향해 갑니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성경을 가까이 하며 그의 연극과 드라마에서 수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하였다. 52세에 죽음을 맞이한 그가 마지막으로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의 공로로 영생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음을 소망하고 확실히 믿기 때문에 나의 영혼을 창조주 하나님께 그리고 나의 몸을 그 분이 만드신 땅에 맡긴다.』

 

광학 분야에서 뛰어났던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 경(Sir David Brewster 1781~1868)은 학문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다가 다음과 같은 증거를 남겼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굉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세상을 지으신 분을 보게 될 것이다.』

1891년 사망한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베이트맨은 천국을 소망하며 가는 그 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분명히 가야만 한다. 내 기력은 너무나 빨리 쇠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천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안녕.』

 

카톨릭 반동파 지도자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던 마담 잔느 기용(Madam Jeanne Guyon)은 뱅센(Vincennes)에 있는 감방에서 많은 영적인 글을 썼습니다.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고, 그녀가 죽을 때 그녀의 마음은 사랑하는 주님을 보리라는

생각으로 벅차 올랐습니다.

『내 일이 끝났을 때 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미 한 발이 말 위에 올라 있습니다. 이제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고전학자 클로디어스 살마시우스(Claudius Salmasius)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시간의 세계를 잊어 왔다. 내게 일년이 더 있다면 그 시간은 다윗의 시편과 바울의 서신들을 탐구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세상을 덜 생각하고 하나님을 더 생각하라.』

 

프랑스의 여류작가 롤랑드(Madame Rolland 1866~1944)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 자유! 너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들이 범해졌는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Blaise Pascall 1623~1622)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마소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너는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 감옥생활을 마치고 이 몸의 속박을 떠날 시간이 이르렀다. 그러면 이제 기쁨과 용기를 마치고 이 분리를 겪으라.』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괜챦아』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e Hegwl 1770~1831)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이 나를 이해했다. 그런데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Ludwig Von Beethoven 1770~1827)은 귀머거리였지만 많은 작곡을 하였습니다.

『나는 천국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이여 박수를 치라. 코메디는 끝이 났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룰리(Jean Baptiste Lulli 1632~1687)는 생을 마치면서 과거의 불견건함을 회개하고 목에 밧줄을 두르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죽었습니다.

『죄인이여,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하리.』

영국의 신학자이자 찬송작가인 아이삭 와츠(Issac Watts 1674~1748)는 찬송가 147장과 438장을 선사한 사람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증거를 남겼습니다.

『내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커다란 자비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나는 오늘 오후에 두려움 없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존 웨슬리의 동생으로 시인이자 찬송작가인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619~1696)는 77세에 죽기 전에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극도로 나이들고 연약한 죄 많은 벌레 같은 인간을 구속한 자가 누구인가? 예수여, 당신은 나의 유일한 소망이시며, 내 쇠한 육신과 마음의 힘이시니이다. 오, 내가 당신으로부터 웃음을 취하고 영생 안으로 들어가리이다.』 영생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예수. 더 가깝고 더 귀하고 더 반가운 분이시여. 저는 당신의 사랑을 감당할 길이 없나이다. 이 불쌍한 벌레 같은 제게 왠 사랑이신지요. 저는 당신에게 합당한 찬양의 천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나이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비록 적지만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저는 당신을 찬양하며 죽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더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닮는 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만족하고 또 만족할 것입니다. 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예수여, 제가 나아가나이다.』

 

존 켄트(John Kent 1766~1843)는 뛰어난 찬송작가로 다음과 같은 찬송시를 썼습니다.

『오 복된 하나님! 얼마나 자비로우신지요. 은혜의 기념비는 보혈로 구원받은 죄인이며, 나의 하나님의 샘물에 이르는 사랑의 물결을 따라가고 있다네.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가운데 나를 향한 영원한 사랑이 나타나 있다네.』 그는 77세에 예수님 안에서 잠들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나는 소망 가운데 기뻐하노라. 나는 영접되었네, 영접되었네!』

 

사무엘 메들리(Samuel Medley 1738~1799)는 많은 찬송시를 지었으며, 회심한 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높히고 사람들의 마음과 삶 가운데 진정한 거룩함을 증진시키는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죽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 저는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이 되시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나이다. 영과 영광 집 집!』

 

찬송가 188장 『만세반석 열리니』를 작사한 톱레디(Augustus Toplady 1710~1778)는 병을 앓는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가치 없는 죄인에게 너무나 풍부하다. 그분은 내게 그 위로가 계속되기만을 기도하게 하신다.』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졌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어느 누가 셋째 하늘의 기쁨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늘은 맑고 한 점의 구름도 없다. 오소서 주 예수여, 속히 오소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중에서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보여주신 영광들을 본 후에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광학 분야에서 뛰어났던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 경(Sir David Brewster 1781~1868)은 하나님을 겸손하게 따랐고 다음과 같은 증거를 남겼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광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세상을 지으신 분을 보게 될 것이다.』

 

1891년 사망한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베이트맨(Thomas Bateman)은 천국을 소망하며 죽었습니다.

『나는 이제 분명히 가야만 한다. 내 기력은 너무나 빨리 쇠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천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안녕』

쿠라엔스(Curaens)는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힘을 얻은 독일의 의사였습니다.

『내 가슴은 영생, 즉 내가 실제로 내 안에서 느끼고 있는 것을 보고 불타고 있다. 나는 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계시하신 위에 있는 처소를 열망한다. 이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은 나의 부활이시자 생명이시니이다.』

바젤(Basel)에서 의학교수로 활동한 주니거(Zuniger)는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바라며 살았던 소박한 신자였습니다.

『나는 기쁘다. 내 영혼이 내 안에서 기쁨으로 뛰놀고 있다.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대면할 시간이 임했기 때문이다. 나는 믿음으로 그분을 갈망해 왔으며, 내 영혼이 그분을 열망해 왔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Michaelangelo 1475~1564)는 많은 영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내 영혼을 하나님께, 내 몸을 땅에, 내 소유를 가장 가까운 친척들에게 맡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가운데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견고한 소망 가운데 죽는다.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라.』

 

1849년에 사망한 영국의 화가 윌리엄 에티(William Etty)는 사후 세계를 확신한 사람이었습니다.

『놀랍다 놀랍다. 이 죽음이!』

 

영국의 화가 윌리엄 헌터(Dr. William Hunter)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펜을 들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죽는 것이 얼마나 쉽고도 편안한 일인지 기록하련만』

무신론자로 평생을 살았던 안티테우스(Antitheus)의 마지막 말은 양심의 가책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를 죽게 해서는 안 되오. 나는 감히 죽을 수 없소. 오, 의사 양반! 할 수 있다면 나를 구원해 주시오.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소. 나는 죽음을 준비할 수 없소. 내가 오늘 밤 침대에 말 없이 누워있을 때 내 친구의 환영이 내 앞에 나타나서는 내 침대의 커튼을 열고 한동안 내 발치에 서서 열심히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소. 내 마음은 무거웠소. 그의 얼굴이 내가 결코 묘사할 길이 없는 공포와 고뇌를 담은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오. 그는 오랫동안 시선을 고정시키고 나를 바라보면서 슬프게 머리를 내저으며 '아!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네'라고 부르짖으며 사라져 버렸소. 나는 정말로 그의 모습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었소. 그의 피 묻은 손자국이 그 커튼에 남아 있단 말이오.』

 

영국의 저명한 정치 철학자인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4)가 남긴 작품은 리바이어선(Leviathan)입니다. 이 회의론자는 당대의 많은 사람을 타락시켰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절망감이 녹아 있습니다.

『내가 온 세상을 갖고 있다면 단 하루를 살기 위해 기꺼이 내어 주리라. 그 세상에서 빠져 나올 구멍을 찾는다면 나는 기쁠 것이다. 나는 어두움으로 뛰어들고 있구나.』

저명한 미국의 작가이자 비기독교인이었던 토마스 폐인(Thomas Paine)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거스르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는 1809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 주여 나를 도우소서! 그리스도여 나를 도우소서! 오 하나님 어떤 일을 행했길래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제발 내 곁에 있어 주시오. 어린 아이라도 내 곁에 머물게 해 주시오. 홀로 있다는 것은 지옥이기 때문이오. 마귀에게 대리인이 있다면 내가 바로 그였을 것이오.』

1797년에 사망한 윌리엄 포프(William Pope)는 모든 종교적인 것들을 비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했던 일은 성경을 마루 바닥에서 이리저리 차고 다니거나 찢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임종의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은 그가 죽으면서 부르짖는 모습은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회개하지 않네. 아니 회개할 수 없다네. 하나님은 나를 저주할 것일세. 나는 은혜의 날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안다네. 자네들은 영원히 저주 받을 사람을 보고 있네. 오 영원 영원! 내게는 지옥밖에 없다네. 오라 영원한 고통이여! 나는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을 증오했네. 내가 증오하지 않은 것은 마귀뿐이라네. 그와 함께 있기 바라네. 지옥에 있기를 갈망하네. 자네들은 보지 못하는가? 그를 보지 못하는가? 나를 위해 그가 오고 있는 것을.』

유명한 프랑스의 이교도이자 문학가였던 볼테르(Voltaire)는 기독교를 방해하고 분쇄하기 위해 펜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20년 이내에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 손으로 사도들이 세운 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공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 그가 음험한 책을 인쇄했던 바로 그 집이 제네바 성경협회의 보관소가 되었습니다. 볼테르를 간호했던 간호사는 『유럽의 모든 재산을 준다 해도 나는 또 다른 비기독교도가 죽는 모습을 보지 않게다.』고 말했습니다. 볼테르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를 돌보고 있던 의사 트로킴(Trochim)은 볼테르가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받았소! 만일 당신이 내게 여섯 달동안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당신에게 내 소유의 절반을 주겠소. 나는 지옥으로 갈거요. 오 예수 그리스도여!』

이교도 케이(Kay)는 마지막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지옥! 지옥! 지옥!』

 

1912년 4월 14일 세계최대의 여객선인 타이타닉 호가 침몰을 시작할 때에 월래스 하트레이가 지휘하는 8명의 악단이 죽음 앞에서 최후로 연주한 곡목은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었습니다.

 

찬송가 338장 (통 364장)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3. 천성에 가는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유언』(遺言)이라고 합니다.

역대 최대 부자는 록펠러였다고 합니다. 산술상으로는 빌게이츠의 재산이 1000억 달러 이상으로 록펠러가 가진 재산의 배 정도입니다. 그러나 록펠러 당시의 경제 규모 등을 생각하면 그의 재산이 빌게이츠의 재산보다 13배가 더 많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삶의 목표는 영적인 것이었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늘 10가지 삶의 지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록펠러는 어머니를 기념하여 저 유명한 리버사이드 교회를 세웠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가 남긴 10가지 유언은 이렇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주일예배에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4. 오른쪽 호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우리 조상들은 자녀들에게 주로 재산 분배에 관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큰아들 너는 논 몇 마지기를 갖고, 작은아들 너는 밭 얼마를 가지고...』

철인 소크라테스는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죽으로 가고 여러분은 살러간다. 누가 행복할 것인가? 그것은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라고 철인답게 독배(毒杯)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어 낸 칼 마르크스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하녀가, 『제게 마지막 말을 남겨 주시면 기록해 두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시끄러워, 나가』 하면서 소리치며 죽었습니다.

장군 나폴레옹은 『나는 불행하게 살았다』라고 중얼거리며 죽었고, 대만의 장개석 총통은 『영웅이란 용감하게 실패하는 자이다...』라고 무언가 한을 남기면서 죽었고, 문호 괴테는 『창문을 열어다오...』 하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탄생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며 그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서 부르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깐의 이별이 언제 어떻게 내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사』(시90:12)

우리는 지금까지 죽음을 어떻게 보고 살아왔습니까? 믿는 사람에게 죽음이 온다 해도 본래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오직 환경만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변화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고전15: 51, 52)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 23)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 15)

우리 신자에게는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기쁨이요 새로운 탄생이라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지막 남길 말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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