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성경 66권 역사적인 근거

열려라 에바다 2025. 9. 2. 10:20

성경 66권 역사적인 근거

봉서방추천 1조회 2725.09.01 02:34댓글

1. 구약 성경 39권 근거 - BC 400년 경에 완성됨. BC 100년 얌니아(Jamnia) 회의에서도 확인되었다.

  • 구약 성경 구절을 주 예수님과 사도들이 인용하였음 - 구약 39권을 인정함
  • BC 457년 에스라가 모세오경과 구약의 책들을 편집하였다. BC 400년 구약의 39권 모든 책들을 편집하여 완성하였다. BC 277년 구약의 헬라어 셉투어젼트역이 39권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을 BC 100년 잠니아 회의에서도 확인되었다.

가톨릭은 구약성경을 46권으로 보고 있으며, 개신교는 39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46권인가? 39권인가? 도대체 무엇이 맞는가?

일찍이 유대인들은 명백하고 분명하게 밝혀진 성경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확인되어졌고,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전혀 의심이 없었다. 성경 내에서의 증거들은 구약 책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기록했던 사건들이 있던 그 시기에 씌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주어졌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유대인들의 종교회의가 AD 100년 경에 얌니아(Jamnia)에서 열렸다. 소위 ‘얌니아’ 회의이다. 이 회의의 목적도 어떤 책들을 정경 목록에 포함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어떤 책들이 ‘이미’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얌니아 회의에서 구약의 정경이 46권이 아니라, 39권으로 확정되었다. 대신 39권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을 외경으로 분류시켰다.

그럼에도 가톨릭은 외경 중 일부를 구약성경의 목록에 추가로 포함시켰다. 가톨릭에서는 이것들(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을 '제2경전'이라고 부르며 정경으로 포함시켰다.

가톨릭은 트렌트 공회에서 이 7권의 외경을 제 2경전이라 부르며 자신들의 정경 목록에 추가시켰는데, 그러나 이 공회의 성격은 당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편파적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였고 일치된 의견도 아닌데도, 단지 프로테스탄트와 대항하기 위해 루터가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실린 7권의 외경을 일방적으로 추가했다는 것이다.

반면 개신교는 유대인들의 얌니아 회의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가톨릭이 정경으로 인정한 제 2경전들이, 원전인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에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외경'이라 부르며 정경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이유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것을 살펴보면,

첫째, 이미 얌니아 회의에서 본 것처럼 유대인들은 외경을 결코 히브리 성경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외경이 집필된 시기에 선지자들의 음성이 없었다고 믿고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성경 계시는 말라기서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믿고 있다.

둘째,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구절들에서 인용한 구절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외경으로부터는 결코 인용하지 않았다. 간혹 성경의 기자들이 우연히 다른 책들을 참조했었지만, 그렇다고 그 책들이 정경의 목록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유다서 14-15절은 ‘에녹서’를 참조했는데, 에녹서는 로마 가톨릭의 제2경전에 포함되지 않는다.

셋째, 구약성경의 예언서들과 달리, 어떤 외경들도 결코 신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넷째, 외경의 어떤 부분들은 커다란 역사적인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다섯째, 사해사본을 필사한 공동체는 구약성경에서와 같은 권위를 외경의 책들에 결코 부여하지 않았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명백하고 분명하게 밝혀진 성경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확인되어졌고,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전혀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책들의 순서를 배열하지 않았고, 어떤 책들은 서로 묶여졌었다. 그러나 내용은 동일하였다, 더도 없었고 덜도 없었다.

성경 내에서의 증거들은 구약 책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기록했던 사건들이 있던 그 시기에 씌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주어졌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성경 밖의 역사적 기록들은 이 결론을 강화시켜 준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인용하실 때, 구약의 기록들이 항상 성경이었음을 확증하셨고, ”기록되었으되”(마 4:4,7,10) 그리고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라고 주장하셨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신탁)”(롬 3:2)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 유명한 유대인들의 종교회의가 AD 100년 경에 잠니아(Jamnia)에서 열렸다. 가끔 잘못 추정되고 있는 것처럼, 그 회의의 목적은 어떤 책들이 유대인들을 위한 성 문서들에 포함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어떤 책들이 이미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었다.[3]. 그 종교회의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구약 정경에 접근할 수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약성경 중 33권은 3단계로 구분됐습니다. 율법서(토라)는 BC 400년, 예언서(선지서)는 BC 300~200년, 성문서는 BC 160~105년쯤에 정경(Canon)으로 채택됐습니다. ‘정경’이란 규준이나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 ‘카논’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 측량 도구로 쓰인 갈대를 가리키는 셈어 ‘카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용어가 성경에 적용돼 규준 또는 권위를 가진 문서(책)를 뜻하게 됐습니다.

구약성경은 최종적으로는 AD 90년 유대인 랍비들의 모임인 얌니아(Jamnia) 공의회에서 총 39권을 구약의 정경으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미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경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BC 3세기에는 그리스어로 번역됐는데요. 이를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경은 유대인들이 주변 국가들로 흩어지고 ‘디아스포라’가 되면서 자국어인 히브리어를 잃어버림에 따라 성경을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번역했던 것입니다. 70인역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성경이기도 했습니다. 신약의 저자들도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이 70인역을 인용하곤 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리스정교회는 2300년이 넘은 70인역을 구약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약성경 중 33권은 3단계로 구분됐습니다. 율법서(토라)는 BC 400년, 예언서(선지서)는 BC 300~200년, 성문서는 BC 160~105년쯤에 정경(Canon)으로 채택됐습니다. ‘정경’이란 규준이나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 ‘카논’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 측량 도구로 쓰인 갈대를 가리키는 셈어 ‘카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용어가 성경에 적용돼 규준 또는 권위를 가진 문서(책)를 뜻하게 됐습니다.

구약성경은 최종적으로는 AD 90년 유대인 랍비들의 모임인 얌니아(Jamnia) 공의회에서 총 39권을 구약의 정경으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미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경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BC 3세기에는 그리스어로 번역됐는데요. 이를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경은 유대인들이 주변 국가들로 흩어지고 ‘디아스포라’가 되면서 자국어인 히브리어를 잃어버림에 따라 성경을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번역했던 것입니다. 70인역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성경이기도 했습니다. 신약의 저자들도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이 70인역을 인용하곤 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리스정교회는 2300년이 넘은 70인역을 구약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2. 신약 27권 - 367년 아타나시우스,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27권 인정

- AD 4세기까지 사도들과 초대 교부들이 27권을 목록으로 만들고 사용하였음.

개신교와 가톨릭은 공히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채택한다.

성경 내에서의 증거는 대부분의 신약 성경들이 AD 70년까지 씌어졌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한편 요한의 저서들은 이보다 약간 늦다.[4]. 대부분의 책들은 저자의 이름을 땄고, 모든 책들은 다른 책들에게 유용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우리들이 더욱 정확하게 연대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에 있는 몇몇 기술들은 신약성경이 사도들에 의해서 씌어졌거나, 사도들에게 승인을 받았음을 가리키고 있다.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고(벧후 3:16), 바울은 자기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말했다고 했다.(살전 2:13).

1 세기가 끝나기 전에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반 이상의 신약성경을 인용했거나 참조하였고, 그것들을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다. AD 180년까지 리용의 이레니우스(Irenaeus) 주교는 그것들을 성령에 의해 주어진 '거룩한 성경(holy Scriptures)'이라 불렀으며, 1,000구절 이상을 거의 모든 신약성경으로부터 인용하였다.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터툴리안(Tertullian)은 '신약성경(New Testament)'으로 언급하며, 그것의 대부분에 대하여 해설했다. AD 240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을 성경이라고 말했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AD 367년에 같은 목록을 사용했다.[5].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책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 요한 이서, 요한 삼서, 유다서, 계시록은 오랜 검증을 거쳐 AD 397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신약으로 인정되었다.

AD 397년 구약과 신약을 포함한 전체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인정과 인증을 받았다.

"신약성경은 교회 안에 이단들이나 다른 사상들이 출현하면서 정경화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거기다 로마제국에 의한 박해가 지속되면서 교회 공동체가 공인한 성경을 모아 보존하려는 의지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363년 라오디게아와 397년 카르타고에서 처음으로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게 됐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