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터진 웅덩이를 막아라(렘2:9-13)

열려라 에바다 2025. 9. 24. 08:58
터진 웅덩이를 막아라(렘2:9-13)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26225.09.19 17:32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터진 웅덩이를 막아라
예레미야 2:4-13


며칠 전까지 강릉지역에 가뭄이 심해서 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제한 급수를 하면서 설거지 빨래 화장실 등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의 소방차가 동원돼서 강릉지역의 주상수원인 오봉저수지에 물을 옮겨다 붓기도 하고
심지어 소방헬기, 해군 함정까지 동원되어 총력적으로 가뭄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최근 며칠 사이에 비가 와서 토요일 통계를 보니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35%까지 회복됐다고 합니다.
또 계속해서 비가 와서 지금은 저수율이 더 올라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극심한 가뭄은 해소되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니까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가두려고 해도 비가 오지 않으니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절 유대 백성들의 삶에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가뭄으로 큰 고통을 겪자,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사람들은 웅덩이를 팠습니다.
물을 받아서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장기간의 가뭄은 웅덩이에 채울 물 자체가 없었습니다.
웅덩이를 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웅덩이에 고여 있던 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듭니다.
웅덩이가 터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꼭 물과 가뭄의 이야기만은 아닌 인간의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성공을 위하여 수고하며 애를 쓰지만 수고하고 애쓴 웅덩이가 터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웅덩이가 터져서 병에 걸리고 믿었던 건강이 새나갑니다.
내 사업은 잘 되리라 생각했는데, 사업의 웅덩이가 터져서 모든 꿈들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고생하지 않고 속 썩는 일도 없고 행복하리라 생각했는데 가정의 웅덩이가 터져서 그 꿈이 다 날라 가고 말았습니다.
터진 웅덩이의 이야기는 물 이야기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바라기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우리 성도들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13)
이런 현상의 직접적원인은 악을 행한 것입니다. 무슨 악을 행한 것입니까?


1. 먼저는,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악입니다.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13)
생수는 샘에서 솟아나오는 맑은 물을 말하는데요, 우리나라는 곳곳에 물이 잘 나오는 샘물이 많습니다.
그 샘물을 통하여 골짜기에 물이 흐르고 실개천이 생기고 하천이 생기고 큰 강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그런 샘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살 수 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이 들어서 농사를 질 수 없고 심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생수의 근원, 비를 내리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유대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당연히 생수가 없어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생수의 근원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찬송가 1장에서는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128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되고 형통하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생수의 근원,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를 믿고 마지막 남은 기름과 양식을 하나님의 종에게 드렸을 때 그는 마르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름이 마르지 않고 밀가루가 마르지 않습니다. 먹으면 또 생기고 사용하면 또 생깁니다.
그래서 3 6개월의 긴 가뭄을 잘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마르지 않는 축복이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것을 좇아갔습니다.
5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아무것도 줄 수 없는 헛된 우상들을 좇아갔습니다.
그러니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요 마르지 않는 복의 근원인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을 받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을 버리고 웅덩이를 판 것이 그들의 악한 일입니다.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여기에서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은 사실 지혜로운 일이면 일이었지 악한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요즘에도 가뭄에 대비하여 대청호와 충주호 같은 큰 저수지를 만들지 않습니까?
물을 저장해서 가뭄에 대비하고 식수난을 해결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웅덩이를 판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웅덩이를 파는 의도가 하나님이 비를 주지 않아도 웅덩이에 물을 저장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불순한 생각에 웅덩이를 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웅덩이를 판 것이기에 악하다는 것입니다.


웅덩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과학과 문명,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웅덩이를 팔 생각을 못했는데 지혜가 발달하면서 웅덩이를 파서 물을 저장하게 됩니다.
판 웅덩이에 처음에는 진흙을 바르더니 그 후 석회를 바르고 나중에는 시멘트를 발라 웅덩이를 더욱 견고히 했습니다.
물이 잘 가두어지고 새나가지 않게 했던 것이 기술의 발달입니다.
그러자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비가 올 때 물을 가두어서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그러한 교만이 하나님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과학을 노래하고 과학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탑 사건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벽돌을 굽기 시작하고 역청을 만들기 시작하자 교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돌을 대신할 수 있는 반듯하고 단단한 벽돌을 굽고 진흙을 대신할 역청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발전된 일입니까?
아제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성과 탑을 높이 쌓아 하늘에 닿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고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고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성공을 거두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실 때 공사는 중단되고 다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단히 구운 벽돌에 접착력이 강한 역청을 바르면 얼마든지 성과 탑을 높이 쌓을 것 같고 안전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한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웅덩이는 또한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의 신으로 알려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신과 우상의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복을 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없이 내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과학의 웅덩이를 파고 지식의 웅덩이를 파고 기술의 웅덩이를 파도 하나님이 터치시면 웅덩이의 역할을 다하지 못합니다.
물질의 웅덩이를 파고 재물을 쌓아두고 잘 살려고 해도 하나님이 날려버리시면 터진 웅덩이가 되고 맙니다.
한 부자가 농사를 잘 짓고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평안히 먹고 즐기자고 했습니다.
이 부자는 물질의 웅덩이를 깊이 파고 행복하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어리석은 부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3.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웅덩이를 가리켜 터진 웅덩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많은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웅덩이를 팠고 그 웅덩이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웅덩이에 채워진 물을 보면서 정말 흐뭇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웅덩이의 물이 다 새나갔습니다.
웅덩이가 터졌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허무하고 실망스럽겠습니까?


어떤 노인이 돛단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낚시로 고기를 잡았지만 매일 허탕만 치면서 84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드디어 85일 째 되던 날 노인은 돛새치라고 하는 큰 고기를 낚습니다.
고기가 너무 커서 낚시에 잘 딸려 오지 않자 노인은 사흘 동안 필사의 싸움을 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 바다에 떠 오른 고기의 옆구리를 찌르고 고기를 배 옆에 끼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옵니다.
노인은 모처럼 행복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노인은 또 상어와 필사의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가까스로 육지에 이르렀지만 이미 고기의 살점은 다 떨어져 나가고 앙상하게 뼈만 남았습니다.
노인은 허탈한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의 줄거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이 터진 웅덩이를 파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터진 웅덩이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있던 시몬이 주님으로부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고기 잡는 것으로 따지자면 경험이나 지식이나 자기가 전문가입니다.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얼마 전까지 갈릴리의 목수였고 이제 조금 뜨기 시작한 랍비에 불과했습니다.
고기 잡는 것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든 인간적인 교만과 경험과 지식을 버리고 주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것을 버리고 주님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 그는 두 배에 잠기는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놀라운 사실입니다만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고기가 많이 잡혀도 그물이 찢어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찢어지지 않는 그물, 터지지 않는 웅덩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이 진짜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말라기 선지자는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3:11)
메뚜기가 곡식을 먹지 않아야 곡식을 잘 거둘 수 있습니다.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아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을 받기 위해서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의 생활을 정직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당시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드렸습니다.
총독에게 드리면 오히려 책망 받고 큰일 날 것들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런 백성들을 향하여 정직하고 올바른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축복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교만을 갖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신과 우상들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웅덩이를 파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웅덩이를 파도 근본적으로 웅덩이에 채울 물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웅덩이가 터지지 않고 물을 잘 보관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으면서 웅덩이를 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웅덩이를 팔 때 터진 웅덩이가 되지 않습니다. 물이 새나가지 않는 든든한 웅덩이가 됩니다.
메뚜기가 곡식을 먹지 않고 기한 전에 포도가 떨어지지 않고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습니다.
터진 웅덩이를 막아 복되고 형통케 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202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