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는 마5:13-16, 히13:12-16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 팔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아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가끔씩 교회가 성도들을 위한 곳인지, 아니면 세상을 위한 곳인지 생각하며 자문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는 세상과는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은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위한 곳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둘 다를 위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세상 만민을 구원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며, 성도의 교제 등을 위한 모이는 교회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흩어지는 교회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두 본문에 나오는 말씀 역시 그리스도인이 누구고, 교회 안과 교회 밖 세상에서 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를 말씀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러므로 우리는”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1.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했는데, 이 말씀에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자들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자들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로서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위해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과 예수님을 외면하고 믿지 않음으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두 강도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흉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믿어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들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불신앙으로 영원한 형벌의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이 복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믿음 안에서 천국 백성이 되어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가지고 사는 자의 모습으로 변화와 성화의 과정을 통해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갑니다. 팔복의 말씀처럼 심령이 가난하여 겸손히 주님을 영접하는 자가 되고, 성령의 조명을 통해 죄를 깨닫고 애통하여 회개하는 심령이 됩니다. 믿음 안에서 거듭나 영적 새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육의 것만 찾았던 자들이 영적 목마름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은혜를 갈망하여 만족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인지를 깨닫고 자신도 남을 긍휼히 여기며 사는 자가 됩니다. 나아가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며 성결하신 주님을 본받아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은혜의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 하나님을 보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 화평케 하는 자로 삽니다. 믿음의 성숙을 이루게 되어 나를 위해 생명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면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주님을 생각하며 하늘의 상급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복과 함께 주님의 칭찬과 상급과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자의 복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본문 13절에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여기 그 능욕은 바로 예수님의 고난을 가리킵니다. 즉 세상에서 어떤 핍박과 능욕을 받더라도 감사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고, 또 극도의 고난과 아울러 수치가 따르는 극형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고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했고, 롬6:10-11에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던 자의 무덤에 가서 발길질을 하고 욕하고 막대기로 무덤을 내리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평소에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각별한 마음으로 대해준 고마운 사람의 무덤에 가서 무덤을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아도, 사랑을 받아도, 높임을 받아도 그에 반응하여 낙심하거나 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고 주님 중심으로 주님만 높이며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소망 중에 참 즐거움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자들입니다.
본문 히13:14-15에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했습니다. 여기 ‘장차 올 도성’은 우리가 장차 가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킵니다. ‘그 도성을 찾는다.’는 말은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며 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참 성도라면 세상 것에 취해 살지 않고 천국을 사모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 천에 들어가 영광스런 광경을 보는 은혜 체험을 하고나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3-24) 했습니다. 그만큼 천국은 좋은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 만날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지치고 힘들면 "주님 언제 오시나요?", “나의 소망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며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이 소망이 있기에 예수님 때문에 항상 즐겁게 사는 사람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5절에 ‘예수로 말미암아’란 ‘예수님 때문에’, 혹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란 뜻입니다.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웃을 일이 없다 해도 예수님 때문에 그 은혜를 인하여 찬송하며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환처로 인해 앞도 못 보는 나병 환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라고 묻자 “예수 믿는 재미로 삽니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지닐 수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육신적으로도 웃을 일을 주실 것입니다. 전2:26에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방관만 하고 놔두지 않고 돌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미국에 사는 한 여 성도는 남편이 일터에서 갑작스런 심장 쇼크로 쓰러졌지만,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완벽한 후속 조처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며 만약 1초만 늦었더라도 회복 불능이었을 것임을 간증하는 그녀의 표정은 은혜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은혜롭던 그녀의 간증은 한숨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그 사건으로 인해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는데, 퇴직금으로 몽땅 주식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미국의 주식 시장은 얼어붙기 시작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주가가 계속 떨어지면 남편과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긴 한숨으로 자신의 간증을 끝 마쳤습니다.
과거의 하나님만 믿으려는 믿음은 참된 믿음일 수 없습니다. 히13:7-8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과 함께 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변함없이 나와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임마누엘 되시는 분이십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어제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계시며, 내일 또한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언제나 미래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어려움과 실패를 만나도 그 일을 통해서 지금 나 자신을 위해 빚으시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더 좋은 내일을 예비하심을 믿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주님의 은총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무슨 일을 만나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사는 참 믿음의 성도로 삽시다.
3.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마5:13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하셨습니다. 소금은 아주 싼 것이요, 흔한 것이요, 그리고 일상적인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는 말 대신 “너희는 세상의 다이아몬드니” “너희는 세상의 금덩이니”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단지 소금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세상의 영화를 위해서, 세상이 부러워하는 귀족 되게 하시려고 선택된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적어도 세상에서는 아주 흔하고 당연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라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소중하고, 꼭 필요한 절대가치를 지닌 자라야만 합니다. 소금 같은 자들은 없어서는 안 될 절대 필요한 존재가 바로 너희들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마5:14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시고, 16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히13:16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며 살 때 세상에 빛의 역할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살게 됩니다.
빛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첫째로, 빛은 생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태양이 없다면 지구상의 생물들은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는 말씀에는 우리가 복음으로 영적 생명을 살리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상한 심령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 외로움에 지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 가난과 질병으로,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생명과 빛을 전할 자들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죄로 관영한 어두운 밤이라도 빛을 비추면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어두움 때문에 빛이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빛 때문에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도 빛만 있으면 어두움이 사라지게 되어 환하게 됩니다. 셋째로, 빛은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캄캄한 밤중에 켜 있는 가로등은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게 합니다. 배들이 길을 잃지 않고 항구에 들어 올 수 있는 것은 빛을 비춰주는 등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밤중이라도 비행기들이 안전하게 이륙과 착륙을 할 수 있는 것은 비행장 활주로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생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에게 안내하는 빛이 되십니다. 넷째로, 빛은 치료하는 역할을 합니다. 빛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요즘 레이저 치료 기술이 얼마나 발달을 했는지, 우리 몸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쓰입니다. 빛은 곰팡이나 각종 세균들의 활동을 억제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영육간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품고 전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삽시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러므로 우리는”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소망 중에 참 즐거움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아멘.
<2025. 10. 01.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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