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좀 더 섬기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물질과 은사와 은혜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남편
어느 설문지 기관에서 50대 이상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은 어떤 남편이냐?”라고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7위 : 요리 잘하는 남편
6위 : 싹싹한 남편
5위 : 집안일 도와주는 남편
4위 : 가정적인 남편
3위 : 잘생긴 남편
2위 : 힘 좋은 남편
1위 : 집에 없는 남편
이렇게 나왔다고 합니다.
요즘 남자들은 이래저래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편의 진정한 영적인 리더쉽, 가정의 리더쉽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서로 챙겨주고 협력하면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한가득 넘치는 가정으로 세워갈 수 있눈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조선시대에 누가 언제 썼는지 알 수 없는 작가, 연대 미상인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라는 소설이 있다.
“규중칠우쟁공기(閨中七友爭功記)”라고도 부른다.
궁중에서 여인들이 옷을 만들려고 하면 “자, 바늘, 가위, 실, 인두, 다리미, 골무”라는 7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일곱 가지 도구가 잘 어울려야 옷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일곱 가지 도구를 위인화하여 쓴 소설이다.
일곱 가지 도구들은 각각 자신이 최고로 잘났다고 의시대고 뽐내면서 다른 도구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뽐내면서 의시대더라도 다른 도구가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로 옷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일곱 가지 도구들이 잘 어울리고 도와주고 협력해 주어야만 아름답고 곱고 멋진 옷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일곱 가지 도구들은 서로서로 잘 어울리고 섬기는 자리로 내려가야만 좋은 옷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된 교회도, 가정도, 사회와 국가도, 기관이나 단체도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뽐내고 의시대면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면 아무 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사람들 각자가 서로서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도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다른 이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더 잘 될 수 있도록 섬길 수 있어야 좋은 모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 곁에서 섬기고 있을까?
이들이 섬기는 모습은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D4.
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
1절에서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에서는 “그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신 후에 곧 바로 다른 사역의 현장을 찾아 나서는 모습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일을 마무리하신 후에 곧바로 다른 사역지를 향하여 떠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조금의 여유도 없으신 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구촌에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은 오래 남아있지 않다.
예수님은 AD29년부터 시작하여 AD31년까지 3년이란 기간만 공생애 사역을 감당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늘 보좌로 돌아가시면 더 이상 공생애 사역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얼마 동안 있다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한시가 너무너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인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얼마 동안의 시간이 남아있는 것일까?
신앙인들의 일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젊은 세대라고 해서 더 오래 산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고, 지금 늙은 세대라고 해서 더 오래 산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들 곁에 보면 종종 부고의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부고의 소식을 들으면서 “왜 그리 빨리 가셨나.... 누구누구는 참으로 오래 사셨구나.”라고 반응할 수 있다.
인명은 재천이라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언제 설런지는 오직 하늘 아버지만이 아실 뿐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000야. 이제 오너라.”라고 부르신다면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로, 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을 언제 어떻게 부르실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봐서 하나님께서 부르시기까지 얼마 동안 남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남아있는 생애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조급해지고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마음으로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방의 여러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지구촌으로 찾아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을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확장시켜 나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곳만을 골라서 찾아가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곳이 어디든 찾아 나선다.
예수님께서는 대도시만 찾아가시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대도시이든, 작은 소도시이든, 읍내이든, 작은 시골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신다.
목사님들, 선교사님들은 목회하기 좋은 곳, 선교하기 좋은 곳을 골라서 찾아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이 어디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신다.
저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80년대, 90년대에만 해도 찬송가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놈 어디든지 가오리다”라는 찬송을 많이 불렀는데, 요즘 세대는 가장 부르기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찬송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늘날 현대사회는 영적으로 힘든 시기라는 반증이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좋은 곳, 좋지 않은 곳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좋은 곳, 좋지 않은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비록 그곳이 아골 골짜기일지라도, 황량하기 짝이 없는 광야일지라도, 심지어는 생명의 위험을 느낄 수 있는 낭떠러지 같은 곳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가리지 않고 찾아가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우리들이 일하는 생업 터전에도, 우리 교회에도, 우리 가정에도, 우리나라에도 찾아오신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신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시는데 무턱대고 찾아가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와 계획으로 가지고 찾아가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찾아가시는 것이다.
메시야의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하고 확장시켜 나가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사명자이다.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에 의해서 빼앗겨버린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온전한 나라, 신령한 영적인 나라를 세워가야 하는 것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사명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②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
1절에서 “그 복음을 전하실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영적인 좋은 소식이다.
복음이란 하늘 아버지께서 인간세계에 전해주시는 가장 복된 소식, 가장 좋은 소식, 가장 원하는 하늘나라의 소식이다.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온전히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소식이다.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벗어나면 절대로 복음이 될 수 없다.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자신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고 덮어주시는 피라고 믿는 믿음이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이루신 십자가의 사건이 자신의 모든 죄를 온전하게 사함 받는 것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복음의 핵심이다.
구약시대에 날마다 죄 사함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번제단에서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의 피로 드리던 제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제사로 모든 제사를 완성하시고 죄 사함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셨다는 소식이 가장 복된 소식이요 가장 좋은 소식이요 가장 듣고 싶어하는 소식이다
신앙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인치심을 받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는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실천하고 전하고 인지하고 고백하면서 복음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입만 열면 세상의 잡동산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고 자랑하고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온 몸과 맘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③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
1절에서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신 이후로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12제자들과 함께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12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은 언제나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하는 사람들이다.
제자들은 늘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심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모습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듣고 배우고 익히면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확장시켜 나가도록 협력하고 섬기는 사람들이다.
제자들은 직접 예수님의 사역을 돕고 협력하면서 사역을 감당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 자체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지금은 가만히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성령님께서 강림하시면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로 승천하여 돌아가시고 성령님께서 강림하시면 그때 비로소 제자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던 것처럼 신앙인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신앙인들이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면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과 은혜와 능력과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모든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는 자가 되고, 불신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똑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주실 구원과 능력과 은혜와 권능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의 신령과 은혜와 축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이라는 결실을 풍성하게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은 지금 예수님과 손을 맞잡고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고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④ 여러 여인들의 섬김을 받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마귀, 사탄, 더럽고 추악한 악귀들, 악령들, 귀신들을 쫓아내시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각종 질병에 걸린 이들과 각종 불구자들을 치료하고 회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으로 신령한 영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선포하시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신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도 그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은혜와 사랑과 능력으로 역사해 주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들 중에서 어떤 사역에 동참하고 있을까?
인간의 온갖 더럽고 추한 욕망, 욕구, 욕심에 이끌리면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라고 호도하면서 정작 더럽고 추한 인간의 온갖 욕망과 욕구를 채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는가?
정말 아니라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고 있노라고 확신있게 고백할 수 있는가?
2-3절에서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러 여인들이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를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더러운 악귀를 쫓아내어 주심으로 자유함을 받은 여인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셔서 자유함을 받은 여인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특별히 갈릴리 바닷가 막달라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마리아라는 여인은 일곱 귀신에 들렸다가 예수님께서 그 귀신들을 쫓아내신 여인이라고 소개한다.
여인들 중에는 헤롯 안디바 왕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라는 여인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인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러 여인들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능력을 직접 체험한 여인들도 있다.
이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여러 능력들을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목격한 여인들도 있다.
이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전해주시는 하나님 나라와 복음과 말씀을 직접 들은 여인들도 있다.
이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갖가지 능력을 행하시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시는 말씀을 소문으로 들은 여인들도 있다.
자신이 직접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이적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옆에서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예수님은 보통 랍비나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확신한 여인들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메시야의 사역을 통하여 치유받고 회복하고 온전케 된 여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수없는 여인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치유와 회복과 온전케 되는 은혜를 입었다.
이 여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워서 무언가라도 예수님께 갚으려고 헌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섬기기로 결단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사용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많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교회를 섬기려고 애쓰며 헌신한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항상 따라다니면서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 여인들이다.
이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로마 군사들에게 붙잡혀서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서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주는 현장까지도 함께했던 여인들이 있다.
마가복음15:46-47의 말씀에서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23:55-56에서보 보면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서 장례 치러지는 현장까지도 함께 했던 여인들이 있다.
이들 여인들 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 급하게 장례 치러지면서 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장례가 치러졌기 때문에 안식일이 지나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면서 제대로 염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던 여인들도 있다.
이들 여인들 중에는 죽음의 권세, 죄악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당당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는 여인들도 있다.
오늘 누가복음에서는 이 여인들이 예수님을 섬기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이 여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 여인들은 얼마든지 경제활동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경제력이 탁월한 여인들도 많다.
여인들 중에는 억만장자들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었던 고고고고고대 사회에서 여인들의 삶이란 남자에게 예속되어서 살아야 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그리 넉넉한 삶을 살지는 못했던 시절이다.
이 여인들 중에는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곧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 고위직 공무원의 부인 요안나라는 여인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요안나는 남편이 국가 고위직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데에는 걱정이 없었던 여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곱 귀신에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마리아라는 여인이나 수산나 여인이나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고침을 받은 여인들은 경제력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하여 섬겼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잘 섬기는 것도 아니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돈이 없다고 섬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헌금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예배하고 경배하느냐 하는 믿음의 수준에 따라서 헌신하는 수준도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속한 노회에서 평생을 사무원으로 섬기시던 권사님께서 이제는 나이가 많아져서 퇴직하고 젊은 여집사님을 새롭게 노회 사무원으로 채용하게 되었다.
소식을 듣고 저는 가장 먼저 권사님께 전화드려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꿀도 한 병 드렸다.
권사님은 평생 결혼도 안 하시고 노회 사무원으로 섬기신 분이다.
권사님은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평생 노회를 위해서 일하신 붐이다.
그래서 저는 “권사님은 노회랑 결혼하고 평생을 헌신하셨네요.”라고 늘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아주 비싼 배 한 상자를 추석 선물이라고 보내온 것이다.
그 권사님이 저에게 늘 고마워하고 감사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추석 선물을 받고 전화를 드리면서 “선물 보내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려운 처지 잘 아는데..., 고맙게 잘 받고 잘 먹고 기도하겠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긴 이 여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섬겨야 하는 것일까?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느 모임에서든 경제력이 좋은 사람이 우선적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얼마든지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섬기는 일에 아주 인색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보잘것없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일에 앞장서는 이들도 많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느 가련한 여인이 두 렙돈의 동전 두 개를 넣는 모습을 보면서 여인이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당하여 헌금하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들을 섬기는 아름다운 믿음을 가지신 분들이 이외로 많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사도행전에는 전혀 기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여인들은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면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교회와 믿음의 식구들을 섬겼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쩌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흩어진 유대인들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자의 삶, 선교사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여인들도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L4 & B4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등장하는 여러 여인들도 자신들이 섬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교회들을 섬기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신앙인들을 섬기는 일에 앞장선 여인들이 많다.
루디아라는 여인, 브리스길라라는 여인, 아가보라는 여선지자, 눔바라는 여인,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뵈뵈를 비롯하여 수많은 믿음의 여인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부르심을 입는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때 로마 병사에 의해서 억지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습을 목격한 구례뇨 사람 시몬의 아내요, 루포와 알렉산더의 어머니도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입은 여인이다.
디모데의 어머니 루이스와 외할머니 유니게도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살다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 부르심을 입은 여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할까?
①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물질로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들의 삶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풍요롭게 살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모습으로 풍요롭게 섬기면 된다.
어렵게 살고 있다면 어렵게 살고 있는 현실로 인하여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섬기면 된다.
금과 은도 내 것이요, 지구촌 뿐만 아니라, 온 우주계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잘 관리하도록 맡겨주신 물질이라는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경제적인 수준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잠언 30:7-9절에서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신 대로 더도 말고 덜고 말고 꼭 필요한 만큼 채워주시리라 믿는다.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에서 차곡차곡 쌓아주실 것이라 믿는다.
②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섬길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 각자에게 꼭 맞는 은사를 주셨다고 확신한다.
은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는 아주 다양하다.
은사는 달란트이다.
달란트 비유에서 각 사람이 가진 재능을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셨던 것처럼 각각 다르게 주실 수 있다.
동일한 은사를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은사를 주시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다르게 각자에게 가장 합당한 은사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에 대하여 부러워할 이유도 없고, 자신이 받은 은사를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겨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매우 다양한 은사를 감동으로 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합당한 은사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 체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체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을 부모님의 사랑으로 이 지구촌으로 보내실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고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은사는 좋고 나쁨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은사는 좋은 은사이고, 어떤 은사는 나쁜 은사라는 개념은 죄인인 인간의 악한 생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일 뿐이다.
어떤 은사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은사이고 가장 좋은 은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 잘 체크하여 그 은사를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면서 섬기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잘 체크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와 가정과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며 섬길 수 있어야 한다.
③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이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야만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단 한시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감싸안아 주지 않으면 인간이란 존재는 단 1초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신앙인들에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신앙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주님의 몸된 교회와 가정과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섬긴 그 섬김의 대가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귀한 상급으로 준비해 주신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서3:13-14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말씀하신다.
디모데후서4:7-8에서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귀한 상급으로 역사해 주시리라 믿는다.
여인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을 위하여 살았듯이, 신앙인들도 거룩한 하나님 나라와 왕국을 세우고 확장해 나가는 일에 앞장서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와 신앙인들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섬길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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