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절망을 이기는 믿음 (막 5:21-25)

열려라 에바다 2025. 9. 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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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婦추천 0조회 4125.09.28 20:49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절망을 이기는 믿음 (막 5:21-25)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이 시간 “절망을 이기는 믿음” 이라는 제목입니다. 야이로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야이로는 유대 회당의 회당장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죽은 어린 딸을 살린 이야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살리는 믿음, 절망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그의 이름과도 같습니다.

22절에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라고 성경이 그 이름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야이로 (Ἰάειρος, Iaeiros, 이아에이로스), "하나님이 빛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절망 속에 희망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혹시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야이로에게서 절망을 이기는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절망을 이기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21절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계셨는데 그것은 해안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바닷가는 바로 강단이요 교회였습니다. 여기를 야이로가 찾아왔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영혼이 살려면 예수께로 와야 합니다. 예수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빛에 비유합니다. 요1:4-5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8:12에도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12:46에도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습니다.

예수를 빛으로 말씀한 것은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갈릴리에 나타나시니, 마4:14-16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했습니다. 예수 만나지 못했으면 어둔 불행 속에서 방활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예수를 알게 된 것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복입니다.

2. 예수를 주로 높이는 믿음입니다.

22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유대의 회당장이면 존중받는 위치입니다. 그러나 그는 무명의 예수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되 예수를 높여야 합니다. 먼저 예배가 높이는 것입니다. 날마다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주로 받드시기 바랍니다. “주”란 주인이란 뜻도 있고 왕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높이고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내가 주가 되면 안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30년간 수천 명을 전도한 의사요 목사인 선교사가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환자에게서 병이 전염되어 죽었습니다. 슈바이처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 정도면 순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평가는 어떠했을까요? 목사에 이어 그의 아내가 병들어 죽어서 죽은 남편에 대해서 듣고 다시 깨어난 일이 있었는데 남편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그 지적이 약 3가지인데 첫째는 그의 설교는 은혜 아닌 율법적인 설교였다. 둘째는 아들로서가 아닌 종으로서의 삶이었다. 다음은 간증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보다 그 헌신에 모두가 매료됨으로 ‘훌륭한 선교사다.’ 라는 느낌을 남겨 그 영광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일하고도 책망 받는 사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주의 이름을 부르지만 내가 주장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만 나타나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전도자론입니다. 계10:1-4에 구름을 입은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아무리 봐도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힘센 천사일까요? 구름을 입었으니 자기는 감춰져 보이지 않고 예수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군의 모습이요, 참된 우리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막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여기서 '증언하니라' 가 아니라 “증언하시니라” 입니다. 제자들은 쓰임 받는 도구였을 뿐입니다.

3. 절망을 이기는 믿음은 기도입니다.

22-23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야이로가 어린 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본문의 “어린 딸”이라는 원문을 보면 (θυγάτριον, thugatrion, 투가트리온) '작은 딸', '어린 딸', 또는 '사랑스러운 딸'과 같은 애정 어린 뉘앙스를 담고 있는 낱말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니 그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그의 기도가 간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나는 죽어도 딸은 살려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야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눅 18장에 나오는 원한 맺힌 과부와 같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여기에 우리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고 핍박은 여전하고 제자들은 믿음도 능력도 없는 절망 가운데 있었으나 날마다 기도에 전무하므로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옛날 용문산에서 신학생들이 모여서 신앙훈련을 받고 전국에 흩어져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끈 부흥사가 되었는데 그들이 불렀던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곡:우리들의 싸울 것은) “호렙산중 가시덤불 불꽃속에서 모세를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이산에서 우리 불러 불세례주니 이것이다 한국의 소망” 그들은 일반 신학생과는 달리 기도훈련을 많이 받았고, 둘레의 산을 돌면서 설교로서 목청도 연단시켰다고 합니다. 그 뜨거운 기도운동이 이 시대에 다시 불타 오르기 바랍니다. 기도는 절망 중에 희망을 만듭니다.

4. 절망을 이기는 믿음은 인내입니다.
24-25절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아이는 죽어 가는데 상황은 난감해져만 갑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보행조차 어렵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한 여자가 있어 시간을 지체합니다. 야이로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시험을 이기고 시련을 이기고 끝까지 승리해야 합니다. 잠시 잘한다고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약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아무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훈련이 무엇입니까? 체질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성경공부로 끝나는 제자훈련이 아닌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는 제자훈련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이 제자훈련의 책입니다. 그래서 복의 책입니다.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80강) 참고 ==> https://cafe.daum.net/agaser/MIGM, 혹은 https://blog.naver.com/hhssjj21/224018711913)


5. 절망을 이기는 믿음은 말씀의 믿음입니다.

35절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셨습니다. 이때 야이로는 비보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믿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통곡소리가 들립니다. 아이가 누웠는데 보자기에 덮여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믿음직한 수제자들만 데리시고 아이에게 다가가셔서 손을 잡고 “달리다굼” 번역하면 ‘일어나라’하시자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었고 소녀가 살아나자 먹을 것부터 찾았습니다.

이처럼 죽어도 살아도 죽었다 깨어나도 말씀부터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심령이 살려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고 끝까지 그 말씀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수제자만 데리고 가셨는데 소망의 문을 여는 일군이 되려면 수제자의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살리기 전에는 어린 딸이라 했는데 살린 후에는 열두 살이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자아이는 만 13세에 여자아이는 만 12세에 성인식을 치룬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씀에 선 장성한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 구주시고 우리의 빛이십니다. 혹시 심령이 절망 가운데 있다면 야이로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회당장 야이로처럼 내 영혼이 살아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체면도 나이도 연약함도 다 잊어버리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높이고 기도와 믿음과 찬송과 말씀에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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