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종교개혁기념주일설교-복음의 능력(롬1:16-17)

열려라 에바다 2025. 10. 27. 13:09
스크랩 종교개혁기념주일설교-복음의 능력(롬1:16-17)
 
권호만barnabak추천 0조회 22325.10.25 13:19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복음의 능력
로마서1:16-17


오늘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10 31일입니다만 한국교회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복음의 회복, 복음의 재발견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고의적이든, 실수였든지 복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완성한 구원의 복음을 인간적인 것들로 바꾸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다섯 가지의 핵심주장을 통하여 나타나는데요,
이 말은 바꿔 이야기하면 가톨릭은 이것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직 성경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성경 외에 교황의 말과 교회의 전통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둘째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만을 믿고 섬겨야 하는데 중세교회는 마리아와 기타 유물을 섬겼습니다.
셋째는,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중세교회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넷째는,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데 중세교회는 믿음 외에 인간의 선행과 고행을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쳤습니다.
다섯째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습니다.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고 올바른 구원의 길을 가르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복음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복음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타나는데요, 복음이란 글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아기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는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면서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기쁜 소식이고 기쁜 소식은 곧 예수님의 탄생이고 예수님의 탄생은 곧 온 인류의 구주의 탄생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성한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 외에 다른 구원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것밖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1. 그래서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부끄러운 복음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라는 사람, 그는 갈릴리 변방에서 무언가 뜻있는 일을 하려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은 실패한 사람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로마의 힘과 권력 앞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인간은 부끄러운 인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십자가의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 분은 실패한 자가 아니라 승리한 자요, 십자가의 죽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대속의 죽음이요, 그가 흘리신 피는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한 구원의 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여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시골교회에서 남자가 교회에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찬송을 감추고 다니기도 했고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저기 간다고 얼버무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다니는 것을 감추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저 쉬쉬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복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고의 선택이요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자랑거립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2. 두 번째로, 바울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이유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을 말하는데요, 마르틴 루터는 죄로 인해 매우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두려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1505 7 2일 일어납니다.
이 날 루터는 친구와 함께 부모님 집에 다녀오다가 에루프르트로 들어오는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벼락이 내리쳤는데 친구는 벼락에 맞아 즉사했고 루터는 정신을 잃고 두려움 앞에 떨었습니다.
방공호 속에 무신론자가 없다고 누구나 천둥소리를 들으면 하나님을 찾기 마련입니다.
루터도 이 날 너무 무서워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했고 서원대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됩니다.
이런 두려움은 루터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중세를 살던 사람들이 대부분 겪고 있던 두려움입니다.


이런 두려움의 이유를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종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중세교회는 끊임없이 인간에게 선행과 고행을 통해서 구원받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선행은 하면 할수록 더 큰 실패감과 낙심을 줍니다.
왜냐하면 이 정도면 하나님을 만족시킨다는 기준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밑도 끝도 없는 고행을 지속합니다.
마르틴 루터도 두려움을 없애려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온갖 고행을 하는데요,
사흘 동안 빵 한 조각 입에 대지 않고 굶기도 하고
하루에 7번씩 규칙에 따라 기도할 뿐 아니라 철야와 고행을 하루 일과로 삼기도 합니다.
덮고 자라고 준 담요도 미안해 덮지 못하여 얼어 죽을 뻔 했습니다.
교황이 있는 로마에 성지순례를 가서는 28계단으로 된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성지를 무릎으로 순례하고, 성물을 수집하고 숭배하고, 화려하고 장엄한 예배를 드리고, 수도원에서의 가학적인 금욕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은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 구원을 다른 엉뚱한 것으로 받으려고 하니까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노력과 고행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얼마만큼 고행을 하고 선행을 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기준이 없잖아요.
그 기준을 채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정말 평생 동안 죄를 너무 많이 져서 함께 십자가에서 처형을 받는 강도 둘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마지막 죽어가면서 예수님을 믿고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강도는 십자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착한 일도 할 수 없었고,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도 다 지나가 버렸고, 이제 남은 시간은 단 몇 시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강도가 구원을 받은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였거나 고행을 하였거나 수도를 쌓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강도를 구원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딱 한 가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뿐입니다.
그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아멘
오직 그리스도요 오직 믿음입니다.
이것이 구원받는 복음인데 중세교회는 엉뚱한 구원을 가르쳤고 마르틴 루터는 이 구원의 복음을 다시 발견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비결은 딱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얻는 길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 길을 저 사람에게는 저 길을, 이 민족에게는 이 신앙으로, 저 민족에게는 저 신앙으로 구원받을 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구원이라는 목표는 똑 같은데 그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종교마다 나름의 길이 있고 그 길을 통하여 구원의 목표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밖에는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헬라인들도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3. 세 번째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만이 가진 본래적 속성을 말하는데요,
거짓이 없고 악이 없고 어떤 흠도 점도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인간은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가 될 수 없고 죄인이요 악인이요 더러운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하나님만이 가지신 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절대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 의는 의를 소유한 하나님이 주셔야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를 주셔서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십니까?
수도를 쌓거나 고행을 하거나 선행을 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는 자에게만 주십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어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 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되었으니
26절에서는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아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즉 예수님이 우리를 죄를 십자가에서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우리는 너무 너무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로운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로운 존재로 인쳐 주십니다.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고, 형벌 받을 자가 아니라 구원받을 자고, 지옥에 갈자가 아니라 천국에 갈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자로 인쳐 주시면 누구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죄인이라고 정죄할 수 수 있습니까?
이 축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복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수고를 하고 노력을 하고 덕을 쌓아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 믿음의 진수를 발견한 뒤 한 번도 방황하거나 뒤돌아가거나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의 진수를 발견한 뒤 그는 영적 전사로 거듭났습니다.
그리하여 교황이 무엇이라고 말해도 거기에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루터가 작사한 노래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우리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복음을 증거 하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