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성경의 땅, 므깃도(Megiddo)

열려라 에바다 2025. 11. 18. 13:51

성경의 땅, 므깃도(Megiddo)
(이 글의 앞 부분은 영문 위키피디아를 번역해서 올렸고, 뒷 부분의 성경의 에피소드는 제가 묵상하여 올린 글입니다.)



므깃도(히브리어: мְגִדּוֹ، 아랍어: المجیدو)는 현재 1949년에 건설된 이스라엘 북부의 키부츠(kibbutz)입니다. 이스르엘 계곡(the Jezreel Valley)에 위치하고 있으며 므깃도 지역 의회의 관할권에 속합니다.
2021년에는 인구가 859명이었습니다.


키부츠는 65번 고속도로(하데라에서 아풀라까지)와 66번 고속도로(하이파에서 남쪽으로 서안 지구까지 운행)의 교차점인 므깃도 교차점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교차로에는 버스 터미널과 보안이 철저한 감옥이 있습니다. 키부츠는 현재 에이놋 코비(Einot Kobi)로 알려진 인구가 감소한 아랍 마을인 라준(Lajjun) 부지에서 북동쪽으로 600m 떨어진 곳에 건설되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땅에 있는 키부츠(Kibbutz)
현재의 키부츠가 위치한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인 므깃도 산은 신약 성경 요한계시록 16장 16절에서 종말에 선과 악의 세력 사이에 벌어질 최후의 전투 장소로 확인됩니다.


1. 지리(地理, Geography)



키부츠는 여러 번의 므깃도 전투 장소와 풍부한 고고학 유적지인 텔 므깃도(Tel Megiddo)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성읍은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대상 7:29). 2005년에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감옥 부지에서 아마도 성지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교회의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당국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교도소를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2. 유물(Antiquity)


텔 므깃도(Tel Megiddo)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와 아시리아(Assyria)를 연결하는 좁은 통로와 무역로의 서쪽 지점을 보호했습니다.


이 유적지에는 대략 기원전 7000년부터 기원전 586년까지 사람이 거주했지만, 최초의 중요한 유적은 청동기 시대(기원전 4500~3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초기 청동기 시대 IV 기간(기원전 2300~2000년)에 쇠퇴를 겪었지만, 기원전 2000년경에 어느 정도 부활했습니다. 대규모 건설 이후 이 도시는 청동기 시대 중기 최대 규모인 10~12헥타르에 이르렀습니다. 이 도시는 투트모세 3세의 지배를 받았지만 여전히 번영했으며 후기 청동기 시대에 거대하고 정교한 궁전이 건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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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기시대, 성경시대(Iron Age, Biblical Era)


이 도시는 기원전 1150년경에 파괴되었으며, 일부 학자들이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로 확인한 사람들이 그 지역에 다시 정착한 후 성벽이 없는 블레셋 도시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도시를 함락시켰을 때 이 도시는 중요한 도시가 되었지만, 아마도 아람인 침입자들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번에는 디글랏빌레셀 3세가 사마리아를 점령하기 위한 행정 중심지로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곧 줄어들었고 결국 기원전 586년경에 폐기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므깃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며, 기원전 586년 이전에 남아 있는 유적에는 그 유적을 교란할 새로운 정착지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Lajjun 마을(요르단의 el-Lajjun 고고학 유적지와 혼동하지 말 것)이 유적지 근처에 건설되었지만 새로운 거주지나 텔 자체에 대한 방해는 없었습니다.

4. 오스만 시대(Ottoman period)


오스만 시대 동안 라준(Lajjun)은 이스르엘 계곡, 갈멜 산, 베이트 시안 계곡, 사마리아 북부, 라못 메나셰, 샤론 평원 북부를 포함하는 투라바이 토후국(1517-1683)의 수도였습니다. 이곳은 16세기 팔레스타인의 지방 수도 중 하나이자 같은 이름의 산자크(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 1600년경에 Turabays의 소재지가 Jenin으로 옮겨졌습니다.

5. 1차 세계대전(First World War)


므깃도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에드먼드 앨런비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과 고대 유적지 근처에서 방어하는 오스만 군대 사이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6. 이스라엘의 국가(주, State)


키부츠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조직을 조직하고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한 헝가리와 폴란드 출신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 의해 1949년 2월 2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처음에 회원들은 아랍 마을인 알 라준(al-Lajjun)의 폐허에 정착했으나 몇 년 후 인근 언덕으로 이주했습니다.


1952년에 레바논과 멕시코에서 온 이민자들이 키부츠에 합류했습니다. 1959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온 또 다른 이민자들이 있었고 다음 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키부츠에 합류하고 청소년 단체가 자원 봉사를 했지만 회원들이 키부츠를 떠나면서 인구는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키부츠는 인구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주민 수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주민 이직률은 높았습니다.


2000년 11월, 인구통계학적 문제와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키부츠 회원들은 이제 모든 회원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키부츠가 일부 복지 서비스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활 방식과 키부츠의 구조를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키부츠 회원들은 주택과 사업체의 소유권을 키부츠에서 주민들에게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7년에 키부츠 서부와 북부에 108개의 주택이 있는 두 개의 새로운 동네가 건설되었습니다.


7. 성경에 언급된 므깃도


므깃도는 오직 구약 성경에서만 발견되는 지역명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2회, 사사기에서 2회, 열왕기상에서 2회, 열왕기하에서 3회, 역대상에서 1회, 역대하에서 1회 스가랴서에서 1회이며 총 12구절에서 12회 나왔습니다.


첫째, 여호수아서 12:21, 17:11 -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 중에 므깃도 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수 12:7,21)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쳐서 정복한 후에 땅을 분배하는 장면이 여호수아서 17장 전후로 나옵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될 땅이 잇사갈과 아셀 지파의 땅에도 있었습니다.(17:11) 그런데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다 쫓아내지 못하여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계속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습니다.(수 17:12,13)

둘째, 사사기 1:27, 5:19 - 앞의 여호수아서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사기서에서도 므낫세 지파가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므로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계속 거주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습니다.(삿 1:27) 가나안 왕 야빈이 철병거 구백대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20년 동안 심히 학대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사 바락과 드보라 선지자를 일으켜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를 이겼습니다. 그래서 바락과 드보라는 이 승리의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들은 이 찬송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 찬송에서 그들은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셋째, 열왕기상 4:12, 9:15 – 솔로몬이 왕위에 등극한 후에 이스라엘 각 지역을 통치할 관리들을 임명합니다. 므깃도는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아서 다스리게 되었습니다.(4:12) 열왕기상 9장 15절에서는 솔로몬 왕이 역군(건축할 일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에 성을 건축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열왕기하 9:27, 23:30 – 열왕기하 9장에 이스라엘의 왕 요람이 아람의 왕 하사엘과 전쟁하다가 부상을 입고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왕 요람과 동맹을 맺고 있었던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부상당한 요람을 보러 예루살렘에서 이스르엘로 내려와서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인 예후에게 가서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고 선포하라고 하여 그 제자는 엘리사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행하여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면서 하나님께 범죄했던 아합의 집 식구의 모든 남자들을 멸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예후가 나봇의 포도원에서 아합의 아들인 요람을 죽였고 요람과 동맹을 맺었던 유다 왕 아하시야도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쳤더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므깃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악을 행하던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예후의 공격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 장소입니다.

 

열왕기하 23장(역대하 35장에 동일한 스토리가 있음)에서 보면 당시 유다 왕이었던 요시야가 이집트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다 땅을 통과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려고 하므로 요시야 왕은 유다의 영토를 침입하여 통과하려는 이집트의 군대와 맞서 군사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이집트 군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이집트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였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성군 중에 하나였던 요시야가 이집트의 바로에게 죽임을 당한 장소가 므깃도입니다.

 

다섯째, 역대상 7장 29절 – 역대상 1장부터 9장까지 이스라엘 족속들의 족보 이야기와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맡았던 역할들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7장 29절에 보면 요셉 자손이 므낫세 자손의 지계에 가까운 벧스안과 그 주변 마을과 다아낙과 그 주변 마을과 므깃도와 그 주변 마을과 돌과 그 주변 마을 여러 곳에 거하였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 요셉의 자손들이 정착했던 곳 중에 하나가 므깃도였습니다.


여섯째, 스가랴서 12장 11절 – 스가랴 선지자는 스가랴서 12장에서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을 전합니다. 12장 2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의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선지자는 이어서 예루살렘이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하시는 날을 그날로 표현하면서, 그날, 즉 예루살렘이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하시는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날에 있을 큰 애통은 요시야 왕이 전사했던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었던 것과 같은 애통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