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부르심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봐요 = 누가복음9;1-6(251207

열려라 에바다 2025. 12. 19. 14:26

부르심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봐요 = 누가복음9;1-6(251207

한상원목사추천 2조회 19225.12.03 19:35댓글 1



PW : 믿음             BIW : 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보내신 이의 뜻과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다.




장수하는 방법


어느 지역에 98세를 맞이한 할아버지가 있다고 해서 한 잡지사 기자가 찾아가서 장수비결을 물었습니다.
기자 : 할아버지, 도대체 아무런 병 없이 이렇게 건강을 유지한 비결이 뭡니까?
할아버지 : 허허, 뭐 그저 별거 있겠소? 매일같이 운동하고, 하루 세끼 밥 거르지 않고 잘 먹고...무엇보다 중요한 건 금주에 금연을 한다는 게지.
기자 : , 장수하는 방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없군요.
한창 인터뷰하는 도중, 기자는 탁상 앞에 앉아 술을 마시며 파이프를 물고 있는 한 어르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 : 할아버지, 저분은 누구시죠?
할아버지 : 내 형님이라네...
그러니 이 어르신의 형님은 100세가 넘게 사시는 것입니다.
음주, 흡연해도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는 음주, 금주, 흡연, 금연이 약간의 영향을 끼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어떤 이들은 모세처럼 120세까지 살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 3남매 중에 모세가 가장 적게 살았습니다.
미리암이 아론보다 더 오래 살았고, 아론이 모세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모세 이후로 130세까지 살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7살 된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세워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이끌었던 여호야다 대제사장은 130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빨리 거두어가시면 그만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늦게 거두어가시면 그만큼 장수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야겠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구해 주시는 거룩한 손길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교회를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 주님을 머리로 하는 한 지체, 신앙공동체라고 부른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교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실까?
에베소서4:4-6에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에베소서4:11-12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에베소서 4;15-16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가기 위하여 교회의 일꾼들을 세우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일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실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어떤 것들을 부여해 주고 계시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해 주신 권세, 권한, 능력은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 세워진 일꾼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D4.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내보내시는 예수님.


1-2절에서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들을 불러 모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부여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앓는 자를 고치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라고 하시면서 내보내신다.
예수님은 12제자 모두에게 똑같은 능력과 권위와 권세를 부여해 주신다.
예수님은 이른바 3인방이라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만 특별한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가룟 유다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에게는 하찮은 능력을 부여해 주신 것이 아니다.
배신자 가룟 유다를 비롯한 12명의 제자들 모두에게 똑같이 귀신을 제어하고, 온갖 질병을 고치고, 불구자들을 온전케 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은혜와 능력과 권세를 입혀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12제자들 사이에서 누구는 높게 하고, 누구는 낮게 여기는 차별을 두지 않으신다.
12명의 제자들은 누구나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신 똑같은 권능으로 귀신들을 제어하면서 쫓아낼 수 있고, 온갖 종류의 질병들도 고칠 수 있고, 온갖 불구자들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부정한 존재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결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신다.
거룩한 백성, 정결한 백성으로 회복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워갈 수 있는 권세를 부여해 주시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똑같이 생각한다고 하면서 누구에게는 좀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고 싶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아무래도 자신에게 뭔가 가까워도 가까운 사람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는 무엇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고 확신하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제자들에게 균등하게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면, 신앙인들은 차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대우하고 있을까?
성도들을 대할 때, 말은 다 똑같이 대우한다고 말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누군가만 더 편애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가 있지 않는가?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느냐? 하면서 모든 자녀들을 똑같이 사랑하고 축복한다고 말은 하지만, 많은 자녀들 중에 더 마음이 가는 자식이 있지 않던가?
어찌보면 누군가에게 더 많은 마음이 쏠리는 것은 인간이라는 옷을 입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편애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할지라도 신앙인들은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똑같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이다.
신앙인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은 최대한으로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도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시는 예수님.


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도여행을 보내면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야말로 지팡이도, 배낭도, 양식도, 돈도, 여벌의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당시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지팡이도 필요하고, 배낭도 필요하고, 양식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여벌의 옷들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여행객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야말로 거지꼴로 다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일반여행을 하든, 전도여행을 하든, 선교여행을 하든, 사업차 여행을 하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간혹 목사님들이 12일로 모임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12일이면 아주 간단한 가방 하나면 될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마치 외국 이민이라도 가는 것처럼 커다란 캐리어를 낑낑거리면서 끌고 오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
이런 사람에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말고 빈 몸으로 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누가 전도여행을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런 사실을 몰라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아니다.
예수님도 사람인 인성을 지니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그야말로 빈털터리 신세라 하더라도 하늘 아버지께서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재워주시면서 때에 따라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빈털터리 여행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40년 광야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가져나온 것들을 불과 며칠만에 다 먹고 만다. 이제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만다.
그야말로 심각하게 이제는 무엇을 먹어야 하냐? 무엇을 마셔야 하냐? 어른들은 그렇다치고 우리 어린아이들은, 내 새끼는 어떻게 해야 하냐? 엄마, 아빠 밥 달라고 우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먹느냐? 마시느냐? 입느냐? 어디에서 자느냐? 하는 의식주 문제이다.
의식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원망과 불평이 솟구쳐 오르게 마련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의식주 문제 앞에 이구동성으로 원망하고 불평이 터져 나온다.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삿대질을 하면서 원망하고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만나를 내려주시고 때에 따라서 필요한 모든 것들 채워주신다.
광야 40년 생활이 지났음에도 신발도 옷도 찢어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런 역사적인 사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구해주시고 입혀주시고 먹여주시고 재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빈털터리로 전도여행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면서 무언가 든든히 준비하고 가야 마음이 든든해지고 두렵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근심걱정없이, 염려없이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갖추어야 할 것들을 잘 준비하여 가면 왠지 모르게 든든하고 잘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더 많이 의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도 원고 중심의 설교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런 모습을 많이 본다.
설교원고가 없으면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에 노회 학생지도부장을 맡으면서 중고등부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사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다.
노회의 여러 목사님께 강의를 부탁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준비한 영상이 제대로 출현되지 않는 것이다.
세미나를 진행하는 교회에서 아무리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고, 강의는 강의대로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목사님들이라면 자신이 설교할 내용이나 강의할 내용을 이미 숙지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원고가 없더라도, 영상 노출이 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설교나 강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 모로 부족한 목사인 저는 설교원고, 강의원고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그러나 막상 설교할 때나 강의할 때는 설교원고, 강의안 없이 프리하게, 자유롭게 한다.


결국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다면 말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드러날 수 있는 믿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빈털터리로 전도여행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믿음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은 실제적인 것이다.
신앙인들은 머리로만,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인들은 온 몸으로, 온 인격으로 삼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온 몸으로, 온 맘으로, 온 영으로, 온 인격으로, 온 피부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느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머물다가 떠나라고 하시는 예수님.


4절에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신다.
여행하는 중에 하룻밤을 묵으면서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마을에서 그래도 있어 보이고 좋아 보이는 집, 뭔가 대접을 받아도 좋은 것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집을 골라서 그 집으로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손님을 영접하려고 하는 집이 있다면 그 집이 좋고 나쁨을 헤아리지 말고, 그 집의 형편이 어떠한지를 따지지 말고 그 집에서 머물다가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그 집에 들어가면서 그 집에 하나님의 평강이, 여호와의 샬롬이 임재하기를 소망하며 축복을 빌어주면서 그 집에서 베푸는 섬김을 받고 그 집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중동 지역의 문화에는 어떤 나그네가 찾아오면 어디서 오셨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언제 가실 것인지, 어디로 가실 것인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묻지 말고 그 나그네가 원할 때까지 숙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정서가 존재한다.
그런 정서에 따라서 제자들이 어느 마을에 전도하기 위해서 찾아갔을 때, 그 마을 주민들은 제자들을 영접하고 제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럴 때에 제자들은 자신들을 영접해 준 그 집을 위해서 하나님의 평강이, 하나님의 샬롬이 임재할 수 있도록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머물다가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지금이야 그런 문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전에는 찾아오신 손님에게는 반드시 무언가를 먹이고 보내야 한다는 정서가 있었다.
시골에 가면 아직도 이런 정서가 남아 있기도 하다.
지금이야 어디서든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저가 어릴 때에만 해도 나그네가 하룻밤을 묵었던 집에서 아침밥을 얻어먹지 못하면 하루 종일 굶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꼭 아침밥을 챙겨 먹이고 보냈던 문화가 있었다.
전에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다는 정서가 중동지역에서도 있었던 문화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느 집이든 그 집에 머물다가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입히고 먹이고 재워주신다는 실제적인 믿음의 현장으로 제자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전도자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오직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시고 때에 따라서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설령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으면 굶으면 되는 것이고, 주무실 곳이 없으면 길거리에서, 광야에서 자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던 그 경험을 자신들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고 고백하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증거를 삼으라고 하시는 예수님.


5절에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라고 말씀하신다.
어느 마을로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전도자를 받아주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적대시하고 대적하고 쫓아내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영접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말고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께서 찾아가셨는데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면서 쫓아낸 나사렛동네, 거라사인의 땅에는 더 이상 찾아가지 않으셨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만약에 어느 마을에 찾아갔는데 거절하고 대적하는 이들이 있다면 미련없이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미련없이 떠날 때에 발에 묻은 먼지까지 떨어내면서 증거를 삼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전도자가 찾아갔는데도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는 이들이 있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그곳에 있는 무리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시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말고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보내주셨는데도 전도자를 거절하여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아야 하는 마을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시면서 험한 세상으로 제자들을 보내신다.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애타 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마음 졸이고 애타 하면서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셨으리라 믿는다.
예수님의 염려 속에 제자들은 각자 각 마을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하여 전하신다.
병든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쳐주신다.
귀신 들린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어 주신다.
불구자들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불구자들, 소경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주시고 온전한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신다.
빈털터리 거지꼴로 전도여행을 떠나서 직접 하나님께서 임혀주시고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고 건져주시고 구해 주시고 막아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직접 자신들의 온 몸으로 인지하고 느끼고 고백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순종하니까 거기에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불순종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자들이 순종함으로 자신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도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사역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고백하고 증거하는 사역자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L4 & B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을 선포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꿈꾸고 계시는 구원의 세계를 이 땅 위에 조금이라도 실현해 나가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능력과 재능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친히 채워주시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하여 이루고 싶어하시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와 계획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각각 마을과 촌으로 찾아가서 예수님께서 보내신 목적을 따라서 복음을 전하고 각종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고, 불구자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원의 모습들을 실현해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와 권위를 부여해 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확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을 부르시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여 구원받은 신앙인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 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어떤 목적과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케 하시려고 직분을 맡겨주신다.


교회의 직분은 세상의 직업이나 계급이 아니다.
교회에는 목사님, 강도사님, 전도사님이라는 목회자 그룹이 있다.
목사님도 원로목사, 은퇴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행정목사, 교육목사, 음악목사, 선교목사, 협동목사, 사모님 등등 다양하게 분류된다.
또한 교회에는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서리집사님, 권찰님, 교사님, 찬양대원, 관리원, 주차원, 식사대원 등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케 하는 평신도그룹이 있다.
목회자그룹이 되었든, 평신도그룹이 되었든 교회의 직분은 절대로 계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계층이 있지만, 계급의식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서로 협력하기 위한 직분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하는 한 몸과 같다.
온전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장육부가 온전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하듯이 교회의 직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 따라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교회라는 거룩한 신앙공동체가 온전해지는 것이다.
직분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의무가 있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직분은 순전히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가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기 위한 직분이다.
신앙인들은 온전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 직분을 세우고 그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음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셨다는 믿음으로 순종하면 된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은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세상의 일도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고 그 일을 하라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일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직분자에게는 다 공급해 주시면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자신이 맡은 직분에 걸맞게 그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건강도, 물질도, 인간관계도 이끌어주신다는 확신하는 믿음으로 순종하면 된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교회의 직분자는 삼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라야 한다.
교회의 직분자는 삼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서는 학식이 너무나 뛰어난 대학교수요 큰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이요 사장이요 어떤 일이든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은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일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을 만남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직분자는 반드시 삼위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충만한 은혜를 입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고 배우고 지키고 순종하는 믿음의 삶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돌아설 때에는 미련없이 돌아설 수 있는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아무리 그 직분을 맡기려고 해도 본인이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더 이상 그에게 그 직분을 맡으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이 거절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려는 은혜와 축복을 스스로 거절한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직분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맡겨야 하는 것이다.
기회는 항상 자신을 향하여 달려오는 것이 아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향하여 기회가 달려올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다.
모든 것들은 자연적인 순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 직분을 맡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거절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던 은혜와 축복은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직분이든, 어떤 사명이든, 어떤 사역이든 자신에게 맡겨주시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 직분과 사명과 사역을 맡겨주시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믿음으로 아멘하면서 수용하고 그 직분을 맡아서 충성스럽게 감당하면 그에 합당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거절하는 이에게 더 이상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이에게 그에 합당한 은혜와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가기 위해서 세워주신 신앙인들의 직분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모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넘치게 받으면서 신앙생활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