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시74:17-21)
궁극이추천 1조회 3726.05.03 08:14댓글 0
74편 17절-21절: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언약을 돌아보소서 대저 땅 흑암한 곳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였나이다 학대받은 자로 부끄러이 돌아가게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주의 이름을 찬송케 하소서.
17절: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 땅의 경계는 지방이라든지 나라라든지 표시가 나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경계는 눈에 보이느냐? 하나님께서 눈에 안 보이는 계절의 경계를 만들어 놓으셨다. 신비스럽다. 우리나라는 사시사철의 경계가 뚜렷하지만 물질세계, 지구 땅에는 사시사철의 경계가 없는 곳도 있다. 일 년 내내 여름만 있는 곳도 있고, 겨울만 있는 곳도 있고, 봄만 있는 곳도 있다. 짐승은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씩 털갈이를 한다. 이런 게 다 우리들에게 이룰구원의 이치를 알려준다.
인간에게는 안 믿는 사람들의 정신 사상의 경계가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의 정신적 사상의 경계가 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경계의 라인이 있고, 악령이 역사할 수밖에 없는 경계가 있다. 이걸 생각해 보았느냐? 이걸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영리하고 똑똑하고 영의 사람이다. 그런데 보통 보면 이렇게 생각을 안 하고 있고, 못하고 있다. 성경에는 이런 것을 깨닫도록 밝혀놓았다. 그러면 이 땅에 경계가 있는 것이 좋겠느냐, 없는 것이 좋겠느냐?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겨울 쪽에 가서 살면 좋고,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름 쪽에 가서 살면 좋다. 이 두 사람을 함께 묶어놓으면 같이 못 산다. 힘이 든다. 취미가 서로 다를지라도 살고자 하면 같이 사는 거지만, 예를 들면 남편은 낚시를 좋아하고 아내는 집에 있기를 좋아해서 남편이 맨날 낚시하러 가서 자고 들어오면 집에 있는 아내는 만고 심심하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기후변화에 잘 순응하고 대처하며 살아야 한다. 기후변화는 하나님께서 법칙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잘 이용을 하면 많은 소득을 얻게 되지만 모르거나 거역을 하면 고통을 당하고 자기만 죽는다. 장사꾼들은 기후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올 여름은 엄청나게 덥다더라’ 하면 미리 시원한 옷을 만들어서 팔고,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다’ 라고 하면 따뜻한 옷을 미리 만들어서 팔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신분과 위치와 인류에 대한 책임을 알아라. 이걸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을 이 땅에서 다 데리고 가면 세상은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께서 네 존재를 어떤 소원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네가 그렇게 사느냐? 에라, 다 쓸어버리겠다’ 이게 있는 거다. 그러니 예수를 믿으면서 안 믿는 사람이나 이방 종교인처럼 살지 말아라. 그리고 타 교인처럼 살지도 말아라. 우리의 수준은 그 수준이 아니다.
우리교인이 타 교인과 같은 생각으로 믿는다면 다른 사람은 앞으로 계속 뛰고 있는데 자기는 뒤처지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뒤처지는 상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뭘 받을 수 있겠느냐? 무슨 기도가 상달이 되겠으며 무슨 은혜를 받겠느냐? 집에서도 예를 들면 좋은 부모님의 명령을 거스르면 그 자식이 부모로부터 무슨 혜택을 받겠느냐? 이치는 그와 같다.
개미를 보면 여름 내내 준비를 해서 겨울을 잘 지낸다. 우리 인간들도 사시사철을 잘 이용하면 봄에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자라고, 가을에 여물고 거두어서 겨울을 잘 지날 수 있다. 신앙 면에서도 환난이라는 겨울이 오기 전에 진리이치의 교훈을 받아서 자기 인격화 시키고 능력화 시켜야 한다. 외부적으로 조용하고 큰 사건이나 환난이 없을 때 일상생활 면도 그렇고 신앙 면도 그렇고 미리 준비를 해야지 게을리 있다가는 환난의 때를 못 이긴다. 환난은 너에게 필연적으로 온다. 이 때 어떤 사람은 그 환난에서 꺾어지고, 어떤 사람은 이기고 나간다. 이것은 평소에 자기 안에서 만들어진 대로 그대로 결과로 나타나는 거다.
미리 준비를 하지 못하면 육신의 생활 때문에 신앙정조를 팔기 마련이다. 신앙싸움은 배짱으로 이기지 못한다. 진리이치 도덕이치 생명이치를 많이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무장화 되어 있어야 이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현재에서 자기의 신앙실력을 닦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은 미래가 없다.
18절: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비방’이란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거다. 어떤 사람이 주를 깎아내리느냐? 1. 이스라엘과 같이 있는 이방인들이 주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말을 한다. 성도가 조금만 실수를 하면 ‘이 때다’ 하고 비꼬고 헐뜯고 깎아내린다. 그러니 예수 믿는 자기는 안 믿는 사람과 친구를 삼지 말아라. 친구는 뜻이 같고, 사상이 같아야 한다. 뜻이 다른 데도 같이 있으면 결국은 자기에게 비방이 돌아오게 되어 있고,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다.
2. 자기 주관성이 강한 이방인들은 교만해서 주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말을 잘 한다. 예수를 안 믿으면서 왜 그러느냐? 자기가 어떤 배경이나 재산이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 이런 짓을 한다.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은 자기 배경이 든든하다는 거다. 그러나 아무리 배경이 있어도 바람 불면 다 날아갈 거고 불타버릴 거다. 3.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있는 자기의 소원을 안 들어주면 악이 나서 하나님을 저주하며 욕을 한다.
4.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핍박한다. 그들 속의 죄를 지적하니 핍박을 한다. 죄를 지적해 주면, 하나님 앞에 비뚤어진 것을 지적해 주면 핍박을 한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중심 속에 있는 죄를 지적해 주면 바로 서려고 회개를 하고 기도를 한다. 못 고치는 사람은 핍박을 하고 헐뜯고 떨어져 나간다. 5.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나갈 때 모세를 반역하는 자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가면서도 하나님을 비방을 하고 모세를 헐뜯었다. 6. 주의 사도들이 전도를 할 때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이들을 헐뜯고 비방하고 핍박을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유형교회의 안과 밖에서 안 믿는 자들과 믿는 자들이 주를 비방하고 헐뜯고 원수 짓을 하는 자들이 많다. 사단 마귀 짓을 하는 자들이 많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멀리 하고 세상을 자랑하며 이룰구원을 망하게 하는 자는 다 주의 원수이고 성도의 원수다. 성도의 원수는 주님의 원수다. 우리는 이런 원수관을 가져야 한다.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우매한 자’란 어리석어서 사리판단을 못하는 사람이고, ‘능욕’이란 사람을 업신여겨서 욕을 보게 하는 거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말에 잘 넘어간다. 실컷 이용당하다가 걷어차인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속아 넘어가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은 걷어차이고도 모른다.
영적인 면에서 우매한 사람은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을 구별을 못한다. 신앙 면에서 우매한 사람은 신령한 정신과 물질소원 목적적인 정신을 구별을 못하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구별을 못하고, 하나님과 돌부처를 구별을 못한다. 우매한 사람은 비진리적 이질적인 자들이 주를 능욕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그 속에 들어가서 자기가 뭐나 되는 것처럼 착각 속에서 그들과 같이 주를 능욕하는 일을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어리석고 미련하고 우매한 사람이 많다. 이런 목사가 많다.
19절: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멧비둘기란 산비둘기를 말하는데, 이 멧비둘기는 강한 짐승에게 잘 잡아먹히는 연약한 새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가난한 자의 속제물이기도 하다. 분문의 내용상 산비둘기는 맹수들에게 노출이 되어 있는 연약한 성도들을 의미한다.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악한 세상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연약한 성도들을 보호해 달라는 거다.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이 말씀은 가난한 자의 목숨만 귀하고 부자의 목숨은 귀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면에서 가난성을 말한다. 즉 주의 말씀에 가난성을 느끼면서 항상 주의 은혜를 갈급적으로 사모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 이게 주의 가난한 자다. 세상사람들이 가난한 자라고 할 때는 물질성적 의미로 말을 하는데, 여기서는 ‘주의 가난한 자’ 라고 했으니까 말씀에 갈급해서 은혜를 사모하는 자를 말한다.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라고 하는 것은 성도의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니, 죄악과 유혹이 아무리 난무한 세상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 바로 살겠다는 성도를 긍휼히 보시고 버리지 말고 지키고 보호해 달라는 거다. 영 위주로 사는 이런 성도는 육신의 목숨도 참으로 귀한 거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육 위주로 산다면 그 육신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 이룰구원을 안 이루고 날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거다. 이렇게 되면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이 취급을 해 버린다. 우리는 복음 때문에 받는 환난 핍박과, 자기가 미련해서 받는 환난 핍박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20절: ‘언약을 돌아보소서. 대저 땅 흑암한 곳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였나이다.’ 언약은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우리 언약합시다’ 라고 해서 맺은 언약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이 쌍방 간에 합의를 해 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이 충만하셔서 당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로 당신의 나라를 당신과 함께 누리게 하려고 당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을 한 거다.
대표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도 그 언약의 효력이 있는 약속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정착한 가나안 땅을 그 후손들에게도 영원한 기업으로 주기로 되어 있었다. 이 약속을 한 후에 약 500년이 지난 후에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을 정복해서 다윗의 통치 때까지 약 500년을 살았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 후 약 천 년이 지나면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나고,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나고, 야곱의 아들 중에 요셉의 사건이 있었고, 그 후에 모세의 사건이 있었고, 애굽탈출 사건이 있었고, 또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분배가 있었다.
그 후에 사사시대가 있은 후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있었고, 그 다음에 다윗이 왕이 되었고, 그 후에 솔로몬 왕 이후에 나라가 나누어지고, 그 후에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먹히고, 남조유다는 바벨론에게 먹히고, 약 천 년이 지난 후에 메시아가 왔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세의 성경을 가지고도 영의 눈이 멀어서 메시아를 발견하기는커녕 성육신으로 오신 메시야를 죽여 버렸다. 그 후에 여전히 로마의 속국으로 지내다가 1948. 5. 15에 이스라엘이 독립을 했으나 그 땅에서는 분쟁과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축복의 땅으로 주셨는데 현실을 보면 축복의 땅이라고 할 수가 없다. 지금도 그렇다. 그 안에는 강포한 자들이 가득하다. 다윗 당시 때도 그랬다.
이것은 다 역사계시이면서 영의 눈으로 보면 이 역사계시 속에는 은밀계시가 들어있다. 영의 눈을 가지고 신앙정신 사상으로 보면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는 더러운 벌레와 곰팡이와 여러 가지 나쁜 균이 서식을 하듯이 진리이치 도덕이치 생명이치가 없는 곳에는 갖가지 혼합된 죄악성들이, 세상적 육적 종교적 사상들이 성장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저 땅 흑암한 곳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였나이다.’ ‘강포’란 완강하고 포악한 성질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이치 도덕이치 생명이치가 없는 곳은 흑암 된 곳이요, 분별이 없는 곳이요, 선악과 따먹고 나온 타락된 지식이기 때문에 죄악이 뽑히지 않고, 분별이 없는 상태로 조직을 이루고 권세를 부리며 자랐기 때문에 참으로 고쳐지기 어렵다. 이런 교회라면 거짓 교회, 거짓 선생, 거짓 인도자, 거짓 목자, 거짓 종이 되는 거다. 모두가 세상 판이다.
밭을 몇 년 묵히면 각종 잡초가 판을 친다. 각종 잡초의 뿌리가 이 밭에 정착을 하고 있다. 이 밭을 좋은 밭으로 만들어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일단을 잡초들을 불태워 버려야 한다. 불을 지르면 그 안에 사는 들쥐나 뱀이나 벌레들이 다 타서 죽고, 그 다음에 벌레들이 땅속에 까놓은 알도 타서 죽는다. 그 다음에 잡초들의 뿌리가 땅 밑에 그대로 있으니 땅을 쟁기로 뒤집어서 다 캐내야 한다. 이래야 쓸 만한 밭이 되고, 주인이 여기에 곡식을 심어서 많은 소득을 거두게 된다. 신앙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기존성을 그대로 놔두고는 안 된다. 먼저는 그 마음 밭을 하나님의 포크레인으로 뒤집어엎어야 한다. 사건이 와서 자기 속을 확 뒤집어야 한다. 둘러엎어야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지 안 그러면 마지막 날에 불속에 집어넣는다.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였나이다.’ 오늘날 거짓 교회 안에 완강하고 포악한 성질들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마귀가 얼마나 좋아하겠느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려고 우리교회에 오면 그 성질을 고치지 않는 한 못 배긴다. 고치고 않고 그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어디에 간들 환영을 하겠느냐?
21절: ‘학대받은 자로 부끄러이 돌아가게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주의 이름을 찬송케 하소서.’ 왜 포학자들에게 학대를 받은 거냐? 거룩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믿는 믿음으로 자타의 구원을 위해 진리를 증거하고 살면서 악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니 세력이 큰 그들로부터 학대를 받은 거다. 그런가 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 교회나 들어가서 이용만 당하고 큰 피해를 보고 나오는 자들이 많은데, 이런 자들을 도와주셔서 헛 믿게 하지 마시고 영능의 실력자로 만들어 달라는 거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교회에 들어가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면서 믿음이 있는 것처럼 하다가 무슨 일로 해서 싸우고 마음이 상해서 그 교회를 나와서 다른 교회에 나갔는데, 이런 사람이 이 교회에서 ‘나 죽었소’ 하고 조용히 있겠느냐? ‘내가 그 전의 교회에서 이런 이런 직분을 맡았었고, 이런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고 자랑을 하면 그 교회에서 그 말을 듣고 어떤 직책을 맡기면 옛날의 기분이 되살아나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겠는데, 문제는 이미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직분과 직책을 다 맡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자기가 맡은 자리를 빼앗기려고 하겠느냐? 그래서 자기에게 직책을 안 맡기면 이 교회에 어떻게 정이 들겠느냐? 그러니 늘 겉에서 빙빙 돌게 된다.
어느 교회에 가도 이런 식이 되면 이 교회에 가도 바람을 맞고, 저 교회에 가도 바람을 맞고, 제 마음에도 안 맞고, 교인들이 자기를 올려주지도 않고 하니까 바람이 빠진 것처럼 된다. 이런 사람을 그런 자로 살지 않게 하고, 속지 않게 하고, 이용당하지 않게 해 주려고, 바로 세워주려고 말을 하면 안 듣는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주의 이름을 찬송케 하소서.’ 하나님의 것에 대해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에 대하여 감사 찬송이 되게 하려면 하나님의 것으로 부요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본구원을 주신 것으로 만족지 않고 이룰구원 성화구원의 부요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믿음의 부요자를 원하신다. 물질적인 가난과 궁핍 자체가 뭐가 좋아서 찬송이 되겠느냐? 말씀에 충만자 부요자로 되어야 찬송이 되는 거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부요자 충만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프면 노래가 나오느냐? 배가 불러야 노래가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야, 말씀에 충만해야 찬송이 나오는 거다. 이제 이해가 되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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