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말씀을 듣고 지키어 복있는 사람이 되어봐요 = 누가복음11;23-28(260503)

열려라 에바다 2026. 4. 30. 12:42

말씀을 듣고 지키어 복있는 사람이 되어봐요 = 누가복음11;23-28(260503)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2326.04.30 07:08댓글 1

 

PW : 믿음           BIW : 말씀을 듣고 지키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1 달러의 바이올린이 5000 달러에 팔린 이야기


수년 전 미국의 유명한 경매장에서 어떤 부유한 사업가의 재산에 대한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경매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지친 경매인은 먼지를 뒤집어쓴 통에 든 퇴색한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비웃듯이 말을 꺼냅니다.
이건 얼마나 나갈까요? 100달러,,, 없으십니까! 75달러면 어떨까요?...50달러!--- 25달러!... 5달러.... 단돈 1달러에 사실 분 없습니까?”
경매인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바이올린을 팔기 위해서 가격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뭐하러 사나. 사봐야 쓰레기가 될 것이 뻔한데 왜 사느냐고 비웃습니다.
이때 갑자기 누가 쉬고 갈라진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실례해도 괜찮을까요.”
허리가 굽은 노인이 경매인 앞으로 걸어 나와서 창백하고 마른 손으로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습니다.
노인은 청중에게 등을 돌린 채로 바이올린의 각 현을 퉁겨보고 익숙하게 조율을 마쳤습니다.
천천히 몸을 돌린 노인은 손짓으로 청중을 조용하라고 시키고 턱 아래에 바이올린을 살짝 끼운 후에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우면서도 투명한 선율이 방안을 울리기 시작합니다.
놀라움에 젖은 청중은 마치 천성의 화음 같은 노인의 연주를 꼼짝도 하지 않고 듣고 있었습니다.
예정에도 없던 훌륭한 바이올린 독주가 끝나자 모두 환호하며 일어서서 노인에게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노인은 정중히 답례하고 경매인에게 바이올린을 돌려준 후에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방에서 나가 버렸습니다.
바이올리스트로서 예술가였던 노인은 명품인 바이올린이 터무니없는 값으로 경매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면에 미소를 띈 경매인은 아까 그 낡은 바이올린을 높이 지켜 들고 웅성거리는 청중에게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 이 놀라운 명품은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저기 모자를 쓰신 신사께서 1000달러를 부르셨습니다.
앞줄의 숙녀께서 2000달러를 부르셨군요! 다시 신사분 3000달러라고 하셨습니다!
4000달러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5000달러? 나왔습니다. 아아아아!! 하나. . ! 오천달러에 팔렸습니다!”
1달러에도 팔리지 않던 바이올린이 노인의 연주 하나로 최상의 가치를 지닌 탁월한 바이올린으로 인정받아서 5000달러에 팔린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이런 존재입니다.
누가 봐도 어쩌면 1달러도 받지 못할 것 같은 우리들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연주하게 되면 5000달러가 아니라 수천억 달러의 값어치를 지닌 몸값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몸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으세요.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전의 사람, 희망의 사람,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연주해 낼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흘리신 피의 값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도 이런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누가 뭐라 해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의 말씀이라는 영의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한다.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영의 양식을 풍족하게 받아먹어야 영의 힘을 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의 양식을 풍족하게 먹고, 아울러 기도와 찬양과 섬김과 봉사하며 살아갈 때, 자기 자신에게나 하나님께나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전해 주고 계시는가?
오늘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전해 주고 싶어 하시는 말씀은 어떤 말씀일까?


D4.


 누가 예수님의 편인가를 정리하신 예수님.


2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자,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요 예수님을 헤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곧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편이지만, 그렇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하지도 않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사사건건 조목조목 따지고 트집 잡고 시비 걸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편이 아니라고 정리하시는 것이다
그 당시에 난다긴다하는 대부분의 지도자들, 상류층들, 장로들이라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면서 사사건건 예수님의 반대편이 된다.


신앙인들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니까 당연히 예수님의 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편에 서 있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면 전혀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보이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신앙인들은 자타가 인정하고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충실한 일꾼이요 조력자요 동역자이다.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목사님의 목회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협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감동받은 말씀을 부여잡고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사람이다.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편에 서 있다면, 예수님께서도 신앙인의 편에 서서 신앙인들의 도움처가 되어 주시고, 방패막이가 되어 주시고, 결코 변하지 않는 바위가 되어 주시고, 양 떼들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의의 길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 가신다.


 마귀에게 빈틈을 주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예화로 사용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24-26절에서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더러운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서 지내다가 뭐가 못마땅했는지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는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면서 자기들이 들어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하게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본래 자신이 머물던 사람에게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 집은 이미 깨끗하게 청소하고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귀신은 자신보다 더 힘이 세고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그 사람에게로 들어가서 차지하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귀신 하나도 감당할 수 없는데, 더욱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갔으니 얼마나 더 악해지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몇 가지 묵상한다면


 귀신은 나갔다 들어갔다 왕래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의든 타의든 귀신은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귀신이 누군가에게 들어갔다면 영원히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가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나갔다면 영원히 나간 것이 아니라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어 나가게 하였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전보다 더 악한 존재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귀신은 물 없는 곳을 찾아다닌다.


성경에서 물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진 중동 지역에는 물이란 아주 귀한 것이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여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물이란 단어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귀신이 물 없는 곳을 찾아다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귀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는 곳을 좋아하고 그런 곳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귀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루시퍼 천사장과 함께 쫓겨난 천사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존재이다.
어쩌면 귀신이란 존재는 하나님과는 상극이다.
귀신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는 절대로 찾아가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간다면 악한 영들이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아간다면 악한 영들이 머물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귀신은 자신이 머물던 곳을 그리워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머물던 사람에게서 나간 귀신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자신이 왕처럼 머물렀던 곳, 자신이 무엇이든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던 곳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시 들어가서 머물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귀신에 들렸던 이력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 귀신이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귀신이 다시 찾아올 수 없도록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빈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려고 하면 별도의 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라는 빈 틈을 하나님의 은혜로 한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간을 하나님의 은혜로 한가득 채우지 못하면 물 없는 곳,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을 찾던 귀신이 다시 들어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사탄, 어둠의 영들에게 조금의 빈틈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365, 24시간, 60분 내내 악한 영들이 다시 접근할 수 없도록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은혜로 채워놓아야 가득가득 채워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에게는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주어서는 안 된다.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은 대적하고 쫓아내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다.
조금의 타협이나 양보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다.


 더 악해질 수 있다.


귀신이 본래 자기가 들어가 있던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왔는데, 깨끗하게 수리가 되어 있고, 정리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자신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고 한다.
귀신이 하나가 들어가 있을 때에도 너무나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했었는데, 전에 있었던 귀신보다도 더 악한 귀신들, 더 높은 상위 계층의 귀신들이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왔다면 전에 살았던 삶보다 더 악해지고 그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25절에서 말씀하시는 청소되고 수리되었다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
이 사람은 본래 귀신에 들렸던 사람이다.
귀신에 들렸던 사람인데 잠시동안 귀신이 나간 것이다.
귀신이 잠시 나가 있는 동안에 청소가 되고 수리가 되었다면 어떤 의미일까?
귀신이 나간 그 사이에 이 사람은 잠시 동안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이 사람은 잠시 교회도 다니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들었다는 의미이다.
잠시동안 하나님의 은혜라는 그늘 아래 있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상태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하게 자리 잡았다면 귀신은 다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라는 맛은 보았지만, 완전하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다에 푹 빠지지는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럭저럭 교회에만 들락날락하는 모습이다.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모습이다.
교회에만 들락날락하면서 신앙 생활한다고 생각하는데, 귀신이 들어오지 않으면 감사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본문에서처럼 귀신이 다시 찾아 들어오면 영락없이 사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믿음 생활, 교회 생활을 하다가 이단에 빠진 이들이 이런 모습이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했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영 아니올시다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둠의 세력들이 이단의 영에 사로잡힌 이들을 보내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악의 다리를 건너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귀신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일곱 귀신들이 더 합세하여 들어갔으니 얼마나 악독한 사람으로 뒤바뀌는지,
그야말로 지독한 악의 사람으로 탈바꿈하여 몹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귀신들도 연합할 수 있는 존재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 근처에 있는 가다라 지방, 거라사 지방으로 건너갔는데, 군대귀신에 걸린 한 사람을 만나서 귀신을 쫓아내고 2000여 마리의 돼지 떼가 몰살당한 사건이 있었다.
군대 귀신은 레기온(Legion)이라고 한다.
레기온이라는 용어는 군사용어로 군단을 의미한다.
오늘날 군단은 3개 사단을 묶어서 하나의 군단을 형성한다.
한 군단에는 대략 적으면 10000명에서 많으면 80000명에 해당하는 병사들로 구성한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제국 시대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한 군단을 대략 5000여 명의 병사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무덤가에 있는 귀신 들린 사람은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5000여 귀신에 사로잡혔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에게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귀신들, 5000여 귀신들이 들어갔다는 것은 귀신들도 연합한다는 의미이다.
오늘 본문에는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왔기 때문에 여덟 귀신이 한 사람에게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군대 귀신이 연합하여 한 사람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여덟 귀신이 연합하여 한 사람에게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귀신들이 연합하여 한 사람에게 들어갔기 때문에 이 사람은 사람은 사람이로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악한 영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넘어뜨리려고 한다.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을 못하게 만들고, 볼 수 없도록 만들었던 귀신을 쫓아냄으로써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시작한 말씀이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도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피 터지게 싸워서 상급 귀신이 하급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합하여 거대한 영적인 세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5000여 귀신들이 연합하든, 여덟 귀신이 연합하든, 귀신 하나가 되었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결국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 자체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상급 귀신을 불러와서 하급 귀신을 쫓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급 귀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귀신의 왕이라고 불리는 바알세불이 되었든, 마귀가 되었든, 사탄이 되었든, 용왕이 되었든, 옥황상제가 되었든 어떤 악한 영이라도 모조리 쫓아낼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하나님, 엘로힘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대상이신 삼위 하나님은 결코 약하신 분이 아니다.
위대하신 분이다. 전능하신 분이다.
신앙인들은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어떤 영적인 존재가 되었든, 권세가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고 쫓아낼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분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결코 나약해지거나 기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두 어깨에 힘을 팍팍 주고 당당하게 살아도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인데 뭐가 무섭고 두렵고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되겠는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직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힘을 주어서 어깨를 펴고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온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권력과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요 구세주요 메시야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신앙인들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이다.


L4 & B4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옆에 듣던 어떤 여인이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소리친다.
여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낳고 키운 여인이 놀라운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여인은 예수님을 낳아 키운 여인이 나사렛의 마리아라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여인은 예수님을 낳아서 젖을 물린 여인이 마리아 여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 자식도 저런 위대한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여인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엄청나게 은혜받고 감동을 받았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낳아서 젖을 물린 어머니가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 하늘의 신령한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그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령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복된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그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이들과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말씀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복을 받는 사람, 복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에서 누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복이 넘친다고 말씀하신다.
창세기 1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22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한결같이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신령한 축복으로 채워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목사로서 삼위 하나님과 성경을 믿고 지키고 순종하는 신앙 생활하는 저를 비롯하여 모든 신앙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예비해 놓으신 모든 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받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저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다 받아 누렸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신앙인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복을 받으려고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하고, 지켜야 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악한 영들과의 싸움, 죄악과의 싸움, 온갖 고난과 시험과 역경과 환난과 핍박과 박해와의 싸움에서 당당하게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누누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맺은 약속도 아주 쉽게 손바닥 뒤짚듯이 약속한 것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 맺은 언약을 몇 백 년이 훌쩍 지나갔어도 결코 잊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지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비롯한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늘의 놀라운 보고를 활짝 열어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의 복과 세상에서 누릴 복을 주시는 분이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복을 주시는가?
다른 말 할 것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예비해 놓으신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