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어버이주일설교-함께 가겠습니다.(룻1:6-18)

열려라 에바다 2026. 5. 8. 12:45

어머니와 함께 가겠습니다.룻기 1:6-18

권호만barnabak추천 0조회 4226.05.08 10:06댓글 1

 

성경 66권 가운데 여자이름으로 명명된 책이 2권 있습니다.

에스더와 룻기입니다. 에스더와 룻은 같은 여자지만 많은 차이가 있는 이름입니다.

에스더는 유대여자이고 룻은 이방여인입니다.

에스더는 왕후의 높은 지위로 유대민족을 구원하는 큰일을 했지만 룻은 이름 없는 모압 여인이었고 크게 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저 시어머니를 따라 유대 땅으로 와서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기를 낳은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에스더와 함께 룻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학자들은 그 이유를 보통 3가지로 설명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알려주기 위함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보아스를 통해 구속자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기 위함이고

셋째는, 인간은 왜 구속자가 필요한지를 설명하려는 신학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이 다 합당하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신학적인 설명보다는 가장 단순하고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공경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룻기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제5계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생생한 이야기입니다.

 

룻이 나오미 가정의 일원이 된 것은 그 가정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의 흉년을 피하여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아들 둘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두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게 되는데요,

잘 살아보자는 결심으로 모압으로 이사를 하는 큰 모험을 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일찍 죽었고 모압에 거한지 10년이 지난 후 두 아들마저 자식들도 없이 젊은 부인들을 두고 이방 땅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여자 세 명, 과부 세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어렵고 힘들면 나를 마라라 부르라고 했을까요? 마라는 쓰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죽고 싶은 마음만 들지 않았겠습니까?

나오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면서 두 며느리에게 자기를 떠나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자기를 따라와 봐야 별 희망이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친정으로 돌아가 다시 새롭게 출발할 것을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그 권면을 따라 큰 며느리는 친정으로 돌아가고 작은 며느리는 그럼에도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따른다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 한 권면은 진심어린 권면이었고 당시의 형편을 볼 때 이치에 맞는 권면이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갈 때 그들에게 닥치는 현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당시 룻이 유대 땅에서 할 수 있는 결혼은 계대결혼이었습니다.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후손을 잇게 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룻에게는 시동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재혼하여 아들을 낳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계대 결혼이 아니더라도 이방 땅에서 온 과부를 누가 받아들이려고 하겠습니까?

자칫하면 결혼도 못하고 평생 과부로 지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당시 과부가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생각하면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간다는 것은 정말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둘째는, 고생과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과부로 살아가면서 과부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것은 우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대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이삭줍기정도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농사를 지어도 살기가 어려운 시절에 이삭줍기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으리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주변의 무시와 냉소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모압 땅에 가더니 남편과 아들들을 잃고 이방며느리 하나만 데리고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누가 좋게 생각하겠습니까?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힘들고 외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룻은 시어머니를 붙좇았습니다.

붙좇았다는 말은 곁에 붙음으로 더 가까이하고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하면서 5가지 다짐을 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머니를 따를 뿐 아니라 어머니를 공경하며 끝까지 효도를 하겠다는 말인데요,

오늘날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부모들의 재산이 많을 경우 그 재산이 탐나서 끝까지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재산은 다 저에게 주십시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미 살펴본 대로 이런 상황이 아닙니다.

재산도 없었습니다. 재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괄시받고 외로움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어머니를 공경하겠다고 하는 룻의 결심은 대단한 결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결단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1. 저는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룻이 유대 땅으로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큰 며느리처럼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재혼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그나마 더 지혜로운 일이었고 최선의 일이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런데 룻은 정반대의 결심을 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길로 인도함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임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도 형들에 의해 노예로 애굽에 팔려갑니다.

하루아침에 사랑받은 아들에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는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참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요셉은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전혀 애굽에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노예로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에 보내십니다. 요셉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룻도 왜 그렇게 결심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상식이하의 생각이었고 고생길로 스스로 빠져드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결심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요 은혜입니다.

이 섭리를 깨닫는 자가 진정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2. 둘째로, 룻의 이러한 결심에는 가족들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주변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나의 결심 나의 행로에는 분명 누군가 영향을 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까지에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때도 주변 사람들의 권면이나 영향을 받아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당시 엘리멜렉의 가정이 모압으로 온 것을 실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가정은 나름대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귀한가를 삶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며 이방 땅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들이 다 죽고 난 이후 나오미가 보여주었던 신앙의 모습은 룻의 마음에 큰 자취를 남겼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믿는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룻은 이 사람들을 따라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 복된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를 따라가고 공경하면서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을 끝까지 섬기며 살아가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부름에는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과 직장과 일터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한다는 말입니다.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우리가 섬기는 주님을 섬기게 하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하지 않았습니까?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여 졌습니다.(2:47)

그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자발적으로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상황이 좋고 일이 잘 될 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오미의 가정과 같이 힘들고 어렵고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때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힘들 때 더욱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 더욱 감사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절망스러울 때 더욱 믿음으로 소망으로 힘차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어버이주일입니다만 우리 부모들이 보여야 할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보여야하고 신앙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도 실제적으로 비 신앙적인 모습을 보이면 절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삶으로 행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3. 셋째로, 룻은 실제적인 모습으로 어머니를 공경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룻이 마라와 같은 시어머니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먼저는, 실제적으로 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굳이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말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은 정말 그럴듯하게 합니다. 말로는 그런 효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말로 그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룻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한 말 그대로 실천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말로만 효도하지 말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효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베들레헴에서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베들레헴에 온 후 룻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 마디로 어머니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이삭을 주울 때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어머니는 다른 밭에서 이삭을 줍지 말고 그 밭에서만 주우라고 합니다.

룻은 그 어머니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 후에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보아스 곁에 가서 누우라고 했을 때도 룻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성경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6:1)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이 부모를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합니다.

 

셋째는, 어머니를 공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룻은 어머니를 공경하기 위하여 추수하는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겠다고 합니다.

보아스가 먹을 것을 주었을 때 그것을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드립니다.

자신이 주운 이삭으로 어머니를 섬깁니다.

부모공경의 원칙 중에 하나는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주는 일입니다.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고 건강을 챙겨 드려야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요즘에 룻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상당히 격세지감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같이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효도 받는 것을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자녀들도 그런 짐을 우리에게 지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서로의 삶을 스스로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러나 부모공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폐해서도 안 됩니다.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부모공경의 정신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룻의 이야기를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효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