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에서 구원받은 신앙인이 되어봐요 = 누가복음11;29-32(260510)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1626.05.07 12:42댓글
PW : 믿음 BIW : 말씀을 듣고 지키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목사님과 과부 이야기
어느 목사님께서 젊은 과부집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목사님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과부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목사님이 암에 걸린 젊은 과부를 기도로 위로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 두 여인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서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들에게 닭털을 한 봉지씩 나눠주면서 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닭털을 날리고 돌아온 여인들에게 목사님은 다시 그 닭털을 주워 오라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가 버린 닭털을 무슨 수로 줍겠느냐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여인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나에게 용서를 구하니 용서해 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합니다. 험담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요, 둘째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며, 셋째는 그 험담의 화제가 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우리들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돌팔매질한다 한들 우리들 자신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들을 향하여 온갖 말로 욕하고 저주하고 비난한다 한들 우리들에게 돌아오는 유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의 입만 아프고 추해지고 더러워집니다. 우리의 마음만 아프고 더러울 뿐입니다.
도리어 인정사정도 없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우리의 가슴으로 따뜻하게 품고 은혜로 감싸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따뜻한 가슴을 그들에게 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교회, 성도,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전 문지방 밑에서 은혜의 물이 솟아 나와서 흘러서 강물을 이루고 바다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 역사 속에 사는 우리 교회와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교회는 곧 은혜라고 하는 말이 나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물줄기는 온 세상을 뒤덮고도 남습니다.
온 세상을 뒤덮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키고 축복하고도 남습니다.
그 축복과 회복과 변화의 주인공이 우리들 자신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통하여 그 축복의 모습이 우리 이웃들에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종종 해마다 집중호우, 폭설, 태풍, 산불, 지진, 쓰나미, 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거나 부상을 하나거나 재산의 막대한 피해당하면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가 하면 원하지 않은 전쟁이나 화재, 건물이나 시설물들이 무너지고 쓰러지면서 많은 인명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무너진 건물더미에 갇혀서 생사를 알 길이 없어서 발만 동동거리다가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돌아와서 구하게 되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이 벌어지는가.
마치 자기의 일인 양 모두가 좋아라 하지 않던가.
구원을 어떻게 실감나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마치 천재지변에서, 인재에서 생사를 알 길이 없어서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이제는 전혀 소망이 없다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는데,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구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구원이란 입에서만 떠드는 허상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구원이란 실제 인생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 중에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수 많은 사건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실제적인 이야기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유황불에 온 성이 타들어 갈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롯과 그의 두 딸의 손을 붙잡고 유황불의 심판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이 구원의 실제적인 모습이다.
2024년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추락사고로 인하여 177명이 사망하고 단 2명만 살아남았다.
2025년6월12일에 인도의 여객기가 이륙하여 30초 만에 추락하여 289명이 사망하고 영국인 남자 1명만이 살아남았다.
이 비행기에는 이런 일화가 하나 있다.
본래 이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려던 인도인 “부미 차우한”이라는 여성은 이날 휴가를 마치고 거주지인 런던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도 아메다바드의 사르다르 발라바이 파텔 국제 공항에서 런던행 에어인디아 AI171편 여객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공항으로 가는 도로가 얼마나 막히는지 너무나 교통이 혼잡하여 비행기 탑승 제한 시간이 10분 지나서야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 직원으로부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비행기가 추락하여 모두가 죽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인은 “항공기추락 소식을 듣자마자 몸 전체가 심하게 떨렸다. 정신이 순간 멍해졌다”라고 한다.
이렇게 죽음의 순간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도 있다.
종종 항공기 추락사고로 인하여 탑승객들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누가 상상이나 했던 일이겠는가?
아무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않은 일들이 실제로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한다.
인생이란 존재는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음의 길로 걸어가야만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지 않던가.
오는 것은 순서대로 오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태어나는 것은 나이대로, 생일대로 태어나는 것이지만, 이 세상을 하직하고 떠나는 것은 아무도 그 순서를 알 수 없다.
나이가 어리고 젊다고 해서 나이 많은 어르신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들이나 젊은이들보다 더 빨리 세상을 하직한다는 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누가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도 못하고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관례대로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되지 않겠나?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인명은 재천이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인생이다.
인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단축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인생이란 생명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세상으로 태어나는 것도 철저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고, 이 세상을 하직하여 떠나는 것도 철저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일찍 불러가시고 싶으시면 생각보다 더 일찍 부르심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좀 더 세상에 두고 싶어 하시면 주변 사람들이나 본인이 빨리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도 빨리 가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묵묵히 살아서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말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있다면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단 하나에 걸려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느냐 영접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없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는 것이고, 영접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수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이러니저러니 라고 하면서 이런 학설, 저런 학설을 주장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약속하신 그 약속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만 확실하게 깨달아 알고 믿는 믿음으로 살면 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믿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D4.
①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말을 못하게 만들고, 아무 것도 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귀신을 쫓아내신다.
그러자 바리새인이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서 하급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고 비난한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이적, 표적을 행해 보라.’라고 요구한다.
누가복음 11:16에서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라고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기한 표적을 구했기 때문에 표적을 구하는 이들을 책망하시기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 29-30절에서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는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서의 주인공인 요나의 표적밖에 다른 표적을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수도 서울인 니느웨성으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하지만 요나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족속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해야 할 마땅한 민족이기 때문에 니느웨성으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니느웨성으로 가야 하는 길을 포기하고, 대신 반대 방향으로 떠나게 된다.
니느웨성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던 중에 커다란 풍랑을 만나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선원들에 의해서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커다란 물고기에게 집어삼키게 된다.
요나를 집어삼킨 물고기는 3일 동안 바다를 떠돌아 다니다가 니느웨성이 가까운 곳에 요나를 토해낸다.
물고기 배에서 나온 요나는 할 수 없이 니느웨성으로 찾아가서 여러 날도 아닌 단 하루 동안 니느웨성을 다니면서 앞으로 40일이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요나의 선포를 들은 니느웨성에서는 왕을 비롯한 모든 성민들과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민들이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느웨성을 심판하려던 심판의 뜻을 거두고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여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3일 동안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나온 사건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나가 3일 동안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사건은 요나가 3일 동안 물고기 배 속에서 죽었던 사건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다시 나온 사건이 바로 요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부활한 사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나의 사건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부활할 것이라고 예고하시는 말씀이다.
요나를 통해서 보여주는 표적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 부활하는 표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나가 3일 동안 물고기 배 속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니느웨성으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니느웨성이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옴으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3일 동안 무덤에 갇혔다가 다시 살아나서 부활하심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 앞으로 회개하여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니느웨성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나의 표적은 표적 중에 표적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부활하는 것도 표적 중에 표적이라는 말씀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표적 외에 또 다른 표적이 필요할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표적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표적만한 표적을 찾을 수가 없다.
적어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신앙인들은 표적 중에 표적을 날마다 체험하고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②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31절에서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말씀하신다.
다윗 왕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솔로몬 왕은 지혜의 왕이라 불릴 만큼 지혜로 뭉쳐진 왕이다.
열왕기상 4:29-34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열왕기상 10:23-25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그들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그리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대단한 지혜를 베풀어주신다.
이에 스바 여왕이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솔로몬 왕이 가진 지혜를 직접 들어보려고 많은 대소신료들을 대동하고, 많은 예물을 준비하여 직접 예루살렘성으로 찾아온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 왕을 만나서 솔로몬 왕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말을 들으면서 감탐에 감탄을 이어간다.
열왕기상 10:3-9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어,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면서 이처럼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솔로몬 왕에게 이런 지혜를 주신 분이 바로 삼위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솔로몬 왕에게 지혜를 주신 분이 삼위 하나님 중에 한 분이신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솔로몬 왕보다 더 크고 놀라우신 분, 솔로몬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신 분, 그래서 온 중동 지역의 학자들, 왕들이 직접 솔로몬이 들려주는 지혜를 들으려고 몰려들도록 감동을 주신 분, 그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제사장들이 그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봐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할 때에 스바 여왕이 증인이 되어 악한 이 세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솔로몬 왕을 최고로 극찬했던 스바 여왕이 솔로몬왕에게 지혜를 베풀어주도록 감동을 주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최고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정죄하고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32절에서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요나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표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다른 표적을 보여주더라도 삼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스바 여왕 이야기와 요나 선지자 이야기를 통해서 선포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올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종종 심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내외를 쫓아내면서 에덴 동쪽에 두루 도는 불칼과 스랍들을 세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말씀이다.
노아 홍수 사건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바벨탑 사건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의 말씀이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기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의 대장정을 시작하면서 애굽에 내린 10재앙 사건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마르게 해던 홍해 길을 건너 때에 뒤따라 오던 애굽의 병거들을 홍해 바다에 수몰시키는 사건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이다.
시내산에서 일어난 금송아지 사건, 므리바 반석 사건, 미리암 사건, 모압과 미디안 여인 사건, 블레셋 족속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기는 사건, 북이스라엘의 멸망, 남유다의 멸망과 70년 바벨론 포로 사건 등등 수 많은 사건들이 하나님께서 진행시켜 나가시는 심판의 모습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낮 12시부터 오후3시까지 3시간 동안 온 천지가 캄캄하여 암흑의 시간이 되었던 사건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모습이다.
마태복음 24장, 25장의 말씀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히브리서 9:27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다시 올 것, 재림을 예고하시면서 승천하신 이후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심판은커녕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오신다는 증표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사람이 인생을 마감하여 죽은 이후에 지옥이든 천국이든 갈라져서 가야만 한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이렇다저렇다 하면서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천국이든, 지옥이든 갈라져 가서 영원토록 살아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죽은 이후에 삶, 사후세계는 반드시 존재하는 진리이다.
아무리 좋은 의견, 사상, 종교를 가지고 반항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예수님께서는 심판 때에 스바 여왕이나 니느웨 성민들과 같은 이들이 다시 나타나서 책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스바 여왕이나 니느웨 성민들은 본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당한 이방민족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표상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방 민족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징계, 저주, 심판을 받아서 지옥에 가야만 하는 이들을 책망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L4 & B4
그러면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받아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징계, 저주, 재앙과 같은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받아서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영접해야 한다.
구원의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칭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떠들면서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는커녕 도리어 대적하고 조롱하고 외면하고 배척하면서 예수님을 향하여 신성모독이나 하는 파렴치한 악인이라고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정말 예수님을 향하여 메시야라고, 주님이라고, 하나님이라고, 영원한 반석이요 목자라고 고백하고 죄를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는가?
요한복음 1:12-13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로마서 10:9-10에서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예수님은 나의 영원한 주님이시오 나의 영원한 하나님이시요 나의 영원한 목자입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종류의 심판을 내린다 하더라도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염려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면 어쩌나? 하면서 두렵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하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천국으로 들어가서 진정한 안식과 평강과 평안과 사랑과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심판이 오히려 좋은 일이라는 사실이다.
신앙인에게 구원받는다. 구원얻는다는 말처럼 귀한 단어는 없다.
늪이란 생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으로 우포늪이 있다.
어떤 늪은 수분이 아주 높아서 순식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깊이가 있는 늪에는 사람 하나쯤은 순식간에 머리까지 들어가 버리고, 빠져나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한다.
고사리나 이끼같은 양치식물이나 갈대는 사람의 체중으로 인해 부러지거나 밀려나면서 빠질 때는 별 저항 없이 빠지지만, 허우적거리면서 나올 때는 사람의 머리와 손에 걸려서 쉽사리 위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겉보기에는 물가의 풀밭에서 연속된 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초나 양치식물 같은 육상 식물들이 물(늪) 안쪽까지 자란 것이고 바닥이 없는 것이다.
이런 늪지대에는 물고기가 많이 살기 때문에 좋은 낚시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민물낚시를 갔다가 늪 가의 풀이 자란 땅처럼 보이는 데에 발을 잘못 딛고 빠져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종종 이렇게 위험한 늪에 빠진 사람을 건져낸 사건들을 본다.
늪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깊은 늪에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살아나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런 늪에서 빠져나와서 살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이겠는가?
종종 도박, 술, 약물, 마약, 다이어트와 같은 극단적인 것에 빠진 사람을 늪에 빠진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도박이나 술이나 마약이나 조폭이라는 늪에 빠진 인생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서 살아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얻었다면더 이상 기쁘고 좋은 일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겠는가?
구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구원이란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는 것이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음의 길로 달려가야 할 인생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은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② 날마다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요나가 니느웨 성으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을 때, 니느웨 백성들은 일제히 금식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성 백성들이 일제히 금식하며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느웨성 심판하려던 뜻과 의지를 바꾸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니느웨성 백성들이 금식하여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처럼 신앙인들의 삶은 날마다 회개하여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앙인들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개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만을 찾아가는 것이다.
회개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견고한 자신의 의지, 사상, 전통, 아집, 고집을 내려놓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채워놓는 것이다.
회개는 교만과 오만과 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옷 입는 것이다.
회개는 원죄와 자범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깨닫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은 죽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살아나고 높아지는 삶을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삶이 회개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신앙인의 참된 모습이다.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죄악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야만 했던 인생이 성령 하나님의 강권적인 감동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와 축복으로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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