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시77:14-20)
궁극이추천 0조회 4526.07.12 08:14댓글 0
77편 14절-20절: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셀라)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무리 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14절-15절: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셀라).’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기사’란 놀라운 일이다. 신비스런 일, 인간은 할 수 없고 하나님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어떤 게 놀라운 일이냐? 창세 이후로 인간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이한 사건, 인간들이 할 수 없었던 일, 인간들이 할 수 없는 일,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인간들이 이해를 못하는 상식 밖의 일, 즉 자연법칙을 어기고 일어나는 일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적과 기사를 동물계나 식물계나 인간계 할 것 없이 온 우주에 다 나타내신다. 왜 나타내시는 거냐?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를 위해 나타내시는 건데, 첫째는 말씀 순종자를 위해 역사하심이고, 두 번째는 말씀 순종자를 보호하시고 인도를 하신다 함이고, 세 번째는 세상역사는 말씀 순종자를 위해 있다 함이고, 네 번째는 말씀대로 순종하다 죽게 생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신다 함이고, 다섯 번째는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 즉 구원을 위해 영의 성질과 육의 성질을 나눈다 함이고, 여섯 번째는 악한 자를 유도를 해서 그 성질을 죽이신다 함이다. 이 모든 게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자로 만드시기 위함인데, 이 일에는 신령계와 물질계가 모두 동원이 된다. 그러니 이런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참 사람, 진리의 사람,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능력 중에 능력을 쓰시는데, 이적 기사 자체가 능력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 당신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큰 능력이고 제일 값어치 있고 좋은 거다. 그러니까 이적 기사가 큰 게 아니라 이런 것을 동원시켜서 사람을 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능력 중에 능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거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밥 먹고 배부르고 눈에 보이는 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게 아니면 못 산다고 하는 쪽으로 마음의 저울을 기울일 뿐 이런 면은 감지를 잘 못한다.
하나님이나 인간들이 아무리 신비한 능력을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의 참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소원 목적이 빠져 있다면 믿는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에게는 의미가 없는 역사가 없다. 모든 것을 인간 자기를 위해 역사하신다. 인간 자기 코에 바람이 들어가게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막으면 막는 거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숨을 쉬도록 허락이 되는 거고, 살아있을 수 있는 거다.
믿는 우리는 마음이 세상 쪽으로 예민하지 말고 세상일은 조금 놓치더라도 믿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세상에는 자고 일어나면 일이다. ‘이 일만 마치고 쉬자’ 라고 해도 자고 일어나면 또 일이 있다. 죽을 때까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쉴 날이 없다. 세상일에 신경을 쓸수록 이리 걸리고 저리 걸리고, 그럴수록 더 신경이 쓰이고 복잡한 곳이 세상이다. 우리는 조금 못 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쪽으로 신경을 쓰고 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셀라).’ ‘주의 팔’이란 주의 역사를 말한다. 팔은, 손은 일하는 손이다. ‘주의 백성’이란 야곱의 후손을 말한다. 그런데 왜 요셉도 같이 말을 했을까?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데, 다른 형제는 놔두고 왜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했다고 할까? 요셉을 말할 때 우리는 요셉의 꿈이 생각이 난다. 요셉은 부모 형제들에게 지난밤에 꿈꾼 것을 말하다가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갔지만 애굽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의 계시를 지켰다. 그리고 요셉의 후손들도 요셉의 이 꿈을 가졌다.
세상사람은 다 꿈을 꾼다. 꿈은 다른 말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상의 꿈은 결국은 다 불에 타지는 것이기 때문에 개꿈이다. 이뤘다고 해도 이뤄놓은 그것으로 얼마나 살겠느냐?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것을 자기의 희망적 소망적 생의 목표로 삼고 산다. 이것은 거기에 딱 들어앉아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이건 하나의 닭장의 삶이다. 이 안에서 아무리 빙빙 돌지라도 닭장 안일뿐이다.
사람이란 꿈을 가져야 하는데, 참 꿈을 가져야 한다. 참 꿈이 아니면 다 개꿈인데, 개꿈이란 아무리 세상에서 잘 되는 꿈이라고 해도 천국에 가면 자기 것이 없는 것은 다 개꿈이요 거짓 꿈이다. 그런 소망 그런 희망은 다 개꿈이다. 참 꿈은 영원히 자기 것으로 되고, 존귀 영광이 되고, 반드시 그것이 실현이 되는 거다. 이 참 꿈은 현재에서 만들어서 주님의 날에 실현이 된다. 기독교인 중에는 잠을 자다가 꿈꾼 것을 자주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주 못 쓴다.
요셉이 꾼 꿈에는 ‘너를 존귀 영광자로 만들어 주겠다’ 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영원히 존귀 영광자가 되는 신앙의 도리를 요셉이 애굽의 바로 왕 밑에서 총리대신이 되는 것으로 보여줬다. 또한 사람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신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학교공부를 좀 못하더라도 마음에서는 늘 성경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도덕성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능력성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온전의 정신을 가지고 살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높임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이 자타의 구원에 이용하라고 이 세상을 만든 거다.
요셉의 후손들도 요셉이 가진 꿈의 계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듯이 당신이 주신 꿈의 계시를 가진 영적 이스라엘도 구원해 내신다 함을 깨닫게 하려고 요셉의 후손들을 말하는 거다. 그러니 우리도 이런 참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게 아닌 없어질 세상 것에 미래적으로 자기의 꿈을 두고 산다면 그것을 이뤘다고 해도 그것을 천국에 가지고 가느냐? 그리고 꿈을 꾼다고 해서 그것이 다 이뤄지느냐? 이뤘다고 해도 죽고, 이루지도 못한 채 죽고, 꿈만 꾸다가 죽는다.
16절-18절: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시적인 표현인데,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이런 표현을 한 것일까?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하나님께서 성도의 구원을 위해 역사를 하실 때 물들이 ‘이 때다’ 하고 물을 크게 품어내고, 하늘의 구름도 ‘이 때다’ 하고 물을 쏟아내고, 번개도 ‘이 때다’ 하고 덩달아 땅에 내려치고, 우뢰도 ‘이 때다’ 하고 땅을 진동시킨다. 모두가 ‘이 때다’ 하며 성도의 구원을 위해 합력을 한다. 하늘에서 물을 쏟아내면, 즉 물을 품어내면 땅속에서는 물이 솟는다. 물을 품어낸다. 그러면 번개와 우뢰도 총동원이 된다. 하늘과 땅의 물들이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이 총동원이다. 마치 인격이 있는 것처럼 표현을 한 거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 나를 위해 ‘너 맛 좀 봐야 되겠다’ 라고 하시면 바다도 하늘도 같이 거드는 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동원시킨다. 이걸 믿어라. 이런 게 그냥 자연 법칙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이 안에는 나의 구원의 이치가 들어 있다. 즉 성도의 구원을 위해 이런 것들이 다 존재하는 거다.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거다.
세상만사는 세상 마지막 그날까지 거룩한 성도의 구원을 위한 역사다. 인간들이 아무리 ‘세상이 어떻고 저떻고’ 해도 성도 자기를 위한 구원역사다. 표면적인 것의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깨닫게 해 주시려는 역사가 들어있다. 성도는 건지시고 악한 자는 멸망시키시는 역사가 들어있다.
19절: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첩경’이란 무슨 일이 쉽게 이뤄지게 하는 방법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인간이 바다 속에 있는 주의 길을 어떻게 알겠느냐? 구약으로 가서 보면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앞에는 망망한 바다요, 뒤에는 애굽의 추병이다. 이 중간이 낀 이스라엘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에 빠져 죽거나 애굽에 잡혀 죽게 생겼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상황이 바로 첩경이다. ‘홍해로 가라’ 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거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 보면 죽을 길이다. 물에 빠져 죽을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꾀에 걸려들지 않고, 인간의 소원 목적대로, 세상소원 목적대로 들어가 있지를 않다. 하나님의 뜻은 딴 데 있다. 인간 자기의 뜻대로 하면 뭐가 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인간 자기 뜻대로 일이 잘 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왜냐?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한꺼번에 졸지 간에 둘러엎을 수도 있다. 마치 요나를 유도하는 것과 같다. 요나가 하나님을 떠나서 도망을 가려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마음을 살살 꾀어야 했다. 그래서 바람도 잔잔하게 하고, 배도, 선원도, 사람도 다 준비가 되어 있고, 날씨도 좋은 것 같지만 그러나 이런 것을 믿고 가다가는 광풍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다. 알고 보면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은 하나님에게 ‘이 때다’ 하고 모든 것을 동원시켜서 심판을 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다.
하나님께서 홍해로 가라고 하시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죽는 길 같지만 이스라엘의 원수를 죽이고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한 제일 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도 제일 좋은 방법이다. 이런 주의 길이 영적 이스라엘의 길이고, 영적 이스라엘의 길이 곧 주의 길이다.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제일 빠른 길이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인간들의 눈에는 제일 어렵고 죽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이 첩경이, 이 빠른 길이 안 믿어지는 것은 육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할 때는 제 멋대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다가 자기 몸에 중병이 들면 그 때서야 ‘아이고, 하나님’ 하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러니 이 길이 하나님께 돌아올 제일 빠른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하신다.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넜고, 애굽의 추병은 물속에 잠겼고, 바다는 합쳐졌다. 훗날 애굽인이 이곳에 와서 볼 때 ‘이스라엘이 이 깊고 깊은 홍해를 어떻게 건넜을까?’ 라고 하면서 그 사실이 안 믿어진다.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사람이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게 한 주의 종적을 어떻게 알겠느냐? 그런데 우리는 이게 믿어진다면 생명이 있는 믿음이다. 인간 자기가 가는 길은 자타의 이룰구원의 도리를 묻어놓은 주님의 길인데 육덩이 신앙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이 길이 안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계산방법으로는 주의 길,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로 보인다.
20절: ‘주의 백성을 무리 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모세의 형은 아론이요, 레위자손들이다. 아론은 모세의 조력자다. 이 아론은 말을 잘 했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모세의 대언자로서 바로 왕 앞에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내어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인도한 모세 한 사람만을 말하지 않고 왜 두 사람을 말을 한 것인가?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이 얼마나 반역을 하고 흩어지려고 했느냐? 앞은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는 애굽이 추격해 오는 위기에 놓여지니 반역자들이 나타났는데, 이 때 말을 잘 하는 아론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종 모세를 따르도록 했다. 이런 게 참된 조력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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