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가난한 자의 것 (사 61:1-3)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시간에 “복음은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유난히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1절에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가난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가난일까요?
여기 가난은 원문으로 보면 עָנָו (아나브, Anav), '겸손한 자, 온유한 자, 고난으로 인해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마5:3의 "심령이 가난한 자"와 같습니다. 마음의 가난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해서 항복하는 그런 마음이 없이는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1. 구원의 복음입니다.
1절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고침 자유 놓임 모두 구원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이렇게 귀한 복음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 모르고 살 때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얼마나 불행했는지, 귀신에게 사로잡혀 그 무엇하나 할 수 없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러한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청나라에서 서학(천주교)이 소개되었고, 19세기에는 만주에서 존 로스 선교사가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1885년 부활절,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감리교 선교사 아펜셀러가 인천 제물포항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러나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람만 믿습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어거스틴이 인간의 자유의지나 공로가 아닌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한 이유는 그가 그만큼 외부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에 도달해야 비로소 알곡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졌었고, 정욕과 방탕함에 매여 스스로의 의지로는 도저히 그 죄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하는 처절한 영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얼마나 무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예수 없이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성령의 복음입니다.
2-3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은 성령의 날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실질적인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사라집니다. 원수도 사라지고 저주도 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사탄이 할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합니다. 마음에 담대함과 기쁨과 찬송과 소망이 넘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 은혜를 누가 누릴까요? 시107:9에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했듯이, 사모하는 자가 받습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받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그런 갈망이 없이는 받을 수도 없고, 받아도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7:6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가치를 모르면 받아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두더지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두더지가 지렁이를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약 10시간이라고 합니다. 10시간을 넘기면 죽습니다. 밖으로 나와도 산소가 많아 1시간만에 죽습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어느 곳에 있든지 늘 찬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3. 지혜와 지식의 복음입니다.
잠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했고, 잠4:13에는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했습니다. 네 생명이라, 목숨과 같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 중 첫째와 둘째입니다.
교회에서도 다른 은사는 생략할지라도 말씀의 지혜와 지식의 은사는 생략할 수 없습니다. 설교가 없는 교회는 교회로서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지혜와 지식을 버리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회사 같으면 발전이 없으니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3:15-17에 “지혜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라” 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지혜 주시면 그 한 사람이 나라를 먹여 살릴 수도 있습니다. 세계를 먹여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면서도 왜 그렇게 지혜와 지식을 멀리하는지, 더 배우세요. 더 공부하세요. 학벌도 좋지만 한 가지라도 똑소리 나는 지식을 가져야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지식은 숨겨 놓고 비밀에 붙이지 안 가르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자기가 터득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지혜의 대왕이 된 것도 일천 번제를 드리며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마음의 바탕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사랑이 아무리 커도 그 복음은 가난한 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갈망하는 마음 가지고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온갖 아름다운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시77:14-20) (0) | 2026.07.14 |
|---|---|
|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요11:53-12:2) (0) | 2026.07.14 |
| 스크랩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마 22:35-40) (0) | 2026.07.11 |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창24:42-49) (0) | 2026.07.11 |
| 스크랩 믿음이 작은 자여 (0) | 202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