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들>
성경에서 만나봐야 할 인물이 100명 정도 있으나 그들을 다 살펴보면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
* 아담에 대해서는 창세기 3장에서 잠깐 살펴보았다.
*노아에 대해서는 노아의 600세 이전은 정보가 없다. 600세쯤 홍수 이야기를 듣고 방주를 만든다. 방주를 예비한 사람이다. 잘못가르치고 잘못 설교 하는 부분이 “그들의 날 수는 120년이 되리라” 이 부분인데 12년이란
120년 후에 홍수가 난다는 의미가 아니며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홍수 후 인간의 수명이 120년 정도로 단축되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60~70년 산다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120세까지는 건강하게 살다 죽어야 한다.
성경적인 죽음의 모습은 “수가 높고 나이가 많아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이 말씀은 모세의 이야기이다.
불신자(의사, 영양학자)들이 인간의 정보를 살펴볼 때 1220세 까지는 살아야 정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잘못 살고 있다.
120세까지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의 패턴을 바꿔주어야 한다,
노아는 당대의 완전한 자요 의인이었다.
노아의 순종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방주를 만듦으로 노아의 가족이 보전된 것이고 노아의 가족이 보존됨으로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노아 안에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야기가 노아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고 성경의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아도 자녀를 바르게 교육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혜는 그 자식을 보고 말한다”
자녀가 얼마나 바르게 살아가는 가로 그 부모가 평가된다.
노아의 자녀 셈, 함 야벳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쌓아 반역한 것을 보면 노아도 자녀교육을 잘 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은 아버지 만으로는 안된다. 어머니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교육은 별 의미가 없다. 자녀의 인격형성에 거의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어머니 다워지면 그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와 민족에 희망이 있다.
한국은 여성이 너무 빠른 시간에 악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설치고 떠들고 말많고 사치하고 결혼은 늦게하고 애기 안낳고 빨리 이혼한다.
<히브리 족장사>
1. 아브라함
믿음의 표상이요 믿음의 조상이다.
75세에 부르심을 받고 1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을 한다.
갈대아 우르가 아닌 하란에 있을 때 부름을 받았다.
어릴 때 하란에서 갈대아 우르로 옮겨가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한다.
사업이 잘 안되니까 교행으로 돌아온다. 10여년이 지난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데라가 살아 있을 때 부름을 받았다.
역사학자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브람이 우상을 때려 부수자 데라가 책망을 했다. 아브람은 우상들이 음식을 놓고 서로 싸우다가 부서졌다고 했다. 그러자 데라가 어찌 우상이 움직이냐고 한다. 그러자 아브람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우상을 만드는 것도 모두 헛되다고 했다. 아들이 이러니 사업이 망할 수 밖에...
그러니 데라의 가족은 하란으로 돌아가게 된다.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브람이 하나님을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뭇잎 하나하나 다르고 해달별이 바퀴도 없는데 합력해서 선을 이루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곡식을 주고 인간을 유익하게 하는가? 이것은 필시 뒤에서 어떤 분이 설계하시고 감독하시는 분이 있다.
자연계시를 보고 어떤 분인지 모르는 그분을 아브람은 찾은 것이다.
아무나 안믿는 시대!
진리를 찾는 아무런 근거도 없던 시대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찾은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 것이 아브라함의 위대함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단번에 응답을 한다.
성경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단번에 응답을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면서 미지의 땅으로 떠났다.
왜 부르셨는지도 몰랐다. 아브라함은 떠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다.
아브람의 사명?
하나님은 아브람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보여주시려는 의도가 있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무섭기만 한 분으로 각인 되었다. 니므롯이 선동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과 사람이 사귈 만한 분으로.. 아브라함에게 복 주시는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과정이 필요했다. 범지구적 심판이 아니라 특별히 악한 사람, 악한 지역을 선별적으로 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자 한다.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 뿐 아니라 친근히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 신실하심, 사귈만한 분이심을 보여주신다. 아브라함과 같은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진짜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았다.
그의 믿음의 수준은 한치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을 보고 전진하는 믿음이다.
사람의 이름으로 가장 창대하게 알려진 이름이 아브라함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종교에서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있다.
아브라함을 아름다운 생애를 산 사람이다. 훗날 어떤 사람이 책을 쓰도록 위대한 삶을 살았다.
100세에 얻은 독생자를 하나님께 바칠 정도로 순종한 사람이다. 사례도 없고 전례도 없던 때이다. 이로인해 하나님이 감동을 받아 하나님과 벗이 된 사람이다. 하나님과 독생자를 주고 받는 관계이다.
소유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절대 양보하는 사람이다. 목축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초장이 절대 필요하다.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하여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다.
관계에는 물질관계, 인간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다. 어느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 하나님은 항상 시험하신다.
아브라함은 언제든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쌓았다.
대단히 담력이 있는 사람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험한 땅이므로 담력이 필요하다. 또한 애굽에 내려가서 거주하려면 험한 일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데는 담력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은 십일조의 조사이다. 율법이 있기 500년 전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자원하여 십일조를 드렸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손님 접대를 잘하는 사람이다. 누구든지 집앞을 지나가면 집으로 모시고가 대접을 하였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대접했다. 이러는 중에 천사도 대접한다.
아브라함은 중보기도의 효시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그렇게 힘써 기도하는 모습! 조카 롯!
아브라함은 신실한 삶을 살았다. 충성된 삶을 살았다. 믿음의 삶을 살았다. 충성된 믿음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불신자가 아브라함의 삶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게된다. 생활선교라고 할 수 있다.
아비멜렉이 스스로 찾아와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아브라함은 사람을 기를줄 아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길리우고 연습한 자 318명! 아브라함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충성된 자가 충성된 자를 길러 낸다.
아브라함은 공짜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살 때 헷 사람에게 준가를 주고 산다. 은 400세겔은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엘람왕, 고임왕, 그돌라오멜왕 침공시 3개국 연합국을 추격전을 별여 롯과 소유물을 되찾아온다. 전리품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소돔왕에게 돌려준다. 내 손으로 일한 것, 땀으로 일해 얻은 것, 하나님께서 복주셔서 얻은것만 갖는다.
아브라함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이삭이 15~17세 때 100세에 얻은 독생자를 하나님께 바친다.
당시에 가나안 잡신들(밀곰, 몰렉)들이 아들을 바치라고 시키는 일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다. 땅의 티끌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다.
‘내가 드리면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던지 도로 만들든지 해서 다시 주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마침내 말씀(약속)대로 될 것을 믿는 믿음이었다.
믿을 수 없는 것, 바랄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이면 바라고 믿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언행신사가 방정하여 집안 모든 사람에게 모범을 보인 사람이다. 평소에 자녀교육을 잘 시켰다. 아브라함이 번제물로 이삭을 바칠 때 이삭이 순종한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고 한다. 아내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집안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게 하였고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지 반대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성경이요, 교본이요 스승이 되어 주변에서 배웠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나의 벗이요”
아브라함은 자기 고향을 떠난 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심지어 아들의 아내를 택할 때에도 본인이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낸다.
히브리서에서는 “이는 나의 나온바 본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함이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낙원은 아브라함의 품으로 일커어지고 있다. 우리가 죽으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서 영혼으로 쉬게 된다.
아브라함은 참 선교사의 모델이다. 자비량 선교를 했으며 그 땅에 묻힌다.
아브라함은 독생자를 희생하는 아픔을 가장 먼저 맛본 사람이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오고 가는 모든 세대 모든 믿는 자의 모범이 된다.
75세에 부름을 받아 100년을 하루같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다. 순종하며 섬기는 삶을 살았다. 잘 발달된 도시 하란을 떠나 척박한 땅에 살면서 나온바 본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 즉 하늘 본향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의 거룩한 삶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의 슬하로 모여든 사람이 1000여명이 넘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며 살았다.
하나님의 모든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다.
1차 시험? 물질관계와 인간관계. 2차시험? 인간관계와 하나님의 관계.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삶을 깊이 묵상하고 그를 따라 살아야 한다.
<이삭>
아브라함의 덕성을 그대로 닮았다. 존경하면 닮게 되어 있다.
범사에 아브라함처럼 행했다.
이삭은 순종과 양보의 사람이다. 땅에서 육신의 아버지를 순종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 우리의 영의 아버지를 알고 순종하면 영생한다.
이름이 이츠하크(웃긴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지 웃음으로 해결한다. 결코 다투지 않는 평화의 사람이다. 누가 싸움을 걸면 다 줘버린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죽기까지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산상수훈의 모델이 이삭의 삶이다.
이삭은 평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180세를 산다.
그랄 목자들이 우물로 시비를 붙이면 양보했다. 이렇게 거룩한 삶으로 “소유냐 존재냐?”의 문제를 해결한다.
<야곱>
야곱에 대해서는 교회에서 바르게 소개되지 않은 인물이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복받았다는 것만 강조되고 있다.
4명의 족장중에 가장 험악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야곱은 양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형과 다투었다.
그는 다투기를 좋아하고 항상 다투는 사람이었다. 험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이겨도 결국은 상처를 받는다. 이기는 것도 좋지만 안싸우는 것이 더 좋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곳마다 싸움에서 이기지만 항상 피곤하다. 쉬고 싶은 의지가 솔로몬(샬롬)이란 이름에 반영되었다.
야곱은 아주 고약한 사람이다. 형에게 장자의 명분을 산후에 형을 형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야곱과 에서는 이란 성 쌍둥이인데 체형과 성격이 전혀 달랐다.
에서는 선이 굵고 호방하고 어지간한 일로는 시비를 걸지 않는 사람이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 형의 축복을 빼앗았다. 그후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으로 피신해 간다. 밧단아름으로 피신갈 때 야곱의 나이는 70세나 되었으나 소문이 나빠 장가도 못갔다.
두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을 보내고 양떼를 위해 6년을 보낸다. 눈붙일 겨를도 없이 피곤하게 살았다.
외삼촌 라반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아내를 얻을 때도 속고 품삮도 10번이나 속는다. 라반은 원래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인데 야곱을 만난 후 이상해 졌다. 남을 속이기 좋아하는 결국 남에게 잘 속는다.
라반과 작별할 때는 야반 도주를 한다. 3일후 라반이 알고 4일을 쫓아온다. 만나기 전날 밤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 “내종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 야반 도주하는 야곱의 처신이 야곱의 아내에게나 자식들에게 좋게 안보였을 것이다. 라반과 야곱은 여갈사하두다: 돌무더기를 쌓아 사위와 장인사이에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20년전의 일이 두려워 건너지 못한다. 사람을 보내 에서의 동정을 살핀다.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듣는다. 야곱은 철야한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낸다. 야곱은 천사를 붙들고 늘어진다. “내게 축복하소서” 천사가 대퇴골이 위골되도록 차버린다. 야곱이 하도 조르니까 축복한다. 천사가 야곱의 이름을 바꿔준다. 이쉬(남자) 라엘(하나님)? 하나님을 이기는 남자라는 의미이다.
천사가 내려온 이유? 네가 밧단아람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억토록한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인도하여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그러므로 라반이나 에서가 너를 건드릴 수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건너가라 이 이야기를 해주려고 온것이었다.
잘못 알려진 부분? 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축복을 얻은 것이 아니다. 야곱의 이후의 삶을 보년 절대 축복받은 자의 삶이 아니다.
얍복강을 건너가 에서를 만난다. 에서는 20년 만에 만난 동생을 지켜주려고 하는데 야곱은 꽁무니를 빼고 에서의 호의를 거절한다.
그후 딸 디나가 세겜 성주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다.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게하고 이때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의 남자를 다 죽인다. 피냄새를 풍겼다.
소문이 않좋게 나자 야곱의 아들들이 장가를 못간다.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한다.
사랑하는 라헬이 출산 중에 죽고 베냐민만 남았다. 인생의 살맛이 없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다.
사랑하는 요셉을 잃는다. 형들이 미워하여 애굽으로 가는 대상에게 팔아버린다.
요셉이 미움을 받은 이유? 꿈 이야기 때문(곡식단 꿈, 해달별이 절하는 꿈)/ 야곱의 편애(요셉과 베냐민)로 형들의 언행이 항상 불평/ 형님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일러바침.
로샬롬: 야곱은 어디를 가도 샬롬이 안된다.
피묻은 요셉의 옷을 보고 요셉이 찢겨 죽었다고 생각한다. 침수를 폐하고 말라간다.
동생을 파는 일에 앞장을 섰던 유다가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간다. 아둘람 히라를 만나 수아의 딸과 결혼한다. 엘과 오난을 낳는다. 장자 엘은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이셨다. 차자 오난은 형수가 아들 낳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땅에 설정을 하므로 하나님께서 오난도 죽이신다. 셋째 실라를 잃을까 두려워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낸다. 유다의 아내도 죽는다. 유다는 창녀인줄 알고 회포를 풀지만 그 여인은 며느리 다말이었다, 며느리의 임신소식으로 며느리를 죽이려하지만 자신의 아이임을 알고 살려둔다. 그리고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된다.
이런 일을 겪어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회개하고 여생을 아버지께 효도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해에 흉년이 든다.
그동안 식구가 70여 명으로 불어난 야곱은 양식이 떨어져 애굽에 양식사러 10아들을 보낸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들을 만났으나 동생 베냐민이 안보이자 형들을 간첩으로 몰아간다. 형들이 간첩이 아니라고 하자 시므온을 억류하고 막내 아우를 데려오라고 한다. 형들은 동생 요셉을 팔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돌아와 아버지께 보고를 하는데 야곱은 아들들의 말을 믿지 않고 동생 1명(시므온)을 팔아 양식을 가지고 오고 돈도 주지도 않고 왔다고 생각한다. 야곱 자신이 항상 남을 속이는 사람이었기에 사실도 곧이 듣지 않는다. “너희는 나를 다 해롭게 하는 자라”
얼마 안가서 양식이 다 떨어진다.
다시 사러가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한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보낸다.
“내가 베냐민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
하나님은 야곱이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좋아하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신다.
딸, 라헬, 장자, 요셉, 돈, 베냐민.
절대 놓지 못하고 쥐고 있던 마지막 것까지 내어 놓자 기도할 수 밖에 없다. 기도문이 콱 막혔다가 기도가 회복된다.
11명의 아들이 다시 애굽에 가서 요셉 앞에 나아간다. 함께 식사를 하고 식량을 가지고 돌아오다가 야굽의 군대가 추겨해 온다. 총리가 점칠 때 스는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온다.
베냐민만 애굽에 남기려는 요셉의 의도가 있었다.
형들이 서로가 베냐민 대신에 자신이 종으로 남겠다고 애걸복걸하는 것을 바라보던 요셉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일로 4명의 아내에게서 태어난 12명의 형제들은 한 순간에 화해를 하게 된다. 요셉은 자신이 요셉임을 형들에게 밝힌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음으로 후회하지 말라 한탄하지 말라 당신들이 나를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보냈다”고 고백한다. 요셉이 아버지와 온 가족들을 애굽으로 데려오라고 한다. 베냐민과 시므온이 기쁨으로 귀환을 하고 요셉이 살아 있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있다는 말에 야곱은 기절한다.
야곱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간다. 요셉과 야곱의 감격적인 상봉이 있고 바로의 오찬에 초대된 야곱! 바로가 야곱에게 나이를 묻는다. “내 나그네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라고 고백을 한다. 바로 자기 탓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의 오그라진 솜을 펴는데 130년이 걸린 것이다. 야곱의 자아가 깨어지고 거듭나는데 13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후 17년간의 애굽 생활은 정말 신령하고 거룩하게 생활한다. 영이 맑아져 눈을 감고도 미래의 일을 다 알게 된다. 야곱의 삶이 매우 복잡하고 요란하므로 야곱을 끝으로 창세기도 함께 끝난다.
<요셉>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사람이다.
믿음이 있음으로 감옥에서도 천사를 만난 사람이다.
마음이 순수하므로 어디가도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요셉도 형님들을 원망했었다 애굽의 총리가 되고 애굽 최고의 미녀와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고 이름을 므낫세라고 한다. 므낫세란 “잊어버리자”, “잊어버리게 하시는구나”이다.
기가 막힌 날들, 서러운 날들, 억울한 사연들, 아버지 집에서 미움 받던 모든 일들이 얼마나 한이 되고 원망스러웠던지 잊고 싶었다.
나중에 베냐민을 대신하여 서로 종이 되겠다며 네명의 여인에게서 난 형들이 완전히 화목된 것을 보며 므낫세가 아니라 “기념비를 세울 일이다”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아담의 창조에서 요셉의 입관까지가 약 2300년의 세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