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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경비원이 잘 갔다오라는 말에 코 끝 시큰”

열려라 에바다 2013. 4. 30. 08:24

“北 경비원이 잘 갔다오라는 말에 코 끝 시큰”

 

 

 

“다시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합시다. 정상화될 때까지 공장을 잘 지켜주십시오.”

김병진(45) 명진화학 법인장이 27일 개성공단을 떠나며 북한 측 경비원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말이었다.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만난 김씨의 표정엔 착잡함과 피로감이 묻어났다. 북측 경비원은 떠나는 자신에게 “아쉽다. (개성공단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의류업체 이모 이사도 “북한 경비원이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며 인사하는데 코끝이 시큰했다”며 “다시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귀환자들에 따르면, 지난 3일 북한이 개성공단 조업 중단을 선언한 이후 북측 근로자들은 모두 철수했고, 북한 경비원만 공단 내에 남아 있었다. 남아 있던 우리 측 직원들은 북한 경비원들과 주로 경제 관련 얘기만 나눴다고 했다.

귀환자들은 공장 출입구를 봉쇄했고 전기와 수도 등을 차단하고 나왔다. 업체 관계자들은 “공단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공장 기계들과 설비들은 어떻게 되느냐”며 우려하는 빛이 역력했다. CIQ에 귀환자들을 마중 나온 업체 대표들은 “이제 좀 자리를 잡아가던 참인데 아쉽다”, “거래처에서 손해배상 청구한다 하더라”, “모두 ‘개털’이 됐다”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귀환자들은 개성공단 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전했다. 상당수 회사들은 쌀과 김치 등 식자재와 밑반찬 등이 많이 남아 있었다. 식사는 주로 회사의 사무실 겸 부엌에서 직접 요리해 해결했고 가끔씩 공장 옆 ‘하우스’에서 고추와 상추 등을 따먹은 경우도 있었다. 하우스는 원래 북한 직원들을 위해 남측 회사들이 빈 공터에 마련한 텃밭으로 이달 초 북한 직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남아도는 채소를 이용했다.

일부 귀환자들은 라면 등으로 연명했다. 한전 소속 김모(53)씨는 “부식이 없어서 주로 라면을 먹었다”며 “다행히 아픈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 의류업체 근로자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 의료진이 가장 먼저 빠져나온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몸이 아플까봐 다들 걱정했다”고 말했다.

귀환자들은 낮에는 사무실에서 가져갈 짐을 포장하며 지냈고 밤에는 숙소에서 TV를 보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남·북 상황과 개성공단 관련 뉴스를 확인했다.

27일 귀환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북한 측이 차량검사 등을 까다롭게 하면서 예정보다 2시간가량 입경이 지체됐다. 1차 귀환자 11명은 오후 2시40분쯤 차량 4대에 나눠 타고 귀환했다. 이어 오후 4시20분쯤 115명이 차량 59대를 이용해 돌아오면서 귀환이 완료됐다. 귀환 차량 대부분은 운전석만 보일 정도로 생산품을 가득 실은 상태로 나왔다. 일부 기업 대표들은 정부의 철수 결정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주재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끝까지 버티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명진화학 정을연(47) 대표는 “헌법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제 정부는 국민의 재산을 지켜줄 차례”라며 “개성 공단은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성공단 입주기업협회는 CIQ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피해보전 대책과 방북 허가 등 4개 항을 요구했다. 이들은 오는 30일 개성공단 방문을 위해 정부 측에 조만간 방북허가를 신청할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신상목 서윤경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