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베니게(시돈과 두로) 사람들 ④

열려라 에바다 2014. 8. 23. 10:54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베니게(시돈과 두로) 사람들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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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과 결혼한 시돈 여인, 아스다롯 여신 숭배 전수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솔로몬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또한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위대함은 왕의 권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하고자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왕에게 ‘지혜와 지식’(역대하 1:10)을 주셨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솔로몬왕 이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리되었고 우상숭배로 민족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성서는 위대한 솔로몬왕의 어두운 부분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분열과 민족의 영적 위기를 솔로몬왕의 실정으로 돌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솔로몬왕의 정략적 결혼에 있었다. 그는 바로의 딸 외에도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고 그중 하나는 시돈의 여인도 있었다(왕상 11:1). 솔로몬왕의 정략적 결혼은 이방 여인들의 이방신들을 이스라엘로 들여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돈 여인은 고향의 여신 아스다롯 숭배의식을 가져왔고(왕상 11:5), 결과적으로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의 여호와가 아닌 시돈의 아스다롯, 모압의 그모스, 그리고 암몬의 밀곰을 섬겼다(왕상 11:33).

베니게의 신화에 의하면 아스다롯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여신으로 아세라, 바알랏 게발(비블로스의 여신)과 함께 엘의 부인이 되었다. 아스다롯과 엘 사이에는 7명의 딸과 2명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두 아들의 그리스 이름은 포토스와 에로스이다. 아스다롯은 하닷(바알과 동일시되는 신)과 함께 땅을 지배했는데 스스로 황소의 머리를 뒤집어 써 자신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요단강 건너편 바산 땅의 ‘아스드롯 가르나임’(창 14:5)과 여호수아서 12:4의 ‘아스다롯’은 같은 장소로 보고 있는데 여기서 가르나임은 히브리어로 뿔들이라는 뜻으로 아마도 뿔을 상징으로 쓰고 있는 여신 아스다롯을 숭배했던 도시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뿔이 옆으로 누운 모양을 하고 있는 초승달 역시 아스다롯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더불어 아스다롯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금성)를 가져다가 두로에서 신성화하기도 했다는 신화가 있어 달과 별 모두 관련이 있는 여신이다.

아스다롯은 어원, 기원, 종교적 역할 등에 있어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와 자주 비교되는 신이다. 아스다롯 여신은 풍요와 전쟁을 담당하는 신으로 사자, 말, 스핑크스, 비둘기 등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 때때로 아스다롯은 금성의 여신이라고도 불리는데 둥근 원형 안에 별 모양이 있는 모습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아스다롯이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될 경우 대부분 옷을 입고 있지 않고 긴 머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있으며 양손에 꽃을 들고 있다. 전쟁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경우에는 꽃보다는 철퇴를 들고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 라기스에서 발견된 주전 1600∼1200년경의 금판에는 갑옷을 입은 말 위에 양손에 꽃을 들고 나체로 서 있는 아스다롯을 볼 수 있다.

아스다롯은 북서 셈족에서 기원한 여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도 전쟁의 여신인 아낫과 함께 가장 많이 숭배되었던 여신이다. 아스다롯은 이집트 최고 신 ‘라’ 혹은 ‘프타’의 딸이며 ‘세트’ 신의 부인이기도 하였다. 이집트에서는 18왕조 시대(주전 16세기)부터 아스다롯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어린 아이를 먹이고 있는 모습으로 풍요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여신이 전쟁에 참여할 때는 말이나 사자 위에 올라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특별히 아스다롯은 말과 병거를 능숙하게 다루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여신으로 이집트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여신으로 섬겨졌다. 신적인 역할과 모습의 유사성 때문에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과 혼동되기도 하고 동일시되기도 한다.

아스다롯의 주요 성지는 키프로스와 시돈, 두로, 그리고 비블로스 등 베니게 사람들의 도시들이다. 주전 5세기 베니게의 왕 에슈무나자르는 그의 관에 그와 그의 어머니 아마스다롯(아스다롯의 하인이라는 뜻)이 아스다롯을 위한 신전을 봉헌했음을 밝히고 있다. 시돈에서 발견된 동전에는 한쪽 면에 마차를 타고 있는 아스다롯이 자주 등장한다. 아스다롯의 숭배는 가나안 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베니게 사람들의 해양무역은 이 여신 숭배를 그들이 발 닿는 곳마다 이르게 하였다. 유럽의 에투르스칸이나 스페인의 유적지에서도 아스다롯의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스페인의 유적지 투투기(Tutugi)에서는 안이 비어 있는 아스다롯의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날개달린 스핑크스(베니게의 예술적인 면에 대한 칼럼에 날개가 달린 서 있는 스핑크스의 독특한 모습을 이미 살펴본 바 있다)가 양쪽에 새겨져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아스다롯은 가슴 아래 그릇을 들고 있다. 가슴은 구멍이 뚫려 있어 조각상 안에 우유가 부어졌을 때 구멍으로 우유가 흘러나오는 풍요의 상징적인 모습을 연상케 한다.

시돈에서 아스다롯은 에스문이라는 신과 함께 같은 신전에서 숭배되기도 하였다. 시돈의 신화에 의하면 베이루트 출신의 사냥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한 청년이 있었고 아스다롯은 그를 유혹했다. 여신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그는 스스로 거세하고 죽음을 택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스다롯은 그녀의 온기로 그를 감싸 죽음에서 살려낸 후 신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베이루트 근처에는 카브르스문 즉 ‘에스문의 무덤’이라 불리는 신화를 담고 있는 도시가 있다. 에스문은 이후 ‘치유’의 역할을 담당하는 신이 되었다. 시돈의 아왈리 강 근처에서 발견된 주전 7세기쯤 건축된 에스문의 신전은 병을 고치기 위한 제물을 바쳤고 순례객들은 신전 근처에 있던 샘에 몸을 씻기도 하였다. 이 신전에서는 돌로 만든 아스다롯의 의자가 발견되었는데 의자의 양쪽 면은 아스다롯의 상징인 날개 달린 스핑크스가 조각되어 있다. 이 신전에는 로마시대를 넘어 비잔틴시대까지도 병 고침을 위한 순례객의 행렬이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에스문은 그리스의 아스클레피우스 신화와 매우 유사하다.

성서학자들은 아스다롯과 아세라를 자주 혼동하기도 하는데 이는 히브리어 원어에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아스다롯은 가나안에서는 아세라와 자매 여신이었다. 하지만 종교적 기능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리스에서 아스다롯과 아세라는 아프로디테 혹은 아르테미스로 변형되었으며 로마에서는 금성의 여신 비너스로 불리기도 했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