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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 입문:신학과 신앙] ④ 신학과 신앙

열려라 에바다 2014. 9. 6. 19:55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 입문:신학과 신앙] ④ 신학과 신앙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 입문:신학과 신앙] ④ 신학과 신앙 기사의 사진“신앙 없는 신학은 무미건조해지고 신학 없는 신앙은 자기주관에 빠진다”

‘신학과 신앙’에 대해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먼저는 신학무용론이다. 신학은 신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또 신학을 하면 오히려 신앙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이런 생각은 신학을 단지 학문의 영역으로만 생각했거나, 신학의 비판적 기능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 강좌에서 저번 주에는 ‘신학의 역할’에 대해 말했고, 오늘은 신학과 신앙의 관계에 집중하려 한다.

신학과 신앙, 이원론?

한국교회는 신학과 신앙을 상충하는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근저에는 한국종교 문화에 뿌리 깊게 놓인 이원론적 사고가 자리한다. 이원론은 빛과 어두움, 성과 속, 영과 육, 이 세상과 저 세상, 교회와 세상 등을 대립적으로 보는 사고이다. 이원론적 사고는 어느 한 측면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다른 한 측면이 가지는 가치를 경시한다.

성경의 사상은 이원론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저 세상’에 대한 소망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도 중요하다. 성경은 ‘영’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의 세계’도 중요시한다. 따라서 ‘영과 육’을 대립해서 보지 않고 조화롭게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신앙생활에서 영과 육의 균형이 깨지면 신앙이 극단적이 되거나 기형적이 된다.

신학과 신앙을 대립적으로 보는 것도 이원론적인 사고와 연관이 있다. 즉 신학은 이성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적 추구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은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신앙은 감성적이며 체험적인 것으로 본다. 신앙을 강조할 때, ‘가슴으로 믿으라’고 말하는 이유다. 영과 육의 대립에서 한국교회는 언제나 ‘영’에 힘을 실었다. 마찬가지로 신학과 신앙의 대립에서는 ‘신앙’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은 신앙과 신학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양자는 자신의 역할을 가지면서 상호 보완적이다. 결국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면 신앙과 신학이 가지는 각자의 역할과 상호성을 보겠다.

신학과 신앙, 고유성

신학과 신앙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신학과 신앙은 각기 나름의 효용성과 타당성을 가진다. 신앙이 은혜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라면, 신학은 신앙과 실천에 대한 2차적인 성찰이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신앙은 인간의 합리성을 넘어선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기에 믿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이 믿음은 우리의 인식론적 이해나 결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는가? 부활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부활신앙은 오직 은혜로 주어진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나 기적의 성격을 가진다.

믿음은 ‘나’를 넘어선다. 신앙에는 자신을 ‘넘어서는’ 체험이 요청된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넘어서는 체험을 ‘초월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체험이 점진적일 수도 있고, 뜨거울 수도 있다.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신앙에는 체험이 수반된다. 이 체험은 바로 ‘하나님-체험’이다. 그렇기에 신앙은 거룩한 것이고 신성한 것이다.

신학은 학문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이해를 추구한다. 안셀름(Anselm)의 정의를 따르면, 신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이해를 추구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알고 계실까?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일까? 이런 질문은 결코 불경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마땅히 던질 수 있고, 또 던져야만 하는 질문이다.

질문은 합리성을 요구한다. 이성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을 거부하고, 합리적 이해를 구한다. 이는 삶 속에서 이해되지 않은 사건을 마주하면 설명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신학은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 합당한 이해를 마련하는 작업을 한다.

또한 신학은 비판적 기능을 가진다. 학문으로서 신학은 주어진 답변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학은 언제나 타당성을 검증한다. 때로는 당연하게 여기던 신앙의 형태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성찰을 요구한다. 때로는 교회의 선포가 문제가 없는지 의문을 가진다. 때로는 교회가 사회에서 바른 역할을 하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이런 비판의 눈길이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런 비판적 기능도 신학의 한 역할이다.

신학과 신앙, 보완적

이제 질문을 해보자. 신앙과 신학, 어느 것이 더 귀한가? 만약 이 질문이 양자택일을 요구한다면 잘못된 질문이다. 어느 것을 우선시하거나 어느 하나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신앙과 신학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신앙이 없으면 신학은 열정을 상실한다. 신앙이 없는 신학 탐구는 신학을 종교학으로 만든다. 신학은 모든 종교를 중립적으로 대하면서 단지 지적 만족을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신학은 언제나 신앙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신앙 없는 신학은 학문적 이론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이때 신학은 자신의 고유한 타당성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반면 신학이 없는 신앙은 언제나 자신의 체험에 종속될 위험을 가진다. 성경의 세계는 넓고 하나님의 뜻은 무한하다. 신학을 통한 객관적 성찰의 기회가 없으면 각 신자는 자신의 신앙 체험의 한계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신학을 통해 신앙은 개인의 주관성에 빠지지 않고 보다 넓은 시각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신학과 신앙은 서로를 돕는다. 신학이 신앙 안에 있을 때 열정을 가진다. 신앙이 신학적 토대를 가지면 흔들리지 않는다. 필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신앙이 없는 신학은 건조해지고, 신학이 없는 신앙은 자기 주관성에 빠진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