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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5. 성령:생명의 영, 사랑의 영] ⑤ 성령의 은사:선물

열려라 에바다 2014. 9. 6. 20:34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5. 성령:생명의 영, 사랑의 영] ⑤ 성령의 은사:선물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5. 성령:생명의 영, 사랑의 영] ⑤ 성령의 은사:선물 기사의 사진은사는 성령이 ‘함께’할 때 임하는 선물

한국교회 교인들은 은사를 사모한다. 집회도 은사집회를 해야 사람이 많이 모인다. 신학강좌를 하면 겁부터 낸다. 지금 연재하는 국민일보의 ‘신학강좌’도 어언 6개월째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며 함께한 독자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이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도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다. 은사는 참으로 귀하다. 그렇기에 은사를 잘못 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은 은사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 보려 한다.

은사의 성격

성경에는 은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다. 구약과 신약에 두루 나타난다. 은사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기본적인 세 가지 성격을 보자.

첫째, 은사는 성령이 ‘함께’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서 은사만 주는 경우는 없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신기하고 놀라운 현상이라도 은사가 아니다. 교인 중에는 성령과 함께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어떤 능력과 현상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다. 병 고침, 방언, 예언과 같은 현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사마리아성에서 시몬이라는 자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임한 성령을 보고 감탄을 했다. 시몬은 자신도 그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만을 사려고 했다. 그런 시몬을 베드로는 엄하게 꾸짖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이와 같이 성령의 능력만을 추구하는 것을 시몬의 이름을 붙여서 시몬주의(Simonism)라고 한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나 부흥사가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작정헌금을 해야 한다거나, 특정한 사람이 안수를 하면 원하는 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시몬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성령과 함께하는 삶보다 성령의 능력만을 갈구하는 시몬주의는 그릇된 은사주의자들이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함정이다.

둘째, 은사는 성령의 ‘선물(Gifts)’이다. 은사가 성령의 선물인 이유는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사는 인간의 욕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인간의 타고난 재능도 아니며 자기개발로 획득되는 것도 아니다. 은사는 전적으로 성령에 의한 신령한 선물이다. 따라서 은사는 인간이 소유할 수 없다. 어떤 은사가 한번 나타났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이나 공동체에 맞게 필요하신 것으로 허락하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은사가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은사를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특수한 현상으로 국한시킬 수 없다. 한국교회에서는 신유, 방언, 예언과 같이 가시적이고 어떤 권위를 행사하기 좋은 은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은 ‘은사를 받았다’면서 신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 ‘신령한 사람’으로 대접하는 일들이 교회 내외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신비한 현상만을 바라는 은사주의는 성경적이지도 않고, 교회를 분열과 그릇된 열광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필자는 은사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신기한 것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인도로 가라. 인도에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다.

개인적이며 공동체적

한국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령의 은사는 재미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만족을 위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성령으로부터 나타나는 은사는 개인적인 유익과 공동체적인 유익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은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령의 도구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은사를 받은 자는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령의 사역에 동참한다. 이 과정에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위하고 이웃을 섬기며 성경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은사를 체험하면 개인적으로는 더욱더 신앙이 확고해지고 실제 생활에서도 성숙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은사는 개인적인 유익이 있다. 따라서 은사는 신자가 신앙을 완성해 나가는 ‘성화(Sanctification)’와 연관이 된다. 동시에 각 신자는 은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타인을 섬김으로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한다.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담당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간다(고전 12:12∼27). 그렇기에 성령의 은사는 그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고, 이웃에 봉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귀한 선물이다.

은사의 다양성

구약과 신약에 언급된 은사는 아주 다양하다. 한국교회에서 방언, 예언, 신유와 같은 몇 가지 은사가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왜곡된 은사관 때문이다. 인간이 은사를 구별해서 귀천을 두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은사가 귀하다. 성령이 함께하면서 나타나는 은사는 아주 많다(고전 12:11).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것(갈 5:5), 평화를 위한 삶(갈 5:22, 롬 15:13), 진정한 기쁨(살전 1:6, 갈 5:22), 희망(롬 15:13),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롬 5:5, 고전 13:13), 이런 것도 성령이 함께할 때 나타나는 은사들이다. 물론 은사 중에서 가장 큰 은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행 2:36∼38, 고전 12:3).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은사를 사모한다. 독자들은 어떤 은사를 구하려는가? 여러분은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성령께 간구해보라. 스스로 생각할 때 사랑이 부족한 자는 ‘사랑’의 은사를 구하라. 이 시대의 분쟁과 갈등을 외면하고 살았던 사람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이 평화의 도구가 되는 은사를 기도하라. 쉽게 좌절하는 사람은 ‘희망’의 은사를 구하라. 남에게 고통을 많이 주며 살았던 사람은 ‘온유’의 은사를 간구하라. 분열을 잘 일으키는 사람은 공동체의 ‘기쁨’이 되는 은사를 구하라. 이 모두 얼마나 귀한 은사들인가!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