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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는 ‘글루미 선데이’의 아픔을 알까… ‘우울한 선율’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열려라 에바다 2014. 11. 26. 08:24

도나우는 ‘글루미 선데이’의 아픔을 알까… ‘우울한 선율’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왕궁의 언덕’ 오르면 도시 전경 한눈에… 야경 황홀한 세체니는 유럽 최고의 다리

 
도나우는 ‘글루미 선데이’의 아픔을 알까… ‘우울한 선율’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기사의 사진
부다페스트 ‘왕궁의 언덕’에 우뚝 솟은 마차시 교회의 높은 첨탑(왼쪽)과 고깔 모양 탑으로 이루어진 ‘어부의 요새’, 그리고 색색의 건물이 동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도나우는 ‘글루미 선데이’의 아픔을 알까… ‘우울한 선율’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기사의 사진
도나우 강변 언덕에 우뚝 솟은 헝가리 왕궁을 배경으로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15세기에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된 왕궁은 그 후에도 수차례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
도나우는 ‘글루미 선데이’의 아픔을 알까… ‘우울한 선율’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기사의 사진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체니 다리를 달리고 있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세체니 다리는 야경이 황홀하기로 유명하다.
“당신을 잃느니 당신의 반쪽이라도 갖겠소.”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가운데 두고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대사다. 1999년에 발표된 롤프 슈벨 감독의 ‘글루미 선데이’는 사랑은 소유해야 한다는 통념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공유 사랑’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 그리고 여주인공 일로나의 통쾌한 복수를 그리고 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글루미 선데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혼을 파고드는 감미롭고 애잔한 선율의 ‘글루미 선데이’는 헝가리 천재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1935년 실연의 아픔을 담아 작곡했다. 레코드 발매 8주 만에 우울증 환자 190여명이 이 음악을 듣고 자살했고, 이듬해에는 이 음악을 연주하던 단원 모두가 자살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레스도 결국 자기가 만든 이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글루미 선데이’의 우울한 사연과 애잔한 선율 탓이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기차역에서의 이별이 아쉬워 진한 포옹을 한 연인과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괜스레 울적했다. 유대인 55만명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로 학살당한 사건도 떠올랐다. 뜬금없이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기억해냈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감정은 아르누보, 바로크,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축물 사이로 노란색 트램이 달리는 번화한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와 함께 사라졌다.

‘도나우 강의 진주’ 또는 ‘작은 파리’로 불리는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발전한 ‘부더’와 ‘페슈트’가 19세기 후반에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다. 왕이 살았던 부더에는 왕궁을 비롯해 중후하고 우아한 매력을 뽐내는 건축물이 많다. 상인의 활동 무대였던 페슈트는 경제 거점답게 젊음과 활기로 넘친다. 특히 파리, 프라하와 함께 유럽 3대 야경으로 꼽힌다. 명성에 걸맞게 부다페스트는 밤마다 화려한 빛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부다페스트 여행은 왕궁을 비롯해 마차시 교회, 어부의 요새 등이 밀집한 도나우 강 서쪽 ‘왕궁의 언덕’에서 시작된다. 13세기에 건축된 왕궁은 헝가리 역사의 상처가 묻어나는 곳이다. 왕궁은 몽골군의 습격으로 파괴된 후 15세기에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또 파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20세기 초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폐허와 상처로 얼룩진 왕궁은 50년에 이르는 공산주의 통치 아래서 웅장한 건물 대부분이 파손되는 고초를 겪었다. 지금은 헝가리 국립 갤러리,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세체니 도서관 등으로 이용된다. 왕궁 광장 앞에 위치한 흰색 건물은 헝가리의 대통령궁이다. 총검으로 무장한 근위병의 절도 있는 교대식이 눈길을 끈다.

왕궁 광장에는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드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새 ‘투룰’ 조각상이 있다. 이 광장은 부다페스트 도심을 흐르는 도나우강과 세체니 다리,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회 건물로 꼽히는 국회의사당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치고 세운 ‘자유의 여신상’이 모스크바 쪽을 바라보는 왕궁 남쪽의 겔레르트 언덕은 왕궁과 도우나 강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왕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왕궁에서 마차시 교회로 가는 넓은 골목은 기념품 가게를 비롯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야외 카페가 눈길을 끈다. 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답게 건물 외벽에는 여기저기 총알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베토벤이 작곡한 ‘엘리제를 위하여’의 여주인공이 살았다는 옛 왕궁극장에서는 맑은 음색의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화려한 색상의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다운 마차시 교회는 헝가리 왕으로 즉위한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대관식이 거행된 유서 깊은 곳이다. 교향시의 창시자인 리스트는 이날을 위해 ‘헝가리 대관 미사곡’을 작곡해 마차시 교회에서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교회 정면에서 보면 좌우의 탑 높이가 달라 균형이 잡히지 않는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밀하게 채색된 기둥과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차시 교회와 붙어 있는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마차시 교회를 설계한 슐레크가 1902년에 완공했다. 헝가리풍의 고깔지붕을 얹은 7개의 탑과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회랑이 이채롭다. 어부의 요새라는 명칭은 옛날 이 언덕의 시장을 지켰던 어부조합에서 유래됐다. 어부의 요새도 도나우 강 건너편 페슈트 지역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전망대. 요새 한쪽에서 늙은 집시가 연주하는 ‘글루미 선데이’의 애잔한 선율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세체니 다리를 건너보지 못하면 헝가리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왕궁의 언덕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만나는 세체니 다리는 길이 375m, 너비 16m로 커다란 돌사자가 다리의 네 귀퉁이를 지키고 있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세체니 다리는 주탑에 가설된 쇠 로프가 자전거 체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세체니(사슬)로 불린다.

부다페스트의 낭만 중 으뜸은 해질녘에 유람선을 타고 만나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이다. 비거도 광장 앞에서 유람선을 타고 석양에 붉게 물든 도나우 강을 오르내리면 왕궁을 비롯해 마치니 교회,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 등이 색색의 불을 밝힌다. 특히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세체니 다리의 야경은 황홀할 정도.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여주인공 일로나가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에르제베트 다리의 야경도 세체니 다리 못지않다.

독일 남서부에서 발원해 10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드는 도나우 강의 길이는 2850㎞. 영어로 다뉴브, 독일어로 도나우, 헝가리어로 두나, 체코어로 두나이로 불리는 유럽의 젖줄은 ‘도나우의 장미’로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가장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부다페스트(헝가리)=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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