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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주택가 사이로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갈 것 같은… 군산 시간여행

열려라 에바다 2015. 2. 5. 08:52

다닥다닥 주택가 사이로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갈 것 같은… 군산 시간여행

선유도 & 근대역사 현장

 
다닥다닥 주택가 사이로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갈 것 같은… 군산 시간여행 기사의 사진
남악산 대봉전망대에 올라서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선유도의 절경이 황홀함을 선사한다. 가운데 하트 모양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이 길게 늘어 있고 그 왼쪽에 선유도의 상징물인 망주봉이 우뚝 솟아 있다. 누워있는 임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선유봉 능선 오른쪽 장자대교를 건너면 장자도와 대장도로 갈 수 있다.
다닥다닥 주택가 사이로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갈 것 같은… 군산 시간여행 기사의 사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왼편에 위치한 옛 군산세관 건물이 고풍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에 당시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다닥다닥 주택가 사이로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갈 것 같은… 군산 시간여행 기사의 사진
철로 주변에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암동 철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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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한 초원사진관.
다닥다닥 주택가 사이로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갈 것 같은… 군산 시간여행 기사의 사진
전북 군산에서는 고즈넉한 풍경에 즐거움이 깊어지고 빛바랜 사진처럼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여행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경치는 바쁜 일상에 지친 심신을 휴식하게 하는 보양식이고 근대문화 유산은 아픈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깨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천혜의 섬 풍광과 역사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나섰다.

신선이 놀던 천혜의 비경br>
전북 군산의 고군산군도에 속해 있는 선유도(仙遊島).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다갔다는 섬이다.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군산 비응도 항구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바다 한가운데에 고군산군도가 점점이 이어져 있다. 군산시 옥도면에 속한 섬들로 유인도 16개를 포함해 6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녀도와 방축도, 관리도 등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어 선유도는 ‘섬 속의 섬’이다. 덩치로는 세 번째지만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발달한 항구 덕분에 고군산군도의 중심을 차지한 지 오래다.

‘고군산(古群山)’이라는 명칭에는 사연이 있다. 섬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조선 태조가 왜구를 막기 위해 수군부대인 만호영을 설치하면서부터 이 일대는 군산도 또는 군산진(鎭)으로 불렸다. 이후 세종 때 수군진이 옥구군 북면 진포(현 군산시)로 옮겨가면서 기존 군산도는 옛 군산이라는 뜻에서 고군산이라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즉 원래 군산은 선유도이고, 지금의 군산은 ‘신(新)’ 군산인 셈이다.

비응도 항구를 출발한 유람선은 횡경도, 소횡경도, 방축도 옆을 지나고 장자도와 관리도 사이를 빠져나온 뒤 선유대교 밑을 거쳐 선유2구 선착장에 닿는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면 왼쪽으로 야미도 신시도 가력도 등으로 이어지는 새만금방조제가 아스라이 이어지고 오른쪽 뒤편으로는 풍력발전기와 함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초대형 크레인이 위풍당당하다. 횡경도에서는 할배바위를, 방축도에서는 독립문바위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녀도는 마치 무당이 춤을 추는 형상을 하고 있고, 장자도에는 육지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돌이 됐다는 할매바위가 있다. 곳곳에 기암절벽이 우뚝한 장자도와 대장도의 자태는 ‘바다 위의 금강산’이나 다름없다. 장자도, 선유도, 무녀도는 모두 다리로 연결돼 한 몸이나 진배없다.

면적 2.1㎢의 선유도에는 200가구 600여명의 주민이 산다. 섬에 내리면 한 가운데 큰 종을 엎어놓은 듯 불쑥 솟아 있는 망주봉(해발 152m)이 눈앞에 다가선다. 선유도의 상징물이다. 옛날 이 섬으로 유배를 왔던 한 선비가 자주 바위 꼭대기에 올라 임금이 있는 한양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불길이 개통된 뒤 망주봉과 선유봉에선 등산과 하이킹도 할 수 있다.

대봉전망대에 오르면 망주봉, 명사십리해수욕장, 장자도, 대장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발아래로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은 하트(♡) 모양을 빼닮았다. 멀리 보이는 장자대교에서 선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임부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장자대교를 건너면 대장봉이 늠름하게 서 있는 대장도로 갈 수 있다. 대장도는 절벽과 바위 구릉으로 이뤄져 장관이다.

기러기가 내려앉은 모습을 하고 있는 평사낙안, 한 여름 폭우가 내릴 때만 7∼8개 정도의 폭포가 나타나는 망주봉의 망주폭포, 명사십리해수욕장, 안개에 덮여 있는 선유도 주변 열 두 봉우리인 무산12봉, 선유도 앞바다의 불타는 듯한 선유낙조 등이 ‘선유 8경’으로 꼽힌다. 배 모양의 파도인 삼도귀범, 장자도 앞바다의 불 밝힌 밤배 풍경인 장자어화, 신시도 월영봉의 아름다운 월영단풍도 포함된다.

현재 고군산군도를 육지와 연결시켜줄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 사업이 완공되면 선유도도 배가 아닌 차로 갈 수 있게 된다. 변화의 격랑에 올라타 시끌벅적해지기 전에 ‘섬’ 선유도를 찾아 호젓한 운치를 느껴볼 만하다.

100년 전 과거로의 시간여행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은 소설 ‘탁류’에서 1930년대 군산을 이렇게 묘사했다. 군산은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1899년 호남·충청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해 개항했다. 때문에 일본 상공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군산의 근대 여행지는 군산항 주변에 모여 있다. 군산시는 일제강점기 때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내항 일대를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로 꾸며 놓았다. 수치스러운 역사가 이야기를 품은 관광 자원으로 태어나는데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타임머신’ 여행의 시작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다. 군산의 근대문화와 해양문화를 테마로 당시의 시대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각종 고증 자료를 두루 갖춰 군산 여행의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박물관 왼편에는 옛 군산세관 건물이 자리해 있다. 서울역, 한국은행 본점과 비슷하게 생겨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1908년 대한제국이 벨기에로부터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실내에는 세관으로 사용될 당시의 소품들이 전시돼 퇴색된 옛 영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오른편에는 장미동이 있다. 꽃 이름 장미(薔薇)가 아니라 ‘수탈한 쌀 곳간’이라는 의미의 장미(藏米)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이 각각 근대건축관과 근대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수탈한 쌀을 보관하던 창고는 장미공연장으로, 광복 이후 위락시설로 사용됐던 적산가옥은 장미갤러리로, 일제 강점기 무역회사 건물이었던 미즈상사는 미즈카페로 단장됐다. 근대 건축물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같이 수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은행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은 쌀 반출 자금과 농지 수탈 대출 자금을 관리했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조선인을 대상으로 토지 담보 고리대금업을 벌이고 상환기일을 못 맞추게 한 뒤 논을 빼앗았다.

바다가 보이는 내항으로 발길을 돌리면 ‘뜬다리(부잔교)’라는 낯선 이름의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조수 간만의 차가 있을 때 물이 빠지면 다리가 내려가고, 물이 들어오면 올라가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다리도 일제시대 때 쌀을 싣고 가기 위해 만들어진 아픔을 안고 있다.

군산근대문화유산 거리를 걷다보면 일본식 돗자리가 깔린 ‘다다미집’과 단층이나 2층 건물이 길게 이어진 일본식 ‘나가야집’ 등 낯선 집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인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 포목상 히로쓰가 살던 정통 일본식 목조 저택이다. 붉은 황톳빛 담장 뒤로 숨은 듯 있는 사무라이 가문용 전투식 대문으로 들어서면 ㄱ자 모양 2층 건물 두 채가 붙어있고, 그 사이에 일본식 정원이 있다. 영화 ‘타짜’에서 조승우가 찾아와 화투를 배우던 사부 백윤식의 집으로 등장했다.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촬영지로도 활용됐다.

인근에는 1998년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가 운영하던 초원사진관이 있다. 촬영이 끝난 뒤 철거했다가 이후 군산시가 다시 사들여 복원했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증명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들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 대문 바로 앞을 열차가 느릿느릿 지나던 경암동 철길 마을은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가 된 지 오래다.

군산=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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