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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 사이로 흐르는 1000년 세월의 속삭임… ‘生居鎭川’이라 불리는 충북 진천

열려라 에바다 2016. 3. 22. 08:14

농다리 사이로 흐르는 1000년 세월의 속삭임… ‘生居鎭川’이라 불리는 충북 진천

 

농다리 사이로 흐르는 1000년 세월의 속삭임… ‘生居鎭川’이라 불리는 충북 진천 기사의 사진
충북 진천의 세금천을 가로질러 거대한 자줏빛 지네처럼 꿈틀거리는 농다리의 등줄기를 밟고 사람들이 지나간다. 농다리에는 자연 그대로의 돌을 타원형으로 쌓아 소용돌이를 막고, 위로 갈수록 폭을 좁혀 유속을 견디게 하는 등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이 사진은 드론으로 촬영했다.
농다리 사이로 흐르는 1000년 세월의 속삭임… ‘生居鎭川’이라 불리는 충북 진천 기사의 사진
돌다리 너머 산 위에 농암정이 보인다.
농다리 사이로 흐르는 1000년 세월의 속삭임… ‘生居鎭川’이라 불리는 충북 진천 기사의 사진
초평호수와 구름다리.

거대한 자줏빛 지네가 꿈틀거리며 강물을 건너간다. 물은 지네의 다리 사이로 흐르고 사람들이 지네의 등을 밟고 지나간다. 충북 진천 미호천의 지류인 세금천(洗錦川) 농다리의 모습이다. 진천군 문백면과 초평면을 잇던 다리로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권신이었던 임연이 놓았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봐서 고려 말쯤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000년을 견뎌 온 동양 최고(最古)다.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타고 진천터널을 지나 진천IC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어렴풋이 보인다. 언뜻 보면 그저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엉성해 보이는 돌다리가 홍수와 침식의 긴 시간을 견뎌냈다. 이 다리를 가까이서 보려면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로 찾아가면 된다. 진천IC에서 빠져나와 왼쪽 방향(천안·진천)으로 달리다 청주·오창 쪽으로 좌회전한 뒤 신정사거리에서 문백 농다리 쪽으로 다시 좌회전하면 농다리전시관을 지나 주차장이 나온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이라는 뜻으로 진천이 그만큼 산수가 좋고 살기에도 좋다는 얘기다. 농다리 앞에 서면 건너편 산 위에 우뚝 솟은 농암정 아래에 ‘생거진천’이라는 큼직한 글이 눈에 띈다. 예부터 비옥한 토지에 풍수해가 없고 인심까지 후덕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농다리는 전체 길이 93.6m, 폭 3.6m, 교각 1.2m다. 교각과 교각 사이는 0.8m 정도다. 번듯하게 솟아오른 교각도, 말끔하게 다듬어놓은 상판도 없다. 자연 그대로의 크고 작은 돌이 쌓여 교각이 되고 상판이 됐다. 큰 돌 사이에는 작은 돌을 끼워 넣어 듬성듬성 틈도 있고 밟으면 밟는 대로 삐걱거리기도 한다. 얼핏 대충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석회 등으로 속을 채우지 않고 자연석만을 그대로 쌓았지만 천년을 버틸 만큼 견고하다. 거기에는 과학적 원리가 들어 있다. 우선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안으로 차곡차곡 들여쌓아 교각을 만들고, 크기가 다른 돌을 적절히 배합해 서로 물리게 했다. 위로 갈수록 폭을 좁혀 빠른 유속을 견딜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타원형의 교각은 물살의 압력을 최소화하고 소용돌이 발생을 막는다. 장마 때면 물이 다리 위로 넘쳐흐르도록 만든 것도 오랜 세월을 견딘 비결이다.

일직선으로 배치하지 않고 지네가 기어가듯 구불거리는 모양도 빠른 물살을 고려한 설계다. 물과 돌이 서로 부딪히고 저항받는 것을 줄였다. 100m도 안 되는 다리 위를 오가면 1000년의 세월을 이어온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장마에는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했다.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농다리는 1900년대 초 발간한 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에 등장한다. ‘농다리’라는 이름은 다리의 특수성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전해진다. 다리를 구성하는 돌들이 대바구니(籠)처럼 얽히고설켜 붙여진 이름이다. 연간 4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다리는 설화도 품고 있다. 임장군이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했는데, 몹시 추운 겨울 어느날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봤다. 기이하게 여겨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모습을 딱히 여겨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는 임연 오누이 힘내기 얘기다. 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했다. 아들(임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가 오기로 했고,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 농다리를 놓기로 했다.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고 딸은 거의 마무리가 돼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을 내 딸에게는 뜨거운 팥죽 등 먹을 것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했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온 것에 화가 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그 돌이 그대로 박혀 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고, 딸이 마지막 한 칸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놓은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일반인이 놓은 다리는 장마가 지면 떠내려간다고 한다.

농다리를 건너 오른편으로 오르면 천년정에 닿는다. 농다리 주변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어 길을 따라 가면 왼쪽으로 농암정 오르는 길이 나온다.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 정자에 닿으면 시야가 확 트인다. 농다리가 저만치 내려다보이고 반대쪽으로는 초평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초평호는 총저수량 1387만t, 유역 면적은 133㎢로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 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광복 이후 축조해 1985년 증설했다는 초평호는 상공에서 보면 용이 한반도를 등에 업고 승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호수 한가운데 ‘반도(半島)’가 길게 누워 있다. 인근 두타산에서 바라보면 만주벌과 제주도 까지 갖춘 국내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의 한반도 지형이라고 한다.

농암정에서 내려오면 고갯마루에 서낭당이 나온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호수가 시야 가득 들어오고 야외음악당이 나타난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조금 가파른 임도(林道)가, 오른쪽으로 가면 호수를 끼고 반 바퀴 도는 수변 탐방로가 시작된다. 길을 잘 만들어 놓아 누구든 걷기에 좋다. 숲과 호수 사이를 걷는 내내 아름답고 호젓한 풍경이 펼쳐진다.

길은 호수의 외곽선을 따라 이어진다. 조금 더 걸으면 탑이 우뚝 솟은 사장교가 눈앞에 나타난다. ‘반도’로 건너가는 하늘다리다. 농다리로부터 약 1㎞ 거리다. 출렁거리는 다리에 몸을 싣고 내려다보는 짙푸른 물이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진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