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츠리게 했던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바람의 숨결이 달라지고 꽃소식이 전해오니 겨우내 추위에 봉인됐던 마음이 들썩인다. 그윽한 향기와 희고 붉은 빛깔로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는 추위를 무릅쓰고 제 먼저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다. 매화향이 그윽한 경남 양산으로 봄의 선물을 찾아 떠났다.
양산에서 매화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 원동마을이다. 강변부터 산등성이까지 흰 구름 둘린 듯한 꽃대궐이 펼쳐진다. 매화나무 700여 그루가 심어진 ‘순매원’은 낙동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매화나무 밭과 강 사이에 경부선 철길이 가로지른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푯말이 나타난다. 낙동강과 순매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2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선정돼 사진작가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길과 하얗게 핀 매화, 그리고 그 사이를 질주하는 열차의 역동적인 풍경이 황홀하다.
멀리 산등성이 아래 강을 따라 ‘S자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철로에 열차가 들어서면 상춘객들의 눈이 일제히 쏠린다. 카메라 셔터소리는 기관총을 방불케 한다. KTX는 자주 오지 않는데다 순식간에 매화밭을 스쳐 지나간다. 뒤늦게 도착한 상춘객은 아쉬움을 토해낸다. 무궁화호는 시간을 두고 지나가고 여러 차례 볼 수 있어 낭만적인 풍경을 뿜어낸다.
매화의 진가를 경험하려 매화나무 사이 오솔길을 걷는다. 백매화, 홍매화가 펼쳐놓는 화려한 풍광이 무릉의 화원이다. 그 속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고혹적인 향기에 온몸이 아찔해진다. 탐스러운 꽃에 추억을 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제10회 원동매화축제가 오는 19∼20일 이틀간 원동면 영포리 쌍포매실다목적광장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시 승격 20주년 기념 축하공연, 주민 참여 행사인 매화박사 콘테스트, 어쿠스틱 기타반주와 감성적인 보이스가 함께 어우러지는 봄꽃 포크콘서트, 전국 각지의 구수한 사투리를 소개해 관광객에게 재미와 웃음을 선사할 전국사투리 경연대회, 매화향 힐링음악회, 학생 사생대회 등 다채로운 공연으로 꾸며진다. 먹거리 장터, 원동 특산물 시식판매장도 운영된다. 제2회 원동청정미나리 축제도 이달 말까지 원동 함포마을 일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안개 낀 봉우리 뾰족뾰족 물은 늠실늠실/거울 속 인가가 푸른 봉우리 마주했네/외로운 배바람 가안고 어디 가나/날던 새 별안간 자취 없이 아득하네(烟巒簇簇水溶溶 鏡裏人家對碧峰 何處孤帆飽風去 瞥然飛鳥杳無終)’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 쓴 ‘황산강(黃山江) 임경대(臨鏡臺)에서’라는 시(詩)다. 고운 또는 해운(海雲)이 자(字)인 최치원은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을 가 18세에 당 과거에 급제하고 당나라에서 승무랑시어상내공봉 등의 벼슬을 지냈다. 중국 남방을 소란케 했던 황소의 난을 격문 하나로 토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와 국운이 기울어가는 신라를 중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골품제의 개혁과 과거제의 실시 등의 내용이 담긴 시무(時務) 10조를 진성여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자신이 제안한 정책이 시행되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자신의 자처럼 ‘외로운 구름’이 돼 신라 전국을 유람했다.
그는 유람길에 자신의 자를 딴 부산 해운대, 거창 수승대, 합천의 백운동 여러 곳에 유적을 남겼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임경대이다. 그의 자를 빌려 임경대를 고운대 또는 최공대라고도 한다. 양산 물금에서 지방도 1022호를 따라 원동면 화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오봉산 마루턱 물금과 원동의 경계지점 왼편에 임경대라는 정자와 소공원을 만난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녀(전지현 분)가 “견우야 미안해. 나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봐” 하고 외치던 장소다. 실제 임경대 위치는 이 정자로부터 낙동강 쪽으로 돌출된 곳이라고 한다.
임경대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는 경치는 하루 내내 시간과 관계없이 보는 이의 넋을 뺄 정도로 일품이다. 한반도 모양을 하며 힘차게 휘돌아가는 강물과 주변의 풍경은 압권이다. 특히 해질녘 경치는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더해 지나는 이의 발길을 잡는다.
지금의 임경대에서 원동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한라콘크리트 양산영업소가 있는데, 이곳을 지나 오봉산을 오르다 보면 또 다른 임경대가 나온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더 아름답고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곳은 후대에 경주 최씨 문중에서 명명한 곳으로 원래의 임경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함포·내포 일원은 청정미나리로 유명하다. 지난 1일부터 이달 말까지 ‘제2회 원동 청정미나리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미나리는 이뇨·이담·해독작용과 혈액 정화·간 보호·숙취 제거에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 청정 무공해 방식으로 재배한다. 축제장에서 미나리를 맛보려는 방문객들은 양념 등을 준비하면 된다.
◆여행메모
경부선 타면 열차 안에서도 감상
민물매운탕·장어 등 먹거리 다양
승용차로 갈 경우 대구부산고속도로 삼랑진IC에서 빠져 나가 삼랑진읍사무소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022번 지방도를 타고 간다. 이후 밀양과 양산 경계인 신부암고개를 넘은 뒤 원리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길을 따라가면 전망대에 닿는다. 매화가 한창일 때는 순매원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원동역 등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구포역까지 간 뒤 무궁화호 열차로 환승해 다시 원동역으로 올라오면 열차 안에서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원동역에서 순매원까지는 걸어서 10분가량 걸린다. 코레일은 원동매화 개화시기에 맞춰 오는 27일까지 주말(토·일) 원동역에 총 35회 열차를 정차시킨다. 평시 대비 1일 6000석 이상 석을 추가 공급해 상춘객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 매화 개화시기 동안 원동역 매표창구를 2개로 확대 운영하고, 1일 최대 지원인력을 10명 배치할 방침이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양산은 민물매운탕이 향토음식이다. 홍룡폭포 인근 ‘산바다집’(055-375-6677)은 빠가사리 매운탕과 어죽이 맛있어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다. 순매원에서 멀지 않은 물금읍내에 ‘최고집참숯바다장어’(055-367-8292)의 장어구이는 별미다.
양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봄바람 타고 강 건넌 매화꽃비에 春心은 흔들리고… 경남 양산에 울려퍼지는 ‘봄의 교향곡’
매화나무 숲 거닐면 고혹적 향기에 아찔… 임경대에 서면 한반도 형상 낙동강 절경
경남 양산시 원동마을의 순매원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S자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경부선 철로와 함께 만발한 매화꽃으로 환상적인 풍광을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제10회 원동매화축제가 오는 19∼20일 개최될 예정이다.
오봉산 임경대에서 본 낙동강 풍경
맛집 ‘최고집참숯바다장어’의 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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