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성전은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앞에서 살펴 본 내용들을 종합하고 이를 근거로 현대적 의미의 참 성전이 무엇인지를 다시한 번 살펴 보도록 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성도들, 그 중에서도 신앙이 독실한 분들 가운데도 역시 많은 분들이 건물을 성전으로 오인하고 있는데 이는 목회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기인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하였듯이 인간은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고 하는 내면적 죄의 굴레 속에서 하나님의 본 뜻을 끝없이 왜곡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우리는 지금도 목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마치 성경에 통달하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잘지켜 하나님을 잘 섬기려던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현상이다.
예수님께서 성전모독죄는 사형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아시고도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대답하시면서 당시 정상인으로서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성전을 헐라는 말씀은 단지 대적자들의 말에 대꾸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나가는 임기응변적 발언이 아니라 진실로 이제는 건물성전의 시대는 지났고 건물은 더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단호한 의지가 들어 있는 계산된 발언이었던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도 이제는 건물에 더이상 관심이 없으시다는 강력한 암시가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이방종교 이슬람의 황금돔 사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의 경찰 국가인 미국에 실질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 조차 감히 이곳을 공격하여 탈환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교훈인 동시에 참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할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여 거리로 내 몰리고, 가정이 파괴되며, 때때로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가 하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웃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영세민들이 굶주리며 차마 죽지못해 모진 목숨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이 시대.... 차가운 지하철 역사공간에서 새우잠을 자고 한끼 식사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이 시대... 참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이런 이웃들을 외면한체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베인 헌금을 과감히 투자하여 수백억짜리 건물을 짓는 교회가 있는 이 시대....호화로운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수억짜리 파이프 오르겐의 반주 소리에 맞추어 "내게 강 같은 평화..." 를 부르는 찬송소리를 듣고 거리의 노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것은 분명 죄악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빗나간 행태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실까?
[시내산 아래에 세운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된 이스라엘백성의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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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성막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성막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중에 임재하여 계심, 또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곳을 상징하는 처소였다. 따라서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되고 하나님께서는 늘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의 구체적인 증거이고 상징물이었다. 한편 성막은 전반적으로 성소뜰, 성소와 지성소 순으로 구분되어 거기 접근하는 자의 자격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은 오직 자신의 죄를 대속할 희생제물을 가지고 성막뜰 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 희생제사도 일반 백성과 똑같은 죄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당신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 허락한 제사장들에 의해서만 집전되었다. |
이러한 성막(tabernacle)의 구조와 거기서 집전된 제사의식은 죄인된 백성과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엄연한 단절이 있으며 이는 오직 인간의 죄 고백과 희생대속의 피로만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성막의 구조와 각종 의식은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단 절 및 그 단절을 연결하기 위한 구속의 법의 엄정함을 보여 주며 동시에 비록 그런 제한이 있음에도 성막이 주어진 것 자체에는 인간의 죄를 해결해 주시고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하겠다. 또한 이러한 성막은 예표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과
죄인의 사죄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유일한 길인 희생제물의 대속의 피가 요청되는 원리에 의해 집전되는 성막에서의 제사의식과
그 의식에 사용되는 그 안의 모든 기구들은 모두 자신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회복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히8:5,6) 또한 성막제도를 통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인간의 지혜나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고전2:4,5,1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 바치고자 하는 업적이나 실적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지성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믿음의 성전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하시고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우리를 쓰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본질은 행위(doing:공로)가 아니라 상태(being:인간 됨됨이)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