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성막공부] 구조편

열려라 에바다 2011. 10. 18. 20:32

1, 이방과 성전 :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

2, 성전 밖마당 : 신자와 신자의 구별

3, 성소 : 하나님의 참 일꾼과 거짓 일꾼의 구별

4, 지성소(법궤와 속죄소) : 진리와 성령의 구별

1, 이방과 성전 :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

하나님의 이 성전에 대해서 성전이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구별한, 구별된 집이라 그 말입니다. 전이라 말은 집 전(殿)자인데 거룩 성(聖)자는 구별 구별한 집이다. 구별된 집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보면 제일 처음에는 모든 이 이방의 이 가옥들이 있고 집들이 있고 사회가 있고 모든 이런 조직들이 있는데 거기에 이 커다란 울타리를 해 가지고서 그 밖마당까지 그 안에 다 들었습니다. 이것은 성전이라 이랬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교회를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과 교회를 일차적으로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과 교회를 일차적으로 구별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방의 마당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모든 안 믿는 사람들을 접촉해 가지고 사는데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자기와의 또 구별을 해야 됩니다. 제일 처음에는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그것이 세상 속에 성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깨끗해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보다 우리는 깨끗해야 된다는 것을 원하고 힘쓰고 또 깨끗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째 거룩입니다.

깨끗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바르고 참되다는 말입니다. 변질되지 아니하고 감염되지 아니하고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이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보다 깨끗해야 될 사람들인데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원해야 하고 또 깨끗 하려고 노력을 해야하고 또 실지로 그 결과가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 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거룩 중에 제일 외부적 거룩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2, 성전 밖마당 : 신자와 신자의 구별

교회라는 이 교회 안에 그 안에 이방인의 마당이 있습니다. 이 교회 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저는 이방인이다 저는 믿는 신자다' 이래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우리는 구별하는 구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교회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믿음이 전혀 없다. 믿음이 어리다 저 사람은 택한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교회 나오기는 나오지만 아직도 택한 사람이라든지 믿는 사람이라든지 그런 아무런 표적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과 교회를 구별해야 되고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그것이 이방인의 마당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성전이라 합니다.

신자가 같은 신자가 아니고 좀더 깨끗하고, 좀더 덜 더럽고 이렇게 두 가지 종류의 신자가 있는데 언제나 자기는 모든 사람보다 자기가 깨끗해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주님의 구속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더러운 것을, 부족한 것을 보고 위로를 받을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내가 깨끗해야 될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보다 더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깨끗해지도록 노력을 하고, 또 결과적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이 거룩이 있어야 됩니다.

'뭐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제가 그렇게 하니 내가 그렇게 할 게 뭐이냐, 아무 것이도 그래 믿는데 내가 별나게 그렇게 뭐 있겠느냐?' 다른 사람이야 어쨌든지 내가 먼저 다른 사람보다 깨끗해야 될 그 의무와 책임을 가진 줄 알고 믿는 사람가운데 내가 먼저 깨끗해져야 되겠다. 이것을 원하고 그 사람보고 더러워질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깨끗하기를 노력을 해야 됩니다. 또 실상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둘째의 거룩입니다.

3, 성소 : 하나님의 참 일꾼과 거짓 일꾼의 구별

그 다음에 구별할 것은 성소를 구별해야 됩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되고 그 다음에 그 안에 들어가서 구별할 것은 신앙 지도자와 지도자를 구별해야 됩니다. 신앙 지도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는 참 제사장인지, 이것은 제사장이 아닌 것인지 제사장과 제사장 아닌 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물론 택함을 받아서 믿는 사람이지만 누구나 다 제사장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 지도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지도자는 나기 전부터 벌써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지은 그것이 나와 가지고서 신앙 지도자가 된다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인지 지도자가 아닌지 그것을 구별하는 것이 이제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구별을 다 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는 무엇을 구별합니까? 성소. 성소에는 누구든지 출입하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라야 출입합니다. 제사장 구별입니다. 성소에서는 제사장 구별. 그 안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우리는 구별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내 신앙 지도를 신앙 교훈을 하는데 이게 참 양의 목자인지 양의 껍질을 입고 속에는 양을 삼키는 이리인지 껍데기는 목자지만 속에는 도적이요 강도인지 신앙지도에 대해서 구별을 해야 됩니다. 이러면 인간 구별은 다 했습니다. 여기서 인간 구별은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에도 '아, 누구의 가르치는 길이 더 바르고 옳다. 어디 은혜가 더 있다.' 하나님의 종들과 종들을 구별해서 더 바로 지도하는 것을 받기를 원하고 더 바른 지도를 받도록 노력을 하고 바른 지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한자리에서 예배를 봐도 '아, 여기서 나는 누구보다도 은혜를 더 입어 은혜 생활을 해야 될 사람이다. 주님이 내게 대해서 큰 구속을 주셨으니 다른 사람은 자면서 은혜 받는데 나도 자며 예배보면 되지 않느냐 내가 하나님의 도리를 배우는 데에 누구보다도 앞서야 되겠다.' 하나님의 도리를 자기가 배워 깨닫는 데에 자기가 먼저 앞서야 할 이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앞서기를 원하고 앞서기를 노력하고 앞서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먼저 깨닫고 먼저 은혜를 받는 이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면 한사람이 되면 그 다음에 두 사람되고 세 사람되고 차차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고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셋째의 거룩입니다.

4,지성소(법궤와 속죄소) : 진리와 성령의 구별

그 다음에는 이제 지성소입니다. 성소를 지나서 지성소입니다. 지성소, 지극히 구별할 곳. 지극히 구별할 것은 무엇인고 하니 법궤와 또 그룹과 속죄소에 계시는 하나님, 이제 진리와 하나님.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해야 됩니다.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이 지성소 안에 구별입니다.

지성소에서는 무엇을 구별하는가? 법궤와 천사 옹호 위에 예수님의 세 가지 속죄로 된 속죄소 하나님과의 모든 삐뚤어진 것이 다 해결이 되고 하나님과 결합이 된 그것이 속죄소입니다. 거기 법궤는 진리를 상징했고 속죄소는 하나님을 상징했습니다.

그 진리와 하나님 영감과 진리를 구별할 것, 성경 말씀과 영감을 구별해야 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구별입니다. 지성소의 구별입니다. 이 이상은 구별이 없습니다.

여기서 최상의 구별을 했습니다.

지성소가 최고의 높은 제일 높은 삼단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자기와의 사귐 하나님과 자기와의 맺는 언약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그 위치 여기에는 아무리 위대한 성도의 사귐이라도 이 안에는 들어오면 안됩니다. 이 안에는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제일 중심인 그 보호자, 자기의 제일 높은 그 위치의 보호자 여기는 하나님만이 모셔야 합니다. 이는 아무리 성도와 성도끼리 어떠한 그 성경대로의 결탁이 있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협동을 하고 어떤 역사를 한다고 해도 그 역사를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끼여 놓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에 그 관계는 그는 언제든지 그대로 보존하고 의지해서 내 마음을 줘도 제일 높은 하나님 모신 그 마음은 아무 것에게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환영하고 좋아해도 내가 하나님을 환영하고 좋아하는 그 위치에는 어떤 성자라도 용납해서 안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사모하고 존대한다 할지라도 그를 내가 하나님을 존대하고 사모하고 앙모하고 섬기는 그 위치에 올려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그 위치가 내 마음 안에도 있고 내 행동 안에도 있고 내 인격 안에도 있고 거기는 아무 것도 용납지 않은 이것이 밀실이요 골방입니다. 이것이 지성소입니다. 자기에게 자기 생활에도 지성소가 있고 자기 인격에도 지성소가 있어 지성소에는 그 성소가 용납지를 않습니다.

성도와 성도와의 서로 관계를 가지고 협동을 하고 어떤 그 존경이나 사모나 닮는 것이나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인 그 위치를 내어 줘서는 안됩니다. 거기에 용납을 시키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인격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의 마음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의 생명, 자기 행위에 제일 최고의 그 위치 거기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넷째의 거룩은

최종 최고의 거룩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이 생활에 성령님이 인정하고 성령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에 성령님이 동행해서 감화해 주시는 진리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에 성신의 감화가 함께 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거룩은 무슨 거룩을?

이방인과 교회를 구별하고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자기와 구별할 뿐 아니라 자기와도 구별해서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옛사람과 새사람 이것을 구별하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나니 다른 이 음성을 듣지 않는다." 이것이 구별인데 자기의 교훈이나 신앙 지도에 있어서 이것이 바른 것인지 삐뚤어진 것인지 그것을 구별할 것.
그것이 인간으로는 최고의 구별입니다.

이것 구별하고 난 다음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것.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 깨끗이 죄를 자기가 아는 대로 깨끗이 정리하면 하나님과 자기에게 가려진 것이 틔어져서 자기 심령이 밝아지고 밝아지면 진리를 보고 알게 되고,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기를 자유케 진리대로 살게 만들어 버려요. 참 알면. 그러기에 성경학자라고 해도 율법으로만 알고 복음으로 받지 못한 사람 있습니다.

그 진리를 자기가 인간 지식처럼 알았지 그 진리가 전능의 능력을 가진 진리인줄은 모른다 그 말이요. 그 진리가 능히 자기를 어디서든지 보호하고 세울 수 있는 이런 권위를 가진 진리로는 모르니까 그 진리의 외형만 알았지 진리의 권위는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지성소에 들어가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고 나면 천사보다 탁월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래서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착한 양심은 무엇이 착한 양심인데.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니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찾아간다 그 말 입니 다.

이것이 네 가지 거룩입니다. 이것이 윤곽적 성전입니다.

그 다음에 열 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은

1, 제단(놋제단) : 대속을 입은 자가 또 전하려는 노력

2, 세수통(물두멍) : 언행심사의 깨끗케 하려는 노력

3, 등대(일곱등대) : 모든 사람에게 옳은 행실로 감화를 주는 노력

4, 떡상(진설병상) :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

5, 금향로(분향단) :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명상과 기도의 노력

6, 휘장 :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루는 죄를 찾아 회개하려는 노력

7, 법궤(증거궤) : 성경을 통해서 알고 그 효력의 결과를 입으려는 노력

8, 그룹 : 천사의 옹호 받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노력

9, 속죄소 : 대속을 입고 자기로서 다하였을 때 하나님과 문제가 완전 해결

10, 속죄소 위 하나님 : 하나님과 동행 이상의 노력이 우리의 전인격과 생활에 있어야 깨끗한 성전이 되는 것이다.

1, 제단(출27:1-8) : 대속을 입은 자가 또 전하려는 노력

또 성전 안에는 제단이 있는 것입니다. 제단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 된 것을 용서받는 그 제사 드리는 것이 제단입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 된 것을 용서받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잘못된 것, 하나님의 은혜. 이것을 이루는 것이 제단인데 개인이나 교회나 가정이나 거기서 하나님 앞에 자기 잘못된 것을 반성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겠다. 하나님 앞에 거리끼는 것을 해결하고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잘난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 같지만 이것이 없으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다 소용 없습니다. 아무리 번들번들하게 좋지마는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아니하고 다 절단 납니다.

그러기에 그 개인도 보면 무엇인가 항상 자기의 잘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 찾아서 회개하려고 용서받으려고 애를 쓰고 또 자기 하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된다는 이것을 깨달아서 거저 하나님 앞에 어쨌든지 하나님이 돌봐 주시기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를 벌벌 떨면서 기다리는 이것이 못난 사람 같지만 이것이 있어야 기독자로서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 교회가 유지가 되지 그렇지 않으면 다 파멸이 되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 놋쇠로 만든 주석으로 만든 제단이 있었습니다. 이 제단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성을 했는데 대속으로 완성한 이 구속을 우리가 입은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우리 생활에 사용하는 이 제단을 가져야 됩니다. 이 제단에서는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이 제단이요 또 하나님과 서로 멀어진 그것을 다시 고쳐서 화합하는 이 제단이요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 이 제단이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이것이 제단입니다. 이 제단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안에는 우리 마음 안에는 우리 생활 안에는 우리 인격 안에는 우리의 속성 사상 안에는 하나님의 이 제단이 있어야 됩니다. 제단 있어야 되는 것은 성전 된 우리에게는 항상 하나님 앞에 내가 모르고 실수한 사소한 이런 것도 하나님 앞에 고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용서받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람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물질로 인한 잘못이든지 사상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행동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하나님의 법도에 삐뚤어진 그것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항상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있어야 성전이 더러워진 것 아닙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 실수한 것이 없는가 그것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는 것 자기가 현저히 하나님 앞에 뚜렷이 잘못된 죄가 없는가 이것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것 내가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 없는가 이것을 찾아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고 하는 노력하는 것,

내가 하나님이 구속으로서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인데 혹 내가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잊어버리고 망령 되게 나는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는 이런 일이 없었는가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 인식해서 하는 이것이 있어야 되고,

자기의 모든 소유 이것도 이것을 내 것이라고 혹 가지지 않는가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암만 내가 번 돈이라도 그것이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으니 이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인 것을 깨닫고

이것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되지 이것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자기 소유물도 하나님에게 바쳐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것 하나님이 옷 사 입으라면 옷 사 입고, 떡 사 먹으라면 떡 사 먹고, 자녀 교육을 시키라면 교육비로 교육을 시키고, 여행가라면 여비를 삼고 또 가난한 사람 구제하라면 구제하고, 예배당 지을 때 연보 하라면 연보도 하고, 또 이 주일학생들을 이렇게 인도하는 데에 그 차비로 이렇게 도우라면 돕고 어쨌든지 성경 말씀대로 자기 양심에 깨달아지는 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것인 것을 알아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을 사용할라고 '아! 내가 이 떡 한 개는 사 먹으면 되느냐 아이가 이건 너무 사치다 하나님이 사 먹는 것을 금한다 아! 이것 사먹을 수 있다 아! 오늘은 내가 지금 아주 불고기를 한번 해 먹어야 되겠는데 불고기 해 먹는 게 어떠노 아! 하나님이 해 먹어라 하신다' 해 먹을 수 있소, 해 먹어야 되요. 아! 이것 오늘 불고기 해 먹는 것 틀렸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겠다 그것 못해 먹는다 말이요. 예를 들면은 이렇게 해서 이것을 하는 것이 제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더럽히지 안 하는 것은 우리 속에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 주석으로 만든 제단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 가르치지 만은 성경에 가르친 그것 가지고는 잘 모르니까 하나님이 그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서 형상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성전이요 성막입니다.

이래서 구약 교회는 어린 영적으로 아직 어릴 때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 형상을 가지고서 가르쳤고 신약 시대는 그 형상이 없이 우리를 성전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서 깨닫지 못하는 자는 이 성전 도면을 가서 찾아 가지고서 성전에 어떻게 했는가? 성전 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해서 짓게 했는가? 성전에 가 가지고서 거기는 제단이 있으니 이 제단은 뭐 하는 곳인가

제단은 자기가 모르고 진 사소한 잘못 또 죄는 뚜렷한 죄 또 자기가 하나님과 사람 앞 에 불목 된 것 또 하나님의 것인 것을 이해 못하고 저는 제 것인 줄 알고 소유도 제 것인 줄 알고 날뛰었던 이것 잘못 이런 것을 고치는 이것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주석으로 놋쇠로 만든 그 형식 성전 안에 있는 주석 제단과 같은 그 주석 제단이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주석 제단이 있어야 우리 제단이 우리 성전이 더러워지지 안 하는 것이요, 주석 제단이 있어서 내가 잘못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아야 되고 이것을 고쳐야 되고 뚜렷한 죄를 용서받아야 되고 고쳐야 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불목한 이것을 용서받아야 되고 고쳐야 되고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잊어버린 이것을 용서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재인식해서 고쳐야 되겠고 하는 이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제단만 있었지 제단 행사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제단이 없어서 성전이 절단 난 것 아닙니다. 제단은 있었지만 제단이 제단답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여기서 더러워져서 절단 났던 것입니다. 우리 속에 지식적으로 우리가 잘못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뚜렷한 죄를 우리가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 한 이것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하나님의 것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 것인 줄 알고 내 자체가 내 것인 줄 알고 소유가 내 것인 줄 알고 내 맘대로 썼던 이것을 용서받고 이것을 고쳐서 이제 내 내 몸도, 나도 하나님의 것이요 내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대로 나는 행동하고 그대로 사용해야 된다 하는 이것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 행사를 하지 안 할 때 이것은 성전은 벌써 파괴된 것이고 더러워진 것이고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입술로는 하나님 앞에 용서해 주십시요 이렇게 하고 진정으로 자기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자기 마음 가운데에 그 자기 인격이 여기 대해서 가책을 느끼고 감동을 받으면서 참 자기의 인격이라는 그 성질이나 마음이나 감정이나 이것이 다 합해져서 이 허물을 이 죄를 불목을 하나님이 주인인데 그 주인을 바꿨던 이것을 마음 아피 이렇게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매일 고치는 이것이 있어야 깨끗한 성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괴로운게 아니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를 내가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 도우심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무엇을 제가 전력을 기울려서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안 하니 우리의 원수는 천천이요 만만입니다. 그 속에 마귀가 들어 있는 사람은 전부 우리에게 말하자면 암 병과 같습니다. 전부 우리를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아서 그렇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돕지 안 하니 모든 외래적인 해를 우리가 방어할 힘이 없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시니 우리가 어떻게 서겠습니까 이런고로 이런 어리석은 일은 하지말고 우리가 성전 깨끗히 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놋제단 이 제단이 있으니 제단 행사를 못해서 이스라엘이 멸망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우리는 일으켜야 될 사람으로 제단 생활을 해야 될 사람으로 우리는 제단 생활을 해야 될 사람으로 알고만 있어도 제단 생활 안 하면 이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책임 안 집니다. 제단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입술로만 형식으로만 하지 그 인격이 거기 기울이지지 안 하면 소용없습니다. 더럽고 가증스러운 제물입니다.

네가 더러운 제물을 내 마당만 밟지 말아라 그 제물을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 그 제물은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이사야 1장에 말씀했습니다.

제단은 크게 말해서 7가지 해결 짓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 요제, 전제를 드리는 것이 이것이 제단입니다.

소제, 요제, 전제는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라는 것 그것을 표시하는 제사입니다. 또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다시 인식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가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것은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이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 세 가지 제사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 속에 언제든지 있어야 합니다.

주여! 내 제물 이건 당신의 것입니다. 이 집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 회사는 당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겉만 당신이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피로 값 주고 사 가지고서 당신 것이 된 이것을 가지고 소유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 당신 것이 아닙니까? 당신 것인 것을 자꾸 해석합니다.

당신 것으로 보관하여 있어 당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써야 될 터인데 내가 도적질해 쓴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 짓는 것이 제단입니다. 이런 생활이 매일 우리에게 있어야 이것이 소제 요제 전제를 드리는 심령이요 그 인격입니다. 그 생애입니다.

또 속건제는 자기가 모르고 지은 죄, 안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고의적이 아니고 무지 무능해서 실수해서 된 것 이런 것을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이 피 공로를 의지해서 이것을 주님이 이것을 대신 하신 것을 자기가 고난으로 대신한 것을 새겨 깨달으면서 이것으로 하나님의 노를 풀고 이것을 다시 용서함을 받는 이것이 속건제요


속죄제는 자기가 지은 뚜렷한 죄를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피 공로에 속량 함을 받는 것이 속죄제요.

<속량>

*본래 토지나 노예나 포로를 값으로 사서 놓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가에는 금전뿐만 아니라 대신 일을 하거나 생명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에게 대한 범죄를 없애기 위해 송아지와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 고기를 불살라 댓가로 지불했다(출29:1-28, 레4:20-35).

*신약의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희생제물로 자기의 생명을 주려고 오셨다.(막10:45). (눅1:68).

속죄제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없애는 것이 속건제 속죄제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몸으로, 생명으로서 속건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당신이 죽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조그만 잘못, 많이 잘못 이것을 다 없애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요. 또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는 이것을 하나님하고 화평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죽으셔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어떤 이유로 불목 됐든지 불목 된 그것을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법에서 용서를 받고 자기가 힘써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목을 다시 일으키도록 화목을 다시 재계하도록 이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 노력

번제는 자기 몸과 생명 자체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재인식하고, 재인식하고 하나님에게 다 드려 하나님이 내 전부를 자유 자제하실 수 있도록 이 일이 하나님이 내 전심 전체에게 자유 하실 수 있도록 나는 거기 자유 하는 것을 다 이제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에게 내어놓았소, 나는 내게 대해서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어져 버리고 하나님이 내 자유 하도록 이렇게 하는 이 깨달음의 역사 새김질의 역사 이 생애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어야 이것이 성전입니다. 이것이 더럽지 안한 성전입니다.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다 맡겨 놓고 살고,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만 사는 것, 이 사람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부활하시고 하신 것입니다.

제단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제단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문제 해결하는 것인데 자기와 하나님과의 문제, 다른 사람과 하나님과의 문제에 있어서 희생하는 이 희생이 우리가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제단에서 제물되어서 우리는 대속한 것처럼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점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할 줄을 알아야 되고 먼저 희생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하나님과 모든 형제들과의 관계, 하나님과 가족들과의 관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이 관계를 인하여 자기가 희생할 정신이 있어야 되고, 희생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희생하기를 원하고, 희생하기를 노력하고, 또 실제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남 모르게 자기가 물질적 희생이나, 정력적 희생이나, 시간적 희생이나, 정신적 희생이나, 뭐 기도로 하든지 무엇으로 하든지 자기가 희생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하나님과 인간이, 자기도 인간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이 문제 때문에 자기가 희생해 가지고 이 일을 바로 해보겠다는 이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희생을 원하고, 노력하고, 희생이 실지로 이루워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첫째가 희생 작용입니다. 열가지 작용 중에 첫째 순서가 희생작용 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시작이 안됩니다. 희생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2, 세수통(물두멍:출30:17-21) : 언행심사의 깨끗케 하려는 노력

물두멍: 물을 길어 놓고 쓰는 큰 가마

그 다음에는 세수통이 있습니다. 씻어서 깨끗게 하는 물통이 있습니다.

이것이야 상징적으로 해 놓은 것인데 우리는 항상 자기가 활동한 이 활동 손으로 활동했든지 발로 활동했든지 입으로 활동했든지 어떻게 자기는 언행심사의 활동을 했든지 이 활동한 이것을 항상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씻어서 깨끗이 하는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이 하는 이 운동이 언제나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오늘 누구누구를 만나 가지고서 서로 교제하는 것은 그게 부정이 없나 말에 실수가 없었나?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리끼지 안 했나? 혹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안 했나? 내가 기뻐한 기쁨이 내가 근심한 근심이, 내가 웃음이, 내가 노함이, 이것 잘못됨이 없나? 그것을 마치 물로 더러운 것을 씻는 것과 같이 자기의 신앙 양심으로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깨끗이 양심으로 씻고, 말씀으로 씻고, 영감으로 씻어서 깨끗이 하려는 이 작용이 우리 인격 속에 우리 사상 속에 우리의 정신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산 성전이요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는 성전인 것입니다.

가정 교회나 개인 교회나 사회 교회나 교회는 날마다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역사가 속에 있어야 되지 이 역사가 없으면 껍데기 허우대가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그것은 멸망을 받습니다. 개인도, 그 사람이 뭐 지위, 학식, 권세, 재물 모든 세상 온갖 것이 다 구비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깨끗이 하려는 그것이 그 속에서 쉬지 않고 역사를 해야 그 개인이 안 망하지 이것이 없으면 망하고 또 가정도 그러합니다.

가정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이것만 구비하고 넉넉하면 가정이 될 줄로 알지만 우리 믿는 사람의 가정은 가정 교회인데 그 가정이 어떻게 하든지 이모저모로 그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지려는 요 깨끗해지려는 성결 노력이 있어야 되지 그것이 없으면 그 가정도 세상 사람 보기에는 암만 크고 아름답다 해도 그것 소용없습니다.

이 단체의 사회 교회인 우리 서부교회도 사람도 많이 모이고 이름도 나고 했지만 이 서부교회의 내부가 어쨌든지 회개해서 깨끗하게 하려는 이 결례통, 씻는 통 깨끗하게 씻어서 깨끗해지려는 이것이 교회에 이 운동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 교회도 다 파멸입니다.

세수통은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또 이웃의 여론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가지고 영감을 가지고 자기를 깨끗게 해야 될 줄 알고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깨끗하기를 노력하고 또 깨끗해 져야 합니다. 마치 더러운 것을 물로 씻어서 깨끗하게 한 것처럼 이 세수통은 수족을 씻는 것이 됩니다.

이러기에 자기의 매일매일 그 생활을 자기가 살피면서 깨끗해져야 할 그것이 자기 의무인줄 알고 깨끗게 하려는 이 작용이 있어야 성전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성전입니다. 말에나 마음에나 생각에나 생활에나 경제면이나 활동면이나 대인 관계나 명예 관계나 무엇이든지 권세든지 직장이든지 어디든지 모든 면으로 깨끗해야 될 줄 알고 깨끗지 안 하면 버림당할 줄 알고 깨끗해질 이 의무가 있는 줄 알아서 깨끗해지려고 하는 이 작용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3, 등대(출25:31-39) : 모든 사람에게 옳은 행실로 감화를 주는 노력

다음에는 일곱 등대, 등대 일곱 촛대를 둬 뒀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어디 가든지 직장에 가든지 가정에서든지 혼자 있든지 둘이 있든지 자기는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아! 이 사람은 돈 중심도 아니고, 자기 중심도 아니고, 가정 중심도 아니고, 목숨이 살기 위한 생명 중심도 아니고, 사회 중심도 아니고, 민족 중심도 아니고, 국가 중심도 아니고, 하나님 중심으로 애국도 하고 애민족도 하고 애가정도 하고 애자기(愛自己)도 하고 모든 업도 사랑하고 이 사람의 모든 하는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는구나 하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것이 빛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선이라, 자비라, 도덕이라 하는 그런 것이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전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중심에 움직임, 하나님 중심에서 움직인다는 이 움직임을 세상에게 보여주려는 이 노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고 또 세상에게 보여주는 이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성전입니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기독자인 것입니다.

교회란 것이 이런 것이고, 또 교회 안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가 있어서 환하게 비추는 등대가 있는데 거저 개인도 '아! 내가 이래가지고 남에게 덕이 안되지, 남에게 빛을 보여야지 남에게 덕이 안 돼, 다른 사람이 이걸 보고 혹 넘어지고 시험에 들라' 이래서 다른 사람 앞에 자기는 덕을 세워야 되고 감화를 주어야 될 텐데 '혹 다른 사람에게 부덕(不德)스런 일이 될까, 빛이 되지 못할까'하는 이 염려의 작용이 그 인품 속에 인격 속에 그 활동 속에 역사 해야 되지 이것이 그 개인에게든지 가정에든지, 뭐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이것이 심덕에 걸린다, 다른 사람에게 빛이 안될라, 다른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손해 볼라' 이렇게 염려하는 이 등대 생활이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가 있어야 되지 이것 없이 껍데기만 암만 꾸며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곱 등대 , 일곱 촛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는데 성경에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착한 행실을 해서 세상에 빛의 직책을 다하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게 보여 주는 것. 세상이 어두운데 우리는 세상에게 밝은 것을 보여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밝은 것을 보여 주도록 노력하는 노력이 있어야 되고 또 결과가 맺어야 됩니다.

그러면 밝은 것이 어떤 것이 밝은 것인가? 세상에는 돈 중심으로 사는 사람, 또 명예 중심으로 자기 직장 중심으로 물질 중심으로 민족 중심으로 국가 중심으로 사회 중심으로 문화 중심으로 가족 중심으로 자아 중심으로 별 중심들이 많은데 그것은 다 어두워진 것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분을 배반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데 그것 중심으로 해 가지고야 하나님이 섭섭해 여기시니까 그것 되겠습니까? 온 세상은 그런 세상인데 우리들이 모든 생활에서 '아, 저 사람도 보자. 저 사람이 이제는 보자. 돈 중심인가 하나님 중심인가 보자.' 할 때에 그때 뚜렷이 우리는 '아, 저 사람은 돈 중심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보여줘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떤 때는 명예 그런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생사 문제가 있습니다.

'아, 저 사람도 죽음을 피하고 살기 위한 생명 중심의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볼 수 있는 그때에도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사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그런 사람들과 같이 '저 사람은 죽음에서도 하나님 중심, 물질 앞에서도, 명예 앞에서도, 감정 앞에서도,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 앞에서도 저 사람은 참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이 빛을 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우리들인 줄 알고 이 빛으로 살기를 원하고 노력하고 또 빛으로 산 그 결과를 세상에게 보여 줘야 큰 빛이 되든지 작은 빛이 되든지 빛으로 보여 줘야 되는 이 빛의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크든지 작든지 이 운동이 있고 이것이 안 되는 데에서 애타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4, 떡상(출25:23:30) :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

<진설병>

지성소에 진설하는 떡, 괴어 놓는 떡.(출25:30). 진설하는 떡은 12개로 되어 있으며, 누룩 없는 떡을 매주 안식일마다 새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레24:5-9, 대하2:4).

다음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거기 진설 된 그 떡은 하나님의 식물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그렇게 형상을 해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보여주기 위해서 했습니다.

거기 진설병의 떡상은 그것은 하나님의 잡수실 음식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잡수시지 안 했습니다. 이것은 참된 성전을 가르치기 위해서 외형으로 구별해서 알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한 것이요. 차차 성령의 감동으로 자라 가면 구약 성도들도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르는 자는 모르고 외식으로 지나갔고 하나님의 식물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이룰 때에 이룰 때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시작하여 뜻대로 진행하고 뜻대로 완성을 할 때에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양식이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것만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당신의 것이 되지 딴 것은 안됩니다.

또 하나님의 떡이며 제사장들의 떡입니다. 제사장들이 먹기는 제사장들이 먹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잡수시고 제사장들과 그 식구들은 볼 수 있게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