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성전산이 유대인과 관련 없다? 다시 보는 성전산 역사

열려라 에바다 2016. 10. 21. 08:10

성전산이 유대인과 관련 없다? 다시 보는 성전산 역사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성전산 전경. 위키피디아



지난 11일(현지시간) 이집트 레바논 알제리 등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 예루살렘 동부의 팔레스타인 문화유산 보호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유네스코에 제출하면서 “성전산(Mount Temple)이 유대인과 관련이 없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성전산에 대한 역사가 재조명 되고 있다.

성전산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성전 터에 남아있는 ‘서쪽 벽(일명 통곡의 벽)’과 바위돔 사원(황금돔 사원), 알 아크사 사원이 있는 언덕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 무슬림 모두가 신성시하는 장소이다.

성경에서 성전산은 ‘모리아산’으로 묘사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산이며(창 22:2), BC 9세기 솔로몬 왕이 건설한 성전이 있던 장소이다(왕상 6:37~38; 대하 3:1~2).

솔로몬 성전(1차 성전)은 바빌로니아 포로기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파괴됐다가(대하 36:18~19),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스룹바벨이 재건했고(2차 성전, 스 3:7~13), AD 1세기 헤롯왕(Herod I)이 성전산을 확장, 보수하며 성전을 재조성했다.

신약시대에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함께 한다. 아기 예수는 성전에 올라 정결예식을 행하고(눅 2:22~27), 12세 때는 성전에서 선생들과 토론한다(눅 2:42~50). 예수는 성전에서 가르치며(마 26:55) 장사치들을 내쫓으며 성전을 정화한다(마 21:12~17).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성전의 휘장이 찢겨졌다(마 27:51).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행 2:46) 예수의 제자들은 성전에서 가르치며 기적을 베풀었다(행 3:1~4:2). 사도바울은 성전에서 붙잡히기도 했다(행 21:27~33).

B.C. 19년 헤롯왕은 유대인의 민심을 얻기 위해 기존의 성전을 헐고 대규모의 성전, 부속 건물, 요새 등을 세우며 과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AD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파괴됐고 지금은 성전의 서쪽 벽만 남아있다.

성전에 대한 파괴는 구약성경의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막 13:1~2)에 의해 예언되기도 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기도 했다(겔 40:1~43:27).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이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어린양 자체를 말하고 있다(계 21:22). 성전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거주하시는 하나님을(대하 6:20,33), 신약에서는 예수와 교회 자체가(요 2:19~22, 고전 3:16~17) 성전으로 상징된다.

성전산은 로마 지배 당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주피터 신전을 세웠던 장소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집을 모독한 이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고 결국 2차 유대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했고 아예 유대 지역 이름을 바꿔버렸다. 블레셋 평원의 로마 이름인 ‘팔레스티나’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지역을 통칭해 부르는 영어 이름인 ‘팔레스타인(Palestine)’은 바로 이 로마 이름에서 기원했다.

유대인의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유대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도 예루살렘 방문이 금지됐다. 1년에 단 한 차례, 바벨로니아가 솔로몬 성전을 무너뜨린 날이면서 동시에 로마가 헤롯 성전을 허문 날인 ‘티샤 베아브’(아브월 아홉 번째 날)라 불리는 이 날에만 예루살렘 성전산의 서쪽 벽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현재 성전산은 사실상 이슬람교가 차지한 상태이며 유대인들은 접근할 수 없다. 그나마 성전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서쪽 벽에 모이고 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 세계 유대인들은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 부르며 미래의 성전을 위해 기도한다. 보수 우파 유대인들 중엔 성전산에 ‘제3의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무슬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제3성전 건축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신학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더 많다.  

성전산이 본격적으로 이슬람의 성지가 된 것은 638년 이슬람 군대가 점령하면서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이 곳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로 여겨진다. 현재 황금돔으로 불리는 바위사원은 우마미야 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에 의해 건축이 시작돼 691년 완공됐다. 사원의 돔 아래에는 높이 1.8m, 폭 11m의 바위가 있다.

유대인들은 이 바위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 했다고 믿는 반면,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이 바치고자 한 아들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라고 믿으며,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했다고 믿는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기독교 측이 예루살렘을 재탈환했다. 하지만 성전산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후 성전산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세 종교의 성지가 되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순례 장소가 되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