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다시보는 이지선 스토리 3] 중환자실서 지옥같은 죽음과 사투

열려라 에바다 2017. 1. 31. 12:40

[다시보는 이지선 스토리 3] 중환자실서 지옥같은 죽음과 사투

 

‘지선아 사랑해’로 온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 이지선씨가 한동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을 며칠전 전해드렸습니다. 이지선씨는 2002년 12월 국민일보 [나의 길 나의 신앙] 코너를 통해 소개하면서 화제를 얻었는데요. 당시 이지선씨가 우리 지면을 통해 전해준 감동 스토리를 다시 한 번 보시죠. 15년이 지났는데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지선씨의 스토리는 여전히 감동스럽습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 교통사고 딛고 새인생 이지선씨 (3)

국민일보 | 2002.12.09

앰뷸런스가 오고 저와 오빠는 사고 장소와 가까운 용산 중앙대부속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습니다. 우리가 용산 전쟁기념관 옆 신호대기선에 선지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주일 밤에 집으로 향하던 남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인 1998년 믿음의집 찬양예배때 싱어로 찬양하는 이지선씨의 모습.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의사들이 달려들었지만 별 방도가 없었습니다. 잠시 기절했던 저는 갑자기 일어나 뜨겁다며 치료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다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의사들이 오빠의 팔을 치료하려고 하자 오빠는 자기는 괜찮다며 동생을 봐달라고 했지만 의사들은 동생은 지금 화상이 문제가 아니라 맥박조차 잡히지 않는다며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게 없어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제게 산소호흡기가 부착되고 우리는 다시 앰뷸런스를 타고 한강성심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앰뷸런스 안에서 오빠는 끝도 없이 주기도문만 외웠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오빠는 한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저를 안고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주기도문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다 제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팔이 불에 타면서도 동생을 구한 오빠가 지난 10월에 일본에 다녀갔을 때 모습.


“지선아 잘가. 너는 너무나 좋은 딸이었고 동생이었어. 누구보다도 예쁘고 착하게 살았고 평생 널 잊지 않을게.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조금만 기다려. 지선아,잘가” 

오빠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했을 때 저는 신음소리를 그쳤습니다.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호흡조차 잡히지 않았고 뒤통수는 다 찢어져 살이 너덜거렸으며 이미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살이 탄 냄새가 진동했고 얼굴도 새카맣게 타서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의사가 오빠에게 치료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일지 모르니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오빠가 다시 인사를 하자 저는 부르르 떨던 다리를 멈추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오빠의 인사를 받는 듯했다고 합니다.

잠시후 아빠와 엄마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아빠가 “지선아,아빠다. 아빠가 왔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자 의식이 없다던 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합니다. 엄마는 어찌해야 할지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저를 보고 서 있을 수도 없었고 딸의 살이 탄 냄새를 맡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날 어찌할 바를 몰랐던,정말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는 응급실 바닥에서 그냥 굴렀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우리 지선이 교통사고 났어. 지선이 죽는대”라며 가깝게 지내는 권사님께 전화를 했고 곧 이모 삼촌 목사님 전도사님 권사님,그리고 집사님들이 병원으로 달려오셨습니다.



아빠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며 가망이 없어보이는 저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아빠는 의식이 있다며 의사를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제 머리를 깎고 찢어진 뒤통수를 꿰매는 등 응급치료를 하고 온몸을 붕대로 감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CT촬영을 할 수 있었고 다행히 뇌는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 4시 폐에 가스가 차서 그것을 빼내는 호스를 옆구리에 박고 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아직 살았다고 할 수 없으며 아주 위험한 상태니 계속 지켜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옥같은 죽음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정리=김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