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2년 경기도 수원 연무동의 마당 큰 집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청과물 상회를 크게 하신 아버지 덕분에 유복했다. 어머니는 그런 풍요와 행운이 우리 가정에 늘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비싼 돈을 들여 1년에 몇 차례씩 굿을 했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던 큰오빠와 4살씩 터울인 둘째·셋째 오빠는 같은 날 합동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오빠들은 사업도 함께했다. 아버지는 그런 세 아들이 자랑스러워 초기 자본금도 대주셨다.
그러나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고 어떻게 또 넘기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전답을 팔았다. 결국 살던 집과 약간의 땅만 남게 됐다. 면목이 없던 오빠들은 더 이상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았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잘 됐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뒤 오빠들은 망했고 빚쟁이들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남은 재산으로 빚 청산을 하고 달구지 하나에 옷가지와 소지품 정도만 챙겨 아버지 어머니 언니 나, 이렇게 네 식구는 야밤에 마당 큰 집에서 쫓기듯 나왔다.
교복과 가방을 달구지 위에 올려놓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더러워지는 게 싫다”며 품에 안고 달구지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네 식구가 도착한 곳은 한 고아원의 문간방. 고아원은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벽에 박힌 못에 교복을 걸어놓고 얼마나 피곤했는지, 깊은 잠에 빠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아침에 고아원 문간방 신세가 됐는데도 부모님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식구를 건사해야 했던 아버지는 고물장수가 됐다. 리어카에 가락엿이 담긴 봉지 한 개를 달고 엿장수용 가위를 치며 아버지는 아침마다 “내 다녀오마”라시며 ‘출근’을 하셨다.
나는 그리 담담하지 못했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담벼락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물을 마시고 계셨다. 얼마나 창피했는지 친구 손을 꽉 잡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다. 밤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 역시 입을 꾹 다물고 그날 밤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땐 절망뿐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싶었지만 환경이 발목을 잡았다. 고3이 되면서 취업을 하게 됐다. 한 회사 경리부에서 일했는데 차 심부름이나 하고 걸레질을 하는 내가 싫었다. 그 일이라도 하니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왔으나 기쁘지 않았다. 넋 놓고 창밖을 보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못 탄다”며 상사에게 구박을 받는, 이런 바보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때 막연하게 이런 기도를 드렸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 인생 좀 바꿔주세요.”
미션스쿨이었던 중학교에서 종교부장을 맡았을 때 교목선생님은 “순복이 너는 꼭 하나님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열아홉 살,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그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땐 신앙적으로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막연하게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그분이 내 삶의 피난처가 되셨고 나를 이끌어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역경의 열매] 송순복 <2> 아버지의 사업 실패… 온가족 야반도주
리어카 끌던 아버지와 길에서 마주쳐 창피해 같이 있던 친구와 함께 달아나
![[역경의 열매] 송순복 <2> 아버지의 사업 실패… 온가족 야반도주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502/201705020000_23110923739726_1.jpg)
송순복 대표가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를 치고 있다. 유치원과 피아노학원에 다닐 정도로 그는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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