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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송순복 <3> 임신 고민하자 “안수기도 받으라” 권유에 교회로

열려라 에바다 2017. 5. 3. 07:09

[역경의 열매] 송순복 <3> 임신 고민하자 “안수기도 받으라” 권유에 교회로

임신됐지만 한약·부적 효과라 믿어… 기대 컸던 아들 식물인간으로 태어나

 

[역경의 열매] 송순복 <3> 임신 고민하자 “안수기도 받으라” 권유에 교회로 기사의 사진
송순복 대표가 무당이 점찍어 준 날이라는 ‘1984년 11월 11일 11시’ 이규두 장로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분명한 건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그저 고난에 불과했던 것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된 순간 에너지로 솟아난다는 것이다. 주님은 때로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를 부르신다.

20대 초반, 나는 돈이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 말단 경리직원 일을 그만두고 친구를 따라 P화장품 미용사원으로 취직해 돈을 벌면서 행복한 삶을 기다렸다. 당시 미용사원은 고객을 만나 마사지를 해주고 화장품을 판매하며 실적을 쌓는 일종의 ‘헬퍼’였다. 입사 1년여 만에 매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한번은 남들이 쉬는 일요일에 사업체를 크게 운영하는 한 여성 고객을 만났다. 다과를 내오신 그분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우리 삶에는 이웃도, 재미도, 슬픔도, 돈도 두루두루 있어야 해요. 젊은 아가씨가 돈을 벌기 위해 일요일까지 일하겠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앞으론 일요일만큼은 아가씨 자신을 위해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필요하겠지만 그게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당시 친구들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재밌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질까.’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고 4년 정도 연애를 한 뒤 1984년 11월 11일 11시에 결혼했다. 무당이 점찍어 준 날이다. 양가 어른들은 부귀영화를 누릴 사주팔자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큰딸을 낳은 뒤 시댁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살면서 시댁에 대해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대대로 무속신앙을 믿는 집안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굿하는 집안 분위기에 익숙했기에 그게 문제가 될까 싶었다. 그런데 시댁은 곳곳에 신당이 세워져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몸이 아픈 시어머니는 새벽마다 중얼거리셨는데 남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데 자식을 위해 신을 받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름 모를 병으로 자주 아프시다고 했다. 그래서 신당을 차려놓고 매일 치성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시어머니는 “아들 손주를 봐야 내가 편히 눈을 감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손주를 못 보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시아버지는 “종갓집 맏며느리니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더 세게 몰아붙이셨다.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가만히 있어도 환청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성수 엄마가 “목사님께 안수기도 받으면 임신할 수 있다”며 교회에 가자고 했다. 나를 전도하겠다며 매일 찾아오는 성수 엄마를 쌀쌀맞게 대하던 차였다. 그 말에 솔깃해 교회로 따라나섰다.

지하 창고 같은 곳에서 목사님은 나를 위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기도해주셨다. 하지만 작고 초라한 교회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목사님 기도가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이후론 성수 엄마를 모른 척했다.

그런데 정말 목사님 기도대로 3개월 뒤 임신했다. 물론 그땐 ‘목사님이 기도를 해서 임신이 됐겠어. 그동안 먹은 한약에 부적을 쓴 게 얼만데’라며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 귀한 아들이 식물인간이 돼 세상에 나왔다. 믿음 외에는 표적을 구할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비로소 깨달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