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여섯 살이던 1985년, 부모님은 나와 여동생의 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을 선택하셨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이민을 준비할 무렵 아버지는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스 창단 감독 제의를 받으셨다. 아버지는 미국에 온지 2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이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셨다. 아버지는 프로야구 초창기에 빙그레 이글스와 MBC 청룡 감독을 지낸 배성서 감독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몇 차례 있었으나, 나는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시도 나를 잊지 않으셨다.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까지 남서울교회에 출석했다. 당시 여름수련회 때 교회의 중고등부 전도사님이 설교를 통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고 말했을 때 나는 간절히 기도했고, “목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다른 말들은 들리지 않고 오직 “목자”라는 말만 들렸다. 나는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 나를 목회의 길로 부르고 계신다고 확신했다.
88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여름수련회에서 나의 소명은 좀 더 분명해지는 듯했다. CCC의 창립자 빌 브라이트 목사님은 설교를 통해 “중국을 품으라”고 촉구했다. 이어서 중국선교사로 헌신할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나를 중국으로 부르신다고 확신해 참석한 500여명 중 제일 먼저 강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예, 주님! 당신을 위해 중국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뜨거웠던 소명은 대학의 첫 학기가 시작된 지 두 주가 지났을 때 한 여학생을 사귀면서 서서히 식어갔고 1년 뒤에 결혼하면서 중국에 관한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돼있었다.
96년 샌프란시스코 신학교를 졸업한 후 커버넌트 신학대학원에 다니기 위해 세인트루이스로 이사했다. 가족과 함께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했을 때 수중에 돈이라곤 호주머니에 있는 50달러가 전부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막막하기만 했다.
첫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학교 우편함에서 편지 한통을 발견했다. “케네스, 당신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당신이 졸업할 때까지 매달 50달러씩 당신에게 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매달 50달러를 보내겠습니다.” 누가 보낸건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주님은 나를 잊지 않고 계신다는 증표를 보여주는 듯했다.
2003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에 몇 교회에서 다양한 직분을 맡았다. 하지만 1년 반 뒤에 가정이 무너지면서 사임했다. 내게 그 일은 마치 하늘에서 큰 바위 덩이가 떨어져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가정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시애틀에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내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루는 지독한 무력감에 하염없이 우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아내의 마음은 구하면서 내 마음은 구하지 않고 있느냐? 먼저 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나머지 모든 것을 더해 주겠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내가 오래전에 했던 서약을 새롭게 기억나게 하셨다. “나는 너를 중국으로 불렀고 너는 기꺼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태 가지 않았구나. 계속해서 내게 순종하지 않고 있구나.”
내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하와이 예수전도단(YWAM) 코나 캠퍼스의 제자훈련에 참여하게 됐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2> “주님, 제가 중국에 가겠습니다” 서원 까맣게 잊어
서약 몇년 후 가정불화로 괴로워할 때 “내게 순종하지 않는구나” 음성 들려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2> “주님, 제가 중국에 가겠습니다” 서원 까맣게 잊어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720/201707200004_23110923785394_1.jpg)
2014년 북한에서 풀려난 후 첫 추수감사절에 온 가족이 함께 모였다. 앞줄 중앙이 배 선교사의 부모, 뒷줄 오른쪽 끝이 케네스 배 선교사 부부. 케네스 배 선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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