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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최상민 <10> 발전설비 토목공사 제자리… 뜻밖에 도움의 손길이

열려라 에바다 2017. 8. 22. 10:32

[역경의 열매] 최상민 <10> 발전설비 토목공사 제자리… 뜻밖에 도움의 손길이

“당신 덕에 대지진 피하고 목숨 구해”… 지질학자 지원으로 애태우던 공사 마쳐

 

[역경의 열매] 최상민 <10> 발전설비 토목공사 제자리… 뜻밖에 도움의 손길이 기사의 사진
ESD 직원들이 2010년 1월 아이티 대지진 후 발전소 부지에서 20m짜리 파일을 박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0년 1월 12일 오후 갑자기 포르토프랭스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아이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은 가난한 나라를 뒤엎었다. 50만명의 사상자와 18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렇게 못사는 나라에 대지진까지 발생했으니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 긴 한숨부터 나왔다. ‘하나님,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나요.’ 당시는 한국에서 발전기 엔진이 오고 있었다. 만약 ESD가 발전기를 조금만 일찍 현지에 설치했어도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배가 도착했지만 항구는 기울어져 있었다. 배를 댈 곳이 없었다. 미국 공병대가 설치한 임시 항구로 물자를 내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곧바로 미군 대령을 찾아갔다.

“수고하십니다. 저는 아이티에 전력공급 사업을 하는 최상민 사장이라고 합니다.” “예, 무슨 용건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대지진으로 사회기반시설이 망가진 아이티가 복구되려면 전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저희가 발전기를 한국에서 이곳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대령님, 미군이 설치한 임시항구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다만 저희도 내려야 할 구호물자가 많습니다. 반나절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드릴 테니 신속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반나절만 쓰겠다고 하고는 나흘 밤낮으로 1만t의 발전설비와 자재를 하역했다. 미군의 도움으로 설비 자재를 무사히 내렸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히 지질조사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땅이었지만 막상 파보니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20m짜리 파일 980개를 박아 넣어야 한다고 했다. 지질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에 1개도 박기 힘들었다. 토목 기초공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투자를 했던 사업 파트너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아니, 발전설비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토목 기초공사도 못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물이 터져 나오고 파일도 안 들어 간다면서요. 투자금을 날리면 당신이 모든 책임을 지시오.”

나에겐 허가도 받지 않은 아이티의 땅을 사전에 파볼 방법도, 권리도 없었다. 아이티 전력청에서 보증해준 전문가의 부실한 지질조사 보고서를 믿고 이런 결과가 생겼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발전소 부지만 바라봤다. 어느 날 프랑스계 아이티 지질학자가 나를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사장님, 토목업체 사장한테 연락이 왔는데, 저명한 아이티 지질학자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저희 부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지?” “지진 발생한 날 사장님이 꼭 미팅을 하자고 우기는 바람에 토목업체 사장과 지질학자가 목숨을 구했답니다. ESD가 생명의 은인이라며 아무런 조건 없이 돕겠답니다.” “오, 할렐루야.”

얘기를 들어보니 토목업체 사장과 지질학자는 1월 12일 우리 회사의 요구로 원래 갔어야 할 현장방문을 취소했다고 한다. 나머지 현장방문을 했던 사람들은 지진으로 건물이 매몰돼 전원 사망했다. 토목업체 사장과 지질학자는 파일 시공법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기술지원을 받아 그 방법대로 무사히 토목공사를 마무리했다.

발전소 건립이 아이티의 인프라 복구와 관련된 사업이다 보니 아이티 정부에서 공식제안이 들어왔다. “아이티 복구위원회에 들어와서 자문을 좀 해주십시오.” “좋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